창비세계문학 89

잃어버린 발자취

알레호 까르뻰띠에르  장편소설  ,  황수현  옮김
원제: Los pasos perdidos
출간일: 2022.02.25.
정가: 15,000원
분야: 문학, 외국문학

서구 문명의 대척지에서 새롭게 태어난 20세기의 오디세이아

 

 

꾸바 국민작가 까르뻰띠에르가 선보이는 ‘경이로운 세계’

 

 

 

라틴아메리카 ‘경이로운 현실주의’의 대표작 국내 초역

 

 

 

 

 

이 시대 라틴아메리카에서 출간된 가장 위대한 소설

 

 

―『르 피가로』

 

 

 

문명이 진정한 문명인지 야만이 진정으로 야만인지

 

 

감히 질문을 던진 라틴아메리카의 첫번째 소설가

 

 

―까를로스 푸엔떼스

 

 

 

 

 

놀랍도록 낯설고 매력적인 작품세계로 서구 문단을 단번에 사로잡았던 라틴아메리카 붐(Boom) 소설의 선구자, 스페인어권 최고 권위의 세르반떼스상 수상(1978) 작가 알레호 까르뻰띠에르의 대표작이 창비세계문학 89번으로 우리 독자들과 처음으로 만난다. 『잃어버린 발자취』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백년의 고독』에 앞서 라틴아메리카의 고유성과 독창성을 일상 현실 속에서 발견해낸 알레호 까르뻰띠에르 문학의 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20세기 중반 현란하게 복잡해진 대도시의 삶에 지친 주인공이 우연한 기회로 떠난 여행에서 태초의 모습을 간직한 자연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드라마가 거듭되는 반전 속에 흥미롭게 펼쳐진다. 같은 시간대를 살고 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자연에 밀착한 삶과 문화가 현대 서구의 지식과 교양으로 무장하고 사회의 톱니바퀴로 살아가는 존재에게 던지는 충격은 문명과 야만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낳는다.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며 세상 만물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공간, 라틴아메리카의 진귀한 자연에 대한 묘사는 머릿속에 그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매일의 여정을 기록한 기행문 형식으로 6개월여의 모험을 담은 이 소설은 서구 문명의 대척지에서 새롭게 태어난 20세기의 『오디세이아』이다. “생소한 것은 모두 경이롭다”라며 라틴아메리카의 고유성을 ‘경이로운 현실주의’로 포착해낸 작가의 작품세계가 섬세하고 정교하게 구축된 문장들 속에 우뚝하다.

 

 

 

숨겨진 표지를 통해 태초의 세계로

 

 

 

작품 속에서 끝내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주인공 ‘나’는 뉴욕으로 추정되는 대도시의 일상에 얽매여 시시포스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음악가로서 오랫동안 작곡을 꿈꿔온 작품이 있지만 현실은 상업음악을 만들며 생계를 이어간다. 몇년씩 같은 배역을 연기하는 연극배우 아내 루스도 생활에 지친 것은 마찬가지로, 주말의 의례 같은 결혼생활은 무미건조해진 지 오래다. 이 삶을 벗어나려면 ‘이곳’을 벗어나는 수밖에 없다. 내가 드디어 며칠의 휴가를 얻었을 때 루스는 순회공연을 떠나고, 나는 악기 박물관의 큐레이터 스승에게서 원시 악기를 수집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남아메리카 열대의 밀림으로 향한다. 거기에는 『오디세이아』를 읽으며 다이아몬드를 찾아 밀림을 헤매는 그리스인 광부가 있고, 창조주처럼 자신만의 도시를 건설한 사내와 원주민들에게 포교하며 떠도는 카푸친회 신부가 있다. 그들과 함께 광포한 폭풍우를 이겨낸 아침, 물속에 뿌리를 담근 나무들에 새겨진 은밀한 표지를 통해 나는 수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듯한 시원(始原)의 세계로 들어선다. “드넓은 대지와 산, 계곡, 보물, 방랑자와 사라진 문명의 흔적을 간직한 밀림” “숨겨진 국가, 암호로 그려진 지도, 비밀의 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광대한 식물의 왕국”에(147면) 발을 들인 것이다. 모든 생명이 저마다의 목적으로 충만한 세계, 인간의 문명이 무용해지는 세계, 철저하게 자연의 리듬에 따라 살아가는 세계에 나는 압도당하고 거기서 만난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태양 아래 아무 거리낄 것 없는 삶에서 드문 행복을 맛보고 창작욕이 샘솟는 것을 느낀 나는 문명세계를 영원히 등지고 이들과,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갈 것을 꿈꾼다. 그러나 그 꿈은 남편을 찾아내 일상으로 복귀시키려는 아내 루스의 계획으로 좌절되는 듯싶고, 간신히 벗어난 내가 다시 찾은 강가 나무들에는 시원의 세계로 가는 표지가 씻은 듯이 사라져 있는데……

 

 

 

사람·자연·역사, 모든 것이 경이로운 공간

 

 

 

이 작품이 『백년의 고독』에 앞서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독창성을 보여준 작품으로 꼽히는 것은 일찍이 서구의 예술운동을 접한 작가가 라틴아메리카를 재발견하고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덕분이다.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까지 빠리에서 초현실주의와 아방가르드 운동 같은 당대 최첨단 문화·예술에 심취했던 작가는 꾸바로 돌아온 후 초현실주의가 추구하는 인공적 경이가 라틴아메리카와는 어울리지 않음을 깨닫는다. 라틴아메리카는 그곳을 구성하는 모든 것, 사람·자연·역사가 다 경이로우며 그런 ‘경이로운 현실’이 펼쳐지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잃어버린 발자취』에 그려지는 숲의 정령, 날개 달린 뱀, 성경 속 노아가 겪은 홍수를 연상시키는 누가 새겼는지 알 수 없는 대홍수 시대의 암각화와 그 위에 사는 사람들도 형체를 다 알지 못하는 대지 위의 그림(나스까 라인) 등은 신화와 역사가 뒤섞인 그 땅에 대한 낯선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웅장한 대고원과 거대한 강줄기, 구름처럼 하늘을 뒤덮고 대륙을 이주하는 나비떼, 기괴한 웃음소리처럼 들리는 밀림 속 새들의 울음소리, 기껏 일군 생활의 터전을 망가뜨리며 몇날며칠 이어지는 폭우 같은 자연은 정교하게 쓰인 부사와 형용사 들로 생생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라틴아메리카적인 것에 대해 일방적 찬사만 바치는 것은 아니다. 열대 밀림으로 들어가기 위해 처음 도착한 나라의 수도에서 주인공이 난데없이 맞닥뜨린 쿠데타와 유혈참사는 긴 세월 불안정한 정치 상황에 시달려온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낙후한 도시 수준, 상존하는 위험에 떨어야 하는 일상과 마법 같은 자연과 신화의 세계가 공존하는 땅, 그 자체가 경이로운 현실이고 그것을 바로크적인 문체로 그려낸 것이 『잃어버린 발자취』이다.

 

 

 

잃어버린 자아와 자연을 찾아 떠난 모험의 기록

 

 

 

작가는 애초 2년 예정으로 찾은 베네수엘라의 까라까스에 14년을 머물면서 오리노꼬강과 안데스산맥, 끝없는 평원과 보석 같은 섬들에 매료되어 점점 더 밀림 깊숙이까지 여행을 이어갔다. 『잃어버린 발자취』에는 이 여행의 경험이 녹아 있으며, 작가가 체화한 유럽식 교양과 첨단 문화, 음악 교육의 영향이 주인공의 모습을 탄생시켰다. 주인공이 오래전에 작곡하다 끝맺지 못한 곡이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에 붙인 곡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빌딩 숲속에서 생활의 사슬에 묶여 허우적대며 괴로워하는 존재다. 자연의 리듬과 하나가 되는 음악에 대한 갈망이 계기가 된 여행에서 그는 비밀의 표지를 발견하고, “금지된 장소에 던져진 침입자”처럼 “인간이 있기 전에 존재한 세계”를 접한다.(216면) 그곳은 나무·이끼·벌레·새·도마뱀·물고기 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가진 곳, 생명으로 충만하고 영원을 꿈꾸게 하는 곳이다. 그는 억눌렸던 영혼이 해방되고 영감이 솟구치는 것을 느낀다. 주인공이 살던 세계적 대도시에서 비행기로 불과 세시간 거리, 이 밀림 속 원형의 세계는 너무나 달라서 마치 환영 같지만 엄연히 실재하는 곳이다. 거대한 강을 거슬러 올라간 그의 여정은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과정, 같은 시간대에 있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를 발견하고 자신을 찾아가는 모험이었다. 작가는 지구상에 없는 가상의 공간 ‘산따 모니까 데 로스 베나도스’를 창조함으로써 문명의 부산물에 찌든 이들이 잃어버린 것, 꿈꾸던 모습을 되살려냈다. 이제 우리 독자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이 여행에 동참하기를 기대한다.

목차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작품해설 / 라틴아메리카의 ‘경이로운 현실’을 만나러 가는 길

 

작가연보

 

발간사

이 시대 라틴아메리카에서 출간된 가장 위대한 소설 ―『르 피가로』
문명이 진정한 문명인지 야만이 진정으로 야만인지 감히 질문을 던진 라틴아메리카의 첫번째 소설가 ―까를로스 푸엔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