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인 것의 귀환

초월과 존중과 희생의 시학

김종훈  평론집
출간일: 2022.02.25.
정가: 20,000원
분야: 문학, 평론
전자책: 있음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세상은 시를 필요로 한다

한국 현대시의 계보와 ‘시적인 것’의 자리를 다지는 올곧고 사려 깊은 비평

 

 

 

 

2006년 창비신인평론상으로 문단에 나온 이래, 『미래의 서정에게』 등을 통해 서정시의 전통과 미래를 관통하는 평론을 써온 김종훈 고려대 교수가 그간 서정시의 궁극을 탐색해온 결실들을 묶어냈다. 『시적인 것의 귀환: 초월과 존중과 희생의 시학』은 한국 현대시의 전반적인 지형과 계보를 토대로 이 시대 비평가들이 맞닥뜨린 위기와 그것을 헤쳐나가는 임무 그리고 용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의 1부는 A.I.가 여러 문화 현상을 좌우하는 지금 우리에게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궁구하는 글들을 모아냈다. 인공지능이 문화예술의 판도를 흔들어대자 많은 이들이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기존의 시들을 데이터베이스로 삼아 양산해낼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에 김종훈은 자본주의하의 인공지능이 일원화하고 단순화할 세계를 겨냥하면서 기존의 권위를 위협하는 존재로서의 시를 언급한다. 시는 A.I.와는 달리, 실패한다고 다시 연습을 시작할 수 있는 예행연습의 장이 아니다. 게임처럼 종료와 죽음을 반복하여 삶을 권태롭게 만들지도 않는다. 인간 삶에서 죽음이 절대적인 종료를 뜻하는 것처럼, “반복되지 않는 최초와 최후는 가상세계와 변별되며 전율을 일으킬 힘”(36면)을 갖는다. 이것이 바로 오래전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했고 현대의 김종훈이 그 바통을 이어받아 이야기하는 ‘시적인 순간’이다.

 

문학은 그것의 태동 이후부터 언제나 다른 매체, 장르와 견줘지면서 그 효용을 의심받아왔다. 20세기 후반에는 영화라는 매체에, 지금은 디지털 가상세계에 비교되는 식이다. 하지만 김종훈은 시인들이 언어와 자연이라는 재료로써 인간 심층을 탐구해가는 한 ‘시적인 순간’과 ‘시적인 것’은 끝내 보존된다고 단언한다. 결국 디지털 가상세계가 문학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는 것은 한낱 기우에 불과할 뿐이다. 김종훈의 진단은 도리어 정반대에 가깝다. 그는 트위터의 140자 텍스트가 어떨 때에는 “고도로 응축된 말, 집중된 정신과 두터운 시간을 담은 말”이라고 말하며 그것이 어찌 시가 아닐 수 있느냐고 날카롭게 반문한다. 그리하여 그는 “어쩌면 디지털 공간은 자신의 삶을 고양시킬 수 있는 말에 갈증을 느끼는 공간, 시의 말이 가장 둔중한 울림을 줄 수 있는 공간”(123면)이라고 말한다. 디지털 미디어를 축출과 배제의 대상이 아닌 시의 새로운 창작의 장 혹은 형식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문학이 가진 포용과 해석의 드넓은 범위를 일깨워준다.

 

김종훈은 정작 중요한 것은 매체가 아니라 목적이라며 그 시선을 좀더 먼 곳을 향해 던진다. 그에게 문학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곳은 ‘최초의 순간’ ‘처음의 전율’로서, 그것은 인간이 필연적으로 실패하고 말기에 더욱 간절해지는 목표가 된다. 이를 위해 시인은 시를 쓰고 그 시는 마치 굳은살을 벗기듯 지속적인 소통과 성찰을 거치며 ‘서정’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어느 시인이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하지만 시의 미학이 동시대의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고 후속세대의 세계관 또한 염두에 두지 못할 때에는 그저 방종과 고립에 머물 뿐이다. 이 같은 예술의 고립이 시대적 문제라는 것을 간파한 여러 비평이 새로운 소통의 방식을 제안한 바 있다. 이를테면 ‘시적 정의’ ‘감성의 분할’ 같은 것들. 여기서 김종훈이 제안하는 것은 극서정시다. 그에 따르면 현대의 인간에겐 “인간의 운명이 달래지 못하는 최초의 울음으로 돌아가는 결단이 필요하며, ‘우리’로 환원되지 않는 ‘너’와 ‘나’의 동일시 체험이 필요”한데 “자기를 벗어났다가 귀환하는 체험이 역설적이게도 타인과 함께 사는 이 시대의 시적 윤리이자 시적인 것의 출현 요건”(7면)이다.

 

2부에서는 서정시를 이루는 요소들 즉 그것의 정서적 측면에서부터 리듬이라는 운율적 요소, 알레고리라는 장치, 리얼리즘이라는 사조까지, 오래전부터 시의 미학적 특성으로 인식된 면면들이 현대에 어떤 효용을 갖는지를 탐색한다. 이 같은 전통적 시학 개념들은 2000년대 한국시의 극적인 변화를 거치면서 날카롭게 벼려졌다. 리듬은 그 변화와 어울리며 각각의 개성을 창출했고 알레고리는 세간의 수많은 오해를 불식하면서 ‘파편으로서의 세계’를 구현한다는 불가능한 기획에 도전했다. 김종훈이 여기에서 확인한 것은 전통 개념의 고수가 아니라 갱신을 거듭할 수 있게 하는 ‘시적인 것’의 힘이었다. 그 힘을 통해 우리는 서정시의 미학적 갱신을 이루게 되는데 그것은 “장르의 특성인 내면의 부정이 아니라 표현 방식의 극복”(104면)으로 성취된다. 김종훈은 이처럼 기존의 틀을 벗어나려는 극복에 대한 의지를 가리켜 ‘용기’라고 이름한다.

 

3부에서는 이 같은 ‘용기’를 지니고 기존의 권위에 도전했던 최종천, 이상국, 최정례, 곽효환, 황인찬 등의 시인과 그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 시인론과 작품론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김종훈이 일부러 시인과 시적 화자를 분리하지 않고 해설함으로써 발생하는 색다른 의미들이다. 그는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개인적인 체험까지 동원”(8면)하여 시인과 화자를 두루 아울러 해석하였고, 애써 분리하지 않았을 때 비로소 짚어볼 수 있는 틈을 섬세히 조명했다. 이로써 독자들은 그 시인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한 시와 삶의 경계를 짐작할 수 있게 되며, 그 합일의 가능성을 통해서만 전해질 수 있는 감동을 느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김종훈은 2000년대 시들의 첫번째 특징으로 일인칭 권위에 대한 도전을 꼽는다. 본래의 낭만적 자아가 주도하던 시는 종적을 감추고 시 속에 여러 하위 주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목청을 높이는 시들이 등장했다. 이처럼 2000년대 시들이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한국 현대시사에 굵은 획을 그었다면 그 뒤 2010년대, 2020년대 시들은 어떤 독창성을 지닐까. 평론가의 시점에서 2010년대 이후의 시들은 더이상 ‘활자의 세계’에서만 쓰이지 않는다. 영상, 게임 등 온라인상의 데이터베이스들이 수많은 체험을 시적 자양분으로 제공한다. 이 경험들은 공통적으로 위계가 없으며 그 범위가 넓다. ‘시적인 것’의 출현 배경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2010년대 이후 시인들은 이 같은 토대 위에서 시대를 초월하는 고유의 리듬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해왔지만, 그들의 각기 다른 원심력들은 여전히 하나의 중심에 강하게 묶여 있다. 바로 ‘최초의 순간’들이다.

 

 

 

어린애의 말처럼 순수한 시어를 쓰라는 말이 있다.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닮으라는 것은 해맑은 언어를 쓰라는 것이 아니라 최초의 서툶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내가 사용하는 말이 타락되었다는 전제는 지각을 확장해주는 새로운 주체를 출현시킬 수 있다. (…) 우리의 감정을 건드렸던 저 외국인의 말 ‘사장님, 사랑해’가 시적 순간이라고 느낀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239면)

 

 

 

4부는 이은봉, 나기철, 박라연, 박순원, 최두석, 최정진, 한영수, 황동규, 안도현 등 2000년대 이후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시집에 대한 해설을 담았다. 김종훈이 각각의 해설을 쓰면서 유념했던 것은 논리적 연결이 아니다. 그는 시집 안의 시들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를 경청하고자 했으며, 무엇보다 그 시들의 대화 속에서 이미지들이 애쓰지 않더라도 알아서 하나의 논리를 구성해주기를 기다렸다. 이는 “관례화된 자기 과시나 자연 예찬이 아니라 겨울밤 얼어붙은 잉크병을 녹이거나 겨자씨 햇살로 봄을 지피는 것”이고 이로써 “시의 중심은 갱신되고 보존되며 지속”(111면)된다.

 

평론가의 시선은 삶과 죽음, 말과 말 너머의 세계를 넘나든다. 어떤 날은 턴테이블 위의 레코드판을 보며 삶과 죽음의 연속성 덕택에 죽음에 대한 공포가 옅어진다는 점을, 그리하여 인간의 연대감은 두터워지되 우리 인간 고유의 ‘최초의 순간에 대한 깨달음’ 또한 옅어진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가 주목하는 것은 최초의 전율을 기억하고 그 경험을 잊지 않는 것이다. 김종훈의 글들은 이렇듯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자 사투로도 읽히는데, 희생과 존중을 말하며 끝내는 초월에까지 가 닿는 문장들은 강직하며 따스하다.

 

 

 

이 울음은 끝내 “당신에게로 귀환”하게 될 것이다. 아직까지 그 울음은 시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의식”인데, 이 또한 내게 있으나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시적인 것’이다. 시적인 것은 운명을 감지하는 곳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죽음과 내통한다. 시적인 것은 죽음의 연대를 통해 우연하고도 일회적으로, 누구의 제어 없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이것을 우리는 형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울음의 형상은 시, 시적인 것, 서정시의 미래이다. (45면)

 

 

 

 

목차

책머리에  

 

제1부

코끼리의 거처: 21세기 한국시에 나타난 상상력의 윤리

시적인 것의 귀환: 인공지능 시대와 서정의 미래

갇힌 주체의 부정성: 2010년대 시의 감성 구조

너에게 이르는 길: ‘나는 너다’의 모습들

불온한 시는 어디에서 출현하는가  

 

제2부

서정의 생명성은 무엇인가

현대시와 극서정시: 극서정시의 미학과 구조

헤맴의 궤적: 현대시의 리듬

현대시의 알레고리: 황현산의 알레고리

빈집의 유령들: 리얼리즘 시의 갱신과 관련하여  

 

제3부 춤추는 말과 진동하는 신념: 최종천의 시

그늘이 넓은 집, 마당에 사는 빛: 이상국의 시

최정례의 과외 수업

어디에도 있는 너는: 곽효환 『너는』에 부쳐

유안진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

서툰 연인들, 외국어 주체들: 황인찬 「나의 한국어 선생님」에 부쳐  

 

제4부

불투명한 바람과 투명한 마음: 이은봉 『봄바람, 은여우』

나기철의 발송 작업: 나기철 『지금도 낭낭히』

근시(近視)의 천사: 박라연 『헤어진 이름이 태양을 낳았다』

박순원의 시는 웃프다: 박순원 『그런데 그런데』

최두석의 사무사(思無邪): 최두석 『숨살이꽃』

어두운 기도의 형상: 최정진 『버스에 아는 사람이 탄 것 같다』

내 이름은 숨은 돌: 한영수 『케냐의 장미』

마당을 쓰는 사람: 황동규 『겨울밤 0시 5분』

안도현의 평지 순례: 안도현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발표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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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시적인 것은 자기희생과 초월과 존중을 기반으로 생성된다. 상식적인 말로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각각 자기과시와 집착과 포기를 대척점에 두고 그 특성을 벼린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이것들은 도달하기도 유지하기도 어려운 엄격한 덕목이다. 이 덕목들 덕택에 우리는 타인의 말에서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기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말을 경청하며 자신을 넓힐 수 있다. 이 세가지 덕목을 동시에 실천하는 데 필요한 것이 용기이다. 용기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그 정의와 양태가 조금씩 달라지지만, 용기를 내는 자는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두려움에 동요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게 하는 변화의 힘으로써 용기를 내는 자는 자기를 희생하고 초월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를 존중할 수 있다. 한편 시적인 것을 대면하는 독자는 이를 우연한 사건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용기를 낸 말들은 일상 지각의 영역 바깥에서 범상치 않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끝내 우연으로 남아 있는 말들을 계속해서 시적인 것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시적인 것의 맥락을 살펴보면 낱말 하나하나에 필연성을 갖추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가 이 말이 왜 이렇게 표현되었는지를 궁금해할 때 시적인 것은 늘 여러 답변을 준비한다. 비평은 우연히 도달한 것처럼 보이는 표현에 그 필연성을 되묻는 작업과 같다. ‘시적인 것의 귀환’이라는 말은 잊었던 것을 되찾는다는 뜻에 그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섬처럼 보이는 낱말들 사이에 다리를 놓거나 뱃길을 만들어 접근 가능성을 높인다는 뜻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