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의 속도로 다채로운 세상을 그리다
천진한 동심을 노래하는 손바닥 동시
『손바닥 동시』(창비 2018)를 통해 짧고 기발한 세 줄 동시 장르를 개척하며 제59회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한 유강희 시인이 두 번째 손바닥 동시 『달팽이가 느린 이유』를 펴냈다. 전작에서 섬세한 시선으로 자연을 관찰하던 시인은 이제 주변의 작고 사소한 존재들이 품은 온기를 포착하여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다. 3행의 문장에 담긴 풍성한 이야기는 독자 스스로 여백을 채우는 상상의 즐거움과 함께 자신만의 글을 쓸 용기를 건네는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고유한 시선으로 더 넓게 펼쳐 보이는 ‘손바닥 동시’의 세계
간결하고 재기 발랄한 ‘손바닥 동시’로 어린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유강희 시인이 새로운 손바닥 동시 100편으로 돌아왔다. 신간 동시집 『달팽이가 느린 이유』는 천진한 눈으로 자연을 노래한 『손바닥 동시』의 감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로 시선을 확장한다. 시인은 벽에 무심하게 걸려 있는 거울에서 투명한 속을 가진 “작은 연못”을 발견하기도 하고(「거울」), 교실에서 자주 쓰이는 악기인 트라이앵글을 “기뻐도 슬퍼도/입만 조금 벌리고/노래하는 귀여운 새”라고 부르며 애정을 표현하기도 한다(「트라이앵글」). 익숙한 나머지 쉽게 지나치곤 하는 대상들을 생동하듯 경쾌하게 그리면서도 낡고 볼품없어진 존재들을 위한 사랑의 노래를 잊지 않는다.
세상은 넓다는데 / 한쪽 구석에 쪼그려 / 새우잠 자는 사람 _「굽은 못」 전문
내 이 닦아 주느라 / 칫솔 이는 닳고 / 빠지고 꼬부라졌다 _「칫솔」 전문
눈앞의 생명을 정성스럽게 응시하는 시인의 다정한 시심(詩心)은 표제작 「달팽이가 느린 이유」에서 특히 빛난다. 느리지만 누구보다 당당한 달팽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세상을 이해해 나가는 어린이를 닮았다. 더디더라도 게으르지 않게, 곡진한 눈으로 세상을 관찰하며 어린이 독자는 자신을 긍정하고 낯선 대상에 공감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 더 멋진 시를 쓸 거야 / 음, 바로 이 생각 때문 _「달팽이가 느린 이유」 전문
짧지만 단단하게!
어린이가 살아가는 세상을 오롯이 품는 여백
손바닥 동시는 단 세 줄로 쓰인 짧은 시이지만 행간에 담긴 이야기는 결코 간단히 요약될 수 없다. 간결한 시행은 오히려 “대상이 무거운 말과 의미를 짊어지지 않”게 해 주며 독자가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펼쳐 놓을 수 있는 “운동장”이 되어 준다(김준현, 해설 「세상을 담는 세 줄의 악보」). 이번 동시집에는 어린이가 감각하는 세상을 날카롭게 포착하며 그들을 위로하는 시편이 많은바, 그러한 작품에서 시인이 마련한 이 널찍한 여백은 독자가 마음 편히 머물 ‘마음속 운동장’이 된다.
일등이 꼴찌 되고 / 꼴찌도 일등 되고 / 둘은 서로 부러움 없이 _「계단」 전문
계단 위의 화자가 서는 방향에 따라 “일등이 꼴찌 되고/꼴찌도 일등 되”는 모습은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는 어린이의 삶을 속 깊이 들여다본다. 오도카니 서 있는 아파트로부터 외로움을 감지하고 “이 외로운 하모니카를/누가 좀 불어 주”길 염원하던 어린이에게(「아파트」) 계단에 선 두 사람이 “서로 부러움 없이” 하나가 되는 마지막 행은 시인이 건네는 따뜻하고 뭉클한 위로다.
함께 쓰자!
어린이에게 ‘쓸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는 동시
2018년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하며 유강희 시인은 “손바닥 동시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학적 놀이가 됐으면 한다.”라는 바람을 밝혔다. 실제로 손바닥 동시는 어린이들이 처음 시를 쓰는 많은 자리에서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시’로 통용되며 글쓰기 부담을 덜어 주었다. 지난 3년간 손바닥 동시를 플랫폼 삼아 전국의 어린이들을 만난 시인은 “어린 시인들이 쓴 시에서 자극도 받고 보람도 느꼈”노라 고백하며, 그들이 “또 어떤 손바닥 동시를 제게 보여 줄지 기대”된다고 말한다(「머리말」). 어린이 독자들에게 『달팽이가 느린 이유』가 시인의 개성 넘치는 손바닥 동시를 오랜만에 읽는 즐거움과 더불어 손바닥에 낙서하듯 부담 없이 자신의 글을 써 내려갈 용기를 줄 것이라 기대한다.
머리말|손바닥 동시 친구들, 안녕?
제1부 이 집의 왕은 나, 토끼!
수족관
우리 집
박물관
거울
창문
아이스크림
생일 카드
헬리콥터
수건
소파
차받침
삽살개
나귀
할아버지
24색 크레파스
화살표
신호등
회전목마
죽은 지렁이
트라이앵글
제2부 호박으로 멋진 우주선 만들 거야
침대
곰 인형
지우개
드림캐처
페이스 페인팅
우주선
감씨
풍경
계단
장갑
세상에서 가장 큰 가방
세상에서 가장 큰 모자
사랑
피아노
장롱
손주
여름
선풍기
가위
비누
제3부 아빠 턱엔 고슴도치 숨어 산다
별
돌멩이
아파트
단춧구멍
지팡이
달팽이가 느린 이유
트럭
엘리베이터
가을 하늘
시집
빗방울
수달
수염
젓가락
1학년 매미
개구리
태풍
울진 금강송
낙화암
냉장고
제4부 귀신도 무지 덥기 때문이야
파리 선생님
동생의 말
오늘 학교 앞
완두콩 콩깍지
나의 조그만 하느님께
물웅덩이
프라이팬
신발
벚꽃
은사시나무
아기 눈
왜가리 목
제주 바람
손부채
중국집
그네
선
스마트폰
앙증맞다
모래
제5부 내가 가장 열어 보고 싶은 상자
상자
가위바위보
그림자
발자국
눈보라
축구공
손잡이
코딱지
수박 생각
나무
석류
참깨꽃
양말
일곱 살 아이가 갓 돌 지난 아기에게
칫솔
봄
물방울
굽은 못
비행기
눈사람
해설|세상을 담는 세 줄의 악보_김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