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날 잠에서 내렸을까
아니면 여전히 잠 속에 있을까”
시인 강성은의 낯설고도 아름다운 첫 소설
위안과 안심과 단잠의 세계로 이끄는 매혹적인 이야기들
네권의 시집을 출간한 데 이어 2018년 대산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시인으로서의 입지와 독자층을 단단히 다져온 작가 강성은이 놀랍고도 반가운 첫 소설 『나의 잠과는 무관하게』를 펴냈다. 창비의 젊은 경장편 시리즈 소설Q의 열두번째 작품이다. 특유의 동화적 상상력과 몽환적 분위기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시인이 그려낸 열네편의 이야기들은 긴 시처럼 동시에 짧은 소설처럼 이어진다. 소설은 현실과 꿈의 경계가 혼재한 시공간에 존재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그린다. 인물들은 오지 않는 버스를 한없이 기다리거나, 목적지를 잃고 계속해서 잠에 빠지고, 어느 날 불현듯 사라지는가 하면 출구를 찾을 수 없는 건물에서 헤매거나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사랑하는 존재의 목소리를 듣는다. 소설은 단지 꿈속에 머물지 않고 자꾸만 현실로 되돌아오며 또한 다시금 비현실로 향하는데, 이 모든 꿈결 같은 이야기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저 나아가는 삶”(발문 김나영)에 대한 은유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이번 소설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선명히 펼쳐내, 마치 누군가의 꿈과 잠의 세계로 들어가 걷는 듯한 재미를 선사한다.
어디로 흐를지 알 수 없는 삶 속에
꿈으로, 꿈이 아닌 것으로 존재하기
강성은의 소설은 낯설고 아름다운 동시에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장면 속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어두운 밤 인적이 드문 교외의 버스 정류장, 두 여자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잠시 뒤, 한 발엔 슬리퍼 다른 발엔 구두를 신은 여자가 황급히 달려와 막차가 끊겼는지 묻는다. 세 여자는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린다. 그중 모자를 쓴 여자는 실은 자기가 버스 기사라고 말한다. 잠시 세워둔 버스를 잃어버려 기다리고 있다고(「버스 정류장」). 소설에서 사라지고 달아나는 것은 버스뿐만이 아니다. 잠든 아이를 곁에 두고 문득 창문을 바라봤을 때, 아이는 어느새 나무 위에 올라가 언젠가 잃어버렸던 고양이와 함께 있다(「나무 위에 있어요」). 마을 입구에 주인 없이 놓여 있던 의자들은 어느 날 한꺼번에 사라지고(「의자 도둑」), 어젯밤 들어온 기억이 분명한 건물의 출구는 다음 날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출구를 찾아 끝없이 계단을 걷고 걷게 될 뿐이다(「계단」). 피아노 소리가 울려오는 아랫집에 찾아가 샅샅이 뒤졌지만 피아노는 끝내 보이지 않고, 집으로 되돌아오면 피아노 소리가 다시 퍼진다(「공동주택」). 냉장고가 없어졌다고 하소연을 해보고(「사라진다는 것」) 언젠가 벽이 되었던 적이 있다고 고백해보아도 끝내 타인의 믿음을 얻을 수는 없다(「겨울 오후 빛」). 아이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신발만이 남아 있고 대신 발견된 것은 실종된 아이들의 수에 꼭 맞는 노인들의 시체이다. 실종 아이들을 찾고 노인들의 시체를 수습하던 파출소에는 전화가 걸려온다. 버스를 잃어버렸고 의자가 없어졌다고(「전화벨이 울렸다」).
이 모든 이야기는 현실인가, 비현실인가. 꿈속의 이야기일까, 꿈밖의 이야기일까. 강성은의 소설에서 현실과 비현실 그리고 꿈속과 꿈밖을 나누는 일은 무의미하다. 두 세계는 서로 섞이고 스치며 동시에 존재한다. 현실을 사는 인물은 동시에 비현실을 살게 된다. 달리 말할 수도 있다. 현실에서 죽은 인물은 비현실에서는 살아갈 수 있다. 반대도 가능하다. 꿈속에서 잠든 인물은 꿈밖에서 깨어 있고, 깨어 있을 때 잃어버린 것은 잠들어 있을 때 되찾을 수 있다. 소설은 “지금 여기의 우리가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고 영영 알 수 없더라도 어느 때 어느 곳에 분명하게 존재하는 게 있다고 믿어보는 일”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질문하게 한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무엇인가. 현실이라고 굳게 믿어 왔던 것들은 해체되고 비현실이라고 여겼던 것들은 현실처럼 생생히 눈앞에 있다. 과연 이것은 소설 속에서만 벌어지는 일일까. 강성은의 이야기들을 따라가다보면 문득 이 모든 현실적이고 비현실적인 장면들이 실은 우리 삶을 이루는 “크고 작은 부분들”임을 깨닫게 된다. “현실의 엄연함이라는 게 있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누구도 그 자신이 처한 그 현실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정”(발문)할 때 우리는 비로소 각자의 삶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은 잊을 테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히 남을 수도 있죠”
소설 속 인물들은 당혹스러운 삶의 장면을 앞에 두고 묻는다. “이거 혹시 꿈일까요? 아까부터 계속 꿈을 꾸는 기분이에요”(「전화벨이 울렸다」) “정말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겨울 이야기」) “사라지는 건 죽는 것과 어떻게 다를까”(「사라지는 것」) 그러면서도 이내 “이런 밤이 처음이 아닌 것 같”다고 “반복되는 꿈속에 있는 것”(「겨울 이야기」) 같다고 말한다. 이들의 대화가 낯설지 않은 이유는 우리의 입을 통해서도 같은 말이 자주 반복되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느꼈던 당혹스러움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과 다르지 않다. 삶은 언제나 알 수 없는 곳으로 흐르고, 우리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는 뉴스를 들으면서도 연말을 기념하는 케이크를 사러 가기도 한다(「나의 잠과는 무관하게」). 강성은이 꿈처럼 펼쳐놓는 이 아름답고 이상한 이야기들은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저 나아가는” 우리의 삶을 말하는 또하나의 방식이다. 알아챌 수 없을 만큼 작은 기척으로, 아주 미세한 틈 사이로 지나간 삶의 어떤 장면들을 “되돌려 주목하고 기억”한다. 그 장면 속에서 잊혔을 존재들에게 그들의 목소리를 돌려준다. 그리고 이야기를 통해 그 목소리를 들을 누군가에게 “지금 여기의 우리가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고 영영 알 수 없더라도 어느 때 어느 곳에 분명하게 존재하는 게 있다”는 믿음을 전해준다. 그 믿음은 “위안과 안심과 깊은 잠의 세계”(발문)로 빛을 비추고, 그리하여 도달할 강성은의 꿈과 잠의 세계는 따스하여 현실에서 울고 있는 누군가의 어깨를 토닥일 수도 있을 것이다. “믿을 수 없이 지나”가고 “지나가지 않는”(작가의 말) 소설 속 인물들의 시간을 함께 통과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시간 역시 믿을 수 없이 지나가고 지나가지 않음을 다시금 깨닫고, 그 깨달음에서 오는 작은 위로를 얻을 수도 있겠다.
버스 정류장
나무 위에 있어요
의자 도둑
겨울 이야기
사라진다는 것
공동주택
겨울 오후 빛
계단
덤불이 있던 언덕
잠수교가 잠기는 날에는
울지 마세요
구멍
전화벨이 울렸다
나의 잠과는 무관하게
발문 | 김나영
작가의 말
때때로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일어나지 않는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건너온 것도, 그로부터 벌써 이십년이 지났다는 것도, 오늘 우리가 전염병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도, 여기 실린 소설 속의 인물들도, 우리들의 시간도 믿을 수 없이 지나간다. 지나가지 않는다. 어쩌면 시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짧은 이야기들은 소설이 되었다.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썼다. 시보다 조금 더 즐겁게 썼다. 왜일까 생각해본다. (…) 뒤돌아보며 앞으로 걷고 있다. 어딘가 도착할 것이다. 겨울이 온다.
2021년 11월
강성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