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시선 461

내 따스한 유령들

김선우  시집
출간일: 2021.08.05.
정가: 9,000원
분야: 문학,
전자책: 있음

먼지 한점인 내가 먼지 한점인 당신을 위해 기꺼이 텅 비는 순간

 

 

작은 것들을 위한 공동체를 꿈꾸는 김선우 신작 시집

 

 

병든 세계를 정화하는 사랑의 온기로 충만한 시편들

 

 

 

현대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등을 수상한 시인이자 통찰력 있는 소설가이기도 한 김선우가 등단 25주년을 맞아 여섯번째 시집 『내 따스한 유령들』을 출간했다. 제5회 발견문학상 수상작 『녹턴』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세심한 통찰력으로 “세상의 변화를 오래 관찰한 사람의 깊이 있고 여유로운 시선”(송종원, 해설)이 담긴 시 세계를 펼친다. 생명에 대한 예민한 관찰, 사회 현실에 대한 적극적 발언, 환경 파괴에 대한 직설적 반성, 자본을 향한 가열한 비판, 사랑과 연대에 관한 성찰 등 다채로운 감각과 깊이 있는 시적 사유가 빛나는 시편들이 묵직한 울림을 자아낸다. 특히 오늘날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변해야 한다는 강한 기원과 열망이 응축된 시편들은 익숙한 삶의 풍경 속에서 뜻밖의 깊이를 이끌어내면서 ‘지금 여기’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하는 56편의 시를 묶었다.

 

 

 

김선우의 시는 따뜻하다.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북돋는 사랑의 온기가 흐른다. 시인은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사랑할 수 있는 “영혼의 강인함”(「무신론자의 기도」)을 간구하며 참혹한 세상에서 그들을 위해 울어주고 시를 쓴다. 시인은 머뭇거림 없이 즐거이 수평적 연대의 삶을 지향하면서 뭇 생명과 공존하는 삶의 길로 나아간다. “우리 모두 시인인 세상”(「시인과의 대화」), 새로운 세계로의 전환을 기원하는 이 자리에서 시인은 “모두가 떠난 뒤에도 떠날 수 없어/남은 야윈 울음 곁에서/마지막으로 함께 울어주는 사람”(「다시 광장에서는」)이다.

 

생명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생태계를 되살리려는 마음이 절실히 녹아든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공멸’의 막다른 골목에 이른 현세계를 바꾸려는 열망을 드러낸다. 전염병과 기후위기로 인해 불타는 지구의 처절한 모습을 적실하게 그려낸 연작시 「마스크에 쓴 시」는 전지구적 위기의 팬데믹 시대를 바라보는 예리한 통찰이 돌올하다. 시인은 지금 여기서 자본의 무한질주를 멈추지 않으면 “지금보다 더 혹독한 전염병의 시대”가 “곧 다시 온다”(「마스크에 쓴 시 7」)고 경고한다. “이대로라면 백년 안에/인류는 끝날” 것이고 “이대로는 공멸”(「지구주민평의회가 만들어진다면」)이라는 시인의 예견이 서늘하게 와 닿는다. 시인은 “다른 존재들을 멸종시키면서 스스로 멸종위기종이 되어가는 우리”(「마스크에 쓴 시 12」)의 현실을 겸허하게 되돌아보고 “어떤 일을 더 하거나 덜 하며 살아야 할지”(「사랑하여 쓰게 된 가계부」) 고민하면서, 자본에 물든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병든 세계를 정화하고자 한다.

 

 

 

1996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한 지 25년, 시력 사반세기에 이르는 동안 시인은 ‘일상의 혁명’을 실천하는 문학인으로서 촛불 집회, 용산 참사, 희망버스, 강정마을, 세월호 등 시대의 아픔에 적극 동참해왔다. 시인은 이제 “인간이 만든 세상의 참혹함” 속에서도 활짝 꽃 피는 “작고 여리고 홀연한 아름다움들”과 “고통에 연대하는 간곡한 마음들”(시인의 말)을 고스란히 심장으로 옮겨놓는다. 전작 시집에서 “모든 시는 진혼가이자 사랑의 노래”라고 말했던 시인은 이제 “시로 눈물과 기쁨과 위로와 아름다움이 되는 자리를 돌보는 일은 시인의 소중한 책무”라고 이야기한다. 고통과 절망과 분노가 쌓여가는 비참한 현실을 직시하며 “살아 있는 동안 쓰는 일을 계속할 뿐”(「하나의 환상처럼 quasi una fantasia」)인 시인의 ‘무한한 혁명’은 ‘지금 여기서 이렇게’ 계속될 것이다.

목차

제1부

 

푸른발부비새, 푸른 발로 부비부비

 

혁명력의 시간, 로도스의 나날

 

개가 짖는 이유

 

티끌이 티끌에게

 

천문의 즐거움

 

작은 신이 되는 날

 

새처럼 자유롭고 싶다고?

 

하필 여기서 죽은 이를 위하여

 

비의 열반송

 

사랑하여 쓰게 된 가계부

 

지구주민평의회가 만들어진다면

 

시인과의 대화

 

오늘은 없는 날

 

무신론자의 기도

 

 

 

제2부

 

쉬잇! 조심조심 동심 앞에서는

 

지구라는 크라잉룸

 

오늘 만난 시집의 가제를 「평의회의 아름다움」이라고 적어두었다

 

하나의 환상처럼 quasi una fantasia

 

눈물의 연금술

 

돌담에 흥건한 절규같이

 

내 따스한 유령들

 

어떤 날의 처방전

 

일반화된 순응의 체제 1

 

일반화된 순응의 체제 2

 

일반화된 순응의 체제 3

 

울어주는 일, 시를 쓰는 일

 

대숲에서

 

이제 나뭇잎 숭배자가 되어볼까

 

 

 

제3부

 

마스크에 쓴 시 1

 

마스크에 쓴 시 2

 

마스크에 쓴 시 3

 

마스크에 쓴 시 4

 

마스크에 쓴 시 5

 

마스크에 쓴 시 6

 

마스크에 쓴 시 7

 

마스크에 쓴 시 8

 

마스크에 쓴 시 9

 

마스크에 쓴 시 10

 

마스크에 쓴 시 11

 

마스크에 쓴 시 12

 

마스크에 쓴 시 13

 

마스크에 쓴 시 14

 

 

 

제4부

 

걷다가 문득 멈춰 나무가 된 고양이는 아니지만

 

보르헤스와 보낸 15일

 

투표 인증 숏을 보낸 벗에게

 

새들의 모텔에서 배운 마술

 

코즈믹 호라이즌, 이 바람 속에는

 

차이와 반복, 혹은 바다와 돌

 

다시 광장에서는

 

개와 고양이와 화분과 인간이 있는 풍경

 

편히 잠들려면 몸을 바꿔야만 해

 

깃털 하나를 주웠다

 

몸이라 불리는 장소에 관하여

 

눈, 비, 그래서 물 한잔

 

그러니까 사랑은, 꽃피는 얼룩이라고

 

벚꽃 잘 받았어요

 

 

 

해설|송종원

 

시인의 말

살아오면서 가장 슬펐던 날. 시인의 전화를 받았다. ‘준아, 무슨 일 있지’ 하고 시작되는 안부. 나는 시인에게 큰일이 생겼다고만 말했고 시인은 나의 큰일을 모르는 듯 혹은 다 알고 있는 듯 그 일을 잘 마무리하라고 했다. 그토록 슬픈 날에도 통화의 말미에서 나는 작게 웃었는데 내 웃음을 듣고 시인도 웃었다. 생각해보니 시인은 내가 만난 이들 중에서 웃음소리가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다. 시인은 정말 깔깔 웃는다. 사실 시인의 작품은 나에게 경전 같은 것이었다. 그런 시들이 없었다면 나는 시 읽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것이고 시를 읽지 못하니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마 내 혀는 입속에, 내 몸속에 갇혔을 테고 시 아래에서 잠드는 날도 없었을 것이다. 『내 따스한 유령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사실 나는 시인의 시를 이야기할 수 없다. 다만 언제나 그랬듯 읽을 뿐이다. ‘너 무슨 일 있지’ 하고 안부를 물어주는 시. ‘나도 무슨 일 있어 그런데 이제 괜찮아’ 하고 말해 오는 마음. 그리고 이 끝에서 들려오는 깔깔. -박준 시인

저자의 말

인간이 만든 세상의 참혹함.   그럼에도 존재하는 어떤 아름다움들.   고통에 연대하는 간곡한 마음들.   작고 여리고 홀연한 그 아름다움들에 기대어 오늘이 탄생하고 내일이 기다려집니다.   고맙습니다. 세상의 무수한 스승들이여.   (…)   요즘 저는 연약한 존재가 이미 가진 개별적 온전함을 자주 생각합니다. 그럴 때마다 물방울들, 혹은 빛방울들의 코뮌이 떠올라 저를 미소 짓게 합니다. 자그마한 존재들이 만드는 저마다의 동심원들, 파동과 겹침과 드넓고 따스한 연대, 그 모든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심장으로 옮겨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름다운 당신, 부디 평강하시길.  

2021년 여름 강원도에서 김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