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있다는 것(양장)

김중미  장편소설
출간일: 2021.03.26.
정가: 14,000원
분야: 문학,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 이후 20년,

 

 

다시 우리 곁에 찾아온 진실한 문학의 감동

 

 

 

오랜 세월 약자들의 편에서 낮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 온 김중미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곁에 있다는 것』이 출간되었다. 뭉클한 감동을 선사하며 2000년을 열어젖힌 『괭이부리말 아이들』 이후 20년, 연대를 통한 굳건한 희망을 이야기하며 우리 시대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작품이다. 10대 여성 청소년 지우, 강이, 여울이를 중심으로 할머니, 어머니, 딸로 세대를 거듭하며 이어지는 생의 면면을 그려,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굽이들을 살아 낸 평범한 이웃의 삶에 존경을 전한다. 나날이 극심해지는 빈부 격차, 위험에 내몰리는 비정규직 청년들의 노동 환경 등 지금 이 순간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정면으로 직시하며 연대와 돌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간구하는 또 하나의 대표작이 될 것이다.

 

 

 

 

 

 

 

 

어두운 곳에서 더 빛나는 별처럼

 

우리 사회의 가장자리를 비추는 연대의 목소리

 

 

 

열아홉 살 지우, 강이, 여울이는 인천 은강구 한마을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무대인 은강은 소설 속 1970년대 풍경과 달리 이제는 판자촌 대신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도시의 중심부로부터 더 멀리 밀려났다. 성공을 좇는 사람들은 은강을 떠나 신도시로 터전을 옮겼고, 은강에는 오늘도 여전히 ‘난장이 가족’과 다름없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모여 산다.

 

고3을 맞은 지우에게는 은강방직 투쟁을 이끈 해고 노동자였던 이모할머니의 삶을 소설로 남기겠다는 꿈이 있다. 은강방직에서 일하던 엄마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뒤 외할머니와 살아가는 강이는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간호조무사를 꿈꾼다. 여울이는 가난한 은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대에 진학하고자 입시에 매달린다. 각자 가정 환경도, 꿈도 다르지만 세 친구는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다.

 

그러던 어느 날 구청에서 은강구를 ‘관광 자원화’하겠다는 명목으로 주민들의 생활 공간을 침해하는 ‘쪽방 체험관’을 추진한다. 자본의 논리 앞에 가난마저 상품화하고, 삶의 터전을 전시하겠다는 발상에 지우, 강이, 여울이는 주위 친구들과 함께 뜻을 모아 맞선다.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할머니 때부터 이어져 온 은강의 역사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자신들을 둘러싼 사회와 마주하며 현실을 깨닫는다. 한 걸음 성장한 세 친구는 10대의 마지막 날인 2016년 12월 31일,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며 벅찬 마음으로 스무 살을 맞는다.

 

 

 

“김여울, 너 그거 알아? 별은 정면으로 볼 때보다 곁눈질로 볼 때 더 반짝인다. 이렇게 별 하나를 골라서 똑바로 보다가 곁눈질을 해 봐. 그럼 별이 정면으로 볼 때보다 더 반짝거리는 것처럼 보여. 한번 해 봐.”

 

 

(…)

 

“사람들은 주변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잖아.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거지. 눈길의 가장자리가 더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듯이, 우리처럼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더 잘 보고 더 빛날 수 있잖아.” ―본문 241면

 

 

 

 

 

슬픔이든, 기쁨이든, 무엇이든 나누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동네, 우리 이웃 이야기

 

 

 

『괭이부리말 아이들』에서 그랬듯, 작가의 눈길은 여전히 ‘사람’에게로 향한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인물들은 혼자서는 돋보이지 않더라도 함께라면 빛날 수 있는 밤하늘의 별자리와 같다.

 

은강방직 해고 노동자인 지우 이모할머니 옥자의 싸움은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부당한 탄압에 대한 회사의 사과를 아직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중미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70년대 여성 공장 노동자를 지나간 사건 속 잊힌 인물이 아닌 끊임없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주인공으로 호명한다. 옥자의 싸움은 자신과 동료들의 삶을 증명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같은 싸움을 하고 있는 젊은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응원이기도 하다. 서로의 곁에 있을 때, 이들은 더 이상 노인과 청년이라는 세대 구분으로 단절되지 않고, ‘동지’라는 이름 아래 연대한다.

 

지우 엄마 경순은 지역에서 함께 활동하던 지우 아빠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지우는 시민운동을 계속한 아빠와 달리 결혼 후 육아와 생계에 몰두한 엄마가 안타깝다. 그러나 경순은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의 소중함, 그 일을 지키기 위한 노력 역시 시민운동과 동등한 무게를 지닌다고 믿는다. 지우 또한 그런 엄마의 모습을 통해 빛나지 않더라도 값진 ‘생활’의 의미를 배운다.

 

그런가 하면 영화감독을 꿈꾸다 공무원 시험 준비로 진로를 바꾼 지우 언니 연우나, 큰 성공보다 안정을 바라는 여울이, 오직 명문대와 아파트만을 행복의 척도로 삼는 여울이 엄마 은혜는 등장인물 사이에 긴장과 균형을 불어넣으며 작품이 입체감을 띠도록 돕는다.

 

 

 

은강동은 타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타인과의 어깨동무로 살아남았다. 슬픔이든, 기쁨이든, 노동이든, 공간이든, 무엇이든 나누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은강동이다. 그 가난을 모르는 이들이 쪽방 체험관 따위의 터무니없는 구상을 만들어 냈다. 가난은 진열대 위에 전시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본문 371~372면

 

 

 

 

 

파수꾼처럼 우리 곁을 든든히 지켜 온 작가 김중미,

 

다시 희망을 이야기하다

 

 

 

『곁에 있다는 것』은 70년대 여성 공장 노동자들의 투쟁에서부터, 현재 한국 사회가 빈민을 대하는 민낯을 드러내는 도시 재생 사업, 청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세월호와 촛불 집회까지,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김중미 작가 특유의 믿음직한 목소리로 옮겨 묵직한 감동을 안긴다. 이 소설은 『괭이부리말 아이들』 출간 이후 20여 년이 흐르는 동안 변함없이 그대로인 빈곤 문제와, 달라진 가난의 양상을 그리며 긴요한 화두를 던진다.

 

지우의 이웃에 사는 보호 종료 청년 영민이는 국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가난한지, 얼마나 외롭게 살아왔는지 소명해야 할 상황에 처한다. 천막 농성을 하던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 홀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는 수찬이는 집회에서 거침없이 자기주장을 펴는 또래들에게 거리감을 느끼고, 밝은 앞날을 선뜻 기대하지 못한다. 하지만 동시에, 강이는 베트남에서 온 란이와 가까워지며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서로 통할 수 있음을 확인하고, 지우 역시 함께 촛불을 들지 못하는 수찬이와 영민이를 기억하며 마음을 나눈다.

 

『곁에 있다는 것』은 다시 한번 가난을, 그러나 그보다 굳센 희망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 아직 희망을 선택할 기회가 남아 있다. 이제 독자들이 이 씩씩한 희망에 곁을 내어 줄 차례다.

 

 

 

“엄마는 왜 안 떠났어?”

 

 

“포기가 안 되더라고.”

 

“뭐가?”

 

“가난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갖는 거.” ―본문 281면

 

 

목차

1부 지우 이야기 007

 

2부 강이 이야기 107

 

3부 여울이 이야기 187

 

4부 우리 이야기 273

 

 

 

에필로그 362

 

작가의 말 375

 

 

 

인용 출전 381

 

참고 자료 382

여기 열아홉 살 세 친구가 있다. 저마다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분투하면서, 마침내는 서로 다독이면서 어두울 때 더 빛나는 별처럼 미래를 열어 가자고 손을 맞잡는다. 이 씩씩한 희망을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부모, 교사 들과도 함께 읽고 싶다. 한결같은 걸음으로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그 이후 성장 이야기를 귀한 작품으로 완성한 작가에게 고맙다. 한국 문학사에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곁에 나란히 꽂아 둘 작품이다. ―박종호(서울고등학교 교사)
가난한 사람은 목소리가 없다,고 쉽게 말해 왔으나 그건 말하려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들으려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었다. 가난이 사라진 사회는 불가능해도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아도 되는 관계는 가능하며, 서로 곁을 지킨다면 가난해도 살 수 있다고, 그렇다면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가난이 아니라 가난에 대한 무지라는 것을 이 놀라운 소설은 이야기한다. ―은유(작가)
글을 읽는다는 건 ‘나’가 ‘너’가 되어 보려는 시도일지도 모르겠다. 가난과 불평등 속에서 희망을 심는 일, 누군가는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하겠지만 책을 읽고 나면 지우와 강이, 여울이처럼 정말로 해낼 수 있겠다고 믿게 된다. ‘자본’만이 최고 가치가 되어 버린 지금, 공동체를 통해 연대하기를 선택한 이 책의 청년들 곁에 있고 싶다. ―이길보라(영화감독, 작가)

저자의 말

1997년 7월, 무덥던 어느 날이었다. 공부방에서 초등학생들을 돌보다 저녁을 지으러 다락으로 올라갔는데, 흰머리의 낯선 사람이 따라 올라왔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고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조세희 작가였기 때문이다. “어, 조세희 선생님!” 그분이 놀라며 물었다. “저를 아세요?” “제가 고등학교 때 선생님 소설을 읽고 빈민 운동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제가 몹쓸 짓을 했네요.” 그날 내가 살고 있는 만석동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무대인 ‘은강’이라는 것을 알았다.   태어나서부터 부자로 산 적이 없으면서도 나의 가난이 사회적인 문제임을 깨달은 것은 고등학생이 돼서다. 동두천에서 인천으로 와 처음 살았던 집은 목재 공장 사택이었다. 주변은 온통 목재 공장과 가구 공장이었고, 공단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낡은 시립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그 아파트 너머로는 산동네가 이어졌다. 그 전까지 내가 알던 인천은 할머니 집이 있던 개항장 주변이 전부였으므로,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 시절 만난 공단과 빈민 지역의 풍경은 문화 충격에 가까웠다. 그즈음 읽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시작점이 되었다.   스물넷 청년으로 만석동에 자리 잡아 거기에서 중년이 되기까지 세상은 더 풍요로워졌고, 기술의 발전은 어렸을 때 어린이 잡지로 보던 미래를 앞질렀다. 그러나 내가 사는 곳의 노동자와 빈민은 여전했고, 빈자와 부자의 골은 더 깊어졌다. 조세희 선생님을 만났던 그해 겨울에 외환 위기가 닥쳤다. 힘든 시기를 거치며 가난한 이들의 삶의 토대가 얼마나 취약하고 허약한지 깨달았다. 국가와 기업은 외환 위기를 극복한다는 명분으로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했다. 가난한 이들의 오랜 전통인 연대와 환대마저 무너진 엄혹한 현실이 도래했다. 가난은 무능한 정치와 탐욕스러운 자본, 마음이 없는 시장의 결과였으나 그들은 책임을 노동자의 게으름으로 떠넘겼다. 억울하고 안타까웠다. 그래서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썼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출간되고 20년이 지나는 동안 주변의 이웃들은 정규직 노동자에서 계약직,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었다. 20년 전과 달리 대학을 졸업한 청년이 늘어났지만 그들의 일자리는 부모 세대보다 더 불안했다. 부모 세대가 기계와 재봉틀 앞에서 잔업과 야근에 시달렸다면 지금 청년 세대는 컴퓨터와 마우스 앞으로 자리가 대체되었을 뿐이다. 저임금은 여전하고 노동자의 안전은 요원하다. 가끔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속편에 대해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더러는 공부방에서 탄생한 입지전적인 인물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런 스토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이후 이야기를 쓸 생각은 없었지만 다시 가난에 대해 말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무렵 인천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구도심 재생 사업, 개항장 문화의 거리 조성, 마을 공동체 살리기 등이 붐을 이루면서 오래된 서민, 빈민 들의 주거지가 관광지가 되고 가난이 상품이 되는 일들이 생겼다. 만석동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때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난의 쓸모’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상품이 된 가난은 우리의 진짜 삶을 가리고 지웠다. 나는 그들이 기어코 외면하려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변두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이 아닌 가장자리의 눈길로 볼 때 더 빛나는 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 영화 홍보 기획사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큰딸이 말했다. “엄마, 퇴근하다가 버스에서 이주 노동자를 만났어. 만석부두 앞에서 내리는데 내 또래 같아 보이더라. 한동네에 사는 같은 청년 노동자인데 서로 연결고리가 없다는 게 안타까웠어. 우리 공동체 청년들이랑 이주 청년들이 함께할 기회가 없을까?” 그 뒤 딸은 1년간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진로를 바꿔 정규직이 되어 ‘은강’을 떠났다. 그러나 딸의 그 질문은 계속 내 안에 남아 작품의 주제가 되었다.   어떤 가난도 사회적이지 않은 가난이 없고, 정치적이지 않은 가난이 없다. 법은 가난한 이들의 것이 아니다. 역사 속 어떤 시대도 가난한 이들의 편이었던 적이 없다. 하지만 그래서 미래도 가난한 자들의 편이 아닐 거라고 체념한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우리는 희망을 선택해야 한다.   이 작품 안에는 몇 가지 실제 사건들이 등장한다. 허구적 존재들의 입을 빌려 그 사건들을 불러낸 이유는 거기에 가난과 불평등의 실체가 있기 때문이다. 2020년에 새로운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는 알게 되었다. 바이러스는 계급을 차별하지 않지만 바이러스를 대하는 인간 사회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살고 죽는 것도 결국 정치와 경제의 문제였다. 이제 분명히 보인다. 이 불평등의 벽을 허무는 길은 존중과 섬김, 연대와 사랑을 복원하는 것뿐이다. 어깨동무, 커넥션, 공동체, 우분투, 인드라망 뭐라 부르든 좋다.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들이 경계를 허물고 견고한 저들만의 벽에 틈을 내고 그 틈을 벌리는 일, 그것이 희망이다.   작품을 쓰는 동안, 공동체에서 만들었던 지역 신문 『만석신문』이 얼마나 값진 사료(史料)인지 새삼스레 깨달았다.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인 이총각 선배와 김용자 선배의 삶과 이야기가 이 작품의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2020 배다리 도시학교 인천 에코뮤지엄 Road&Memory 「어느 여성 노동자의 길」 프로젝트를 진행한 ‘스페이스 빔’의 민운기 선생님께도 도움을 받았다. 동일여고와 담 너머의 동일방직 이야기를 들려준 공부방 엄마들에게도 빚을 졌다. 지난 한 해 동안 「화수재담」을 통해 화수동 언덕 너머 집과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 ‘창작집단 도르리’, 33년 동안 나를 사람답게 지켜 준 ‘은강’의 이웃들, ‘은강’에 터를 잡고 함께해 온 동지이자 가족인 공동체 식구들,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현실과 맞서며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공동체 청년들, 특히 요즘에야 사회가 관심을 갖게 된 공동체 안의 보호 종료 청년들에게 사랑과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끝으로 내게 ‘은강’을 만나게 해 주고, ‘은강’이라는 지명을 쓸 수 있게 허락해 주신 조세희 선생님께 깊은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2021년 봄 김중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