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시선 447

호시절

김현  시집
출간일: 2020.08.10.
정가: 9,000원
분야: 문학, 전자책: 있음

꿈나라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노래를 기다렸어요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김현의 독보적인 감성에 짙게 배어든 쓸쓸한 서정

 

 

가늠할 수 없는 커다란 사랑에 관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

 

 

 

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한 뒤 우리 시대상을 담대하고 힘있는 목소리로 들려줌으로써 주목을 받아온 김현 시인의 신작 시집 호시절이 출간되었다. “소수자 옹호라는 시적 사명을 올곧이 수행하며 자신만의 시 세계를 밀어붙였다”는 호평을 받았던 신동엽문학상 수상작 입술을 열면(창비 2018) 이후 2년 만에 펴내는 세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우리가 가진 언어로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커다란 사랑”(강성은, 발문)에 관한 “슬프고도 아름다운”(김나영, 추천사) 이야기를 더없이 진솔하게 풀어낸다. 세상을 바라보는 애틋한 시선과 김현만의 독보적인 감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사랑의 시편들에 쓸쓸한 서정이 짙게 배어들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한편 앞선 시집에서 ‘디졸브’(장면전환기법)라는 영상 기법을 시집에 접목시킨 바 있는 시인은 이번엔 ‘이 시집 안에는 여러 노래가 흐르고 있다’고 일러두며 전과는 또다른 새로운 시세계로 독자를 이끈다. 집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일상을 살아가는 일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시인은 이번 ‘시의 집’에 실제로 존재하는 음악과 가상의 음악을 틀어두면서 우리가 놓쳐버린 노랫소리나 찾지 못한 노랫말이 내 곁에 있음을, 도처에서 그 숨겨진 소리를 발견하는 일이 시를 만나는 일임을 알려준다. 이렇듯 노래가 흐르는 공간 안에서 우리는 실재와 허구의 소리를 공유하며 함께 살아간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기쁨과 슬픔에 관해 눌러쓰듯 기록한 호시절』 안에 펼쳐진 선율들은 “우리의 꿈과 현실을, 꿈의 속과 바깥을 번갈아 보게”(추천사) 하고 저마다의 상처나 시련도 ‘호시절’로 빛나게 하며 이 시대를 다시금 위로한다.

 

 

 

‘호시절’을 기리며 눌러쓴,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기쁨과 슬픔

 

 

 

김현의 시는 우리 사회와 평범한 일상에 녹아들어 있는 민낯을 자연스럽게, 뜨겁고도 차갑게, 다정하고도 단오하게 말해준다. 그가 ‘입술을 열면’ 새로운 의미를 지닌 언어가 생동하는 경이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시인은 “이번 삶과/이전의 삶과/아직 오지 않은 삶”(강성은명과)을 읽고 쓰면서, 특히 세상의 그늘에서 서성이는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삶에 다가가 교감하고자 한다. 오래전,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모든 혐오와 차별에 반대하고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질문 있습니다’라는 화두를 던졌던 시인의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죽음은 어째서 선량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만만하게 보는 것인지”(Bon appétit) 묻고 또 묻는다. “인간이 뭔가를 돌이킬 수 없이/망치고 있다는 생각”(펜팔)에 시인은 불의한 현실에 저항하며 “자본의 쓰레기 더미”에서 “진실을 인양”(미래 소설)하고자 한다.

 

시인은 이 시집에 “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을 벌하며 살다가도 누군가 먼저 떠나면 크게 울고 만다는 사실”(시인의 말)이 담겨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유독 ‘부모’의 존재가 두드러진다. “뒤에 남겨진 자식들이 먹어야 할 양식을 축내지 않기 위해”(우리의 불) 서로 손을 맞잡고 황량한 어둠 속으로 가뭇없이 사라져가는 두 노인, 그것이 부모의 ‘성실한’ 사랑이다. 하나, 우리는 “나이 들수록 부모를 닮아가면서도” 정작 “부모가 누군지 모르는 당신”(손톱달)이고, 평생 “부모 마음 알 리 없는 자식”(부모의 여자 형제를 부르는 말)으로 늙어갈 뿐이어서 막막할 따름이다. 

 

시집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부모’는 우리가 아는 사랑의 차원을 넘어서는” “더 큰 사랑에 관한 은유”(발문)이기도 하다. 진창 같은 삶의 고통과 “슬픔에 눈을 뜨는 사람”(눈앞에서 시간은 사라지고)으로서 시인의 눈길은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한다. 그리하여 고통받고 소외받는 존재들의 사랑이 “열에 아홉 손가락질당할지라도” 열에 하나를 지키기 위해, “하나가 되지 않고 둘로/존재하는 곳”(생선과 살구)에서 김현의 시는 솟아오른다.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어수선한 세상에서 우리는 비로소 ‘사랑의 언어’와 ‘사랑의 정신’으로 충만한 시집을 얻었다. 이제 슬픔도 괴로움도 외로움도 없을 것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평화로운 울음”(꿈꾸는 연인)이 흐르는 아름다운 세상, “좋은 시절은 다 갔다고 말해도”(가장 큰 행복) ‘호시절’이다.

목차

제1부 안개

 

손톱달

 

지혜의 혀

 

사랑의 언어

 

내가 새라면

 

눈앞에서 시간은 사라지고 그때 우리의 얼굴은 얇고 투명해져서

 

진실하고 성실한 관계

 

조국 미래 자유 학번

 

마음과 인생

 

시네마

 

사랑을 맛보는 혀는 어찌나 붉은지

 

우리 얼굴은 어떤 근원의 한 가지일까

 

슬픔

 

겨울은 따뜻한 과일이다

 

가장 큰 행복

 

 

 

 

제2부 푸른 화병

 

펜팔

 

블루

 

강성은명과

 

성십자교회 장미원

 

우리의 불

 

장안의 사랑

 

디트로이트와 디트로이트

 

사랑의 정신

 

이렇게 생긴 아름다운 이야기

 

성탄 전야

 

미래 서비스

 

미래 소설

 

견과를 위한 레퀴엠

 

믿음

 

신께서는 아이들을

 

송가

 

생선과 살구

 

형들의 사랑

 

 

 

제3부 앵두주

 

떠 있는 것들에 관하여

 

좋은 시절

 

핀란드 영화

 

영원 칸타타

 

스노우볼

 

꿈꾸는 연인

 

글라스

 

모든 것이 평화로운 때

 

Bon appetit

 

파도는 넓고 파도는 높다

 

부모의 여자 형제를 부르는 말

 

자두나무 아래 잠든 사람

 

두려움 없는 사랑

 

 

 

발문|강성은

 

시인의 말

사람은 왜 누군가와 함께 살아야만 할까. 『호시절』을 통과하면 이것은 삶에 관한 질문이라기보다 사랑에 관한 한 답변으로 읽힌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 있다. 함께 밥을 먹고 길을 걷고 잠을 자고 꿈을 꾼다. 꿈에서조차 나는 ‘함께’의 기쁨과 슬픔을 잊지 못한다. 사랑이 누구에게나 호시절인 것은 그 동안이 기쁨만으로 충만하기 때문은 아니다. 시절이라는 말이 함의하듯 사랑은 어떤 단절을 통해서만 지금 여기에 잇닿아 사랑으로 있다. 꿈은 현실과, 현실은 꿈과 짝을 이룰 때에만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호시절』은 지금 여기에 기꺼이 놓여서 우리의 꿈과 현실을, 꿈의 속과 바깥을 번갈아 보게 한다. 김현의 시는 우리의 꿈에 미달하는 현실의 정도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가 마침내 도달한 자리에는 꿈과 현실을 단호히 나누며 무심결에 벗겨버린 무수한 꿈의 겉, 꿈의 껍질이 있다. 『호시절』에는 이 세계의 전형과 거리를 두면서도 그 맞은편에 안온하게 있기보다 이편과 저편의 경계가 “희미해질 때까지”(「스노우볼」) 스스로 점선이 되어 구겨지는 존재들이 있다. 어쩌면 그들이 우리가 잃어버렸던 꿈의 외피가 아닐까. 꿈도 깸도 아닌, 꿈이자 현실이기도 한, 어느 결이 만들어내는 겉. 나와 네가 서로를 확인하는 일 또한 어느 결에 서로의 표면이 닿을 때가 아니던가. 그 접촉이 너와 나를 관통하는 시간이 될 때 “우리를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랑에 관해서”(「장안의 사랑」) 이렇듯 슬프고도 아름다운 몇편의 이야기가 쓰인다. 당신이 이 이야기를 읽으며 결과 겉과 곁의 미묘한 겹침을 생각할 때, 분명한 희미함으로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면 참 좋겠다. 그 결에 호시절이 당신 곁에 올 테니. 김나영 문학평론가

저자의 말

어떻게들 지내시나요? 지난 주말 저는 차게 식힌 멸치다시육수에 삶은 소면을 적셔 먹으며 「봄비」라는 시를 썼습니다. 고향에서 푸성귀를 가꾸며 사는 부모를 떠올리며 아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감실감실 꿈이 참 길었습니다. 깨는 건 한순간. 누구에게나 좋은 시절이 있다고 믿으면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아양을 떨었습니다. 그런데도 부모에게는 좀처럼 곁을 주지 않았습니다. 부모는 개를 아끼고. 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을 벌하며 살다가도 누군가 먼저 떠나면 크게 울고 만다는 사실이 이 시집에는 담겨 있습니다. 잘들 쓸쓸하세요.  

2020년 여름, 빛 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