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 혹은 애슐리

김성중  소설집
출간일: 2020.06.12.
정가: 14,000원
분야: 문학, 소설
전자책: 있음

나는 꽉 차 있어요. 혼란으로도, 기쁨으로도, 절망과 희망으로도요. 

 

 

나는 계속 나아갈 거예요.”

 

 

단단한 현실부터 환상 동화까지,

 

 

이야기를 향해 돌진하는 김성중 소설의 놀라운 스펙트럼

 

 

 

“내면에 특별한 이야기의 단지가 숨겨져 있을 거라고”(추천사 구병모) 믿게 만드는 작가, 실재와 상상을 기막히게 엮어내는 김성중의 세번째 소설집 『에디 혹은 애슐리』가 출간되었다. “삶과 글쓰기의 본질적 의미를 탐구하는 지점에 이르러 있다”는 평을 받으며 제63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상속」을 비롯해 총 여덟편의 단편이 실렸다. 운동권 대학생들이 중년이 되어버린 현실부터 다양한 동화가 겹쳐진 세계에서 동화 속 소녀들을 구하는 여성, 성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에디/애슐리까지,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소설들이 각기 또렷한 개성을 빛낸다. 먼 미래에서 현재를 조망하는, 또 과거와 미래가 의미있게 연결된 현재를 그려내는 이 매력적인 소설집을 통해 김성중은 다층의 시간, 다양한 인물과 다면의 세계에 대한 특별한 감각을 선사한다.

 

 

 

 

 

미래를 통해 감각하는 현재

 

이어지는 시간과 계속되는 이야기

 

 

 

「레오니」는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가족들이 오년에 한번씩 고향인 필리핀으로 돌아와 함께 대가족의 시간을 보내는 어느날을 스케치한 작품이다. 어린 레오니의 시선과 이미 훌쩍 어른이 된 레오니의 시선이 겹쳐지는 독특한 서술 방식을 통해, 먼 훗날 그리워하게 될 그날의 밤과 먹고사는 고달픔, 가족의 의미를 잔잔하게 담아낸다. 

 

책 한권을 통해 연결된 열여덟 소년과 예순다섯 노인의 우정을 그린 「해마와 편도체」, 운동권 대학생들의 옛 이야기와 중년이 된 현재 이야기를 교차해서 그린 「정상인」 역시 미래에서 현재를 감각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때의 만남과 우정, 함께 보낸 시간들이 미래에 어떤 의미가 될지를 현재에서 문득 통찰하는 주인공들을 통해, 돌아갈 수 없는 과거와 그 과거가 빚어낸 현재, 미래를 쌓아가고 있는 지금 순간을 조망해 시간과 삶의 의미를 짚어낸다.

 

현대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상속」은 문학아카데미에서 ‘시절 인연’으로 만난 기주와 진영이 당시 선생님의 유품인 책들을 물려받고 또 물려주는 시간을 그렸다. 책과 글, 그리고 그들이 함께했던 나날들은 “몇백년 전의 세계가 가볍게 시간을 넘어 눈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계속해서 이어지고 반복되어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마녀죠. 그렇지 않나요?”

 

“당연하지. 그게 아닌 다른 것이 될 수 있던가?”

 

묻혀 있던 용기를 회복하고 나아가는 인물들

 

 

 

후반부에 배치된 소설들에는 나약한 인물이 단단하게 성숙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성장 서사가 등장한다. 여성, 남성을 넘어 다양한 젠더 고민을 다룬 「에디 혹은 애슐리」의 에디/애슐리는 불면증을 겪으며 자기 자신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을 하는 인물로, 로봇 ‘엔도’를 만나면서 점차 스스로를 그대로 인정하고 잠을 되찾게 된다.

 

어릴 적부터 폭력에 노출되어 정신적 결핍을 겪어왔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존재를 만나게 되지만 그 역시 다시 잃게 되어 슬픔과 분노에 찬 인물들은 「나무추격자 돈 사파테로의 모험」과 「배꼽 입술, 무는 이빨」에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이때 이들을 슬픔과 분노에서 건져올리는 건 하나 남은 아내의 사진을 들고 도망치는 나무나 시도 때도 없이 욕설을 내뱉는 배꼽처럼 환상적인 요소를 품고 있는 것들이다.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사건을 통해 인물들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현실을 마침내 마주하고 소화해나간다.

 

마지막에 실린 「마젤」에는 이번 소설집의 등장인물 중 가장 큰 폭으로 변화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남편의 폭력과 폭언에 시달리던 ‘그녀’는 여행지에서 우연히 경로를 이탈하여 동화 속 세계에 휩쓸려 들어가게 된다. 라푼젤, 도로시, 빨간 모자 등 동화에 등장하는 ‘소녀’들을 구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그녀는 결국 자신만의 이야기를 향해, 동화 바깥으로 걸어 나간다.

 

 

 

그 폭과 깊이가 놀랍도록 다채로운 이번 김성중 소설들은 ‘몽상’이라는 단어로 묶일 수도 있을 법하다. 인물들은 실제로 꿈을 꾸거나 촌스럽지만 묵직한 이상을 꿈꾸거나 환상을 겪는다. 이때 “몽상은 습관이 아니라 소신”이며 “삶을 대하는 태도이자 세상에 맞서는 자세”(해설 백지은)다. 몽상을 통해 좌절하지 않고 담담하게 자신을 지키고 마침내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들을 만나면서, 독자는 김성중이 만든 환상의 이야기 속에서 각자의 용기와 믿음을 찾아낼 것이다.

목차

레오니

에디 혹은 애슐리

해마와 편도체

정상인

나무추격자 돈 사파테로의 모험

배꼽 입술, 무는 이빨

상속

마젤

 

 

 

해설_백지은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아무리 퍼내도 쌀과 재물이 줄지 않는 화수분처럼, 첫번째 소설집을 읽었을 때부터 나는 김성중 작가의 내면에 특별한 이야기의 단지가 숨겨져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매번 마르는 법 없이 깊고도 다양한 이야기들이 튀어나올 리가 없다고. 이번 소설집에서도 작가는 미래에서 과거로 다시 현재로, 꿈에서 현실로 다시 환상으로 종횡무진하면서 다양한 색상과 놀랍도록 서로 다른 분위기를 교직하여 서사의 태피스트리를 짜 넣는다.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허구의 세계로 과감하게 뛰어드는, 이를테면 이야기라는 풍차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는 기사가 떠오른다. 물론 그 기사는 창 대신 붓을 들었다. 수많은 테마와 내러티브를 뒤섞어 자유롭게 카드놀이를 하는데, 그 가운데 뭘 뽑아도 스트레이트 플러시가 나오는 타짜의 기술에 어떻게 홀리지 않을 수 있을까? 다만 사로잡히는 수밖에. 더구나 그 카드들이 허공을 부유하는 게 아니라 현실과의 강력한 점착면을 갖고 있기까지 하다면 말이다. 구병모 소설가

저자의 말

저는 지금 코스타리카 니코야반도의 끝, 까보블랑코라는 곳에서 이 글을 씁니다. 멀리서 흰 종이를 대하면 어쩐지 문장이 편지로 변해버립니다. 그래서 수신자가 있는 글을 써보려 합니다. 어딘가에 있을 독자에게 편지를 쓴다고 생각하니, 바다 한복판에서 보트의 정박지가 정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독자라는 섬을 향해, 이 오후의 보트를 달려보겠습니다. 사실 떠나오기 전까지 무겁고 우울했습니다. 세번째 창작집에 들어갈 원고 뭉치를 출판사에 보내고 나서 더 그랬어요. 왜 그랬냐면…… 묶어놓으니 선명히 보이더군요. 현실의 중력과 상상력의 부력 사이에서 분열된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것. 나이는 중년으로 접어들고, 늦은 결혼과 출산으로 두번째 질풍노도의 시기가 들이닥쳤습니다. 가벼웠던 일상이 복잡한 행정으로 변했고, 아이는 압도적으로 귀여웠습니다. 이 작고 사랑스러운 교황이 저의 펜을 쓰러뜨릴까봐 전전긍긍했지만 다행히 첫째는 둘째를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첫째, 즉 저의 글은 제 아이를 미워하지 않았고 둘째, 즉 제 딸은 여전히 언니가 우선일 때도 있다는 것을 납득하여주었습니다. 그럼에도 꽤나 지쳐버렸고, 자꾸 흐트러지곤 했습니다. 글을 쓰러 간 카페에서 저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 때가 있는데, 불에 올린 설탕이 액체로 변하듯 짧은 순간이 어찌나 달콤하게 졸아드는지요. 이따금 꿈과 의식의 중간에서 ‘소다’에 해당할 만한 하얀 가루를 찾아내 한젓가락 콕 찍어서 휘휘 저으면 투명한 부분이 하얗게 굳으면서 맛있는 설탕과자가 됩니다. 그러니까, 꿈속의 이야기가요. 그러면 퍼뜩 일어나 방금 전의 아이디어를 붙잡으려 애를 쓰지만 창작의 국자는 새카맣게 타버렸을 뿐, 또 하나의 국자를 못 쓰게 망가뜨려놓고 엄마한테 혼날까봐 맘 졸이던 열두살로 돌아가버립니다. 배낭에 글자 몇개 담아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이면 풀 죽은 그림자가 길게 달라붙어 있었죠. 그런데 벼르고 별렀던 여행을 떠나와 바다에 몸을 담그고 태양에 까맣게 그을리는 나날이 이어지니 두려움이 땀구멍으로 많이 빠져나간 듯합니다. 일종의 삼투압 현상처럼, 바다의 파란 기운이 제 안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용기. 지난 몇년간 가장 절실했던 단어는 용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에게 용기를 주었던 모든 순간들,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가족과 친구들, 여러 종류의 교실에서 만난 학생들, 루시아 벌린을 비롯해 우정을 느끼는 죽은 작가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여행 중에 앞니가 세개나 달아난 이숲이에게 특히 고맙습니다. 새로 돋아날 이숲이의 새싹 이빨처럼 제 글이 튼튼하게 자라기를 소망합니다. 여전히 엉망진창이지만, 그래도 제 앞에는 설계도가 여러장 있답니다. 당장 발부리에 걸리는 돌멩이는 어쩌지 못하면서 화성으로 떠나는 우주선에는 곧장 올라타는 식이죠. 투명한 설탕물을 하얗게 만들어줄 소다 가루가 아직 두 팔에 남아있고, 여전히 생겨날 것이라고 믿고 있으니까요. 방금 스페인어 사전을 찾아봤는데, 까보(cabo)는 ‘끝’ ‘가장자리’라는 뜻이 있다고 하네요. “까보는 진리야.” 남편은 눈부신 바다를 보고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명에 ‘까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장소는 다 근사했던 것 같아요. 이 책은 저의 어떤 가장자리에서 쓰였지만 눈앞의 바다처럼 근사하진 않네요. 그렇지만, 언젠가 제 우주선에 여러분 모두를 초대하고 싶습니다.    

2020년 여름 나라의 겨울에서 김성중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