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딩 엣지

토머스 핀천  장편소설  ,  박인찬  옮김
원제: Bleeding Edge
출간일: 2020.05.29.
정가: 20,000원
분야: 문학, 외국문학
전자책: 있음

현대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토머스 핀천이 그려낸 9·11 전후 뉴욕의 묵시록

 

 

최첨단 IT 기술과 국가적 재난이 바꿔놓은 세계를

 

 

통렬하게 응시하는 거장의 시선

 

 

 

 

 

해마다 강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언급될 뿐만 아니라 영어로 글을 쓰는 현존 작가들 가운데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현대 문학의 거장 토머스 핀천의 최신작 『블리딩 엣지』가 ㈜창비에서 출간됐다. 2001년 봄의 시작부터 2002년 봄의 초입까지, 닷컴 버블로 호황을 누렸던 IT 기업들의 잇따른 붕괴와 9·11 테러로 인한 세계무역센터의 붕괴 및 후폭풍이라는 역사적 사건 사이 뉴욕을 배경으로, 9·11의 배후와 얽힌 음모를 파헤쳐나가는 여성 사기조사관의 활약을 그린 작품이다. 뉴욕 어퍼웨스트사이드에서 두 아이를 기르는 싱글맘이자 사기조사관으로 개인 사무소를 운영하는 맥신 터노는 어느날 친구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레지 데스파드의 의뢰를 받고, 해시슬링어즈라는 수상한 컴퓨터 보안회사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회사에서 비밀리에 중동으로 막대한 자금을 송금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연결된 고리를 하나하나 파고들수록 맥신은 점점 더 크고 위험한 실체에 접근해간다. 제목인 ‘Bleeding Edge’는 ‘최첨단’이라는 뜻으로, 안정성과 수익성이 검증되지 않은 최신기술을 수식할 때 쓰는 말이다.

 

핀천은 이번 작품에서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광범위한 대중문화 및 하위문화 레퍼런스, 음모론, IT 기술 및 경제, 역사, 세계정세를 넘나드는 백과사전적 지식 등을 총망라해 21세기 초 세계 역사의 방향을 바꿔놓았던 대재난을 거대하고도 촘촘한 태피스트리로 엮어냈다. 하지만 그 어느 작품보다 높은 가독성으로 그간 악명 높은 난해함 때문에 그의 작품에 도전하지 못했던 독자들도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다. 국내 초역인 이번 한국어판에서는 600개가 넘는 각주를 달아 독자들의 더 깊이 있는 독해를 도왔다. 최근 들어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의 너드와 힙스터 문화, ‘교외화’가 모든 공간을 똑같이 만들기 전의 뉴욕 풍경 같은 디테일은 읽는 재미를 더한다.

 

『블리딩 엣지』는 집필 당시 일흔 중반이었던 노작가가 자신이 태어나 자란 뉴욕주 롱아일랜드와 뉴욕이라는 도시로 돌아가 신랄한 한편 절절한 애정을 쏟아낸 작품이기도 하다. 여기서 뉴욕은 단순히 배경을 넘어 하나의 중심인물이 되어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곡절을 거친다.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모든 사람이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똑같은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며 경악했던 ‘그날’, 그리고 그 이후의 뉴욕 사람들의 마음속 풍경도 엿볼 수 있다.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또다른 재앙이 강타한 뉴욕과 끊임없이 겹쳐 보이는 건 착각이 아닐 것이다.

 

 

첨단 IT 기술이 바꿔놓은 세계

그 가능성과 위험

 

 

 

『블리딩 엣지』는 핀천이 그동안 지속해서 관심을 기울여온 주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갈수록 고도화되는 최첨단 과학기술의 문제이다. 핀천은 인터넷을 비롯한 컴퓨터 과학기술이 과거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 사이의 패권경쟁 속에서 개발된 군사기술의 산물임을 새삼 환기하면서, 정보화와 자본주의가 전지구적으로 확산된 현재에 이르러서는 개인을 감시하는 디지털 원형감옥이자 소비자본주의의 최첨단 첨병으로서 악용될 소지에 대해 경고한다. 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핀천은 인터넷 공간이 지닌 가능성을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이 점은 사이버펑크 과학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는 핀천이 그 방면의 대표작인 윌리엄 깁슨이 쓴 『뉴로맨서』의 사이버스페이스를 재연한 듯한 ‘딥아처’(DeepArcher)를 통해 드러난다. 최근에 아동 성착취 동영상 사이트 사건으로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딥웹’(다크웹), 곧 일반 검색엔진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인터넷의 특정 영역이 활성화되던 초기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후반부에서, 오픈소스로 전환되는 딥아처의 인터넷 공간은 이윤 중심의 자본주의 세계에서 벗어나 해커들이 자유롭게 활동하고 공유할 수 있는 무정부적 대항 공간, 특히 9·11 사태와 같은 현실의 불안으로부터 도망칠 안식처이자 사자(死者)들과 소통할 수 있는 대안적인 세계로 제시된다.

 

 

 

대재난의 한가운데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

 

 

 

결국은 하나로 만나지만 『블리딩 엣지』를 이끌어가는 또다른 큰 축은 지난 9월 11일 19주기를 맞은 9·11 테러 공격이다. 핀천은 맥신의 입을 통해 당시 모든 방송에서 하루 종일 끊임없이 내보낸 불타고 무너져내리는 세계무역센터 현장중계의 무용함과 유해함을 비판하면서 뉴스 보도 이면의 진실, 곧 그 엄청난 재난이 뉴욕의 길거리 풍경과 사람들의 마음속 풍경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에 주목한다. 사람들이 기대했던 최소한의 존중을 받는 대신 부동산 개발을 둘러싼 온갖 권모술수와 논란과 비방이 오가는 현장으로 전락한 ‘그라운드 제로’, 아랍계 이민자들에 대한 무차별 검문과 연행, 다양한 인종과 민족 사이에 더욱 깊어진 골 등이 한 면이라면, 도심 지역에서 소개(疏開)되어 집에 돌아갈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숙식을 제공하는 사람들, 소방서에 매일 꽃과 음식을 나르는 이웃들과 경찰관과 소방관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 다시 돈독해진 가족관계 등은 다른 한 면이다. 한편 맥신은 뉴욕의 길모퉁이에서 죽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다른 이들도 그와 비슷한 정신적 혼란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또다른 대재난의 한가운데에서 읽는 그날 그곳의 이야기는 19년이라는 시차를 넘어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블리딩 엣지』는 2001년을 배경으로 2013년에 쓰였는데도 고도로 발달한 첨단 IT 기술의 영향과 그것이 바꿔놓은 현재의 세계를 예언적으로 그려내어 핀천의 천재성을 다시금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목차

블리딩 엣지

 

 

옮긴이의 말

음모 속의 음모와 더불어 재기와 생기 넘치는 구어로 가득한 『블리딩 엣지』는 완전히 미친, 완전히 경이로운 작품이다. 『워싱턴 포스트』
토머스 핀천이 그려낸 9·11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가? 소설이란 여러 분자들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명료한 하나의 이야기로 압축되어야 한다는 우리의 기대를 포기함으로써 얻는 보상은 무질서가 아니라 커다란 기쁨이다. 핀천 자신이 좋은 동반자가 되어, 그가 태어나 자란 도시의 사람과 공간에 진심 어린 애정을 가득 불어넣었다. 『뉴욕 타임스』
그 누구도 핀천의 언어적 다양성, 구문론적 탄력성, 특유의 저급한 농담과 빛나는 품위의 혼합을 따라잡을 수 없다. 『블리딩 엣지』는 때로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창의적 악상으로 가득하지만 종국엔 폐부를 찌르고 들어오는 날카로운 P장조의 실내교향곡이다. 『퍼블리셔스 위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