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과 기분

김봉곤  소설집
출간일: 2020.05.01.
정가: 14,000원
분야: 문학, 소설
도서상태: 품절

“김봉곤의 소설은 왜 이렇게나 아름다울까”

 

 

2020년대 한국문학을 이끌어갈 독보적 감수성

 

 

빛나는 문장으로 쓰인 섬세하고도 세련된 마음의 서사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2018년 출간한 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작가 김봉곤이 2년 만에 두번째 소설집 『시절과 기분』을 선보인다. 2018년 봄부터 2019년 여름까지 발표한 작품 6편을 발표 순서대로 엮어냈다.

김봉곤 특유의 리드미컬하고도 섬세한 문장은 “사랑의 환희와 희열을 이어가는 내밀한 몸짓”(강지희 해설)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첫사랑, 첫 연애, 첫 키스 등 유의미한 ‘첫’들의 순간을 담아낸 이번 소설집을 읽다보면 “나는 고개를 젓다 손뼉을 치다 주먹을 쥐다 음울하게 감동하기를 반복했다”라는 소설가 권여선의 심사평(2020년 젊은작가상)이 과히 과장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소설집에 실린 「데이 포 나이트」와 「그런 생활」은 각각 2019년과 2020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고, 표제작 「시절과 기분」은 ‘이 계절의 소설’(문학과지성사)에 선정되어 여러차례 회자되며 이미 문단 안팎에서 호평받은 바 있다.

 

한국문학이 기다려온 새로운 사랑의 기분

나를 가눌 길이 없을 때 우리는 김봉곤을 읽는다

 

이번 소설집의 문을 여는 작품이자 표제작인 「시절과 기분」은 ‘나’가 스스로를 게이로 정체화하기 이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귄 여자” 혜인을 7년 만에 다시 만나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처음 대학에서 혜인을 만났던 2005년, 혜인과 마지막으로 만났던 2011년, 그뒤 작가와 세무사가 되어 다시 만난 2018년의 풍경을 서로 교차시키며 작가는 그 ‘시절과 기분’을 촘촘하게 묘사한다. ‘나’는 끝내 혜인에게 성 정체성을 고백하지 못한 채 “조금은 서글픈 기분”을 느끼며 돌아서지만 그 안에서 어떤 답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서울로 향하는 열차의 진동이 계속되기만을 바라며 그 “흔들림”을 기꺼이 껴안는다.

「데이 포 나이트」의 화자는 스스로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하지만 아직 “게이라고까지 인정은 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런 ‘나’는 영화과에서 만난 ‘종인 선배’에게 “숭고”라는 단어까지 떠올릴 정도로 빠져들지만 그에게서 끔찍한 폭력을 경험하고 훼손된다. ‘나’는 그 시절의 종인 선배도 영화도 “잘못 찾아들어간 길”이라고 말하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과거를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인다.

「엔드 게임」과 「마이 리틀 러버」는 “살면서 가장 사랑했던 한 남자”와의 이별 이야기를 각각 다른 방식으로 써낸 작품들이다. 이 두 작품에서 드러나는 계절의 변화는 결국 변하고 다시 돌아오고야 마는 사랑의 속성을 대변하는 듯하다. 김봉곤의 소설 속 화자는 언제나 더 사랑하는 쪽이어서 상처받고 아파하지만 도리어 그 사랑의 힘으로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야 마는 충만한 사람이다.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내고 비로소 이별할 수 있게 된 이 소설 속 ‘나’들은 순환해서 돌아오는 계절처럼 새로운 사랑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기억 속 존재를 내려놓아야 함을 받아들이고 다음 계절로 나아가는 ‘나’는 「나의 여름 사람에게」에서 또한 만날 수 있다. 더 성숙해진 마음으로 삶과 사랑을 이어나가는 화자의 목소리를 따라가다보면 누구라도 애틋한 사랑의 기분으로 충만해질 것이다.

이 소설집의 문을 닫는 「그런 생활」은 김봉곤 소설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 보이는 작품이다. 자신의 소설을 읽고 난 뒤 엄마가 내뱉은 “니 진짜로 그애랑 그런 생활을 했나?” 하는 말에서 온 것으로 짐작되는 이 작품의 담백한 제목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또 쓰겠다는 ‘나’의 ‘출사표’로 읽히기도 한다.

 

“소설은 누군가가 누군가를 만나 어떠한 사건을 겪고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맞이하는 것입니다”(「데이 포 나이트」)라는 소설 속 문장처럼 김봉곤의 ‘나’들은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고, 어떠한 사건을 겪고, 그 ‘시절’에 느낀 ‘기분’을 가슴에 새긴 채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그 시절들은 아름답기도 하고 때로는 너절하기도 하지만 작가의 섬세한 문장은 그 안에서 빛나는 진실을 건져낸다. 거기서 우리는 잃어버린 계절-시절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2020년대 한국문학을 이끌어갈 독보적 감수성의 작가 김봉곤, 그는 이제 신선한 성취를 넘어 그 이름 자체로 이 시대 한국문학의 새로운 방향이 될 것이다.

 

내가 된 나를 통과한 사람들을 이곳에 나눠 담았고, 내 글이 당신을 통과해 당신의 무언가가 되기를. 나의 한 시절이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기분이 되고, 그 기분이 또 내게 돌아와 나의 한 시절이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본다. (…) 혐오를 이기는 것도, 이겨내게 하는 것도 내겐 사랑 외엔 없다.

 

나는 나의 삶을 쓴다.

그것이 내 모든 것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목차

시절과 기분

데이 포 나이트

나의 여름 사람에게

엔드 게임

마이 리틀 러버

그런 생활

 

해설_강지희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사랑의 담론에는 사랑의 주체가 지니는 모든 삶의 질료가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니 사랑의 담론은 다름 아닌 생활의 담론이 아닐까. 내게 김봉곤의 작품은 그 두가지가 접합하는 ‘아름다운’ 기록처럼 읽힌다. 이 소설의 사랑하는 자가 매번 먼저 고백하고 마지막까지 좀처럼 안녕을 고하지 못한다 해도 그렇다. 우리의 이 기적 같은 만남이 끝없이 현재화되어 절대로 죽지 않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가장 섬세하고 부드러운 화답, 한국문학이 기다려온 새로운 사랑의 기분. 김봉곤은 사랑의 손실을 감당하느니 사랑을 ‘생활’하는 자로 남기를 결심한 이 시대 ‘리틀 러버’들에 대해 쓴다.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말할 수밖에 없는 사랑에 대해, 쓰고 싶은 방식이 아니라 쓸 수밖에 없는 김봉곤만의 “문장-풍경”으로. 김금희 소설가
‘너’를 갖는 대신 ‘나’를 쓰기로 한 사람이 있다. ‘사랑했었다’와 ‘사랑한다’ 사이에서 어찌할 바 몰라하는 사람. 모르겠어서 일단 쓰는 사람. 그는 ‘바야흐로’라는 부사를 가진 소설가이며 시간을 열고 싶기에 끝을 낼 수 없는 사람, 그래서 계속 쓰는 사람이다. 김봉곤을 읽는 일은 그가 기꺼이 열어놓은 시절과 나날에 동참하는 일, 수신인들을 오래 생각하는 작가의 수신인이 되어보는 일이다. 우리는 그게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아주 큰 기쁨임을 알고 있다. 나를 가눌 길이 없을 때 그래서 우리는 김봉곤을 읽는다. 최은미 소설가
김봉곤의 소설은 왜 이렇게나 아름다울까. 이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올까. 사랑일까. 그런데 사랑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고, 사랑을 들인다고 해서 소설이 절로 아름다워지는 것도 아닐 텐데…… 무엇일까. 왜일까. 혹시 소설 속 인물들이 아름다울 때까지 사랑을 하는 덕분일까. 더불어 작가가 아름다울 때까지 사랑을 쓰는 덕분일까. 사랑이란 나만큼 복잡다단한 존재가, 그래서 더욱 귀한 존재가 또 있다는 것을 배우는 과정임을 김봉곤의 소설을 읽으며 다시 생각한다. 박준 시인

저자의 말

첫 소설집은 쓰는 데 용기가 필요했다면, 두번째 소설집은 묶는 데 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쓸 수만 있다면, 여전하게 행복하리라는 나의 예감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이 책에 실린 글을 다 쓰고도 일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던 건 나를 마주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이 불균질하고도 불안정한 글의 모음이 나와 닮았다는 걸 알지 못했고, 알고 나서는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정확히 똑같은 이유로 나는 고민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바로 이 책을 미뤄온 부끄러움이야말로 이 책을 낼 수 있는 용기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유의미한 ‘첫’들을 모아 두번째 책으로 내어놓는다. 그간 나는 ‘너를 사랑했(었)어’의 시절을 살아왔다면, 이제는 누군가의 앞에 서서 ‘너를 사랑해’ 하고 말하는 기분이랄까. 그건 ‘처음’과 ‘시작’의 차이처럼 모호하고도 명백하지만, 내겐 여전한 할애(割愛)의 작업이기도 하다. 내가 된 나를 통과한 사람들을 이곳에 나눠 담았고, 내 글이 당신을 통과해 당신의 무언가가 되기를. 나의 한 시절이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기분이 되고, 그 기분이 또 내게 돌아와 나의 한 시절이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본다.   나 그리고 우리의 목소리에 피로를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잘 안다. 나 역시 내 글과 삶에 피로감을 느끼고 쉽게 질려버리곤 하니까, 타인이 비웃고 부정하듯 나 역시 그렇게 나를 절하하고 싶으니까. 하지만 숱한 비하와 혐오와 부정과 번복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건 다름 아닌,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내 삶과 글의 시작이 나 자신을 긍정하는 데서 비롯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혐오를 이기는 것도, 이겨내게 하는 것도 내겐 사랑 외엔 없다.   나는 나의 삶을 쓴다. 그것이 내 모든 것이다.

2020년 봄 김봉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