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시선 443

앙앙앙앙

류진  시집
출간일: 2020.04.10.
정가: 9,000원
분야: 문학,
전자책: 있음

나는 끝나지 않는다 내 이야기엔 인간이 없다

 

 

기묘한 열기로 들끓는 독창적인 시세계의 발견

 

 

 

2016년 『21세기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독특한 화법으로 개성적인 시세계를 꾸려온 류진 시인의 첫 시집 『앙앙앙앙』이 출간되었다. 등단 4년 만에 펴내는 첫 시집에서 시인은 기존의 시 형식과 문법을 뒤집어엎는 도발적인 발상과 감각적이면서 섬세한 이미지를 앞세워 ‘시에 반(反)하는’ 다채롭고 경이로운 시세계를 선보인다. 실제와 가상의 세계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쉬지 않고 시를 끌고 가는 동력”과 “멈추지 않고 시를 읽게 하는 매력”이 어우러진 “활달하고 역동적인 언어의 잔치”(김언, 추천사)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신인다운 기백이 넘치는 폭발적인 시적 에너지와 활기찬 말의 운동이 “기묘한 열기로 들끓는”(조재룡, 해설) 독창적인 시집이다.

 

 

 

시인은 문장에 대한 통념을 여지없이 깨뜨리며 말의 질서를 재편하여, ‘시인은 죽음의 광대’가 아니라 “죽음은 시인의 광대”(「마음 포기의 각서」)라고 말하는 낯설고 새로운 세계를 그려나간다. 또한 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책 제목을 비롯하여 만화, 게임, 영화, 음악, 연극,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 수학적․철학적 개념 등 다양한 텍스트를 끌어들여 “대위(對位)하는 언어”와 “다면체의 문장”으로 쌓아올린 시적 장소에서 “푸가의 변주곡처럼”(조재룡, 해설)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치고 빠졌다가 다시 치고 들어가는 경쾌한 리듬과 오른손으로 네모를 그리면서 왼손으로 별 모양을 그리는 기묘한 방식으로 문장을 엮어나가는 것 말고도 시인은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능숙하다. “소리의 재앙과 말씀의 재앙 사이”(「데데킨트의 절단」)에서 시인은 “눈알을”-“누나를” “희망”-“피망”(「6월은 호국의 달」), “으아리”-“메아리”-“병아리”(「신체 포기의 각서」), “야차의 시간”-“야채의 순간”(「권태의 괴물」)처럼 개개의 말을 서로 얽히고설키는 독특한 발음이나 리듬으로 변주해가면서 낯선 세계로 이끈다. 그런가 하면 우리말에 대한 관심도 남다르다. 시인은 ‘반지빠르다’(「팔달시장이…」), ‘나투다, 들피지다, 앙가발이’(「데데킨트의 절단」), ‘즘게, 너테, 도린곁, 굼뉘, 푸둥지’(「서정의 짐승」) 같은 멋들어진 우리말을 적재적소에서 살려낸다.

 

류진 시인은 시적 발상도 기발하지만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말솜씨가 뛰어나다. ‘입담’이 좋은 정도가 아니다. 김언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이빨’이 세고 ‘구라’ 치는 실력이 감탄스럽다. 시인의 ‘구라’는 다다이즘의 창시자 트리스탕 차라의 글 제목을 바꾼 「부록: 어찌하여 나는 비겁하고 치사하며 우아하게 되었는가」에서 절정에 달한다. 시인은 “따귀의 대중에 취향을 때려라!”처럼 기존의 말들을 교묘하게 비틀고 “입안 가득 씹히는 상념의 머리털”을 쥐어뜯으며 “독으로 넘치는 포도주를 들이켜는 시대”와 결별을 선언하되 “나는 끝나지 않는다 내 이야기엔 인간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빨뿐인 몸”으로 세상의 모든 “불협화음을 사랑”하고 “엇박자에 올라타 흔들”거리면서 시가 아직 가보지 못한 영토에서 울음인 듯 웃음인 듯 한마디 내뱉는다. 앙앙앙앙.

목차

여름

 

우르비캉드의 광기

 

6월은 호국의 달

 

비스마르크 추격전

 

칭다오 지네튀김

 

5월은 가정의 달

 

환태평양 불의 고리

 

팔달시장이 집 앞으로 몰려오기 전까지는 멸망하지 않는다 사람이 낳은 자는 너를 죽일 수 없다

 

데데킨트의 절단

 

마죽 무서워

 

¿꿈의 포로 아크파크?

 

 

마리냐가 준 소녀의 인생

 

이정재

 

신체 포기의 각서

 

마음 포기의 각서

 

외야수

 

크와트로 바지나

 

열차포 구스타프

 

다음 대상의 무게를 구하시오

 

악몽 망고

 

펠리컨

 

볼링 붐

 

 

 

겨울

 

러시아식 역원근법

 

되겠습니다

 

편안했습니다

 

리치킹

 

홍금보

 

사유사

 

어제 안 한 퇴화

 

시브체프 브라제크

 

불에 탄 나무토막 같구나, 아스케

 

オレノカチダ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 쇼스타코비치,

 

때때로 겨울이 나타나는 이상한 풀밭 점묘

 

나탈리아 세르게예브나 본다르추크

 

구미호

 

김영만

 

백종원

 

전우주멀리울기대회

 

누레예프의 눈보라

 

서정의 짐승

 

권태의 괴물

 

순간의 마귀

 

원쑤의 가슴팍에 땅크를 굴리자

 

부록: 어찌하여 나는 비겁하고 치사하며 우아하게 되었는가

 

 

 

해설|조재룡

 

시인의 말

류진은 최근 십년 사이에 등장한 시인들 가운데 가장 ‘이빨’이 센 시인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입담이 좋다고 하기엔 부족해 보이는 이 시인의 ‘구라’ 치는 실력은 근래 등장한 몇 안 되는 입담 좋은 시인들 사이에서도 압권이다. 눈앞에 당도한 구라 하나의 의미를 곱씹기도 전에 다른 구라들이 줄줄이 달려와서 문장을 기절시켜버리는 방식은 쉬지 않고 시를 끌고 가는 동력이면서 멈추지 않고 시를 읽게 하는 매력이 되기에 충분하다. 문장 하나하나에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는 시가 대세인 이즈음의 젊은 시인들 사이에서 이 정도로 활달하고 역동적인 언어의 잔치를 구경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정신을 빼앗길 정도로 한달음에 읽히는 류진의 시는 그래서, 그래서라도 그 특유의 속도감을 지우고 찬찬히 음미해봐야 한다. 음미해보면 보이는 것. 견고하고 치밀하게 세워놓은 이 세계의 현실 논리가 어쩌면 말짱 거짓부렁일 수도 있다는 사실. 기껏해야 허방을 허방으로 막고 허구를 허구로 덮으면서 쌓아 올린 모래성일 수도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을 일깨우는 데 많은 진실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1퍼센트의 진실과 99퍼센트의 구라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사실을 온갖 허구 가운데서 태어나는 류진의 시가 새삼 증명한다. 모래성처럼 다 허물어진 자리에서 모래성처럼 다시 쌓아 올린 언어의 성채를 그렇다고 허망하게만 볼 일은 아니다. 99퍼센트의 허구를 지탱하는 1퍼센트의 진실은, 극소량일지라도 그것이 진실이라면, 듣는 이를 아프게 전염시킨다. 슬프게 감염시킨다.

김언 시인

저자의 말

오로지 우리가 톱날 박힌 건초를 씹는다. 피의 원심력과 언어의 구심력으로 우리는 착지한다.   전우주멀리울기대회(2016) 팀 버케드의 『새의 감각』이 동기를 주었다. 크거나 작게 욺이 아니라 멀리 운다는 것. 대위법.   되겠습니다(2017) 공동체와 세계문학. 제발 ‘행복’이란 말 써보기, 반복, 따옴표, 언어의 총동원.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 쇼스타코비치,(2018) 쇼스타코비치의(?) 『증언』을 읽으려다 내가 썼다. 대위법, 러시아식 유머, “내게 감사하십시오”라는 태도.   펠리컨(2019) 스콧 맥클라우드의 『만화의 이해』=도상에서 상징으로 어둠과 어두움; 나를 더 거리 두어 팽개치기;;   (…)   이외 기억해두었다 써먹은 것: 열차포 구스타프, 비스마르크 추격전, 데데킨트의 절단, 환태평양 불의 고리, 『死人の声をきくがよい(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거라)』, 「바지를 입은 구름」의 “배춧국”  

2020년 4월 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