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고통을 노래하며 삶을 위로하고 인생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하는 따뜻한 시편들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서정시인 정호승의 신작 시집 『당신을 찾아서』가 출간되었다. 시인의 열세번째 시집으로, 2020년 ‘창비시선’의 첫번째 시집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눈물의 고해성사를 통해 인간이라는 불씨, 인간이라는 새싹을 살려내”(문태준, 추천사)는 뭉클한 감동이 서린 순정한 서정 세계를 선보인다. 진솔하고 투명한 언어에 깃든 “불교적 직관과 기독교적 묵상과 도교적 달관”(이숭원, 해설)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정결한 시편들이 가슴을 촉촉이 적시며 잔잔하게 울린다. 모두 125편의 시를 각부에 25편씩 5부로 나누어 실었으며, 이 중 100여편이 미발표 신작시이다.
정호승의 시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생에 대한 경외심이 우러난다. 그의 시를 읽으면 지나온 삶을 겸허한 마음으로 되돌아보게 된다. 시인은 “내 시의 화두는 고통”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살아갈수록 상처는 별빛처럼 빛나는 것”(「부석사 가는 길」)이고, 그 상처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은 시가 삶을 성찰하는 거름이 된다고 말한다. 시인은 “눈물마저 말라”버린 “목마른 인생”(「새들이 마시는 물을 마신다」)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사랑이며, 그 사랑은 고통을 통해 얻어진다고 믿는다. 고통은 또한 용서를 통해 치유되는 것이기에,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일에 진심을 바쳐온 시인은 간절한 손길로 “인생이라는 강”에 “용서라는 징검다리”(「유다를 만난 저녁」)를 놓는다.
인생의 의미와 가치, 사랑과 고통의 본질을 탐구해온 시인은 삶의 고통과 슬픔을 사랑과 용서와 화해로 승화시킨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을 깊이 간직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갈망해온 그의 시선은 늘 “인생을 잃고 쓰러진”(「겨울 연밭」) 연약한 존재들에게 머물며 삶의 그늘진 구석을 응시한다. 시인은 이제 비루한 삶의 낮은 곳에서도 “먼지가 밥이 되는 세상”(「먼지의 꿈」)을 꿈꾸며 “푸른 겨울 하늘을 날아/붓다를 찾아가는/작은 새”(「낙인(烙印)」)가 되어 절대적 진리와의 만남을 갈망한다. “만나고 싶었으나 평생 만날 수 없었던”(「당신을 찾아서」) 절대적 진리의 상징인 ‘당신’을 찾아서 “평생의 눈물이 얼어붙은/저 겨울 강”(「겨울 강에게」)을 건너는 시인의 열망은 뜨겁다 못해 눈물겹다.
시인은 1973년 스물네살에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종심(從心)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오롯이 시의 외길을 걸어왔다. 질곡의 세월을 건너오는 동안 시인으로서의 삶에 늘 감사해하며 인간으로서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견결한 정신을 가다듬으며 살아온 천생의 시인이다. 어느덧 “죽음을 앞둔 늙은 어린이”(「나의 지갑에게」)가 되어 인생 칠십의 황혼길에 접어든 시인은 이제 다시 시를 쓸 수 있을지 못내 두렵다 말하지만, “인간의 더러운 풍경”(「새들이 첫눈 위에 발자국으로 쓴 시」)과 이 세계의 추악한 얼굴이 사라지지 않는 한 “화해하는 숯의 심장”에 “용서의 불씨를 품은 참숯”(「숯이 되라」)과 같은 순결한 시심(詩心)은 쉽사리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의 시는 “인간의 심장을 검게 물들이는 어둠”(「검은 마스크」)을 밝히는 한점 불빛이자 삶을 풍요롭게 하는 영혼의 양식이다.
제1부
새똥
낙인(烙印)
새똥
새똥
해우소
눈길
개똥
빗자루
삽
출가
점안(點眼)
지옥은 천국이다
눈사람
심장
당신을 찾아서
겨울 연밭
진흙 의자
새들이 마시는 물을 마신다
붉은 새
그림자를 생각하는 밤
굴뚝이 보고 싶다
자기소개서
또다른 후회
새들이 첫눈 위에 발자국으로 쓴 시
창가에서
제2부
불멸
모란을 위하여
눈사람의 무덤
묵념
무릎을 꿇는다
달팽이
새를 키우는 것은
걸림돌
먼지의 꿈
부석사 가는 길
빈 그릇이 되기 위하여
연어
백송(白松)을 바라보며
밟아도 아리랑
오늘의 결심
마지막을 위하여
그 쓸쓸함에 대하여
가창오리떼에게
불국사에서
목어에게
경마장에서
시각장애인이 찍은 사진
검은 마스크
슬프고 기쁜
숭례문
제3부
개미
자서전
당신
마음 없는 내 마음
너의 손을 처음 잡았을 때
꽃이 시드는 동안
가섭에게
덫
화재
실족
불청객
기차에서
숯이 되라
잿더미
이슬이 맺히는 사람
풀잎
진흙이 되기 위하여
혼자 건너는 강
칼이 있는 저녁
딱따구리에게
당신의 칼
우울한 오피스텔
나의 지갑에게
나의 악마에게
겨울 강에게
제4부
새벽별
별밥
사무친다는 것
사랑에게
그리운 그리움
촛불
곡기(穀氣)
골무
목포역
그리운 불빛
기념 촬영
내 그림자를 이끌고
눈물의 집
새의 그림자는 날지 않는다
고래라는 말 속에는 어머니가 있다
귀향
결별
섬진강에서
은행잎
덕수궁 돌담길
신라에서 하룻밤
누더기
광화문에서
평창동 수도원
경계선
제5부
천국의 감옥
면죄부
부활 이후
헌 옷
버스 정류장
시계를 볼 때마다
막차
시간에게
마지막 시간
삼각주에서
저녁 무렵
눈물의 향기
독약
유다에게
유다의 유서
유다를 만난 저녁
기적
고해소 앞에서
고해성사 안내문
해미읍성 회화나무의 기도
상처
입적(入寂)
그럼 이만 안녕
장례미사
썰물
해설|이숭원
시인의 말
나는 지금까지 시를 통해 인간으로서 가치 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해왔으나 과연 가치 있는 삶을 살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내 시를 필요로 하고 영혼의 양식으로 삼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버린 적은 없다. 이 시집은 불가해한 인간과 인생을 이해할 수 있는 두가지 요소, 즉 사랑과 고통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쓰인 시집이다. 이번 시집을 준비하는 동안 “사랑 없는 고통은 있어도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씀을 내내 잊지 않았다. 비록 설화이지만 참수당한 자신의 머리를 두 손에 들고 걸어간 생드니 성인의 사랑과 고통 또한 잊지 않았다. (…)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나의 또다른 나인 아내에게, 무엇보다도 나의 당신인 절대자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