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노벨 문학상 수상
★ 『타임』 『가디언』 선정 ‘100대 영문학’
★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딸에게 선물한 책
★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의 인생 책
★ 김영란 전 대법관 강력 추천!
200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도리스 레싱의 대표작 『금색 공책』(전2권)이 작가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창비세계문학 특별판(73-74번)으로 발간되었다. ‘제2의 페미니즘 물결’이 본격적으로 도래하기 전인 1962년에 출간되었지만 레싱 스스로 “여성해방운동에 의해 비로소 탄생한 태도들이 이미 존재하는 것처럼 썼다”고 밝힌 페미니즘 문학의 경전이자 20세기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이다. 거대한 이념의 시대에 균열이 감지되던 1950년대에서 격동의 1960년대로 이행하는 과정을, 자유를 갈구하는 한 여성 작가의 구체적인 일상과 분열된 자아상을 통해 그려냈다. 서구의 제국주의와 인종주의, 반전(反戰), 공산주의의 몰락, 여성해방운동 등 첨예한 주제들이 녹아들어 있으며, 세계에 만연한 분리를 극복하고 통합으로 나아갈 것을 제시한 ‘미래의 소설’이기도 하다. 출간 이후 수십 년간 뜨거운 논쟁을 일으키며 남녀 간 ‘성 대결’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여성운동의 전유물을 넘어 각각의 시대상과 조응하며 가치를 더해가는 우리 시대 필독서로 자리매김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 읽은 책들이 균형감을 잃지 않도록 도왔다며 그중 하나로 『금색 공책』을 꼽았고, 큰딸 말리아에게 선물한 전자책 단말기에 이 책을 담아주기도 했다. 『시녀 이야기』의 저자이자 2000‧2019년 부커상 수상자인 우리 시대 대표 여성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2013년 작고한 레싱을 추모하는 글에서 “20대 초반에 만난 『금색 공책』의 주인공 애나 울프는 내 눈을 뜨게 해주었다”고 밝혔다. 국내 1호 여성 대법관이었던 김영란 전 대법관은 『금색 공책』을 가리켜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를 담은,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책”이자 “여성운동가에게는 교과서 같은 책”이라며 추천한 바 있다.
최근 몇년 사이 우리 사회는 그간 강력한 가부장제와 경제성장 신화에 뒷전으로 밀려온 여성의 권리에 관한 논의에 일대 전기를 맞이했다. 여성의 사회 참여와 육아, 여성이 대중교통 수단이나 길거리 등 일상에서 느끼는 상시적 위협, 이성 관계에서의 기울어진 권력, 그로 인해 여성이 느끼는 좌절과 무력감 등 그 과정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 이슈들이 『금색 공책』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기시감이 느껴질 만큼 『금색 공책』이 환기하는 강렬한 현재성은, 도리스 레싱 탄생 100주년인 2019년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네가지 색 공책으로 분열된 자아상,
그리고 “모든 것이 부서지고” 난 뒤
분리의 극복과 통합으로 나아가는 금색 공책
『금색 공책』의 구조는 각각의 부분이 거대한 전체로 연결되는 태피스트리와 같다. 여러 단편처럼 보이는 이야기들을 퍼즐처럼 엮어나가는 실험적 형식은 포스트모더니즘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레싱은 1971년판 서문에서 “형식을 통해 말하도록” 하는 정교한 서술 구조를 직접 자세하게 설명했다. 우선 큰 줄기는 “‘자유로운 여자들’이라는 제목의 골격 또는 틀 아래 [원어로] 6만 단어 남짓한 통상적인 중편소설”로, 1950년대 후반 런던을 배경으로 전 공산당원이자 싱글맘 들인 애나와 그녀의 친구 몰리의 이야기가 현재 시점에서 진행된다. 이 「자유로운 여자들」을 총 다섯장(章)으로 나누고, 그 사이사이에 주인공인 애나가 작성해나가는 네가지 색 공책, 즉 검은색,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공책이 후렴구처럼 반복된다.
분량 면에서 압도적인 검은색 공책에는 ‘소설 속 소설’인 애나의 데뷔작이자 유일한 발표작 『전쟁의 접경지대』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다. 소설의 재료가 된, 애나가 2차대전 전과 전쟁 기간 동안 영국의 중앙아프리카 식민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경험한 일, 소설을 패러디한 영화 시놉시스 등과 더불어 소설로 벌어들인 수입 내역,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 각색을 제안한 이들과의 만남 등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빨간색 공책은 애나의 정치적 활동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레싱과 마찬가지로 영국 공산당원으로 활동했던 애나가 비판적인 내부자의 시선으로 냉전기 영국 공산주의자들의 다양한 초상을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레싱이 의도했던 ‘1950년대의 연대기’로서 『금색 공책』의 성격에도 가장 부합하는 부분이다.
노란색 공책은 ‘제삼자의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애나가 쓰는 소설 원고이다. 애나가 레싱의 자전적인 주인공이라면, 노란색 공책의 주인공인 엘라는 애나의 자전적인 주인공이다. 사랑에 ‘빠진’ 애나-엘라가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속박, 이성애적 욕망과 낭만적인 사랑의 판타지에서 비롯하는 구속은 계급, 정치 성향, 교육 수준 등의 차이들을 가로질러 절대다수의 여성에게 보편적인 굴레로 작용함을 보여준다.
파란색 공책은 애나의 기억과 꿈, 감정 등을 풀어낸 내밀한 일기로, 정신분석 상담가인 마크스 부인과 나눈 상담 내용, 일기 대신 스크랩해 붙여둔 각종 신문 기사 등이 담겨 있다. 마크스 부인과 애나의 대화를 통해 레싱은 정신병리를 전적으로 개인의 차원에서 파악하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이나 보편적인 신화의 차원에 놓는 융 심리학의 전제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면서, 세계 도처에서 끊임없이 자행되는 폭력과 살상, 사상적 억압 등을 일종의 ‘텍스트 몽타주’ 형태로 제시함으로써 문제의 근원은 시대의 광기라는 사실이 저절로 드러나도록 한다.
그리고 맨 마지막 금색 공책에서 애나는 이 분열된 자신의 조각들을 하나로 엮어낸다. “애나가 공책을 한권이 아닌 네권이나 갖고 있는 건, 애나 자신이 인정하듯 혼돈이 지배하고 형식을 잃어버린 삶이 완전히 무너질까 두려워 현실의 제반 요소들을 분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책들에 쓰는 일을 끝냈을 때 그 파편들로부터 새로운 어떤 것, 「금색 공책」이 나올 수 있게 된다.”(1971년 서문) 소설 전체의 도입부에서 애나가 하는 말인 “내가 보기엔 모든 게 다 부서지고 있다는 거야”(1권 41면)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을 관통하는 ‘부서짐’(cracking up) 혹은 ‘(감정적) 무너져 내림’(breaking down)을 레싱은 “자기치유이자 내면의 자아로 하여금 잘못된 이분법과 분리를 넘어서게 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여성들은 얼마나 더 자유로워졌는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
‘자유로운 여자들’이라는 각 장의 제목은 역설적이다. 소설 안에서 주변인들은 애나와 몰리를 가리켜 입버릇처럼 “당신네 자유로운 여자들”이라고 부르지만, 두 여자는 그 당시 인습에서 벗어난 삶을 산다는 의미에서만 자유로울 뿐 여전히 여성에게 가해지는 무수한 속박에 갇혀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를테면 생리 중인 애나가 냄새 걱정에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생리혈에 관한 생각을 털어놓을 때, 친구의 전남편 사무실에서 감정적 육체적으로 겁박을 당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원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하고 그 남자가 계속 따라올 때, 자신의 몸에 들러붙었던 남자의 시선을 씻어내기 위해 과일 행상 수레로 가서 예쁜 빛깔의 복숭아를 만져보고 집으로 돌아와 시원하게 흐르는 수돗물을 보면서 마음을 추스를 때, 여성 독자들은 이건 바로 내 이야기야, 하고 느낄 것이다.
두 여자는 모두 자유로운 삶을 갈망하면서도 남성의 욕망과 필요에 언제나 자신을 맞출 준비가 되어 있다. 『금색 공책』은 이처럼 남성과의 관계가 여성에게 내밀한 감정적 정신적 속박으로 작용하는 양상을 거침없고 예리하게 탐색한다. 외형상의 독립이나 제도적 차원의 젠더평등은 그 자체로 중요하지만, 더 내밀한 차원에서 여성은 아직도 구속된 존재임을 드러낸다. 이 책이 출간된 지 50년이 지나서도 ‘살아 있는’ 현재적 소설로 읽히는 이유는 여전히 대다수의 여자들이 진정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레싱은 1971년판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약자를 못살게 구는 남자는 자기가 사는 이 세상이나 그 역사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자다. 즉 남녀가 과거에 무한히 다양한 역할들을 맡아왔고, 지금도 어떤 사회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따라서 그런 남자는 무지하거나 혹은 통념을 따르지 않으면 두려워지는 비겁한 인간이다…… 이 내용을 난 오래된 과거에 부치는 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적고 있다. 10년만 지나도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다 쓸려나가리라 확신하면서.”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서문이 쓰인 날로부터 40년을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레싱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성 대결’의 이분법을 넘어
할머니가 엄마 아빠에게,
엄마 아빠가 딸 아들에게 물려주는 우리 시대 필독서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만 해도 우호적인 평론가나 비판적인 평론가나 양쪽 공히 이 책을 ‘성 대결’에 관한 작품으로 ‘격하’했다. 그러나 레싱은 이 모든 혼란을 겪은 뒤 써 내려간 1971년판 서문에서 자신이 여성해방운동을 지지하는 것과 별개로 “이 소설은 여성해방운동의 응원가가 아니었다”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분리와 분열을 딛고 넘어선 ‘통합’이야말로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임을 거듭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레싱은 1993년판 서문에서 변화한 시대에 따라 달라진 독자들의 반응을 다음과 같이 들려준다.
“저 자신이 이 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딸에게 책을 건넸고, 딸도 아주 좋아합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50대 여성을 여럿 만났다. 어떤 젊은 여성에게서는 이런 얘기도 들었다. “엄마가 이 책이 자신에게 영향을 끼쳤다며 읽어보라고 권하셨는데, 지금은 엄마를 훨씬 잘 이해하게 되었어요.” “이 책을 엄마도 읽었고, 지금은 제가 읽고 있어요”라는 말도 자주 듣곤 했다. 이렇게 두 세대에 걸쳐 읽히는 책이 되었는데, 얼마 전에는 어떤 할머니가 이 책을 아들에게 건넸으며, 또 그 아들이 자기 딸에게 책을 읽어보라고 권했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세 세대. 그렇다, 나로선 우쭐해질 수밖에.(1권 10~11면)
2권
자유로운 여자들 3
공책들
자유로운 여자들 4
공책들
금색 공책
자유로운 여자들 5
작품해설 / 여성, 문학, 사유의 예속에 맞서는 글쓰기의 힘
작가연보
발간사
얼마 전 이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그 안에 쏟아부은 미쳐 날뛰는 에너지가 새삼 떠올랐다. 아마도 그 때문에, 즉 그 안에 ‘충전된 에너지’ 덕에 이 책이 계속해서 읽히고 관심을 받는 모양이다. 정말로 이 책에는 놀라운 활력이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