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이주열차

이동순  시집
출간일: 2019.08.30.
정가: 13,000원
분야: 문학,
전자책: 있음

“마흔날을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려만 갔다”

 

 

 

잊어서는 안 될 또 하나의 역사, 

 

 

사라진 이름들을 불러낸 시

 

 

 

시는 물론 분야를 넘나드는 다양한 창작·연구 작업을 통해 문학계에 굵직한 족적을 남겨왔으며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인 이동순 시인의 신작 시집 『강제이주열차』가 출간되었다.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한 이래 시인은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우리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 중 한 사람으로 입지를 굳혀온 한편 분단 이후 최초로 『백석 시전집』을 발간한 것을 비롯하여 분단으로 매몰된 많은 시인을 발굴하여 문학사에 복원하는 등 연구자로서도 뚜렷한 성과를 남겼다. 1989년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어 비평가로서도 활동해온 시인은 대중가요사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번 시집 『강제이주열차』는 시인의 열여덟번째 시집으로 구소련 시절 스탈린 정권이 자행한 고려인 강제이주사를 다룬 연작 성격의 작품집이다. 강제이주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슬픈 영혼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인 이 시집에는 “머나먼 동쪽 끝에서 쫓겨와/평생을 물풀처럼 떠돌다 마감한”(「고려인 무덤」) 고려인들의 한 맺힌 삶과 죽음이 눈물겹게 그려져 있다. 고려인 강제이주 문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의의 자체가 각별한 동시에 희생당한 이들과 살아남은 이들, 그 모두의 애끓는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한 시인의 정성과 내공이 문학적으로도 빛을 발하는 귀한 성과다.

 

 

 

고려인 강제이주사를 다룬 가장 생생하고 뜨거운 노래

 

 

 

제1부 ‘강제이주열차’에서는 부제 그대로 강제이주사를 집중적으로 천착했다. 이 시집에서 단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목이다. 시인은 80여년의 세월 동안 소외와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왔던 강제이주 문제를 자기 문학의 화두로 삼고서 그 시절 “인간이 아니고 짐승이었”(「우리는 무엇인가」)던 고려인들의 처절한 수난의 역사를 세세하고 실감나게 복원해낸다. 삶의 터전이던 연해주에서 하루아침에 수만 킬로 떨어진 중앙아시아 허허벌판으로 내몰려야 했던 장삼이사들의 숱한 사연이 담겨 있다.

 

제2부 ‘슬픈 틈새’에서는 사할린 한인들을 주로 다루었다. 역사학자 반병률 교수의 해설에 언급된 바와 같이 사할린은 오랫동안 러시아와 일본 간 분쟁의 장이었던 곳으로서 무수한 일제 강제징용자들의 아픔이 서려 있다. 시인은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한 채 “만리타향에 뼈를 묻은”(「강제징용자」) 사할린 한인들의 기구한 세월을 그려냈다. 

 

제3부 ‘두개의 별’에는 2018년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던 경험을 기반으로 한 작품들이 담겨 있다. 시인은 “낯설지 않은 얼굴들”(「바자르」)의 고려인들을 만나면서 “말은 안 통해도/굳게 잡은 두 손으로 전해오는 힘”(「크질오르다에서」)에서 동포로서의 애틋한 정을 느끼기도 하고, 고려인 묘지에 나란히 묻힌 두 혁명가 홍범도와 계봉우를 기리기도 한다. 특히 시인은 전10권에 이르는 서사시 『홍범도』(국학자료원 2003)를 집필하기도 했던바, 홍범도 장군이 대한독립군을 창건하면서 공포했던 ‘유고문’의 형식을 빌린 「신 유고문(新諭告文)」은 오늘날 한반도 상황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으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목차

제1부 강제이주열차

 

고려인 무덤 / 싸라기풀 / 고려인 / 짓밟힌 고려 / 잡초 / 혁명가 / 숙청 / 이주 통보 / 서쪽으로

 

떠나던 날 / 떠돌이 개 / 깊은 밤 / 우리는 무엇인가 / 그날의 실루엣 / 고려인의 하늘 / 작별 / 눈물의 세월 / 라즈돌노예 역에서 / 우리는 짐승이었다 / 고향 / 깊은 적막 / 레퀴엠 / 불쌍한 아가야 / 고향 흙 / 열차 사고 / 떨어진 아기 / 깔밭의 참변 / 가장 비통한 그림 / 아리랑의 힘 / 카레이스키 / 삭사울 / 김텔미르의 고백 / 송희연의 회고 / 시인 연성용의 회상 / 김연옥의 증언 / 윤왈렌친의 회고 / 디아스포라 / 토굴집 / 신순남 화백 / 고려말 / 깔밭 / 분서갱유 / 시르다리야 / 내 친구 막심 / 콜호스 / 일벌레 / 고려인 마을 / 고려극장 / 고려일보 / 카레이스키 샐러드 / 예조프의 이주명령서 / 스탈린의 이주명령서

 

제2부 슬픈 틈새

 

슬픈 틈새 / 강제징용자 / 하늘 끝 / 이중징용 / 코르사코프 항구 / 홀아비 무덤 / 사할린 아리랑

 

제3부 두개의 별

 

자작나무 숲 / 알마티 식당 / 김아파나시 / 크질오르다에서 / 빅토르 최 / 바자르 / 고려인 밥상 / 두개의 별 / 계봉우 옛집 / 김야간 여사 / 홍범도 부고 / 연극 「의병들」 / 홍범도 축제 / 신 유고문(新諭告文) / 아, 홍범도 장군

 

 

해설|반병률

시인의 말

침고자료

올해 2019년은 소련 시절 한인(고려인)들이 스탈린 정권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지 82년째 되는 해이다. 그동안 고려인 강제이주와 관련한 역사학계의 논문이나 책자는 많았지만, 이 문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은 이동순 시인의 강제이주열차가 처음이 아닌가 한다. (…) 이 시집이 강제이주에 대한 시적 형상화로서의 의의뿐 아니라, 우리의 후세대가 그것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해줄 소중한 역사적 기록의 하나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반병률|한국외대 사학과 교수

저자의 말

첫 삽질에서 출판까지 무려 스무해가 걸렸던 민족서사시 『홍범도』를 한창 신명나게 써나갈 때 나는 마치 접신(接神)과 유사한 체험을 했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12월 초순, 미국 시카고의 미시건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책상을 놓고 『홍범도』 집필에 몰두하던 때 백마를 탄 홍범도 장군이 온몸에 눈을 맞으며 창문 바깥쪽으로 가까이 다가와 나를 물끄러미 지켜보시던 환시(幻視)를 경험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시집 『강제이주열차』의 작품을 쓰면서도 가슴에서 불덩이처럼 뜨거운 무엇이 울컥 쏟아져 들어오는 놀라운 충격을 자주 겪었다. 이번에는 1937년 그 아비규환의 강제이주열차를 타고 고려인들과 더불어 장장 42일 동안 2만 킬로미터의 먼 길을 시름없이 달려가는 회상의 동일성(identity)을 체감했다. 시베리아 철도의 칼바람이 갈라진 열차 널판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데, 저쪽 구석에서는 앓던 노약자가 몸을 비틀며 죽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강제이주열차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참혹한 광경을 나는 한사람의 시인, 즉 견자(見者)로서 낱낱이 목격하고 현장에 동참하였다. 그로부터 어느덧 80여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고려인 강제이주 문제는 우리 민족문학사에서 여전히 미완의 과제이다. 그동안 소외와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었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이제라도 나는 강제이주 문제를 내 문학의 화두로 삼고 당시 현실과 정황을 정성껏 복원해내고자 한다. (…) 이 시집에 담긴 작품들은 우리 민족이 연해주와 사할린, 중앙아시아에서 겪었던 모든 고통과 시련, 그리고 그동안 가슴속에 담아만 두고 차마 꺼내지 못했던 애환을 내가 시인으로서 대신 불러내고 모셔온 것이다. 당시 강제이주열차에서 목숨을 잃은 2만여 슬픈 영혼들께 이 시집을 바친다.

2019년 여름 이동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