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아동문고 304

모두 잘 지내겠지?

김기정  동화집  ,  해미  그림
출간일: 2019.04.19.
정가: 10,800원
분야: 어린이, 문학

우리의 역사와 어린이의 현실을 그린 동화

 

 

담담한 목소리로 전하는 따뜻한 위로

 

 

 

흥미로운 이야기꾼이자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담은 작품을 선보여 온 동화작가 김기정의 동화집 『모두 잘 지내겠지?』가 출간되었다. 아동문학에서는 쉽게 만나기 어려운 주제인 삶과 죽음을 문제를 다룬 동화 다섯 편을 담았다. 밤마다 얼굴이 창백한 사람들이 찾아오는 국숫집, 해마다 오월이 되면 옛날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이 나타나는 골목, 여자아이 혼자서 오랫동안 머무는 게스트 하우스 등 평범한 듯 조금은 이상하게 느껴지는 공간에 우리의 역사와 어린이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등장인물들이 살아가는 삶의 무대를 가만히 지켜보면 가슴 먹먹한 이야기가 나즈막히 들려올 것이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삶과 죽음을 잇는 다리를 놓다

 

 

김기정 작가의 신작 동화집 『모두 잘 지내겠지?』는 다섯 편의 동화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길모퉁이 국숫집」에서는 한밤중이면 얼굴이 창백한 사람들이 국숫집을 찾아와서 따끈한 국수를 먹고 돌아가고, 「게스트 하우스 아기씨」가 펼쳐지는 공간은 아이가 혼자서 머물고 있는 게스트 하우스다. 「큰할머니 노망드셨네」에서 큰할머니가 들고 다니는 커다란 가방 속에는 많은 아이들이 숨어 있다. 각각의 동화에서 다루는 이들은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이 세상을 떠난 존재다.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지만, 사람들 곁에서 살아간다. 『모두 잘 지내겠지?』에 세상을 떠난 이들만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 곁을 떠난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모습도 그려진다. 김기정 작가는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이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말을 전하는 동시에, 남겨진 사람들이 떠난 사람들에게 뒤늦게나마 건네고 싶은 말을 전한다. 삶과 죽음 사이에 다리를 놓아서 그들을 만나게 하는 과정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삶과 죽음이라는, 아주 먼 거리에 놓인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어린 독자들은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 속 어린이의 삶을 그려 낸 동화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선사하는 묵직한 울림

 

 

『모두 잘 지내겠지?』는 우리 사회의 비극적인 과거를 다루고 있다. 「녹슨 총」에서 해마다 오월이 되면 나타나는 ‘장곤’은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희생된 인물이다. 그는 옛날 교복을 입고 녹슨 총을 어깨에 멘 채 여전히 그날의 시간을 살고 있다. 「게스트 하우스 아기씨」에서 혼자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며 부모가 자신을 데리러 오길 기다리는 ‘연수’는 세월호를 연상하게 하는 배에 타고 있던 인물이다. 그는 오랜 기다림 끝에야 비로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길모퉁이 국숫집」에서는 국숫집에 몰려와서 갖가지 음식을 먹고 돌아가는 한 무리의 학생들을 보면 세월호 참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김기정 작가는 우리 사회의 비극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는 역사로서의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을 그려 낸다. 밥을 먹고 골목을 달리고 친구들과 함께 노는 걸 좋아하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친구나 가족 같은 이들이 역사적 현실 속에서 살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이러한 노력 끝에 우리의 과거는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생생한 기억이 된다.

 

 

담담하지만 온기 가득한 목소리로

 

 

떠난 사람에게 인사를 보내는 동시에 남은 사람에게 위로를 건네다

 

 

김기정 작가는 담담하면서도 굳센 목소리로 우리 사회의 비극을 이야기한다. 기실 동화에서 사회적 비극을 담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건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 그 실상을 오롯이 지켜보고 공감하며 글로 옮기는 일은 그 자체로서 고통이다. 그에 더해서 동화는 ‘과연 아이들에게 우리 사회의 비극까지 알려 주어야 하는가?’라는 우려를 넘어서야 한다. 이러한 우려는 「벚꽃 우물」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먼 곳으로 이사 가던 아이가 끔찍한 사고로 인해 당한 죽음을 같은 반 아이들의 부모와 선생님은 차마 아이들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그러니 알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서로 입단속까지 한다. 그럼에도 김기정 작가는 다소 무겁고 읽기 힘들 수 있는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그것은 작가로서의 사명감 때문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린이 또한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동화집의 제목처럼 ‘모두가 잘 지내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믿음과 바람대로 많은 어린이 독자들이 우리 사회의 역사적 사건을 마주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며 살아가기를 기대한다.

 

 

 

 

 

 

 

 

 

작품 줄거리 

 

 

「길모퉁이 국숫집」 국숫집 딸인 주인공은 가게 안쪽 방에서 잠을 자다가 낯선 사람들이 밤마다 찾아오고, 엄마가 그 사람들에게 국수를 대접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꿈인 듯 사실인 듯 헷갈려 하다가 엄마에게 그 사람들이 모두 죽은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녹슨 총」 주인공의 가족은 광주의 어느 골목으로 이사한다. 그런데 골목에서 낡은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형을 만나게 되는데, 과연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게스트 하우스 아기씨」 게스트 하우스 '아기씨'에는 집에 돌아가지 않고 오랫동안 머무는 아이가 있다. 아이는 엄마 아빠가 자기를 데리러 오기를 기다리는 숙박객이다. 무슨 사연이 있어서 오래도록 부모를 기다리고 있을까?

 

 

「벚꽃 우물」 함께 학교를 다니면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전학을 간다. 남은 아이들은 가끔씩 전학 간 친구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지만 소식을 듣지 못한다. 과연 전학 간 친구는 잘 지내고 있을까?

 

 

「큰할머니 노망드셨네」 백 살이 넘은 큰할머니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아이가 몇이야?” 하고 묻는다. 대답을 해도 똑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한다. 과연 큰할머니는 왜 같은 질문을 계속하는 것일까?

목차

길모퉁이 국숫집

 

녹슨 총

 

게스트 하우스 아기씨

 

벚꽃 우물

 

큰할머니 노망드셨네

 

 

 

작가의 말

저자의 말

이상한 징후를 발견한 건, 지난 몇 해의 일을 되짚어 보면서입니다. 작가이니 따로 기억을 더듬는다는 게 별게 아닙니다. 책상 앞에 앉아 그 시간 동안 어떤 작품을 썼나 곱씹어 보는 일이었습니다. 손아귀에서 바스러질 것만 같은 이야기 몇 줌. 그게 전부였습니다. 내내 열심이었다고 믿어 왔는데 허무하고도 절망스러웠습니다. 성을 못 이기고 불을 질러 태워 버렸더니, 그 녀석들도 세상에 미련이 있었나 봅니다. 잿더미 속에서 이야기 몇이 숯으로 남았습니다. 영영 지우려 해도 연기로도 사라지지 않는, 그 이야기들을 앞에 놓고 다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 녀석들은 왜 살아남았을까?’ ‘나는 왜 이런 이야기를 썼을까?’ 꼭 5년 전 그 봄부터였던 듯싶습니다. 그 봄을 힘겹게 보내면서부터였습니다. 처음에는 콧노래와 발장구로 시작하여도 왜 그런지 쓰는 족족 이야기는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안타깝고 답답하고 슬픈 시간. 나 자신도 그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듯합니다. 아무리 오래 고민한들 답이 있을 리 없는데도 미로 속에서 해답을 찾아 헤매었나 봅니다. 이 작품들은 그렇게 생겨나고 살아 있으려고 바동거리는 이야기들입니다. 비록 결과물은 하찮습니다만, 작가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또 배우고 있습니다. 힘겹게 한 글자씩 이야기를 채워 가면서요. 조금씩! 천천히!   2019년 안간힘을 내는 봄 김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