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가을씨는 1941년 대전에서 태어나, 1982년 '크리스천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1988년부터 7년 동안 계간 『어린이』를 만들었으며, 현재 분당에서 어린이 책 전문 서점 '가을글방'을 운영하고 있다. 1995년 대산재단 창작지원금을 받았으며 1996년에는 제1회 불교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 동안 쓴 책으로는 『집보는 아이』(현암사) 『솔숲 마을 사람들』(성바오로출판사) 『떠돌이 시인의 나라』(국민서관) 『빛을 가진 아이들』(대원사) 『큰 스승 소득이』(서광사) 등이 있다.
이 책에 실린 열두 편의 동화는 대부분 세상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것들이 주인공이다. 작가는 장애인, 버려진 강아지, 쓸모를 찾지 못한 못 한 개에까지 소중한 의미를 부여해 생명의 소중함과 가치를 새삼 일깨운다. 표제작 「가끔씩 비 오는 날」의 주인공은 주변 친구들로부터 쓸모없다고 구박받으며 지내는 콘크리트 못이다. 다행히 새로 이사온 주인 아저씨가 이 못을 쓸모 없다 하여 그냥 뽑아 버리지 않고, 어느 비 오는 날 화초를 거기 걸어 비를 맞게 해준다. “가끔씩 비 오는 날 쓸모가 있는 못이 되는 나는 아주 행복합니다. 언제나 쓸모 있는 못이 모르는 행복입니다.” 하는 주인공 못의 마지막 말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철웅이의 비둘기」 「강아지」 등의 작품에서는 작은 생명 하나도 귀하게 다룰 줄 아는 어린이들의 세계가 따뜻한 감동으로 전해지며, 「눈 오는 날」 「흙」 「창 밖의 곤줄박이」 등에서는 보통사람들보다 훨씬 착하고 넉넉한 장애인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편 「아가 발은 짝발」 「창 밖의 곤줄박이」 두 작품은 최근에 세상을 달리하신 동시작가 권오순님과 동화작가 임길택님의 삶을 다루었다. 화려한 불빛이 없는 응달의 아동문학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한 이 두 분의 안타까운 생애가 동화로 형상화되어 그 고귀한 정신의 높이를 가늠케 해준다.
동화는 흔히 초현실 세계를 즐겨 다루는 데 비해,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거의 현실세계이고 아동문학이 흔히 꺼려하는 죽음을 진지하게 드러낸 작품들도 꽤 된다. 제2부에 실린 작품들은 '아동소설'로 분류될 만한 것들로, 「별똥별」과 「분청사기」는 그 주제나 소설적인 기법으로 인해 어린이들로 하여금 서서히 드넓은 문학의 세계로 들어서게 하기 안성마춤이다.
초등학교 고학년들이 즐길 만한 수준 높은 이야기로 가득한 이 동화집은 다양한 소재와 탄탄한 구성, 빼어난 문장이 단연 돋보여, 우리 아동문학의 수준을 한 차원 높일 수 있는 좋은 자극제가 되기를 기대해도 될 듯하다.
<신문기사>
소외받은 사람들의 '행복 만들기'
가끔씩 비 오는 날이면 저도 쓸모가 있지요. 콘크리트 벽에 붙어 있는 작고 볼품없는 못이라 그림이나 시계도 걸지 못하죠. 어느 비 오는 날, 주인 아저씨께서 저의 목에 끈을 매달아 예쁜 화분을 창문 밖에 걸어 놓으셨어요. 정말 행복했지요.
이가을씨의 동화집 『가끔씩 비 오는 날』. 창작동화 12편의 주인공들은 모두 세상에서 소외받는 대상들이다. '엄마 손은 약손'이란 노래처럼 작가는 이렇게 아픈 데를 찾아다니며 따스한 손길로 어루만져 준다.
짝발을 갖고 태어난 장애인 소녀, 아파트 베란다에 날아온 비둘기, 아궁이에서 떨어져 불에 덴 강아지, 폐렴을 앓는 친구…
정신지체아인 창복이는 체육시간에 친구들이 체조를 할 동안 “야, 야” 소리를 지르며 운동장 여기저기를 뛰어다닙니다. 선생님은 흙을 퍼담기 좋아하던 창복이에게 학교 한구석에 '창복이의 밭'을 일구게 했습니다. 창복이는 학년도 올라가지 않고 열여섯 살에 병을 앓아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흙 속에서 살았습니다.
현실의 고단함을 피하지 않는 이 책에서는 아동문학이 꺼리는 죽음까지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최근 세상을 떠난 동시 「구슬비」(송알송알 싸릿잎에 은구슬…)의 작가 권오순씨, 탄광촌과 장애인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폐렴으로 숨진 임길택 선생의 삶과 죽음을 그린 동화도 감동을 전해준다.
기죽어 있는 아이들에게 '작은 못'이 들려주는 이야기. “가끔씩 비 오는 날 쓸모가 있는 못이 되는 나는 아주 행복합니다. 언제나 쓸모 있는 못이 모르는 행복입니다.” 〈동아일보/98. 4. 28./전승훈 기자〉
머리말 | 힘있는 사람
제1부
가끔씩 비 오는 날
철웅이의 비둘기
벽시계가 있는 집
첼로
강아지
눈 오는 날
흙
아가 발은 짝발
창 밖의 곤줄박이
제2부
백령도
별똥별
분청 사기
해설 | 아픈 데를 어루만지는 손 / 원종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