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의 진짜 ‘장군님’일까?
인간성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긴 권정생의 동화를 간결하고 경쾌한 필치로 그린 『장군님과 농부』가 출간되었다. 1988년에 출간된 『바닷가 아이들』(창비아동문고 106)에 수록된 단편동화 「장군님과 농부」를 그림책으로 새롭게 펴냈다. 전쟁터에서 혼자 도망친 장군과 우직하고 부지런한 농부가 무인도까지 함께 가는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화가 이성표는 해학 넘치는 이야기를 특유의 맑은 색감과 장난기 어린 붓질로 표현하여 예술성이 풍부한 그림책으로 완성했다. 전쟁 통에 만난 두 사람의 우스꽝스러운 대화를 통해 참다운 인간성에 대해 날카롭게 묻는 동시에 백성을 사랑하는 지도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일깨운다. ‘권정생 문학 그림책’ 시리즈의 다섯 번째 권.
전쟁 통에 만난 두 사람의 동행
웃음과 해학이 가득한 권정생 동화의 맛!
여기 장군과 농부, 두 사람이 있다. 장군은 적군에게 포위를 당한 전장에서 혼자 도망쳐 살아남았다. 농부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전쟁을 피해 모두 떠난 텅 빈 마을에 혼자 살고 있다. 지치고 배가 몹시 고픈 장군은 마을의 집집마다 들어가 사람을 찾다가 농부를 만난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기뻐한다. 장군은 다스리고 부릴 수 있는 농부를 만났고 농부는 큰 힘이 되어 줄 장군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대포 쏘는 소리가 가까워지자 장군은 허둥거리며 도망치려 하고 농부는 담담히 집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서로 생각이 다른 두 사람은 대화 끝에 마을을 벗어나서 함께 달아나기 시작한다.
“어서, 어서 서둘러 도망칩시다.”
“예, 장군님께서는 어서 달아나시기 바랍니다.”
“아니요, 함께 가야 합니다.”
장군님은 벌써 얼굴이 하얀 종잇장 같았습니다.
“하지만 장군님, 저는 남아서 집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가을이 오면 곡식을 거둬들여야 하고요.”
“그, 그건 당장 급한 게 아니잖소? 지금 급한 건 나, 장군님을 보호하는 일이지 않소.”
장군님은 하얗게 질린 얼굴에다 무서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장군과 농부가 주고받는 대화는 인물을 생생하게 드러내면서 희극의 한 장면처럼 웃음을 자아낸다. 『장군님과 농부』는 시종일관 자기 본분에 충실한 농부와 그렇지 못한 장군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면서 박진감 있게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이처럼 ‘권정생 문학 그림책 시리즈’의 다섯 번째 권인 『장군님과 농부』는 권정생 작품 세계의 한 축을 이루는 웃음과 해학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전쟁이 일어난 어느 시골 마을에서 만나 함께 도망치는 장군과 농부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며 엄정하면서도 인간애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권정생의 세계관을 오롯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는 백성들의 힘
장군과 농부는 뗏목을 타고 여러 날 동안 바다를 떠돌다가 무인도에 가닿는다. 무인도에 와서도 장군은 놀고, 우직하고 부지런한 농부는 열심히 농사를 지으며 산다. 장군이 먼바다를 바라보며 육지에서 오는 기쁜 소식을 기다리던 어느 날, 섬으로 배 한 척이 다가온다. 섬에 도착한 병사들과 백성들이 ‘장군님’에게 달려가 엎드려 절한다. 그러나 그들이 절한 ‘장군님’은 장군이 아닌 농부 할아버지다.
“이 할아버지는 정말 나라를 사랑하고 사람의 목숨을 사랑하는 분이오.”
한 병사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모두에게 보였습니다.
“이분의 손을 보십시오.”
할어버지의 손은 쉴 새 없이 노동을 하여 거칠고 못이 박여 있었습니다.
병사와 백성들이 ‘장군님’에게 절하는 장면은 이야기에 산뜻한 반전을 꾀하며 독자에게 참다운 인간은 누구인지 날카롭게 묻는다. 권정생은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녹색평론사 1996; 개정증보판 2008)에서 “이 지구상의 직업인 가운데 농사꾼이야말로 마지막까지 남을 것이다. (…) 인간이 살아갈 생명의 힘을 생산해 내는 것이니 그 이상의 거룩한 직업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라고 이야기했다.(91면) 땅에 씨앗을 뿌리고 열매가 열릴 때까지 정성을 기울여 키우는 농사꾼의 노동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은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일 것이다.
화가 이성표는 ‘농부의 손’을 공들여 묘사하여 우직한 농부의 삶이 곧 지혜로운 삶이라는 권정생 동화에 담긴 깊은 통찰을 감동적으로 그려 냈다. 한 병사가 거칠고 주름진 농부의 손을 보인 뒤, “모든 백성들이 바로 장군”이라고 군중들이 합창하는 순간에는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포한 대한민국헌법 제1조의 조항이 자연스레 떠오를 것이다. 그림책 『장군님과 농부』는 지금의 어린이들이 공감할 만한 메시지가 담긴 작품으로서 백성을 다스리는 지도자는 어떤 인물이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한다.
간결하고 예술성이 풍부한 그림책의 아름다움
화가 이성표는 30년 넘게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리고 그림책 작가로 살아왔다. ‘일러스트레이션은 한 인간의 내면의 울림’이라고 말해 온 그는 그동안 이야기의 핵심을 간결하고 부드러운 자신만의 그림 언어로 표현해 왔다. 그는 『장군님과 농부』에서 인간 세상을 ‘고해’(苦海)에 비유하는 것을 떠올리고, 전쟁을 피해 달아나는 불안한 두 인물의 모습을 파도가 쉼 없이 치는 바다의 이미지로 변주하여 보여 준다. 고요한 물속에서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 장군의 이미지로 시작하여 도망치는 장군과 농부 앞에 펼쳐진 망망한 바다, 매서운 대포 소리가 울리는 바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밤바다 등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거칠게 바다 물결을 표현하여 이야기의 풍부한 감상을 선사한다. 거대한 자연 앞에 보잘것없는 작은 인간이 대비되는 장면들은 화가의 해석을 통해 권정생 동화를 새롭게 읽을 수 있는 대목이 될 것이다.
특히 화가는 이번 그림책에서 붓이 빚어내는 부드러운 면과 연필이 만드는 날카로운 선의 차이를 활용해서 장군과 농부의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형상화했다. 거센 파도와 대포 소리가 쿵쿵 울리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뗏목을 탄 장군과 농부를 그린 장면이 대표적이다. 배경은 아크릴릭 물감을 써서 붓으로 천천히 색을 입히고, 인물은 가는 색연필로 만화를 그리듯 경쾌하게 그렸다. 『장군님과 농부』는 밑그림 없이 바로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작업해 나온 책이다. 화가 는 종이를 마주하고 붓을 들고 마음에 드는 그림이 나올 때까지 한 점씩 정성을 다해 끊임없이 그리며 아름다운 그림책을 완성해 냈다.
권정생의 빛나는 단편동화를 그림책으로 만난다!
‘권정생 문학 그림책’ 시리즈
권정생 단편동화가 그림과 만나 새로운 감상을 전하는 그림책 시리즈다.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동화들이 그림책으로 피어나 문학의 감동을 확장한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세대를 뛰어넘어 더 많은 독자들과 풍성하게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1.『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김용철 그림) 2. 『빼떼기』(김환영 그림)
3.『사과나무밭 달님』(윤미숙 그림) 4. 『해룡이』(김세현 그림)
5.『장군님과 농부』(이성표 그림)
* 이후 계속 출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