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는 어떻게 정치의 문제가 되었나

가족과 통치

조은주  지음
출간일: 2018.08.13.
정가: 18,000원
분야: 인문교양, 정치사회
전자책: 있음

국가와 개인, 젠더와 계급의 최대 격전지 ‘가족’!

 

 

한국의 정상가족 만들기 프로젝트

 

 

 

한국 사회에서 ‘인구’ 문제가 국가권력의 근대적 재편과 관련해서 부상했음을 역사적으로 실증하는 책 『가족과 통치』가 출간되었다. 저자 조은주는 십수년간에 걸친 연구를 통해 1960~70년대 한국의 가족계획사업이 단지 산아제한이 아니라 자본주의 산업화와 연관된 정상화(normalization) 및 주체화의 과정이었음을 탁월하게 설파해낸다. 또한 가족계획사업은 근대적 전업주부와 임금노동자에 대한 관념을 창출하면서 ‘정상가족’의 확립을 도모했으며, 이는 우리 현실의 직접적 기원이었음을 다양한 사료를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박정희 시대 새로운 양상의 권력이 가족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관통했는가를 추적함으로써 한국 사회를 여전히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비판적 시각으로 성찰하기 위한 유용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가족과 여성 문제를 역사적 관점에서 다룬 당대사, 젠더 이슈의 심층을 파헤치는 분석서,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접근법을 제시하는 사회과학서 등으로 읽히는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안목을 제공할 것이다.

 

 

 

국가는 ‘인구’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가

 

: 인구는 통계와 과학의 얼굴로 나타나지만 사실 정치의 문제다

 

 

 

2016년 정부가 가임기 여성 수에 따라 각 지방자치체에 순위를 매긴 ‘대한민국 출산지도’에 여론의 뭇매가 쏟아졌다. 한국 정부가 출산율에 대해 얼마나 맹목적이고 안이한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국가는 출산율 감소로 인한 ‘인구 절벽’ ‘국가 위기’ 등의 담론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면서 정작 임신과 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게 일반 국민들의 기본 인식이다. 최근 낙태죄 위헌 여부가 헌법재판소에서 논의되면서 낙태죄를 둘러싼 찬반 논의가 활발해졌는데 여기서도 출산율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어김없이 등장했다.

 

50여년 전, 국가는 출산율 문제에 대해 현재와 반대의 입장에서 심각하게 개입했다. 1960~70년대에는 임신중절 수술이 산아제한을 위한 방법으로 권장되었으며, 1972년에는 과밀한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신중절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출산율과 인구조절 정책에 대해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는 듯 보이는 국가의 모순적인 태도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가족과 통치』의 저자 조은주는 2000년대 초반 저출산이 문제화되는 방식에 주목하면서 생산과 재생산의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가족이 통치의 도구로 전환되는 결정적 계기가 1960~70년대 가족계획사업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십수년에 걸친 연구가 집대성된 이 책은 당시의 가족계획사업이 단지 출산율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짐승의 삶’을 ‘인간의 삶’으로 전환시키는 일종의 근대화 프로젝트(151면)였음을 보여주면서, 국가가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국민의 사적영역을 재구성함으로써 어떻게 통치의 실천을 수행했는지 면밀히 따져본다. 당시의 잡지, 각종 정책과 통계자료, 국내외 조사연구 프로젝트 등을 샅샅이 분석하면서 ‘인구’ 문제가 당시 국가권력의 근대적 재편과 연관을 맺으며 부상했음을 극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출산율, 사망률 등과 같은 인구 문제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적 맥락과 국가의 발전 정도에 따라 통치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음을 밝혀냈다.

 

 

 

 

 

 

박정희 정권, 성생활․임신․출산을 정치적 장에 도입하다

 

 

 

박정희 정권기, 산아제한은 일상이었다. 1961년 10월 박정희는 기자회견을 열어 산아제한을 위한 계획은 강제성을 띤 “입법으로써 단행할 것이 아니라 국민운동을 통한 계몽으로써” 추진하겠다고 천명했다(19면). 피임술을 보급하기 위해 양장 차림의 가족계획계몽원이 전국의 읍‧면 단위로 배치되었고(83~87면), 텔레비전에서 피임술 중 하나인 루프 광고가 방영되기도 했다.

 

군부독재 시절에 이루어진 가족계획사업을 오늘날의 시선으로 평가할 때 품기 쉬운 오해는 이러한 가족계획사업을 통해 정부가 국민을 국가감시 시스템으로 포섭했다고 파악하는 것이다. 기존의 연구와 논의들 역시 대체로 재생산에 대한 국가권력의 통제, 여성의 몸에 대한 폭력적 개입이라는 관점에서 가족계획사업을 주목해왔다. 하지만 가족계획사업은 개인을 통제하고 감시하고 조작하는 국가의 얼굴로만 나타나지 않았다. 피임술을 홍보하는 양장 차림의 가족계획 계몽원, 전국의 출산율을 집계하기 위해 가구원의 수를 묻는 조사원, 불임술 시술 과정을 훈련하는 의사, 루프 광고를 보여주는 텔레비전, 행복한 부부의 성생활에 관한 칼럼을 게재한 기독교 잡지, 이 모든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을 겨냥한 통치의 실천이었다.

 

조은주는 국가권력의 구체적인 실천과 성격, 그 효과를 분석하면서 가족계획사업이 이른바 국가의 통치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이었음을 주목한다. 푸꼬의 ‘통치성’ 논의(1장 참조)를 경유한 저자의 이러한 관점이야말로 이 연구가 기존의 논의와 차별되는 탁월한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저자의 분석을 통해 박정희 시대를 폭압적인 군사정권으로만 이해하는 것을 넘어 또다른 관점에서 사유할 수 있는 시각을 얻게 된다. 평범한 사람들이 결혼하고 노동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저축하고 소비하는 모든 과정을 인구의 통치라는 차원에서 정치권력의 장에 도입한 것이 바로 박정희 정권이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1960년대는 우리가 살고 있는 당대의 직접적인 기원이다.”라는 지적은 되새길 만하다(263면).

 

 

 

 

 

정상가족의 탄생: 가족계획사업, 낭만적 사랑과 연애결혼을 옹호하다

 

 

 

가족계획사업에서 놀라운 점 중 하나는 가족계획 담론에서 재생산과 분리된 쾌락적 섹슈얼리티가 일관되게 추구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1973년 가족계획 계몽 부채에 그려진 만화가 ‘음탕’하다는 이유로 사회적 비난에 직면하는가 하면(175면), 가족계획을 위해 출판된 각종 책과 잡지에는 종교, 의학 등 각계 전문가가 부부의 즐거운 성생활에 대해 조언하고, 여성의 성적 욕망을 긍정하는 글을 게재했다(181~191면, 195~204면). 기존의 여러 연구가 가족계획사업을 통해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국가발전을 위해 통제되는 대상이 되었다고 평가하는 데 반해 조은주는 가족계획사업이 피임술의 보급을 통해 섹슈얼리티와 재생산을 기술적으로 분리시켰을 뿐만 아니라 성의 쾌락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전파하면서 성행위를 생식의 목적과 분리된 ‘사랑의 실천’이라는 차원에서 의미화했다(202면)고 분석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다양한 자료를 제시하고 있는데 특히 대한가족계획협회의 기관지인 『가정의 벗』에서 다양한 기사, 만화 등을 풍성하게 인용하면서 당시의 사회상을 읽는 재미를 선사해준다. 이 잡지가 자유롭고 개방적인 성의식과 충분한 성지식의 필요성을 설파하고 여성의 주체적인 욕망을 강조하는 부분은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아도 진보적인 면이 있다.

 

이처럼 가족계획사업은 통제와 감시 아래 여성들을 단순 편입시킨 것이 아니라 성과 사랑, 결혼에 관한 담론들을 통해 여성을 특정한 방식으로 주체화했다. 낭만적 사랑, 연애결혼, 합리적으로 가계를 운영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여성의 주체성과 자율성 등이 강조되었지만 그러한 자유를 얻은 여성의 삶은 가족관계와 남성의 일대기에 더욱 종속되었다(257면).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 현상을 설명해내기 위해 조은주는 때로는 개인의 삶에 밀착해서, 때로는 국가의 통치라는 거시적 관점을 넘나들며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가족과 통치』는 가족이 국가와 개인, 젠더와 계급이 교차하는 한복판이자 재생산을 둘러싼 사회적 힘들이 경합하고 대결하는 장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며 오늘날 우리의 삶을 규정하고 있는 ‘정상가족’의 의미를 다시 성찰하게 한다.

목차

1장 가족, 통치의 모델에서 통치의 도구로

 

죽게 하는 권력과 살게 하는 권력

근대 정치의 두 계열

가족, 인구, 통치

1960~70년대 한국의 가족과 국가

 

2장 인구의 부상

 

국제노동기구 전문위원의 충고

인구의 출현

인구의 자연성과 사회의 실증적 발견

제3세계, 인구학적 타자

정치적 상상과 인구: 한국의 가족계획

 

3장 가족계획사업

 

어느 면서기의 기록

근대적 출산조절

대한가족계획협회

피임술의 보급

가족계획어머니회

 

4장 국가의 통치화

 

인구에 관한 지식

통치와 과학

수와 통치: 가독성의 효과

국가형성과 인구

 

5장 역사주의와 가족

 

짐승의 삶과 인간의 삶

농민과 노동자

제2의 시야: 의사들

역사주의: 시대착오와 수치의 계몽

 

6장 근대가족 만들기

 

음탕한 부채

가족계획의 성 담론

사랑, 결혼, 섹슈얼리티의 결합

가족의 정상화

 

7장 여성의 주체화

 

피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낭만적 사랑과 성찰적 주체

가정의 관리와 아동의 양육

전업주부: 성과 계급의 교차로

여성의 주체화: 자유와 권력

 

8장 가족과 통치

 

왕의 목을 자르기

국가효과

가족, 통치의 도구

길 위의 가족

 

저자의 말

2015년에 눈에 띄는 핑크색으로 새로 단장한 서울 시내 지하철의 임산부 배려석에는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표시되었다. 임산부석이 만들어진 이유가 저출산 때문이라는 건 누구나 쉽게 짐작할 만한 일이다. 저출산으로 인해 2500년 혹은 2750년에 민족이 소멸하고 대한민국이 사라진다는 예측을 삼성경제연구소나 국회입법조사처 같은 내로라하는 기관들이 발표하는 나라에서 낮은 출산율이 불러일으키는 위기감은 국가주의적인 공포와 어렵지 않게 연결된다. 그리하여 임산부를 배려하겠다는 명목으로 만든 지하철 좌석조차 정작 임산부가 아닌, 민족국가의 소멸을 막아줄 배 속의 태아를 위한 자리가 되는 것이다. 2016년 말 정부가 발표한 ‘대한민국 출산지도’에서는 가임기 여성 수에 따라 각 지방자치체에 순위가 매겨졌다. 가임기 여성이 많을수록 해당 지자체에 더욱 진한 핑크색이 칠해졌다. 물론 이 출산지도 사이트는 빗발치는 항의로 인해 곧바로 문을 닫았다. 이와 같은 항의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야말로 비극일 것이다. 2017년에는 혼인율이 낮은 고학력·고소득 여성들이 ‘하향선택결혼’을 하게 만드는 문화적 콘텐츠를 개발하고 혼인연령을 낮추기 위해 휴학이나 연수, 학위, 자격증에 채용상 불이익을 주는 방안이 국책연구기관의 연구 결과에 따른 저출산 대책으로 제안되었다. 출산율에 대한 맹목적이면서도 안이한 태도는 이처럼 농담에 가까운 촌극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로부터 우리는 저출산 담론을 둘러싼 문제적 지형을 일별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사태의 핵심은 아닐 것이다. 출산율과 가임기 여성의 인구학적 분포, 초혼연령, 혼인율 등은 이미 이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논의할 때 가장 심각하게 다루어지는 요소가 되었다. 우리는 연령별 인구구성비와 부양비 문제를 떠나서 사회보장을 논의하기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저 괴이한 소극들이 빗발치는 항의와 조소를 일으키는 반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효과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데 사람들은 쉽게 의견을 모은다. 저출산의 위기 담론에 기대서 성평등 정책이나 청년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문제는 합리적 통치의 요청이나 위기 담론의 승인 자체가 아니라 그것과 비판 사이의 차이에 대한 망각에 있다. 이를테면 한국사회가 2000년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지 17년 만에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가 되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그리하여 고령사회의 위험이 강조되고 정부의 효과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하지만 ‘고령화사회’ ‘고령사회’ 등은 사회를 특정한 방식으로 읽어내는 인식의 격자(grid)를 전제한다. 15세부터 64세를 생산가능인구로, 65세 이상을 생산활동에 참여하지 않은 채 부양되는 존재로 분류하는 기준선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 개념이다. 고령사회의 위험을 운위할수록 이 인식의 격자에 대한 비판은 무망해지고 그 정당성에 대한 승인은 계속해서 갱신된다. ‘인구는 어떻게 정치의 문제가 되었나’라는 이 책의 부제는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지 모른다. 인구는 시민이나 민족과 마찬가지로 특유한 역사적 맥락에서 등장했다. 무엇보다도 인구는 자본주의경제의 확산과 떨어질 수 없는 개념이다. 또한 국가권력의 근대적 재편과 직접적인 연관을 맺으며 부상했다. 나아가 인구는 개개의 삶이 아니라 유기체적 전체의 질을 중요시하는 우생학과 쉽게 결합하는 개념이다. 즉 인구는 애초부터 정치의 문제였다. 그럼에도 인구 개념의 가장 흥미로운 특징은 그것이 정치와 무관한 객관적 지식과 사실의 차원으로 여겨진다는 점에 있다. 저출산이 불러일으키는 위기감과 고령사회의 불안이 정치적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세계 최저수준이라는 출산율은 철학자 진태원의 말을 빌리면 ‘실존적 계급투쟁’의 시대, 개인의 실존 자체가 계급투쟁의 장이 되는 시대가 빚어낸 초상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저출산 담론이 불러일으키는 탈정치의 정치, 반(反)정치의 정치는 집합적 삶의 현재적 조건을 대면하는 대신 저출산이나 고령사회가 가져온다는 미래사회의 위험에 경도되게 만든다. 그러나 저출산은 문제 자체 혹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며 결과다. 현재의 인구 담론은 문제의 원인을 저출산으로 치환하며,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의 곤궁을 국가주의의 차원으로 수렴시킨다. 그 한복판에 이 시대의 가족이 자리하고 있다. 가족은 이 시대 최대의 격전지이자 각축장이 되었다.   2 이 책의 출발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출산에 관한 논의가 막 시작되던 무렵이었다. 저출산이 문제화되는 방식에 주목하면서 나는 이에 관한 박사학위논문을 쓰기 위해 관련 문헌과 자료를 수집하고 해외의 사례를 살펴보았다. 나의 관심은 노동시장의 유연화나 노동시간, 금융화, 임금 정체, 그리고 이 모두와 결합한 1인 생계부양자모델의 해체 등의 역사적 변동과 재생산이 맺는 관계, 재생산의 정치에 관한 것이었다. 생산이 정치적 주제이듯 재생산 역시 응당 정치적 주제다. 그리고 생산의 정치는 재생산의 정치와 불가분 결합한다. 울리히 베크와 엘리자베트 베크-게른샤임이 가족을 산업자본주의의 중핵으로 본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그러나 저출산과 재생산의 정치에 관심을 기울일수록 이를 좀더 역사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를 절감하게 되었다. 어떤 문제가 정치적・사회적 구성물임을 밝히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그것을 역사화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즈음 인구와 통치성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룬 미셸 푸꼬의 생전 강연록이 영어로 출간되었다. 그리하여 나의 관심은 인구의 문제가 통치의 지평에 진입하고 가족이 통치의 도구로 전환되는 역사적 과정으로 확장되게 되었다. 저출산에 관심을 가지고 시작한 연구가 한국의 가족계획사업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 연유다. 1960년대와 1970년대를 살펴볼수록 그 시대에 대한 논의가 더욱 본격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은 강렬해졌다. 이렇게 해서 나는 가족계획사업을 다루는 박사학위논문을 쓰게 되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는 군사쿠데타와 유신체제의 시대이면서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권력이 근대적 형태로 변모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전개된 자본주의 산업화는 가족의 근대적 재편, 새로운 삶의 양식과 결합했다. 권력을 주체의 외곽에서 작동하는 것으로 보는 자유주의적 권력관에 대한 푸꼬의 비판처럼, 권력은 주체의 경계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주체를 관통했다. 근대적 전업주부와 임금노동자가 창출되었고, 해방과 종속의 동시적 과정이 일어났으며, 평범한 개인들의 삶을 특정한 양태로 정상화(normalization)하는 기술이 발전했다. 인구에 대한 지식이 구축되었고, 국가의 통치화가 전개되었다. 한국의 1960년대와 1970년대는 우리 시대의 강력한 윤리적 토대이자 정치적 이상인 공리주의가 뿌리내리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인구에 대한 관심과 공리주의는 분리되기 어렵다. 공리주의는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사상적 기초이자 푸꼬가 가장 끈질기게 비판한 대상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벤담이 루소의 보완물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공화주의적 열망이 공리주의에 의해 보완되었다는 그의 언급은 근대 정치의 중요한 문제를 환기시킨다. 인구에 대한 관심은 인민주권의 이상을 보충하면서 동시에 제한한다. 이 책에서는 공리주의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았지만, 공리주의에 대한 사회학적 비판, 특히 반실재론적 정치사회학의 지평에서 공리주의를 비판하는 작업을 이후의 긴 과제로 기약해본다.   3 이 책은 필자의 박사학위논문에 바탕하고 있다. 학위논문을 쓰는 동안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BK21 장학금을,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에서 HK 장학금을, 하버드옌칭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에서 펠로우십을 지원받았다. 박사후 연구과정에서 한국연구재단의 한국사회과학연구지원사업(SSK), 록펠러아카이브센터(Rockerfeller Archive Center)의 연구비 지원을 받았다. 록펠러아카이브센터는 이 책에 실린 여러 장의 사진을 제공해주기도 했다. 이 책의 일부는 『경제와사회』 『한국사회학』 『현상과인식』 『사회와역사』 『한국과학사학회지』 『섹슈얼리티』(Sexualities) 등의 학술지에 논문으로 발표된 바 있다. 그러나 각각의 논문은 책 전체의 맥락에 맞게 재구성되었다. 이 책이 출판되기까지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 지도교수였던 김동노 선생님은 이론을 취하는 엄정한 태도와 학문적 엄격함을 훈련시켜주셨다. 김현미 선생님은 이 책의 출판을 주선해주시고 연구자가 가져야 할 열정과 윤리적 감수성을 늘 환기해주셨다. 신광영 선생님은 통계에 대한 지식사회학적 접근의 필요성을 조언해주시고 사회학자가 책을 쓰는 것의 의미를 각별히 강조해주셨다. 원재연 선생님은 논문의 주제를 가다듬던 시점부터 세심한 조언으로 격려를 보내주셨다. 백영경 선생님은 내가 가진 문제의식을 가장 깊이 이해해주셨을 뿐 아니라 이 책의 내용과 방향에 중요한 조언을 건네주셨다. 박사후 연구과정 내내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홍훈 교수님이 보내주신 지지와 격려에도 감사드린다. 캠브리지에서 인연을 맺은 김상현 선생님은 나의 문제의식을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의 지평으로 확장시키는 데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주셨다. 이 책의 내용은 비판사회학회와 한국여성학회, 한국사회학회, 한국사회사학회, 미국사회학회, 미국동부사회학회, 북미아시아학회(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등 여러 학회와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바 있다. 그때마다 토론자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질문과 논평, 비판을 통해 이 책의 주장과 내용을 한층 발전시켜주셨다. 박사과정 내내 유쾌한 벗이자 동료인 정승화와의 대화는 큰 즐거움이자 자극이 되었다. 여러 해에 걸쳐 통치성과 국가형성, 젠더와 가족에 관한 세미나를 함께한 최정혜, 이지연, 이경환, 임해원은 진지하고도 정겨운 토론으로 문제의식을 다듬는 데 도움을 주었다. 특히 이 책의 초고를 읽고 세심하게 의견을 보내준 이경환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전한다. 여러 학기에 걸쳐 수업조교와 연구조교로 일해주고 이 책의 참고문헌 정리를 도와준 이지원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직접적인 도움이 아닐지라도 이 책을 쓰는 데 큰 바탕이 된 앞선 연구자들의 연구에 감사드린다. 더딘 작업의 속도를 오래 참고 기다려주신 창비의 황혜숙, 이하림, 김유경 선생님, 그리고 책의 모양을 갖춰 세상에 나오기까지 그 협업의 과정에서 수고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번역은 그 어떤 작업보다도 고되고 지루한 과정이며 그 시간을 견뎌준 역자에 의해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글을 편히 읽을 기회를 얻는다. 이 책에서 인용한 책들 중 국역본이 나오기 전에 이미 원서나 영역본을 읽은 경우가 많았는데, 원서와 영역본을 인용할 때는 최대한 국역본의 해당 페이지를 찾아 병기했다. 때로 국역본과는 다른 번역어를 선택하게 된 경우들이 있었지만 책의 맥락에서 번역어의 선택에 관한 개인적 의견을 반영했을 뿐 역자의 작업을 결코 폄훼하는 것이 아님을 밝히고 싶다. 이 책을 쓰는 동안 사람의 인생사가 늘 그러하듯 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기쁜 날과 슬픈 날을 함께해준 이들에게, 일일이 이름을 적는 대신 그저 말로 다 못할 감사를 여기 전한다. 이 책의 출판을 더디게도 만들었으나 결국 가능하게 만들어준, 일상의 노동을 나누는 식구(食口)들의 오랜 인내와 지지에 애틋한 감사를 보낸다. 시인 김수영의 말처럼 나의 사랑이 계속해서 낡아가길, 복사씨와 살구씨가 단단해지는 이유를 자꾸만 깨달아가길 빈다. 식민지시기에 태어나 전쟁을 겪고 저 박정희 시대에 나를 낳아 길러준, 한 인간이 감당하기에 너무 많은 일들을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낸 어머니와 이제는 세상에 없는 아버지에게, 그 세대의 고단했을 삶 위에, 깊은 존경을 담아 이 책을 바친다.   2018년 7월 조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