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윤동주와 그의 아우 윤일주의 동시를 한데 엮었다. 1935년부터 1938년까지 윤동주가 본격적으로 쓴 동시 34편과, 형의 시심(詩心)에 영향을 받는 한편으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일군 윤일주의 동시 31편을 실었다. 표제작 「민들레 피리」에는 형을 따르는 아우의 그리운 마음과 형제의 애틋한 우애가 절절하다. 익히 읽혀 온 윤동주의 동시뿐 아니라 그간 널리 알려지지 못한 윤일주의 시 역시 우리 동시의 귀중한 자산으로 새로이 조명할 필요가 있다. 두 형제가 시를 통해 펼쳐 보인 천진한 소년의 마음은 어린이뿐 아니라 시를 아끼는 독자들에게 기꺼이 간직됨직하다.
넣을 것 없어/걱정이던/호주머니는//겨울만 되면/주먹 두 개 갑북갑북.
—윤동주 「호주머니」 전문
윤동주의 시는 빼어난 서정과 깨끗한 시어로 애송되어 왔다. 그중에서도 그의 꾸밈없는 성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동시는 윤동주 시의 백미로 꼽을 만하다. 여기 실린 시편들은 철부지 개구쟁이 같다가도 때로 의젓한 아이들의 다채로운 모습이 눈앞에 선히 그려지며, 아기자기한 운율과 말맛 또한 일품이다. 어린이의 속내를 알아주는 대목에선 시인만의 남다른 눈썰미가 반짝인다. 어머니에게 혼쭐나고 빗자루를 숨기는 「빗자루」, 동화 속 세계를 연상케 하는 「귀뚜라미와 나와」, 일터에 나갔다 돌아오는 누나는 그린 「해바라기 얼굴」 들은 윤동주의 동시 세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짤막한 시 「호주머니」는 단순하다 할 만큼 담백한 언어로 주머니처럼 텅 빈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 준다. 그가 더 오래 동시를 쓸 수 없었던 시대의 비극이 못내 애석할 따름이다.
바닷가 사람/물고기 잡아먹구 살구/산골엣 사람/감자 구워 먹구 살구/별나라 사람/무얼 먹구 사나.
—윤동주 「무얼 먹구 사나」 전문
별 총총한 밤에/바다 꿈을 꾸며 자는 산골 아이./바다는 파란 바다 끝이 없는데/돛단배에 앉아서 가고 있었다.//별 총총한 밤에/산골 꿈을 꾸며 자는 바닷가 아이./산길은 꼬불꼬불 끝이 없는데/하얀 꽃을 따면서 가고 있었다.
—윤일주 「꿈」 전문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윤동주와 그의 아우 윤일주의 동시를 한데 모은 『민들레 피리』는 윤동주 동시에 대한 목마름을 가시게 하기에 충분하다. 윤동주의 아우 윤일주는 건축학을 가르치는 학자로 연구 틈틈이 동시를 써 왔다. 1985년 작고한 뒤, 1987년에 유고 동시집과 2004년에 유고 시집이 출간되었지만 지금은 모두 절판되어 그의 시를 궁금해하는 독자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윤일주는 가난한 이웃과 보잘것없는 존재를 귀하게 여길 줄 알던 형 윤동주의 정신을 이으면서 자신만의 시를 써 나갔다. 어린이의 눈으로 “바닷가 사람”과 “산골엣 사람”의 생활을 들여다본 윤동주의 「무얼 먹구 사나」를 떠올리게 하는 윤일주의 「꿈」은 그러나 거기에 그치지 않고 “꿈”이라는 또 다른 공간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윤일주는 이번 동시집 출간으로 다소 뒤늦게 알려지는 셈이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우리는 윤동주와 닮은 한편 고유한 세계를 확보한 새로운 시인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햇빛 따스한 언니 무덤 옆에/민들레 한 그루 서 있습니다./한 줄기엔 노란 꽃/한 줄기엔 하얀 씨.//꽃은 따 가슴에 꽂고/꽃씨는 입김으로 불어 봅니다./가벼이 가벼이/하늘로 사라지는 꽃씨.//—언니도 말없이 갔었지요.//눈 감고 불어 보는 민들레 피리/언니 얼굴 환하게 떠오릅니다.//날아간 꽃씨는/봄이면 넓은 들에/다시 피겠지./언니여, 그때엔/우리도 만나겠지요.
—윤일주 「민들레 피리」 전문
윤동주는 서울과 일본 유학 시절, 만주의 아우들에게 문예지를 부치거나 동화를 권해 주며 향수를 달랬다. 아우 윤일주는 형의 뜻을 허투루 넘기지 않고 글을 쓰고자 하는 꿈을 싹틔운다. 형은 유학 도중 세상을 떠나고, 윤일주는 형의 시를 세상에 알리는 일에 앞장서는 동시에 형이 남기고 간 시작(詩作)을 향한 씨앗을 키워 나간다.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애썼던 형 윤동주를 따르고자 한 윤일주의 형에 대한 그리움과 시에 대한 애정이 만나 형상화된 것이 표제작 「민들레 피리」다. 윤동주․윤일주 형제의 정겨운 우애와 동심이 담긴 동시를 읽는 것은 탄생 100주년을 맞은 시인을 기리는 또 하나의 각별한 방법이라 하겠다.
제1부 윤동주
산울림
귀뚜라미와 나와
애기의 새벽
해바라기 얼굴
햇빛, 바람
나무
만돌이
개 1
반딧불
할아버지
둘 다
거짓부리
호주머니
겨울
닭
눈 1
눈 2
사과
버선본
편지
참새
개 2
봄
무얼 먹구 사나
굴뚝
해비
빗자루
기왓장 내외
비행기
오줌싸개 지도
고향 집
병아리
창 구멍
조개껍질
제2부 윤일주
공작아
아침
노란 알 하얀 알
연
함박눈
낮잠
샘
대낮
나비
솔방울
구슬
보슬비
벙어리 오뚝이
가을
외딴섬
민들레
염소
소나기 오기 전
병아리 학교
가을밤
송아지 방울
꿈
달밤에
어머니 무릎에
눈
우유 배달
점심때
빨간 자전거
이른 아침
길 잃은 까마귀
민들레 피리
해설|김제곤_두 형제 시인의 시를 함께 읽는 기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