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보적 베스트셀러 시리즈의 백미
유홍준, 마침내 서울을 말하다!
한국 인문서를 대표하는 독보적인 시리즈로서 380만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돌아왔다. 햇수로 25년 동안 8권의 국내편과 4권의 일본편이 출간된 ‘답사기’가 드디어 수도 서울에 입성하여 서울편 1권 ‘만천명월 주인옹은 말한다’와 2권 ‘유주학선 무주학불’을 선보인다. 저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거대 도시 서울의 문화유산과 역사를 섬세하고 날카로운 통찰로 바라보는 한편, 그와 얽힌 이야기들을 특유의 편안한 입담으로 풀어냈다.
특히 ‘서울편’에서는 ‘답사기’가 한 단계 높은 경지에 올라섰다는 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역사, 예술, 문화를 아우르는 방대한 정보를 절묘하게 엮고 쉽게 풀어내는 저자의 솜씨가 절정에 다다라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우리 역사가 한눈에 보인다. 오랜 세월 갈고 닦아 유려해진 문장은 생생한 현장감을 담고 있어 독자의 눈앞으로 문화유산을, 그에 얽힌 인물과 사연들을 소환해낸다. 지나치게 학술적이거나 비평적이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재미와 지식의 절묘한 균형감이 돋보인다. 이미 ‘답사기’는 수준 높은 문화교양서이자 기행문학의 백미라고 할 수 있지만, ‘서울편’에서는 그간 쌓은 공력이 빛을 발하여 새로운 정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 서울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대도시로서 최고와 최하가 공존하는 모순을 품고 있다. 저자는 이처럼 복잡한 서울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이 문화유산이라고 강조하며,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서울의 이야기를 자랑과 사랑을 담아 써냈다. 이번에 출간된 서울편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고도(古都) 서울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며 그간 안다고 생각했으나 실은 제대로 알지 못하던 서울의 내력과 매력을 깨우쳐줄 것이다.
‘궁궐의 도시’ 서울의 매력을 말하다
서울편 1권 ‘만천명월 주인옹은 말한다’는 조선왕조의 상징적 문화유산인 종묘를 시작으로 창덕궁, 창덕궁 후원, 창경궁의 구석구석 살피며 조선 건축의 아름다움, 왕족들의 삶과 애환, 전각마다 서린 수많은 사연 등을 그윽하게 풀어낸다. 여기서는 특히 미(美)를 보는 저자만의 ‘안목’에 우리 문화유산에 쏟아진 세계인들의 찬탄을 더하여 ‘사찰의 도시’ 교토(京都), ‘정원의 도시’ 쑤저우(蘇州)에 견줄 ‘궁궐의 도시’ 서울의 매력을 총체적으로 집약했다.
서울 답사의 첫번째 목적지는 조선의 왕조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인 ‘종묘’다. 저자는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로마의 판테온, 중국의 천단 등에 비견되는 세계적인 문화유산 종묘의 가치를 정작 우리 국민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종묘가 지니는 역사적·상징적 의미에 프랭크 게리, 승효상 등 세계 유명 건축가들의 감상을 덧붙여 뜨거운 종묘 예찬을 펼친다. 특히 정전의 월대 위에서 펼쳐지는 종묘제례의 장엄한 광경을 그린 대목에서는 저자가 왜 서울 답사의 시작으로 종묘를 꼽았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창덕궁’ 답사의 묘미는 한옥 종합 전시장을 방불케 할 만큼 다양한 형태와 구조를 지닌 전각들을 둘러보는 데 있다. 창덕궁의 하이라이트인 인정전부터 유일한 청기와 건물인 선정전, 정면 캐노피로 화려함을 극대화한 희정당과 문인들의 사랑채를 본뜬 낙선재까지, 조선 건축의 모든 것이 여기에 다 있다. 또 승화루의 효명세자, 희정당의 순종황제, 낙선재의 덕혜옹주 등 각 전각과 관련된 역사 인물들의 삶과 애환이 생생하게 그려져 창덕궁이 조선의 왕과 그 가족들이 실제로 삶을 영위했던 생활공간이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정원의 백미라는 ‘창덕궁 후원’에서는 아름다움을 읽어내는 저자의 예리한 안목이 빛을 발한다. 비원(祕苑)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창덕궁 후원은 10만 평에 이르는 골짜기 네 곳을 그대로 정원으로 삼고 계곡 곳곳에 건물과 정자를 지어 만든 한국 고유의 정원이다. 후원은 자연이 만든 경계에 따라 부용정과 규장각, 관람지와 존덕정 주변, 옥류천 일대, 연경당의 네 권역으로 나뉘는데, 창건 주체와 시기, 건물의 기능과 형태 등이 제각각이어서 그 이야기를 따라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16개나 되는 후원 정자의 형태와 장식을 상세히 비교·분석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우리 정원 건축의 미학에 절로 눈뜨게 된다.
마지막은 항시 자유 관람이 가능해 느긋이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도심 속 고궁 공원 ‘창경궁’이다. 경복궁·창덕궁처럼 법궁으로서의 위상도 없고 덕수궁 같은 별격도 없지만 저자에 의해 재구성된 창경궁은 그 어느 궁궐보다 특색 있고 매력적이다. 장희빈 사건과 사도세자의 죽음 등 굵직한 역사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가 하면 동물원 구경하고 연못에서 보트놀이 하던 창경원 시절의 아픈 역사가 담담하게 그려지기도 한다. 과거와 현재, 엄숙함과 친근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창경궁의 특별한 매력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조선왕조의 계획 도시 서울의 다양한 면모
서울편 2권 ‘유주학선 무주학불’은 궁궐에 집중했던 1권에서 범위를 넓혀 서울의 옛 경계인 한양도성, 자문밖, 덕수궁과 그 주변, 동관왕묘, 성균관 등 조선왕조가 남긴 문화유산들을 다룬다. 사람들이 즐겨 찾던 곳,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곳을 두루두루 답사하며 현재진행형 수도 서울의 다양한 면모를 소개한다. 그 과정에서 조선 국초 계획도시로서 건설된 서울의 내력 역시 차근차근 짚어본다.
답사는 서울의 옛 경계인 ‘한양도성’에서 시작된다. 새로운 수도 한양을 상징하며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등 굴곡진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한양도성은 낙산, 인왕산, 남산, 북악산 등의 산줄기를 타고 서울을 둘러싸기에 도시 전체를 조망하는 답사지로 탁월하다. 청와대 경호를 명목으로 수십 년간 일반인 출입이 금지되었던 북악산을 노무현 대통령 시절 문화재청장이던 저자가 주도하여 일반에 개방한 속사정을 자세하게 풀어내기도 했다. 한양도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신청을 한 차례 철회하고 다시금 준비 중인데, 저자는 한양도성이 시민들의 삶과 어우러져야 세계유산에 등재될 수 있다며 문화유산을 보전하는 것에서 한 걸음 나아간 의견을 제시한다.
‘자하문(창의문) 바깥’을 일컫는 ‘자문밖’ 답사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한양 최고의 별서(別墅) 터’ 부암동 일대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자문밖의 아름다운 계곡에는 안평대군의 무계정사, 흥선대원군의 석파정, 반계 윤웅렬의 별서, 추사 김정희의 별서 등이 있었다. 잊히거나 관리되지 않던 별서들이 뒤늦게나마 복원되고 정비된 덕에 조선시대 상류층의 풍류와 한옥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청와대 경호구역으로 묶여 베일에 싸여 있던 추사의 백석동천 별서 터가 발견되고 공개된 과정은 언젠가 북악산이 전부 개방되어 더욱 다양한 서울의 문화유산을 만나게 되길 고대하게끔 한다.
조선왕조의 궁궐 중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 ‘덕수궁’은 저물어가던 왕조의 쓸쓸한 역사를 상징하는 곳으로, 또는 본래 모습을 잃은 채 몇몇 서양식 건물들이 눈에 띄는 궁궐 공원으로 인식되고는 한다. 저자는 덕수궁에 대한 이런 인식을 바로잡고자 조선 초기부터 덕수궁 자리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짚으며 덕수궁의 내력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또한 저자는 덕수궁이 대한제국의 궁궐로서 근대적인 독립국가를 세우려 했던 고종의 바람이 깃든 곳이라고 역설한다. 이를테면 을사늑약을 강요당한 장소로 알려진 중명전에서 고종이 헤이그 특사를 파견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덕수궁과 대한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재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네번째 답사지인 ‘동관왕묘’는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관우를 모시는 무묘라는 점이 이채롭다. 임진왜란 중 중국에서 건너온 관왕묘가 전국 각지에 들어서고 왕부터 백성들까지 관왕을 숭배한 모습에서 조선시대 신앙의 일면을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이루어진 종합조사를 통해 동관왕묘에 잠들어 있던 막대한 유물들이 알려졌는데 현판, 주련, 조각, 회화 등을 세세히 설명하는 덕에 마치 현장에서 안내받는 듯한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 나아가 동관왕묘를 비롯해 주변 문화유산들을 정비하면 도시재생까지 이뤄낼 수 있다는 대목에서는 문화유산을 일상에 간직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저자의 지론이 드러난다.
마지막 답사지는 유교사회이던 조선왕조의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성균관’이다. 저자는 강학(講學)공간인 명륜당과 향사(享祀)공간인 대성전을 차례로 둘러보며 조선시대 교육 체제와 문묘 제례에 대해 알려준다. 그리고 『무명자집』에 수록된 장편시 「반중잡영」을 토대로 성균관에서 공부하던 유생들의 진짜 나날을 소개한다. 엄격한 규칙 속에서도 잠시 숨 돌릴 틈을 찾던 유생들의 일상은 오늘날 학생들과 그리 다를 바 없어 흥미를 자아낸다. 저자는 성균관 입구의 탕평비를 보고 영‧정조시대를 잇는 새로운 문예부흥을 오늘날에 일으켜야 한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며 종묘에서 시작한 서울 답사를 마무리한다.
오직 유홍준만이 쓸 수 있는 서울 답사기
이번에 출간된 ‘답사기’ 서울편은 저자의 경험과 남다른 시선 덕에 기존 도서들과 다른 서울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문화재청장 재직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방대한 정보와 내밀한 사정들을 능숙하게 버무려서 문화유산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끔 도와준다. 그래서 건축물을 돌아보는 천편일률적인 기행에서 나아가 그 공간의 내력,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이야기 등 좀더 밀도 높은 답사를 안내한다. 저자의 서울 답사는 서울 전역을 구석구석 훑는 것을 목적하지 않는다. 독자들이 서울에 자부심을 지니고, 생활공간으로서 서울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널리 알려졌던 지역과 배제되었던 지역을 아우른다. 서울편 셋째 권에서 인사동, 북촌, 서촌, 성북동 등 묵은 동네들을 다루고, 넷째 권에서는 한강과 북한산 이야기를 담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답사기’ 서울편이 완간되는 그날, 사람들은 비로소 세계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수도 서울의 진면목을 알게 될 것이다.
제1부 종묘
종묘 종묘 예찬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 건축가 승효상의 고백 / 프랭크 게리 / 종묘와 사직 / 영녕전 / 공신당과 칠사당
종묘 제례 「보태평」과 「정대업」은 영원하리라
『국조오례의』 / 「보태평」과 「정대업」 / 세종대왕의 절대음감 / 종묘제례 / 이건용의 「전폐희문」 / 향대청과 재궁 / 전사청 / 정전, 영녕전, 악공청 / 신도
제2부 창덕궁
돈화문에서 인정전까지 인간적 체취가 살아 있는 궁궐
궁궐의 도시, 서울 / 5대 궁궐 / 경복궁과 창덕궁 / 「동궐도」 / 돈화문 / 내병조와 ‘찬수개화’ / 금천교 / 인정전 / ‘검이불루 화이불치’
선정전과 희정당 조선 건축의 모든 것이 창덕궁에 있다
창덕궁의 구조 / 내전의 파사드 / 빈청과 어차고 / 선정전 / 유교 이데올로기와 경연 / 희정당 / 선기옥형과 하월지 / 창덕궁 대화재와 복구 / 내전 벽화 프로젝트
대조전과 성정각 조선의 왕과 왕자들은 이렇게 살았다
대조전 / 경훈각 뒷간 / 대조전 화계 / 중희당 / 성정각 / 희우루 / 관물헌 / 승화루 서목
낙선재 문예군주 헌종과 이왕가의 여인들
헌종 / 낙선재 / 『보소당 인존』과 낙선재 현판 / 허련과 헌종의 만남 / 낙선재 뒤란 / 이왕가 여인들 / 이구와 줄리아
제3부 창덕궁 후원
부용정 자연을 경영하는 우리나라 정원의 백미
자연과 정원 / 창덕궁 호랑이 / 부용지 진입로 / 사정기비각 / 영화당 / 부용정 / 다산 정약용
규장각 주합루 임금과 신하가 하나가 되던 궁궐의 후원
어수문 / 취병 울타리 / 정조와 규장각 / 서호수와 『규장총목』 / 차비대령화원 / 단원 김홍도 / 희우정, 천석정, 서향각 / 표암 강세황
애련정과 연경당 풍광의 즐거움만이라면 나는 이를 취하지 않겠노라
불로문 / 숙종의 애련정 기문 / 의두합 기오헌 / 효명세자의 「의두합 상량문」 / 어수당 / 연경당 / 「춘앵전」
존덕정과 옥류천 만천명월(萬川明月) 주인옹은 말한다
후원 정자의 모습과 특징 / 관람지 / 관람정 / 존덕정 / 만천명월주인옹 / 옥류천 유상곡수 / 조선의 마지막 재궁 / 수령 700년 향나무
제4부 창경궁
외조와 치조 영조대왕의 꿈과 한이 서린 궁궐
창경궁 조망 / 명정전 / 창경궁의 역사 / 홍화문과 영조의 균역법 / 옥천교와 주자소 / 문정전과 숭문당 / 사도세자와 정조
내전 전각에 서려 있는 그 많은 궁중비사
함인정 / 환경전 / 소현세자 / 경춘전과 정조·순조의 기문 / 통명전 / 인현왕후와 장희빈 / 양화당과 내명부의 여인들 / 영춘헌과 집복헌
창경궁에서 창경원으로 춘당지 연못에는 원앙이 날아든다
자경전 / 혜경궁과 『한중록』 / 풍기대 / 앙부일구 / 성종 태실 / 명나라 석탑과 식물원 / 춘당대 관덕정
자랑과 사랑으로 쓴 서울 이야기 1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돌고 돌아 바야흐로 서울로 들어왔다. 내가 어릴 때 단성사, 명보극장 같은 개봉관에 새 영화가 들어올 때면 ‘개봉박두(開封迫頭)’와 함께 ‘걸기대(乞期待)’라는 말이 늘 붙어 다니곤 했는데 혹시 나의 독자들이 ‘답사기의 한양 입성’을 그런 기분으로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곳도 아닌 서울이니까. 서울은 누구나 다 잘 아는 곳이다. 굳이 내 답사기가 아니라도 이미 많은 전문적·대중적 저서들이 넘칠 정도로 나와 있다. 그래도 내가 서울 답사기를 쓰고 싶었던 것은 서울을 쓰지 않고는 우리나라 문화유산답사기를 썼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은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의 자존심이자 세계 굴지의 고도(古都) 중 하나다. 한성백제 500년은 별도로 친다 해도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도시이면서 근현대 100여 년이 계속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수도이다. 대한민국에서 서울의 위상이 너무 커서 ‘서울공화국’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한편 서울은 최고와 최하가 공존하는 도시이고 그만큼 모순과 격차가 많은 도시다. 이것을 하나로 묶어 동질감을 갖게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문화유산이다. 서울 시내엔 조선왕조의 5대 궁궐이 있다. 이는 누구의 것도 아닌 서울 사람의 것이고 대한민국 국민의 것이며 나아가서 외국인 관광객들 모두가 즐기는 세계유산이다. 또 서울은 다름 아닌 내 고향이다. 서울 사람으로 태어나 서울 사람으로 일생을 살아간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늘 있어왔다. 특히 내가 느끼는 인사동, 북촌, 서촌, 자문밖, 성북동은 지금 젊은이들이 보고 즐기는 것과 너무도 차이가 많아 그 구구한 내력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것은 훗날 현대 생활문화사의 한 증언일 수 있다는 약간의 의무감 같은 것도 있었다. 2 서울 답사기는 모두 네 권으로 구상하고 시작했다. 첫째 권은 조선왕조의 궁궐이다. 역사도시로서 서울의 품위와 권위는 무엇보다도 조선왕조 5대 궁궐에서 나온다. 종묘와 창덕궁은 이미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만 해도 생각이 조금 모자랐던 것 같다. 제대로 문화외교 전략을 펼쳤다면 서울의 5대 궁궐을 한꺼번에 등재했어야 했다. 일본 교토(京都)는 14개의 사찰과 3개의 신사를 묶어서 등재했고, 중국의 소주(蘇州, 쑤저우)는 9개의 정원을 동시에 등재했다. 그리하여 세계만방에 교토는 사찰의 도시, 소주는 정원의 도시임을 간명하게 각인시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은 궁궐의 도시이다. 첫째 권의 제목으로 삼은 ‘만천명월 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은 말한다’는 창덕궁 존덕정에 걸려 있는 정조대왕의 글에서 빌려온 것이다. 궁궐 답사기는 필연적으로 건축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는데 나는 거기서 나아가 궁궐의 주인인 옛 임금들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들려주고자 이런 제목을 붙였다. 둘째 권은 조선왕조가 남긴 문화유산들을 답사한 것으로 한양도성, 성균관, 무묘인 동관왕묘, 근대 문화유산들이 어우러진 덕수궁, 그리고 조선시대 왕가와 양반의 별서들이 남아 있는 속칭 ‘자문밖’ 이야기로 엮었다. 둘째 권의 제목은 ‘유주학선 무주학불(有酒學仙 無酒學佛)’로 삼았다. 술이 있으면 신선을 배우고 술이 없으면 부처를 배운다는 이 글은 오래전에 흥선대원군의 난초 그림에 찍혀 있는 도장에서 본 것인데 석파정 답사기를 쓰면서 생각났다. 나는 처음 이 절묘한 문구를 보았을 때, 이 글의 주제는 술이고, 술꾼이 술이 없을 때 서운함을 스스로 달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혹 주제가 술이 아니라 학(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아무튼 이 글의 내용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좋다는 뜻이다. 뒤늦게 이 글이 생각난 것은 점점 삶의 긴장이 이완되어가는 나이 탓도 있겠지만 나의 답사기가 뒤로 갈수록 만고강산을 노래 부르는 느긋함을 배웠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시작한 나의 서울 답사기는 역사의 층위를 살피고 그 뒤안길을 더듬으면서 자랑과 사랑의 마음으로 쓴 우리의 서울 이야기이다. 늘 살아가며 보고 있는 서울이지만 문화유산을 통하여 서울의 자존심을 더욱 굳건히 다지고, 생활공간으로서의 서울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널리 즐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직은 구상단계이지만 앞으로 셋째 권은 인사동, 북촌, 서촌, 성북동 등 묵은 동네 이야기로 내가 서울에 살면서 보고 느끼고 변해간 모습을 담을 것이다. 도시는 시간의 흐름 속에 계속 바뀌어왔다. 과거 위에 현재가 자리잡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사라진 과거를 다시 되살리려는 현재의 노력도 있다. 그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내가 서울 답사기를 쓰면서 가장 마음 쓰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넷째 권에는 서울의 자랑인 한강과 북한산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다. 서울이 확장되면서 편입된 강남의 암사동, 풍납토성, 성종대왕 선릉과 중종대왕 정릉, 봉은사 그리고 사육신묘, 양천관아까지 한강변의 유적들과 북한산 비봉의 진흥왕 순수비, 승가사, 진관사, 북한산성, 도봉서원 터를 이야기할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열리는 기분이다. 3 강진과 해남 땅끝에서 시작한 지 햇수로 25년 만에 한양으로 입성하자니 감회가 없지 않다. 내가 답사기를 처음 쓸 때는 시리즈의 완간이라는 것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러다 한 권, 두 권, 권수가 쌓여가고, 10년, 20년, 해를 더해가면서 국내편 8권에 일본편 4권이 나오게 되자 나도 모르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최종 형태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내가 아직 가보지 않았다거나 자료가 부족하여 쓰지 못할 곳은 하나도 없다. 다만 그간의 내 인생이 ‘답사기’에만 매달려 사는 것이 아니었던지라 주어진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점점 글 쓰는 것이 힘들어지면서 답사기의 마감도 의식하기 시작했다. 단정적으로 말해서 완간이란 불가능하다. 내가 국토의 구석구석을 많이 쓴 것 같아도 이제까지 답사기에 쓴 지역은 국토의 반 정도밖에 안 된다. 사찰만 해도 송광사 통도사 해인사 등 삼보사찰과 보림사 실상사 등 구산선문, 화엄사 쌍봉사 운주사 백양사 은해사 법주사 같은 명찰은 문턱에도 가지 않았다. 김해 창녕 고령 고성 등 가야의 옛 자취, 청주 강릉 전주 진주 남원 등 고색창연한 옛 도시도 언급하지 않았다. 수원 화성을 비롯하여 경기도 지역은 거의 쓰지 않았고, 경주도 남산과 왕릉을 빼놓은 상태다. 거제도 진도 보길도 울릉도 독도 등 섬 이야기는 시작도 안 했다. 비무장지대 155마일도 이미 답사해두었고, 북한의 개성과 삼수갑산의 백두산도 이미 두 번 다녀왔다. 게다가 틈나는 대로 중국 답사기도 준비해왔다. 이런 상태에서 완간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비록 미완으로 남겨두더라도 독자들이 이곳만은 꼭 꼼꼼하게 답사해주기를 바라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곳부터 빈칸을 메워가자고 마음먹고 먼저 쓴 것이 서울편이다. 이제 서울 답사기 두 권을 펴내고 나니 나는 또 어디로 떠날 것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앞에 열거한 여러 곳 중 하나일 테지만 어느 책이 먼저 나올지, 그날이 언제인지는 나도 모른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어느 날 불쑥 독자 앞에 ‘걸기대’ 하고 나타날 것이다. 4 서울 답사기를 쓰면서는 유난히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정보의 정확성을 위한 ‘팩트 체크’를 파트별로 나누어 종묘는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이용규 부이사장, 창덕궁은 문화재청 최종덕 국장, 덕수궁은 서울역사박물관 박현욱 학예연구부장, 성균관은 대동문화연구원의 김채식 강민정 연구원, 동관왕묘는 장경희 한서대 교수, 창신 숭인지구 답사기는 DDP 디자인연구소 박삼철 소장, 그리고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종묘의 관리소장들께도 미리 일독을 부탁드렸다. 그리고 음악, 문학, 건축에 대한 내 상식을 전문가에게 검증받고자 한예종 이진원 교수, 문학평론가 최원식, 건축가 승효상 님께 해당 분야에 대한 검토를 부탁드려 유익한 지적과 조언을 받아 책에 반영했다. 이 자리를 빌려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사진 게재를 허락해주신 기관과 사진작가분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특히 청와대 주변 문화재에 대해서는 대통령경호실에서 펴낸 『청와대와 주변 역사 문화유산』(2007)의 신세를 크게 졌음도 밝혀둔다. 단순한 원고 교정이 아니라 청문회를 방불케 할 정도로 꼼꼼히 사실관계를 확인해준 창비 편집팀의 황혜숙 김효근 최란경 님, 자료 수집을 도와준 명지대 한국미술사연구소 박효정 김혜정 연구원, 예쁘게 책을 꾸며준 디자인 비따의 김지선 노혜지 이차희 님께 고마운 마음을 담아 기록해둔다. 그리고 나의 고참 독자들께 각별히 감사드리고 싶다. 새 독자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야 모든 저자가 갖고 있는 꿈이지만, 답사기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오랜 독자들이 있기 때문에 정년(停年)이라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이렇게 답사기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답사기를 쓰면서 나는 항시 옛 친구 같은 독자들과 함께 가고 있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답사기를 섬세하게 잘 읽으면 문체 자체에 그런 뜻이 들어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동의하든 안 하든 나는 그런 마음으로 답사기를 썼다. 그 점에서 독자 여러분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의 공저자이기도 하다. 내가 삶의 충고로 받아들이는 격언의 하나는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인의 진득한 마음자세이다. 어쩌면 그렇게 독자들과 함께 가고자 했기 때문에 답사기가 장수하면서 이렇게 멀리 가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계속 그렇게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