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시선 411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신용목  지음
출간일: 2017.07.21.
정가: 11,000원
분야: 문학,
전자책: 있음
 

 

 

‘나’와 ‘너’를 아우르는 ‘우리’의 세상은 가능한가

 

 

 

 

 

 

세상의 모든 외로움과 절망을 마주하는 시인의 간절함 부름

 

 

 

검은 사내가 내 목을 잘라 보자기에 담아 간다 낡은 보자기 곳곳에 구멍이 나 있다//나는 구멍으로 먼 마을의 불빛을 내려다보았다//어느날 연인들이 마을에 떨어진 보자기를 주워 구멍으로 검은 사내를 올려다보았다//꼭 한발씩 내 머리를 나눠 딛고서(「밤」 전문)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감각적 사유와 탁월한 언어 감각으로 서정시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며 끊임없는 자기갱신을 지속해온 신용목 시인의 네번째 시집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가 출간되었다. “서정시의 혁신”(박상수)이라는 호평을 받았던 『아무 날의 도시』 (문학과지성사 2012)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이 시집에서 시인은 당대 사회 현실을 자신의 삶 속에 끌어들여 존재와 시대에 대한 사유의 폭과 감각의 깊이가 더욱 확장된 시세계를 선보인다. 삶에 드리워진 슬픔과 상처를 연민에 찬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섬세한 비유와 세련된 이미지, 탄탄한 시적 구성이 돋보이는 견고한 시편들로 짜인 “아름답고 참혹한 시집”(허수경, 추천사)이다. 2017년 현대시작품상 수상작 「공동체」(외 9편)를 포함하여 모두 70편의 시를 부 가름 없이 실었다.

 

 

 

울음 속에서 자신을 건져내기 위하여 슬픔은 눈물을 흘려보낸다/이렇게 깊다/내가 저지른 바다는//창밖으로 손바닥을 편다//후회한다는 뜻은 아니다/비가 와서//물그림자 위로 희미하게 묻어오는 빛들을 마른 수건으로 가만히 돌려 닦으면//몸의 바닥을 바글바글 기어온 빨간 벌레들이 눈꺼풀 속에서 눈을 파먹고 있다//슬픔은 풍경의 전부를 사용한다(「저지르는 비」 전문)

 

 

시인은 삶의 고통 속에서 주로 낮고 그늘진 곳을 응시하는 눈으로 어두운 세상을 바라본다. 시인은 “기쁘다고 말하며 울고 슬프다고 말하며 웃는 사람들”(「착하고 좋은 사람들」)이 언제나 “가장 소중한 것을 착취당하”며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어떤 비도 슬픔을 씻기진 못하”(「후라시」)고 “슬픔과 몸이 하나일 수 있다는 것”(「가을과 슬픔과 새」)을 깨닫는다. 이 어두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는 고뇌 속에서 시인은 전망이라곤 당최 보이지 않는 ‘아무 날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의 “사랑과 슬픔과 분노”(「노랑에서 빨강」)를 곡진한 언어로 기록하며 삶의 진실에 다가가고자 한다.

 

 

 

내가 죽은 자의 이름을 써도 되겠습니까? 그가 죽었으니/내가 그의 이름을 가져도 되겠습니까? 오늘 또 하나의 이름을 얻었으니/나의 이름은 갈수록 늘어나서, 머잖아 죽음의 장부를 다 가지고//나는 천국과 지옥으로 불릴 수도 있겠습니까//(…)//인생이 가능하다면, 오직 부르는 순간에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뜨는 것처럼/사랑이 가능하다면,/죽은 자에게 나의 이름을 주어도 되겠습니까? 그가 죽었으니 그를 내 이름으로 불러도 되겠습니까(「공동체」 부분)

 

 

 

시인은 시대에 내몰린 숱한 죽음들과 “세상의 모든 외로움”(「그리고 날들」)을 외면하며 그저 묵묵히 견디려 하지 않는다. “절반만 거짓을 믿으면/절반은 진실이 된다”(「절반만 말해진 거짓」)는 아이러니한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 시인은 “깨진 유리 속이면 사람은 한명으로도 군중을 만든다”(「우리 모두의 마술」)는 믿음으로 다가올 미래에 한줌의 빛을 던지며 투명한 세상을 열기 위해 마음가짐을 달리한다. “나는 네 몸이 아프다/네가 내 몸을 앓듯이”(「절반만 말해진 거짓」) 슬픔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기에 시인은 “일상이라는 죽음” 속에서 바닥까지 절망하면서도, “몸 밖으로 쫓겨난 꿈”(「나는 알고 있거든」)을 되살려 ‘나’와 ‘너’를 아우르는 ‘우리’의 세상을 꿈꾼다.

 

 

 

나는 저 발자국이 몸으로부터 아주 끊어져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몸은 없는데 무게만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 발자국마다 당신이 서 있다면, 나는 영원히 당신을 떠날 수 없겠지요. 그래서 어떤 비는 지워진 밤을 위해 온다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둥둥 떠내려가는 어둠이 상갓집 신발처럼 우리를 흩어놓는다고 느끼는 건 아닙니다.//(…)//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만 잘 지낼 수 있겠지만,/마지막으로 서로를 기억하는 사람 또한/우리라서,(「우리라서」 부분)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차마 경계 지을 수도 없는 인간이라는 보편의 사정을 한 철저한 개인의 반성을 통해 그려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김나영, 해설)를 여실히 보여준다. 여전히 우리를 분노하게 만드는 세상을 향해 시인은 “죽을 때까지 걷도록 선고받”(「우리」)은 절망을 껴안으며 “미늘에 걸려 찢긴 물고기의 입으로”(「게으른 시체」) 말한다. “제발 울지는 말자” 다짐하면서 “목소리가 사라진 노래”(「목소리가 사라진 노래를 부르고 싶었지」)를 부르는 시인의 간절한 외침을 우리는 오래 기억할 것이다. 그리하여 깊은 절망의 늪 속에서도 ‘시’가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 것이라는 소망과 “인간은 끝나지 않는다”(「우리 모두의 마술」)는 믿음에 근거하여 시인이 꿈꾸는 새로운 ‘공동체’의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진다.

 

 

 

잤던 잠을 또 잤다.//모래처럼 하얗게 쏟아지는 잠이었다.//누구의 이름이든/부르면,/그가 나타날 것 같은 모래밭이었다. 잠은 어떻게 그 많은 모래를 다 옮겨왔을까?//멀리서부터 모래를 털며 걸어오는 사람을 보았다./모래로 부서지는 이름을 보았다./가까워지면,//누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누군가의 해변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잤던 잠을 또 잤다.//꿨던 꿈을 또 꾸며 파도 소리를 듣고 있었다. 파도는 언제부터 내 몸의 모래를 다 가져갔을까?//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내가 돌아보았다.//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지 않아도/나는 돌아보았다.(「모래시계」 전문)

목차

후라시

가을과 슬픔과 새

목소리가 사라진 노래를 부르고 싶었지

모래시계

그리고 날들

우리 모두의 마술

공동체

절반만 말해진 거짓

진흙 반죽 속에서 조금씩 내가 되어 걸어

나오는 진흙 인간처럼

숨겨둔 말

게으른 시체

도둑 비행

지나가나, 지나가지 않는

취이몽(醉以夢)

사랑

우리라서

우리

송별회

무서운 슬픔

카프카의 편지

나는 알고 있거든

흐린 방의 지도

옆집 남자

산책자 보고서

호수공원

차갑고 어두운

울음을 다 써버린 몸처럼

자작나무

하늘에서 흰머리가 내리는군

드레스

눈과 생각의 금붕어

아무렇지도 않게

더 많거나 다른

흰나비

나비

스위치

개와 산책하는 비

귀가사(歸家辭)

검은 고양이

호모 아만스(homo amans)

마리오네뜨

더 어두운 색

공터에서 먼 창

부재중

인사동

내가 계속 나일 때

사과

영화는 밤에 자는 낮잠 같다

대합실

이유의 주인들

고맙습니다

눈사람

백마술

그림자 섬

이 슬픔엔 규격이 없다

착하고 좋은 사람들

몽상가

노랑에서 빨강

숨, 몸, 꿈

지나간 일

화요일의 생일은 화요일

달과 칼

그해 안부

저지르는 비

얼음은 깨지면서 녹는다

대대적인 삶

이별

내가 쓰러져 꿈꾸기 전에

 

해설|김나영

시인의 말

어떤 시집은 그 시집의 시간을 독자들에게도 그대로 살게 한다. 신용목의 이번 시집은 그런 시집이었다. 나는 해가 천천히 지는 여름 동안 그의 시집을 읽었다. 읽는 동안 나는 이 시집이 씌어지던 시인의 시간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시인의 시간을 사는 동안 시인의 시들은 내 내면에서 다시 씌어졌으며, 내 눈 앞에는 아름답고 참혹한 시집의 순간들이 나타나서는 오랜 벗인 듯 허물없이 머물렀다. 나도 물론 보내지 않았다. 이런 시적인 시간은 흔하지 않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모든 것이 그러하듯 보내버리면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허수경 시인

저자의 말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지 않아도 나는 돌아보았다.

2017년 7월 신용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