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빛나는 이야기로 돌아오다!
『완득이』와 『우아한 거짓말』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한국문학의 비범한 이야기꾼’으로 자리매김한 작가 김려령이 짧고 강렬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샹들리에』는 작가가 『완득이』 이후 8년 동안 써 온 작품들을 엮어 처음으로 펴내는 소설집이다. 명쾌하고 재치 있는 ‘김려령표’ 문체가 돋보이며, 그동안 장편소설에서 보여 준 놀라운 흡입력과 속도감이 짧은 이야기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가까운 이웃이나 친구 같고 우리 자신과도 닮아 있다. 작가는 ‘지금 여기’ 가장 평범한 삶의 모습을 정직하게 묘파해 내며 폭넓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의 일상, 보잘것없는 순간 속에서도 웃고 울고 다시 사랑하게 하는 힘, 오직 작가 김려령만이 전할 수 있는 에너지가 가득한 소설집이다.
우리 시대 가장 뜨거운 이야기꾼
김려령이 빚어낸 무지갯빛 소설
김려령 작가는 2007년 창비청소년문학상과 마해송문학상,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을 석권하며 등단한 이후 『가시고백』 『너를 봤어』 『트렁크』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잇단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한국문학의 새로운 활력”(한기욱 문학평론가) “관습화된 성장 서사의 틀을 깨는 신선한 시도”(백지연 문학평론가) “독자와의 교감에 큰 무게를 두는 작가”(오세란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라는 평에 부응하며 특유의 뚝심으로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특히 『완득이』와 『우아한 거짓말』은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새롭게 해석되면서 대중적 기반을 넓혔다. 신작 『샹들리에』는 다양한 삶의 군상을 생생하게 포착해 온 김려령의 작품 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소설집이다. 작가의 첫 소설집이기에 의미가 더욱 각별하며, 장편소설과는 또 다른 문학적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생의 기쁨과 슬픔을 날렵하게 포착한다!
제목 ‘샹들리에’는 여러 개의 전구가 모여 빛을 내는 방사형의 샹들리에 조명처럼, 다채로운 삶의 빛이 모여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소설집에는 저마다 다른 빛깔로 반짝이며 동시대의 현실을 선명하게 그려 낸 작품 7편이 수록되었다. 작가 김려령을 독보적인 이야기꾼의 반열에 올려놓은 유쾌한 입담과 매력적인 캐릭터, 기발한 서사 등이 한층 무르익어 어우러진다.
첫 번째 수록작인 「고드름」은 등장인물의 대화로만 구성된 독특한 소설이다. PC방에 모여 노닥거리는 청춘의 단상을 그리며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삐딱한 시선과 기성세대의 편견을 경쾌하게 풍자했다. 함께 게임을 하던 소년들은 뉴스에서 살인 사건을 접하고 엉뚱한 상상을 펼친다. “만약에, 범인은 있는데 범행 도구가 없는 경우라면?” 실없는 농담을 던지던 소년들은 바로 그 농담 때문에 범죄자로 몰리고 만다. 경찰서는 소년들의 항변과 부모들의 아우성, 교사의 고충 토로까지 겹쳐 한바탕 소란이 인다. 이들은 무사히 경찰서를 빠져나올 수 있을까? 화자에 대한 설명을 감춘 채 여러 인물의 대화로만 이루어져 속도감과 실험성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그녀」는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시골에 내려간 중학생 ‘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부터 가계의 장남으로서 시골을 지켜 온 큰아빠와 도시로 떠나온 아빠, 주인공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친 가족사가 정감 있게 묘사된다. 조연으로 등장하는 ‘그녀’는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소녀로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작가는 이 인물들을 통해 농촌과 도시, 대가족과 핵가족, 노년층과 청년 세대 등 이질적인 특성들이 섞이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담았다.
「아는 사람」은 수록작 가운데 가장 뜨겁고 예민한 문제를 다룬다. 주인공 ‘나’는 함께 그룹 과외를 받던 남학생에게 고백을 듣는다. 하지만 주인공이 해 줄 말은 이것뿐이다. “나는 너한테 관심이 없다. 내 스타일 아니라고.” 그러자 달갑지 않았던 고백이 끔찍한 폭력으로 돌변하고 만다. 인간관계의 역학을 깊숙이 파고들었던 전작 『우아한 거짓말』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은 고통스러운 사건을 밀도 있게 묘사한다. 대부분 ‘아는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성폭력을 날카로운 필치로 그려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특히 자신이 겪은 사건을 직시하고 마지막까지 용기를 내는 소녀의 의지가 돋보인다. 뜻밖의 불행 앞에서도 비애와 자기연민보다 희망과 빛을 향하는 사람들을 그리면서, 그들과 함께 분노하고 그들 곁에서 위로하려 하는 작가의식이 잘 담겨 있다.
중편 「이어폰」은 한 가족이 맞닥뜨린 비극을 유려하고 탄탄한 솜씨로 풀어냈다. 이어폰을 낀 채 누가 불러도 알아들지 못할 만큼 큰 소리로 음악을 듣는 주인공 중일. 하지만 중일은 그 이어폰 때문에 엄마의 사고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엄마의 죽음은 중일을 비롯해 중일의 아빠, 할머니, 고모 등 온 식구에게 파장을 몰고 온다. 이들은 갑작스럽게 닥친 상실의 상처를 극복하려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한다. 여러 인물을 화자로 등장시켜 시점을 옮겨 가는 구성이 비범하다.
「미진이」는 「그녀」의 연작으로서, 앞서 강한 인상을 남긴 ‘그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자신의 사연을 들려준다. 학교를 그만두고 모든 일에 냉소적이었던 소녀가 제 삶을 새롭게 꾸려 나가는 모습이 활기차게 그려진다. 이밖에도 시장 한복판을 생동감 넘치게 묘사한 「만두」, 한 소년의 빛나는 여름날을 그린 「파란 아이」 등에서 우리의 일상을 민첩하게 꿰뚫는 작가적 역량을 느낄 수 있다. 작품 속 인물들은 저마다 성장통을 겪으면서도 삶의 비극마저 뜨겁게 끌어안으며 자기긍정의 힘을 보여 준다. 신선한 감수성과 건강한 에너지가 가득한 소설집 『샹들리에』는 ‘김려령’이라는 이름을 다시 한 번 여실히 증명해 내며, 독자들에게 특별한 매력으로 다가갈 것이다.
고드름
그녀
미진이
아는 사람
만두
파란 아이
이어폰
제게는 이십 년 된 외투가 있습니다. 외투 안쪽 치수 표시 아래 1996. 7. 22.라고 쓰여 있습니다. 생일 선물로 받은 외투였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발목 근처까지 내려오는 긴 외투였는데, 그동안 유행에 따라, 제 취향에 따라 길이를 조금씩 자르다 보니 지금은 무릎 위까지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참 신기합니다. 어떻게 입든 어떻게 보관하든 구김 없이 늘 제 모습을 유지합니다. 그래서 여행 갈 때는 늘 가장 먼저 트렁크에 자리합니다. 외투를 입는 철이 되면 당연하게 꺼내 입는데, 그 때문에 난감했던 적도 있습니다. 제가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신인일 때 한 일간지와 인터뷰가 잡혔습니다. 떨리고 긴장되는데 사진까지 찍어야 한다고 하니 그 참에 새 외투도 한 벌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신문에는 저 오래된 녀석이 떡 나왔습니다. 아침부터 온통 인터뷰 내용에만 신경 쓰다가 집에서 나오면서 습관처럼 저 외투를 입었던 것입니다. 그 인터뷰가 거의 십 년 전이지만, 그때라 하더라도 이미 십 년 된 외투였지요. 올봄, 옷장을 정리하며 저 외투를 한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참 오랫동안 나를 지켜줬구나. 그리고 제게는 또 다른 외투가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늘 지켜봐 주시는 독자분들과 곁에서 힘들었을 가족들에게 제 마음을 전합니다. 이 소설집 발표를 함께 기뻐하고 응원해 준 창비 청소년출판부와 창비 관계자 여러분께도 인사드립니다. 제가 그동안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여러분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사랑합니다. 2016년 6월 김려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