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청소년문학 72

푸른 늑대의 파수꾼

김은진  장편소설
출간일: 2016.04.18.
정가: 13,000원
분야: 청소년, 문학
전자책: 있음
제9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우리들의 할머니를 위한 특별한 시간 여행

 

 

 

창비청소년문학상이 올해로 아홉 번째 수상작 『푸른 늑대의 파수꾼』을 출간한다. 한국문학과 아동문학을 이끌어 온 창비에서 2007년 진정한 청소년문학의 활성화를 위해 제정한 창비청소년문학상은 매회 주목받는 작품들을 발표하며 우리 청소년문학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제1회 수상작인 『완득이』가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폭넓은 인기를 얻었음은 물론이고, 제2회 수상작 『위저드 베이커리』는 에스파냐 어로 번역, 수출되어 2015년 12월 멕시코에서 초판만 1만 부가 발행되었다. 작품을 읽은 멕시코 청소년들이 개인 블로그와 유튜브에 생생한 리뷰를 남기는 등 현지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는 소식이다. 제9회 수상작 『푸른 늑대의 파수꾼』은 한국을 넘어 세계로 공감대를 넓히기 시작한 창비청소년문학상에 거는 기대를 충족할 작품으로, 일본군 강제 위안부라는 역사적 사실을 깊이 있게 다루면서도 청소년들이 흠뻑 빠져들 만한 문학적 긴장과 재미를 품고 있다. 문학을 통해 역사를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선사함으로써 우리 청소년문학의 새로운 성취로 기억될 작품이다.

 

 

 

 

 

 

일본군 강제 위안부 문제를 다룬 뜻깊은 청소년소설의 등장

 

 

 

그동안 일본군 강제 위안부를 소재로 한 청소년소설이 드물게 출간되어 왔으나 이만한 완성도를 보인 작품은 흔치 않았다. 심사위원 4인은 물론이고 심사 과정에 참여한 6인의 청소년들 또한 “가슴 아픈 과거를 이렇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현실감이 높다.”라고 호평했다.

 

작품의 무대는 2016년 오늘날의 서울과 1940년대 일제 강점기의 경성 거리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16세 소년 ‘오햇귀’는 봉사 활동을 하러 독거 할머니의 집에 방문한다. 할머니의 이름은 ‘현수인’. 한때는 맑은 노랫소리로 친구들을 행복하게 해 주며 조선 최고의 여가수를 꿈꾸었다는데 지금은 병들고 지친 모습으로 자리에 누워서만 지낸다. 할머니는 대체 무슨 일을 겪었을까? 과거를 회상할 때마다 고통에 신음하는 할머니를 보며 비밀을 궁금해하던 햇귀는 우연히 태엽이 거꾸로 감기는 시계를 발견해 1940년대 경성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곳에서 햇귀는 소녀 시절 수인과 수인이 식모로 일하는 집의 딸인 하루코를 만나고, 곧 수인에게 악몽 같은 운명이 닥칠 것을 알게 된다. 우리 역사의 지울 수 없는 상처인 일본군 강제 위안부 문제와 맞닥뜨린 햇귀. 시간의 경계선을 넘어 소녀 수인을 구하려는 햇귀의 간절한 마음은 통할 수 있을까?

 

 

 

 

 

완득이를 잇는 새로운 여자 주인공 ‘현수인’

 

활력 만점 소녀 캐릭터의 탄생

 

 

 

『푸른 늑대의 파수꾼』에는 다양한 욕망을 지닌 10대 청춘들이 등장한다. 1927년 평양 출생인 수인은 “아바디, 내레 가수가 되면 어떻캈시오?”라고 물으며(20면) 당대 최고의 스타를 꿈꾸고, 하루코는 듬직한 샐러리맨을 만나 로맨틱한 사랑에 빠지기를 꿈꾼다. 2016년을 사는 햇귀는 답답한 생활에서 도망치는 게 소원이다. 개성 강한 세 사람이 시간을 뛰어넘어 만나는 장면들이 생생하고 흥미진진하다.

 

특히 경쾌하게 노래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의 힘을 잃지 않는 수인은 독보적 매력을 뽐낸다. “남자 주인공은 완득이, 그 뒤를 잇는 여자 주인공은 ‘수인이’가 아닐까.”라는 평을 들을 만큼(아동청소년문학 평론가 박숙경) 심사위원들은 이 생기 넘치는 여자 주인공의 등장을 반겼다. 수인은 원래 소문난 왈가닥에 귀여움받는 막내딸이었지만, 일제 치하에서 남몰래 독립군을 돕던 아버지가 감옥에 갇히자 경성에 있는 조선 총독부 관리의 집에 식모로 가게 된다. 수인은 식모살이 중에도 “나 현수인이야. 이 정도로 인생 포기하지 않는다고.”라고 외치며(126면) 고군분투하고, 흥겨운 입심으로 독자들을 웃고 울린다. 그동안 우리 청소년문학의 아쉬운 빈틈으로 지적되어 온 ‘살아 있는 캐릭터’ 그 자체인 현수인의 등장은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도둑맞은 나의 청춘! 김해송의 목소리 끝에서 청춘이 불현듯 나타나 달음질쳐 왔다. 폭풍우처럼, 사자처럼. 나에게는 폭풍우가 몰아치듯 춤추고 사자가 포효하듯 노래할 자유가 있었다.

 

김해송의 노랫가락에 취한 듯 리듬을 타며 탁자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맨발로 어설프게 탭댄스도 추었다. 잔을 들어 위스키 마시는 흉내를 냈다. (129면)

 

 

 

수인과 짝을 이루는 일본 소녀 하루코 또한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사춘기를 지나는 하루코는 “죽을 것처럼 슬프다가 갑자기 즐거워졌다가 어떤 때는 미치도록 화가 나는 거 있지. 대체 무슨 병일까? (…) 어쩌면 난 외롭게 죽어 갈 거야.”(154면)라고 고민하고, 간호 장교가 되어 전쟁터로 가고 싶지는 않다며 괴로워한다. 선생님을 향한 첫사랑에 가슴앓이도 겪는다. 총독부 관리의 딸과 식모 소녀라는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힘없는 10대 소녀로서 한 시절을 함께 겪고 서로 위안이 되어 준다. 국경과 계급을 넘어선 이들의 우정이 작품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다.

 

 

 

 

 

아직 듣지 못한 말

 

“미안합니다, 마음으로부터.”

 

 

 

5년간의 자료 조사를 통해 작품을 창작한 김은진 작가는 1940년대 경성 무대를 실감 나게 복원한다. 유행가 「전화 일기」나 「청춘 계급」의 노랫말에는 위트가 넘치고, 미쓰코시 백화점 옥상 정원이나 창경원(오늘날 창경궁) 풍경 등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그러나 그 풍경 속에서 총천연색으로 빛나던 수인은 참혹한 운명을 맞이하고 만다. 되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시간, 한 번뿐인 청춘 시절을 끝내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 수인의 밝고 명랑한 모습은, 이후 일본군 강제 위안부로서 처참히 살아야 했던 경험과 대비되어 더욱 짙고 선연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청소년 독자들은 일제 강점기를 “아무리 들어도 가슴에 와 닿지가 않는”(73면) 시대로 여겨 왔을지 모른다. 그러나 김은진 작가는 일본인 소녀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늑대는 어디에나 있스므니다. 도망쳐도 또 만나게 되지요. 한번 도망치면 영원히 도망치게 되므니다.”(104면)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도망치지 않고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독자에게 던지는 묵직한 질문이다.

목차

푸른 늑대의 파수꾼

 

 

작가의 말

참고한 책

우리 모두는 할머니들에게 빚진 마음을 안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 수인은 외려 우리를 위로한다. 이렇게 포기하지 않겠다고, 끝까지 노래하겠다고. 진정한 기적이란 그렇게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손숙(배우, 영화 「귀향」 출연)
『푸른 늑대의 파수꾼』은 오로지 인물이 우뚝, 존재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수인’은 흑백 영화 같은 일제 강점기 경성 거리를 거닐고 자기 목소리로 말하고 노래하는, 한마디로 컬러풀하기 그지없는 소녀다. ‘위안부’ 할머니를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누구보다 생기발랄한, 현재의 10대보다 더 10대다운 소녀로 제시한 점은 앞으로 나올 청소년소설이 어떻게 역사와 그 속의 인간을 살려야 하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심사위원 정이현 정은숙 오세란 박숙경

저자의 말

소설이란 과연 무엇일까. 누군가의 내면에, 혹은 이 사회의 어딘가에 갇혀 부글부글 끓고 있는 목소리를 글로 풀어낸 것이 아닐까. 나 자신을 들여다보자면 드라마틱한 삶이나 영웅담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라서 늘 ‘무엇을 쓰지?’가 고민이었다. 반드시 쓰고 싶은 걸 발견하지 못한다면 일개미나 되자는 주의였다. 그러다 세상에 꼭 드러내야만 하는 목소리를 들은 것이 2010년의 일이다. 중간에 동화를 쓰거나 생업에 몰두하기도 했지만 오 년 동안 그 목소리를 놓치지 않고 좇아왔다. 처음에는 희미했으나 점차 두텁게 들려오던 그 목소리. 『푸른 늑대의 파수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짓밟힌 일본군 강제 위안부들의 목소리에서 시작되었다. 이 소설에는 일본군 강제 위안부를 상징하는 수인과 조선 총독부 관리의 딸 하루코, 그리고 2016년을 은밀한 빵 셔틀로 살아가는 소년 햇귀가 등장한다. 10대 청춘인 세 사람에게는 각자의 욕망이 있다. 수인은 조선 최고의 가수가 되는 게 꿈이고 하루코는 로맨틱한 샐러리맨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게 꿈이며 햇귀는 어디로든 도망치는 게 꿈이다. 개성 강한 세 사람이 시간의 경계선을 뛰어넘어 만나는 장면들을 상상하며 글 쓰는 재미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슬픔에 북받쳐 운 시간이 훨씬 많다. 자료와 인터뷰로 접한, 이제는 호호백발 할머니가 된 소녀들의 삶을 떠올리며 많이도 울었다. 어쩌면 내가 가진 유일한 재능이 감정 이입 능력이라는 걸 새삼 확인한 것 같기도 하다. 1945년에 막을 내린 일제 강점기를 2016년 현재에 돌아보면 먼 옛날처럼 느껴지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늑대 같은 존재들은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제국주의의 시간도 여전히 흐르고 있다. 이 소설을 쓰며 할머니들을 지옥으로 몰고 간 제국주의, 현재까지도 흐르고 있는 제국주의의 시간에 제동을 걸고 싶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과거 제국주의의 시간을 함께 기억하고 파수꾼이 되어 그 모든 늑대들로부터 순수한 인간성을 지키자는 주제를 담고자 했다. 그 주제가 잘 담겼는지 판단하는 것은 이제 독자의 몫이리라. 이 소설을 할머니들께 보여 드릴 수 있어 더없이 기쁘다. 또 한 분이 세상을 떠나가시기 전에, 모든 살아 있는 증거가 사라지기 전에. 글을 쓰면서 좀 더 명확히 알게 된 것은, 일본군 강제 위안부들이 단순히 끌려가는 과정에서 겪은 강제성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납치를 당한 이들이 굉장히 많았지만, 취업 사기를 당해 속아서 간 이들도 있고 ‘술 팔고 노래하는 데’라는 걸 알고 간 이들도 있었다. 중요한 사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감금당한 채 지속적으로 일본군에 의해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참혹하기 짝이 없는 역사이다. 그 역사에 대해 일본은 ‘공식적으로’, ‘끊임없이’ 사과해야 한다. 독일 정치인들이 유대인들에게 여전히 대내외적으로 사과하고, 영국이 케냐의 독립운동 과정에서 살해된 사람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보상함은 물론 기념비까지 세워 주는 것처럼.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자각하고 기억하려면 잘못을 곱씹고 또 곱씹어야 하는 것이다. 소설의 얼개를 짜고 캐릭터를 만들기까지 여러 논픽션과 일제 강점기 동아일보 기사의 도움을 받았다. 특히 수인의 입을 통해 전한 미얀마 시절의 이야기는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에서 도움을 받았고, 조선 총독부 관리 후지모토의 에피소드는 『밤의 일제 침략사』에서 도움받았음을 밝힌다.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그간 참고한 책들을 뒤에 덧붙인다. 일제 강점기의 유년 시절을 떠올려 준 민병설 님, 홍순우 님. 일본어 표현을 도와준 김정영 님. 서촌이라는 동네를 구석구석 알게 해 준 김성준 님과 박민영 님. 언제나 기꺼운 독자가 되어 주는 글벗 수옥. 출간 작업에 정성을 쏟아 준 창비 청소년출판부의 김영선 님. 그리고 사랑하는 식구들에게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삶은 신이 던져 준 수수께끼를 풀어 가는 과정이다. 오직 시간만이 그 해답을 말해 줄 것이다. 소설의 도입부에 적힌 이 말은 스티븐 호킹의 책 『시간의 역사』에 등장하는 문장과 내 안에 품고 있는 문장을 조합한 것이다. 나에게 또 다른 수수께끼가 던져지길 바라며, 언제고 그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아 노래 부르며 모험을 떠날 생각이다. 창작을 하기 이전과 이후에 만난 모든 이에게 감사하다. 2016년 4월 김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