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문단을 대표하는 백호 문학
그 전모를 살필 수 있는 귀하고 뜻 깊은 전집의 집대성
우리 문학사의 가장 낭만적이고 매력적인 문인의 한 사람인 백호 임제(林悌, 1549~1587)의 문학세계를 집대성한 바 있던 『역주 백호전집』(창작과비평사 1997)을 바탕으로 기존 번역과 주석을 다듬어 현대적으로 만듦새를 꾸민 『신편 백호전집』이 출간되었다. 백호 문학의 전모를 꿰뚫어볼 수 있는 방대한 저작으로, 원문에 충실하되 현대적인 언어로 풀어 쓰고, 원 문집에서 누락된 작품들도 여러 판본을 대조 검토하여 수록하였다.
우리나라 한문학계의 거두인 고(故) 신호열 선생과 임형택 선생이 참여했던 『역주 백호전집』에 이어 이번 ‘신편’ 작업에는 젊은 한문학자들(이현일 장유승 서한석)이 참여하여 오늘의 독자들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한층 현대적인 해석과 의미를 더했다는 의의가 있다.
조선시대 문학의 정수와 백호 임제의 문학세계 전모를 살펴보는 데에 더없이 귀중하고 가치 높은 자료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500년 조선 문단의 독보적 존재 백호 임제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1587)는 39세 짧은 생애에 비해 남겨놓은 작품이 다양하고 풍부하다. 매우 개성적이고 창조적인 문학세계를 펼친 작가로서 시와 산문에서 모두 이름이 높고, 호탕한 기질과 자유분방한 성격, 남다른 기상과 개성에서 우러나온 특출한 언어 형상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일찍이 동시대 후배 허균(許筠)은 백호의 「수성지(愁城誌)」를 두고 “인류 역사가 생긴 이래 별문자(別文字)이다. 이를 얻지 못했다면 천지간에 한 결함이 되었을 것”이라고 격찬한 바 있다. 이에 더하여 백호전집의 편역자 임형택 교수는 “백호의 특이한 시와 산문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 문학사에 한 결함일 것이다”라고 평하였다. 이렇듯 세대를 초월한 평가는 백호의 웅혼한 문학세계의 전모와 작품의 면면을 접함으로써 온전히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원형의 재구, 신편 백호전집의 짜임새
『신편 백호전집』은 『역주 백호전집』(창작과비평사 1997)을 바탕으로 기존 번역과 주석을 새롭게 다듬었으며, 편제를 완전히 일신하여 엮었다.『역주 백호전집』이후 발견된 임제의 초기 시문집인 『겸재유고(謙齋遺藁)』 및 여러 친필 자료 등에서 새로 수습한 시를 추가하는 등, 가능한 대로 유고들을 모두 수습하여, 전집의 형태로 만듦으로써 백호 문학의 전모를 통일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전면적으로 개편한 것이다. 원집 편찬 당시에 제외한 시들을 신발굴이라는 명목으로 챙겨 수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의문을 가정하며 편역자(임형택)는 당시의 정선주의를 그대로 따르기보다 4백년 넘어 파묻혀 있던 소중한 문헌을 확보해서 시인의 원형을 재구하는 학적인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확실히한다.
전체는 크게 시편(詩編)과 산문편(散文編)으로 구분하여 시편은 두 부로, 산문편은 세 부로 나누었다. 시편에서는 우선 쓰인 시기에 따라 배치하고(편년시), 시기를 알 수 없는 작품들은 주제로 구별해 수록했다(미편년시). 한시는 창작 주체의 삶의 족적과 밀착된 문학양식인만큼 시간에 연계시킨 편차는 인간 중심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산문편은 문학적 성격으로 나눠 제1부 한문학의 전래적 양식에 속하는 글들, 2부 허구적 수법의 산문들, 제3부 여행기를 수록했다. 1부 『청등논사』란 제목으로 수록된 6편은 모두 역사상의 특정한 사실에서 취재, 논의를 전개하고 평을 가한 일종의 사론(史論)으로 난해하긴 하지만 개성적 필치에 독견이 번득인다. 2부의 허구적 산문은 한국문학사에서 특이하게 발전했던 의인체와 몽유록 형식을 빌린 것들로, 소설적인 산문으로 평가되는바 역사철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수성지」 「화사」 「원생몽유록」 3편은 불의와 폭력, 모순으로 얼룩진 인간의 역사를 고발한 내용으로, 「원생몽유록」은 세조가 단종을 축출, 살해했던 비극적 사건에서 취재한 작품이다. 3부의 『남명소승(南溟小乘)』은 제주도 여행기이자 지리지 내지 풍속지로서 실사와 상상이 교직되어 하나의 전체를 구성한 작품이다. 그 외 부록은 종래 문집에 실렸던 서·발, 그리고 묘갈문· 유사 등 관련 기록을 한데 모아 엮었다. 모든 원문은 이본들을 두루 참고하여 교감(校勘)하였으며, 주를 붙여 관련 내용을 밝혔다.
3세대의 40년 공력이 빚어낸 결실
『역주 백호전집』 한문학 연구의 큰 스승인 우전(雨田) 신호열(辛鎬烈) 선생이 1977년 번역을 시작하여 한 세대 아래인 임형택 교수가 함께 역주하다 우전 선생이 1993년 작고하면서 임형택 교수가 마무리하여 20년 만에 세상에 내놓았었다. 이번 『신편 백호시선』은 다시 임형택 교수와 한 세대 아래 소장학자 서한석· 장유승 ·이현일 교수가 함께 작업했으니, 3세대에 걸쳐 40년에 이르는 공동작업의 결실인 셈이다. 세대차에 따른 의식과 감각의 다름이 혼란을 빚기보다 더욱 유려하고 정확한 번역문을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세심하고 풍부한 주석 등은 좀더 많은 독자를 백호 문학세계로 이끌어줄 것이다.
책머리에
시詩
제1부 편년시編年詩
무진년戊辰年 1568
무진년 가을에 호남으로 향하면서
임신년壬申年 1572
동고東皐 만사輓詞 │금오산 아래로 떠나는 길사가吉士可를 전송하며 │밤에 앉아서 │철법사에게 │지호에게 │사선思禪 노스님에게 주다
계유년癸酉年 1573
장난삼아 쓰다 │서여윤을 보내며 │동암 벽상의 미인을 노래함 │웅점사에서 우연히 읊다 │느낌이 있어(2수) │최성을 송별하며 │금성에서 산사로 돌아가며 │야좌연구(2수) │정사정을 애도하는 만사 │스님에게 지어준 게송 │몽선요 │웅점사에서 우연히 짓다 │신군형에게 부치다(3수)
갑술년甲戌年 1574
금사에게 주다 │견흥遺興(2수) │출새행 │임고의 학 그림에 쓴 시 │영중營中에서 우연히 쓰다 │잠령의 민정閔亭 │상산 길에서 싸락눈을 만나
정악창수鼎岳唱酬 - 중흥동으로 들어가며 〔붙임〕원운原韻-양대박〔붙임〕차운하여-정지승 │운암 〔붙임〕원운-양대박 │차운하여-정지승 │실제失題 〔붙임〕원운-정지승 〔붙임〕차운하여-양대박 │비 끝에 읊다 〔붙임〕원운-양대박 │차운하여-정지승 │현옥玄玉의 시축에 차운하다 〔붙임〕차운하여-양대박 〔붙임〕차운하여-정지승 │정악연구鼎岳聯句(2수) │무릉계에서 〔붙임〕원운-양대박 〔붙임〕차운하여-정지승 │스님의 시축에 쓰다 〔붙임〕원운-정지승 〔붙임〕차운하여-양대박 │규대선에게 차운하여 줌 〔붙임〕원운-정지승 〔붙임〕차운하여-양대박 │중흥사에 묵으며 〔붙임〕차운하여-양대박 〔붙임〕차운하여-정지승 │연구聯句 │석령에서 산으로 돌아가는 스님을 보내며 지은 연구 │석령 제일봉에 올라 │〔붙임〕차운하여-양대박〔붙임〕차운하여-정지승 │사한동 〔붙임〕차운하여-정지승 〔붙임〕차운하여-양대박 │가을 재실에서 │휘상인에게 주다 │봉래의 │눈 쌓인 매화 │피풍아避風兒
을해년乙亥年 1575
낭주 가는 길에 │도갑사 동문 │월출산 노래 │취중에 금성을 지나니 │한식에 금성을 지나 풍포로 가면서 │남도에서 서울 가는 도중에 짓다 │금강루에 올라 │문상인文上人에게 주다 │도잠 스님에게 │능운 스님에게 │회포를 읊다 │부르는 운에 맞춰 벼루를 읊다 │박사상에게 취흥으로 드리다 │고열苦熱 〔붙임〕관원灌園의 시 │화병의 연꽃을 노래하다 〔붙임〕차운하여-관원 〔붙임〕차운하여-김명원 │당막에 드리는 시 〔붙임〕차운하여-관원 〔붙임〕차운하여-김명원 │박사상께 〔붙임〕차운하여-관원 │박사상께(1) 〔붙임〕차운하여-관원 │박사상께(2) 〔붙임〕차운하여 관원 │박사상께(3) 〔붙임〕차운하여-관원 │대행대비大行大妃 만사挽詞
병자년丙子年 1576
중부 풍암 선생 만사 │한강 배 안에서(2수) │관성여사管城旅史 │갈원에서 인편에 금琴을 타는 혜원 스님에게 부치다 │한명회의 무덤을 지나며 │새벽에 닭 울음을 듣고 │아침에 거문고를 타며 │서원객헌에 있는 시를 차운하다(2수) │지동년의 집에 묵으며 │효자 이몽경의 문을 지나며 │법주사에서 얻은 시 │북호北胡 부락 │느낌이 있어 │주운암에 당도하여 │기사記事 │술회 │김원기가 술을 들고 찾아와서 │남교(2수) │속리산 문답 │선대仙臺에서 동주를 추억하여 │불사의암 │불사의암에서 거처로 돌아와서 조금 앓는 중에 회포를 읊다 │한밤에 │꿈속에서 │법주사에서 채수재를 송별하여 │종곡에서 상운 도자道者에게 줌 │춘천으로 어버이를 뵈러 가는 허경신을 보내며 │김수재에게 주다 │복천사 회고 │법주사잡영 이십수 20수 │차운하여 성초에게 주다 │사인 스님에게 주다 │선방에서 함께 지낸 혜능에게 주다 │지재 스님에게 주다 │도정에게 │원오에게 〔붙임〕 유촌의 시 │명해 스님에게 주다 │
정축년丁丑年 1577
영회詠懷 │박운거의 집에 도착하여 며칠간 묵으면서 칠언장구七言長句 1수를 지어주다 │김수재와 작별하며 지어주다 │박운거 초정 8수 │고암을 지나며 │고당 길에서 │고당강 추억 │선대봉 폭포를 다시 구경하고 │무주 가는 길에 │강선대를 지나 │장필무 장군 │장필 장군을 추억하며 │무주 한풍루 │박이항 형제에게 │고향 생각 │기행紀行 │행로난行路難 │눈을 무릅쓰고 임실현 당도하니 │고석정에서 │제석除夕 닷새 전에 취중에 쓰다
무인년戊寅年 1578
경은의 시에 차운하다 │깊은 산골짝 시냇물 │호선사浩禪師에게 부치다 │북방으로 부임하는 외숙 윤만호를 송별하며 │벗을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시를 지어 보내다 │이경숙의 정우당에 붙여 │당귀초를 심고 〔붙임〕차운하여-관원 │금강산을 가려다 못 가고 │계용에게 주다 │계용에게 답함(2수) │다시 계용에게 답함 │성절사로 중국 가는 양송천 선생을 송별하며 │세심대에서 석천 시에 차운하며 │절구絶句 │영담에서 │산을 나오면서 스님에게 준 시 │소회를 읊어 관원에게 드림 〔붙임〕차운하여-관원 │산수를 그린 부채에 쓰다 │강상곡 │물가의 기러기 │강가의 절 │낙엽 │밝은 달 │금객琴客 │압구정
용성창수龍城唱酬 -용성에서 손사군에게 줌 〔붙임〕원운-이달 │손곡의 시에 차운하여 〔붙임〕원운-이달 │송암의 시에 차운하여
〔붙임〕 원운-양대박 〔붙임〕차운하여 동리-이달 〔붙임〕차운하여-백광훈 │동리의 시에 차운하여 〔붙임〕원운-이달 │또 동리의 시에 차운하여 〔붙임〕원운-이달 │연구聯句 │김장원 사수士秀와 작별하며
기묘년己卯年 1579~경진년庚辰年 1580
철령에서 │꿈을 꾸고 느껴서 │역루 │역에서 회포를 쓰다 │새하곡 │백우전 │무제 │이달의 시에 차운하여 │도사都事의 시에 차운하여 │도사에게 드림 │거듭 차운하여 │서울로 돌아가는 도사 선배를 전송하며 │돌아가는 조판관을 송별하며 │저물녘에 길을 가며 │대곡선생 만사 │안상사 효원에게 │의주의 작별 │쌍백정 │순무의 시에 차운하여 │시중대 │마운령 │원수대 │원수대 일출 │영동 차운 │임명역에서 차운하여 │길주를 지나며 │오촌보吾村堡를 지키는 김자유를 송별하여 │경성에서 │수성의 촌에서 │경흥부 │경흥 망적대 │관원에게 │순무사의 무양당 시에 차운하여 │조정으로 돌아가는 정암선생에게 │허어사許御史가 나를 별해別害로 송별한 시에 차운하여 │서울로 가는 순무어사 허봉에게 │수찬 김수가 중국 가는데 멀리서 지어주다 │간운看雲 생각 │고한苦寒 │황초령을 밤에 넘다 │기행 │별해 길 도중의 시에 다시 차운하여 │홍원에서 │석룡굴 │정융강 │보현사 동구 │일선一禪 강당 │성준에게 │경륜 대선에게 │지웅에게 │국진굴 │성불암에서 휴정을 맞아 이야기하다 │상원암 │안심사 │목련협 │침허루 차운 │관원선생을 애도함(6수) │장가행長歌行 │상산협에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부르다 │도사의 시에 차운하여 │역중에서 소회를 쓰다 │자술
신사년辛巳年 1581~임오년壬午年 1582
반금당 │창도역 차운 │회양부에서 원옹元翁에게 주다 │회양의 윤사문을 작별하며 │최종성을 전별하는 시 │백호白湖에서 자고 용성으로 가면서 │ 남례역에서 묵으며 │즉사卽事 │현재縣齋의 일을 적어 허미숙에게 부치다 │9월 9일에 두 아우와 용두천에서 노닐어 │대둔산으로 놀러가면서 │대둔사 동구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장춘동 잡언 │대둔사 │즉사 │정상인正上人에게 │스님에게 │아우 자중子中의 시에 차운하여 │북미륵 │석굴 속의 곡기 끊은 스님 │두륜봉에 올라 탐라를 바라보며 │호남을 떠나는 구감사具監司에게 드리는 글 │무위사로 가는 길 │무위사에서 묵으며 │월남사 절터를 지나며 │백옥봉 만사
계미년癸未年 1583~갑신년甲申年 1584
북으로 가는 절도사 정언신을 전송하며 │양대박과 작별하며 │중길仲吉의 시에 차운하여 안거사安居士에게 │안거사와 작별하며 │안거사가 요성遼城으로 떠나며 이별시를 청하기에 │진위 동헌에서 │청석골에서 │송도를 지나며 │송도 고궁을 지나면서 차운하다 │송도 회고시에 차운하다(10수) │검수역 누각 │총수산葱秀山 │안성역 누각에 올라 │아우의 시에 차운하다 │황강 길에서 │생양관에서 │안정관에서 눈을 만나 │숙천 원 문옥동에게 │안주에서 윤어사 수부에게 │백상루에 올라 │철옹성의 모란봉 약산대를 바라보며 │정주관 현판의 시에 차운하여 │정주에서 정포은의 시에 차운하여 │거련관에서 │거련관 반송蟠松 │쌍충묘에 들러 │용천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산점山店 │인산에 당도하여 자침子忱의 시에 차운하다 │인주에서 절도사 휘하에 부쳐 │관등날 저녁에 │절도節度형과 고죽·인봉에게 부쳐 화답을 청함 │취승정에서 읊다 │취승정 │구룡담에서 배를 띄워 취벽을 구경하고 │구룡담에서 남으로 내려가며 │아우 선愃을 남쪽으로 떠나보내며 │안도사가 찾아와서 │기사記事 │즉사卽事 │삼춘체三春體 │아침 일찍 인산을 떠나며 │길에서 비를 만나 │선천 가는 길에 │정주 길에서 │정주 객관에서 자침과 작별하여 │한식날 길에서 아우의 편지를 받고 │청천강을 건너며 │병중에 김자앙에게 부치다 │새벽 창에 우는 새소리를 듣고 │지산인池山人을 보내면서 │아우 환懽의 시에 차운하여 │4월 18일 술회 │곽산 길에 │임금단任金丹에게 │꾀꼬리 소리를 듣다 │늦게 일어나다 │박점마에게 작별하며 준 시 │산중 고을 │산가山家 │방백 막하에 │평양서 몸져누워 서윤 선생께 편지를 보내다 │연광정 │은밀대에 올라 선연동을 바라보며 │패강 푸른 물결에 배를 띄워 │배 타고 가며 │윤기尹妓에게 │옥정에게 │다시 향렴 절구 한 수를 지어주다 │기생의 죽음을 애도하며 │탄금곡 │패강가浿江歌 │보원상인에게 │서장관 장운익을 송별하며 │허서장관 만사 │영변의 수구문을 지나며 │노저의 시를 차운하여 스님에게 주다 │천참사에게 │진사를 송별하여 │황회지를 함관 군막으로 송별하며 │이절도 만사 │다시 앞의 시의 운을 사용하여 │빗소리 │기사記事 │비파협 │인풍루 │상토진 │수항정 시에 차운하다 │소대小臺 │적유령 │감회시 │해경海冏에게 차운하여 주다 │이암의 시를 차운하여 계호에게 주다 │기몽紀夢 │지천의 시에 차운하여 │주청정사奏請正使 지천 정승의 송별시 │서상관 한응인을 작별하는 시 │송질정 상현을 작별하는 시 │태헌의 시에 차운하여 현준에게 주다 │답청일 즉사卽事 │새벽에 신안을 떠나며 │대곶大串 │섬 서쪽 돌섬 위에 단이 쌓여 있기에 │산골에서 비를 만나 │의주에 당도하여 │5월 17일 삭주에서 │삭주의 술 │수문탄 │직동보에서 김권관에게 │파저강 │창성에서 │배 타고 가면서 │성남에서 밤 이야기 │모란봉 │영명사에서 묵으며 │무제 │평양 기생을 대신하여 그의 정인情人에게 │김이옥과 이별하며 │김이옥에게 │원문轅門에서 잠이 깨어 짓다
부벽루상영浮碧樓觴詠 『부벽루상영록』 뒤에 붙여
을유년乙酉年 1585
고흥 현판의 시에 차운하여 │고흥으로 가면서
병술년丙戌年 1586
대궐의 입춘첩 │대궐의 영상첩자迎祥帖字 │입춘첩자立春帖字 │김이옥에게
정해년丁亥年 1587
경성판관으로 가는 황경윤을 전별하여 │누구를 대신해서 짓다 │동작대 그림에 붙여 │병중에 마음을 달래다 │스스로를 애도하다
신편 백호전집을 펴내며 『역주譯註 백호전집白湖全集』을 독자들에게 선보인 것은 20년 가까이 된다. 지금 다시 간행하면서 번역을 손질하고 체제를 전면적으로 바꾸어 『신편新編 백호전집白湖全集』이라고 이름한다. 백호白湖 임제林悌(1549~1587) 선생은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남겨놓은 작품은 다양하고도 풍부한 편이었다. 자신의 시대에서 대단히 개성적이고 창조적인 문학세계를 펼쳐낸 작가이다. 그와 동시대의 후배였던 허균許筠은 백호의 「수성지愁城誌」를 두고서 “인류 역사가 생긴 이래 별문자別文字”라고 격찬한 다음, 이것이 없었다면 “천지간에 한 결함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필자는 허균의 이 논조로 “백호의 특이한 시와 산문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 문학사에 한 결함일 것이다”고 평한 바 있다. 백호의 시문집은 사후 40년이 지난 시점에서 발간되는데 옛날 책으로 4권 2책에 불과했다. 당초에 편찬 방향이 정선주의를 취했던데다가 기피忌避 문자들이 제외된 까닭이었다. ‘시대의 검열’이 백호문학의 세계를 위축시켜놓은 셈이다. 전번에 오늘의 독자들이 백호문학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번역 작업을 하면서 초간에서 제외되었던 유고들을 가능한 대로 다 수습, 전집의 형태로 만들었다. 그때는 새로 들어온 부분을 ‘속집’이라 하여 ‘원집’과 구분을 지었다. 이번에도 『겸재유고謙齋遺稿』를 비롯해서 친필 초고들이 또 새로 발굴, 보충되었다. 이에 백호문학의 전모를 통일적으로 인식하기 용이하도록 전면적인 개편을 단행하게 된 것이다. 전체를 일단 시편詩編과 산문편散文編으로 대별을 하였다. 그리고 시편은 두 부로, 산문편은 세 부로 나누었다. 이처럼 구분한 방식과 각각의 내용에 대해서 간략한 설명을 붙여둔다. 백호문학의 세계로 입문하는 안내의 말 정도로 보아주시기를 바란다. 백호문학의 본령은 시에 있다고 여겨졌던 만큼 양적인 비중 또한 시 쪽에 있다. 시편에서는 일차로 지어진 시순時順을 따라 배치하고 나머지 연대 미상의 작품들을 일괄해서 주제로 구별해 수록했다. 편년부와 미편년부로 구성한 모양새다. 특히 한시는 속성이 창작 주체의 삶의 족적과 밀착된 문학양식이다. 시를 시간에 연계시킨 편차는 인간 중심의 인식을 의도한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당초 시체詩體로 구분했던 방식을 지금 와서 바꿔 시 순으로 편차하는 일은 어려울밖에 없다. 다행히도 백호의 30대로 접어들기 직전의 작품을 엮어놓은 『겸재유고』 및 상당편의 친필 초고들이 근래 발굴되었기에 이나마 시도할 수 있었다. 편년부에 배치하기 어려운 작품이 없을 수 없다. 이들 또한 주제로 유별해서 작자의 시 정신에 다가설 수 있도록 배려했다. 여기에 덧붙일 말이 있다. 원집 편찬 당시에 제껴두었던 시들을 지금 신발굴이라는 명목으로 챙겨 한데 수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물음이다. 이 물음에 대해 나는 이렇게 답한다. 고금의 관점이 꼭 같을 수 없는데 정선주의를 그대로 따를 것도 아니며, 4백년 넘어 파묻혀 있던 소중한 문헌을 확보해서 시인의 원형을 재구하는 학적인 작업은 정히 요망되는 일이 아닐까. 산문편은 문학적 성격으로 분별하여, 제1부 한문학의 전래적 양식에 속하는 글들, 제2부 허구적 수법의 산문들, 제3부 여행기를 수록했다. 1부에서는 『청등논사靑燈論史』를 들어 언급한다. 『청등논사』란 제목으로 수록된 6편은 모두 역사상의 특정한 사실에서 취재, 논의를 전개하고 평을 가한 일종의 사론史論이다. 원래 과문체科文体의 여러 형식을 이용한 글이어서 현학적이고 진부하게 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비록 난해하긴 하지만 개성적 필치에 독견이 번득인다. 예컨대 일대의 영웅 항우項羽의 최후를 다룬 「오강부烏江賦」는 백호 사후 법정에 제출되었던 문제작이다. 2부의 허구적 산문들은 한국문학사에서 특이하게 발전했던 의인체와 몽유록 형식을 차용한 성격이다. 의인체로서 「유여매쟁춘柳與梅爭春」과 「전동군서餞東君序」(「봄을 전별하는 글」)는 습작에 속하며, 「수성지」와 「화사花史」에 이르러 그 기법적 실험이 완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의 경우 세조가 단종을 축출, 살해했던 비극적 사건에서 취재한 작품이다. 「수성지」 「화사」 「원생몽유록」 3편은 불의와 폭력, 모순으로 얼룩진 인간의 역사를 고발한 내용이다. 이들은 소설적인 산문으로 평가되는바 역사철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3부의 『남명소승南溟小乘』은 작가의 나이 29세 때인 1577년 가을 제주도로 건너갔다가 이듬해 봄에 돌아온 여행기이다. 제주도는 물론 현실적인 공간이고 내용은 견문한 실사實寫의 보고서로서 충실하다. 동시에 작자의 뇌리에서 부단히 상상적 공간으로 의식되고 있다. 작중에서 한라산은 신비로운 선계仙界요, 눈 쌓인 한라산의 백록담에 오르는 것은 유선遊仙이다. 『남명소승』은 실사와 상상이 교직되어 하나의 전체를 구성한 작품이다. 지리지 내지 풍속지로서 문헌적 가치와 유기遊記로서 문학적 가치를 『남명소승』은 아울러 지니고 있다. 전체가 산문양식이면서 시가 점철되어 있는데 시작품은 유선의 형상을 표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원집은 이들 시의 일부만 선택적으로 수록하고 『남명소승』 자체는 제외되어 있었다. 이번에 드디어 『남명소승』은 원형이 복원된 것이다. 당초에 이 역주 작업은 신호열辛鎬烈 선생이 백호기념사업회의 요청을 받아서 오랜 시일이 걸려 진행하시다가 갑자기 영면을 하신 때문에 필자가 부득이 마무리를 지은 터였다. 이번에 신편 작업은 필자가 도맡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이현일•서한석•장유승 세 동학의 도움을 받아서 수행했다. 그리고 백호공 문중의 협조가 있었는데 임인채 의원은 백호기념사업회부터 지금에 이르도록 일을 주선해왔다. 제반 사실들을 밝혀 거듭 경의와 감사를 드린다. 『역주 백호전집』의 출판주체인 창작과비평사는 이후 창비로 이름을 바꿨다. 이런 종류의 서적은 근래 더욱 출판 여건이 열악해진 것이 실상이다. 다시 부담을 감내하고 맡아주신 창비와 수고해준 편집 실무진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끝으로 독자 제현 및 연구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역주 작업에서 오역•오류 없이 완벽을 기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신편 작업을 하면서 필자는 이 점을 새삼스레 실감하였거니와, 더구나 시편에서 취한 편년부는 스스로 모험을 감행한 셈이다. 널리 가르침과 양해를 구해 마지않는다. 2014년 10월 임형택은 덕양재德養齋에서 삼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