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문단을 대표하는 백호 문학
그 전모를 살필 수 있는 귀하고 뜻 깊은 전집의 집대성
우리 문학사의 가장 낭만적이고 매력적인 문인의 한 사람인 백호 임제(林悌, 1549~1587)의 문학세계를 집대성한 바 있던 『역주 백호전집』(창작과비평사 1997)을 바탕으로 기존 번역과 주석을 다듬어 현대적으로 만듦새를 꾸민 『신편 백호전집』이 출간되었다. 백호 문학의 전모를 꿰뚫어볼 수 있는 방대한 저작으로, 원문에 충실하되 현대적인 언어로 풀어 쓰고, 원 문집에서 누락된 작품들도 여러 판본을 대조 검토하여 수록하였다.
우리나라 한문학계의 거두인 고(故) 신호열 선생과 임형택 선생이 참여했던 『역주 백호전집』에 이어 이번 ‘신편’ 작업에는 젊은 한문학자들(이현일 장유승 서한석)이 참여하여 오늘의 독자들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한층 현대적인 해석과 의미를 더했다는 의의가 있다.
조선시대 문학의 정수와 백호 임제의 문학세계 전모를 살펴보는 데에 더없이 귀중하고 가치 높은 자료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500년 조선 문단의 독보적 존재 백호 임제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1587)는 39세 짧은 생애에 비해 남겨놓은 작품이 다양하고 풍부하다. 매우 개성적이고 창조적인 문학세계를 펼친 작가로서 시와 산문에서 모두 이름이 높고, 호탕한 기질과 자유분방한 성격, 남다른 기상과 개성에서 우러나온 특출한 언어 형상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일찍이 동시대 후배 허균(許筠)은 백호의 「수성지(愁城誌)」를 두고 “인류 역사가 생긴 이래 별문자(別文字)이다. 이를 얻지 못했다면 천지간에 한 결함이 되었을 것”이라고 격찬한 바 있다. 이에 더하여 백호전집의 편역자 임형택 교수는 “백호의 특이한 시와 산문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 문학사에 한 결함일 것이다”라고 평하였다. 이렇듯 세대를 초월한 평가는 백호의 웅혼한 문학세계의 전모와 작품의 면면을 접함으로써 온전히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원형의 재구, 신편 백호전집의 짜임새
『신편 백호전집』은 『역주 백호전집』(창작과비평사 1997)을 바탕으로 기존 번역과 주석을 새롭게 다듬었으며, 편제를 완전히 일신하여 엮었다.『역주 백호전집』이후 발견된 임제의 초기 시문집인 『겸재유고(謙齋遺藁)』 및 여러 친필 자료 등에서 새로 수습한 시를 추가하는 등, 가능한 대로 유고들을 모두 수습하여, 전집의 형태로 만듦으로써 백호 문학의 전모를 통일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전면적으로 개편한 것이다. 원집 편찬 당시에 제외한 시들을 신발굴이라는 명목으로 챙겨 수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의문을 가정하며 편역자(임형택)는 당시의 정선주의를 그대로 따르기보다 4백년 넘어 파묻혀 있던 소중한 문헌을 확보해서 시인의 원형을 재구하는 학적인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확실히한다.
전체는 크게 시편(詩編)과 산문편(散文編)으로 구분하여 시편은 두 부로, 산문편은 세 부로 나누었다. 시편에서는 우선 쓰인 시기에 따라 배치하고(편년시), 시기를 알 수 없는 작품들은 주제로 구별해 수록했다(미편년시). 한시는 창작 주체의 삶의 족적과 밀착된 문학양식인만큼 시간에 연계시킨 편차는 인간 중심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산문편은 문학적 성격으로 나눠 제1부 한문학의 전래적 양식에 속하는 글들, 2부 허구적 수법의 산문들, 제3부 여행기를 수록했다. 1부 『청등논사』란 제목으로 수록된 6편은 모두 역사상의 특정한 사실에서 취재, 논의를 전개하고 평을 가한 일종의 사론(史論)으로 난해하긴 하지만 개성적 필치에 독견이 번득인다. 2부의 허구적 산문은 한국문학사에서 특이하게 발전했던 의인체와 몽유록 형식을 빌린 것들로, 소설적인 산문으로 평가되는바 역사철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수성지」 「화사」 「원생몽유록」 3편은 불의와 폭력, 모순으로 얼룩진 인간의 역사를 고발한 내용으로, 「원생몽유록」은 세조가 단종을 축출, 살해했던 비극적 사건에서 취재한 작품이다. 3부의 『남명소승(南溟小乘)』은 제주도 여행기이자 지리지 내지 풍속지로서 실사와 상상이 교직되어 하나의 전체를 구성한 작품이다. 그 외 부록은 종래 문집에 실렸던 서·발, 그리고 묘갈문· 유사 등 관련 기록을 한데 모아 엮었다. 모든 원문은 이본들을 두루 참고하여 교감(校勘)하였으며, 주를 붙여 관련 내용을 밝혔다.
3세대의 40년 공력이 빚어낸 결실
『역주 백호전집』 한문학 연구의 큰 스승인 우전(雨田) 신호열(辛鎬烈) 선생이 1977년 번역을 시작하여 한 세대 아래인 임형택 교수가 함께 역주하다 우전 선생이 1993년 작고하면서 임형택 교수가 마무리하여 20년 만에 세상에 내놓았었다. 이번 『신편 백호시선』은 다시 임형택 교수와 한 세대 아래 소장학자 서한석· 장유승 ·이현일 교수가 함께 작업했으니, 3세대에 걸쳐 40년에 이르는 공동작업의 결실인 셈이다. 세대차에 따른 의식과 감각의 다름이 혼란을 빚기보다 더욱 유려하고 정확한 번역문을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세심하고 풍부한 주석 등은 좀더 많은 독자를 백호 문학세계로 이끌어줄 것이다.
시詩
제2부 미편년시未編年詩
애정愛情
수줍어 말 못하고 │복암사에서 우연히 향렴체로 짓다 │거문고 아가씨에게 │무제 │향렴체 │향렴체로 우연히 짓다 │그네타기 노래 │무제 │영사詠史 │고의古意 │장난삼아 짓다 │별의別意 │향렴체로 지어 경수에게 주다 │무제 │어느 여인을 위하여 │기생 만사 │배 젓는 노래 │그리움 │무제 │별의別意 │서곤체를 본떠 │안원헌의 운을 써서 서곤체로 짓다 │무제無題 │억진아憶秦娥
증답贈答
이평사를 송별하여 │성이현과 작별하며 │만월대에서 벗과 작별하며 │김여명과 작별하며 │김생이 공사貢士로 상경하기에 │김시극의 부채에 청계의 시를 차운하여 쓰다 │무진장에서 김시극에게 │김시극과 작별하며 │고인후에게 │금객琴客에게 │유우경에게 │떠나는 이에게 │김목사에게 부쳐 │남간에서 성칙우에게 주는 시 │낙매를 노래하여 칙우에게 주다 │유상사에게 │안극회와 작별하며 │정자신의 시에 차운하여 │정자신을 그리며 │정지승의 시에 차운하여 │정자신을 송별하여 │정자신에게 │회계로 부쳐 │서울 가는 청계를 송별하여 │송암에게 주다 │서릉에서 〔붙임〕남창의 시 │김남창과 전사관典祀官에 차정되어 주고받은 시 │김남창의 시에 차운하여 │서릉에서 이참봉에게 │창녕 냇가에서 김대중과 취중에 작별하며 │심발지에게 부쳐 │동년 박천우에게 편지를 부치다 │함평에서 오수보에게 주다 │취중에 벗의 시를 차운하다 │춘호와 농서두 시인에게 │정담에게 │정몽여의 부채에 써서 │강경필에게 │현무에게 │현무와 작별하며 │진경문 수재에게 │다시 경수 등 여러분에게 │흥의역에서 │청川 목사에게 │앙암 주중에서 │술을 보내옴에 감사하여 │고당강의 병든 벗을 찾아 │호서영에서 안중실과 작별하며 │송별 │안시은에게 │곽미수에게 주다 │읍청정 주인에게 │관수정 주인에게 │허씨의 계당에서 하서의 시에 차운하여 │신유선에게 작별하며 준 글 │전계하 선생에게 │김원외가 고을살이를 원해 나가는 데 부쳐 │김판관에게 │녹양역에서 남랑과 작별하며 │남군초에게 │즉사卽事 │백운산에서 김석여와 작별하며 │한심약에게 │상수와 작별하며 │자관의 시에 차운하여 임경침에게 주다 │백련사에서 자관의 시에 차운하여 │아우 자침에게 부치다 │아우 자중의 부채에 써주다 │만덕사로 가는 아우 탁에게 │아우 탁을 송별하며 아울러 심발지에게 부치다 │금리에 아우들을 두고 떠나며 │신춘新春에 아우들에게 부치다
제영題詠
해일루에 붙여 │지황문의 강정 │만취정 10영 │영사당 8영 │춘초정에 묵으며 │바람 부는 밤 고정高亭에서 │영벽당 │수월정 8영 │송부마의 수월정을 지나면서 │영귀정 시에 차운하여 │눈금당 │고송정의 서늘함 │청허정 │취하여 송송정에 쓰다 │청영정 │거야 김장의 집 │쌍벽당 │요월당 〔붙임〕원운 풍암 │희경루 │이승지 산재 │춘초정에 붙여 │소요정 │용호의 청영정 │응취정에 붙여 │애련당, 풍암 중부仲父의 시에 차운하여 │청계정사 비오는 날 │차운하여 육우암에 쓰다
도석道釋
진감에게 │원명의 시축詩軸에 쓰다 │안도사에게 │현민의 시축에 쓰다 │법사의 시축에 차운한 시 │인호 스님에게 │계묵에게 │설순의 시축에 적힌 풍암 중부의 시에 차운하다 〔붙임〕원운 풍암 │약사전에서 영언에게 │경신에게 │백록의 시에 차운하여 정원에게 주다 │스님의 시축에 쓰다 │일웅의 시축에 쓰다 │수학하는 중에게 │천연에게 │규선에게 │경담에게 │보웅에게 │보운스님에게 │차운하여 청운에게 주다 │인감의 시축에서 관원의 시를 보고 감회가 일어 화답하다 │유오에게 주다 │담정에게 │스님의 시축에 쓰다 │스님에게 │도잠 노승에게 │촛불 들고 홍작약을 구경하다 │윤참판 시에 차운하여 거문고 타는 중에게 주다 │고태헌 시에 차운하여 성은의 시축에 쓰다 │봉암의 예전 은거하던 곳을 찾아 │태능에게 차운하여 주다 │율곡 시에 차운하여 조일에게 주다 │해우 스님에게 │처영에게 │봉암을 찾아 유숙하며 │차운하여 스님에게 주다 │우瑀 노장에게 │즉사 │스님의 시권詩卷에 차운하여 │옥로 스님의 시에 차운하여 │고향의 중 천진에게 │석천 시에 차운하여 원공에게 지어주다 │무등산 스님의 시축에 차운하여 │중의 시축에 우연히 쓰다 │덕린의 시축에 차
운하여 │지정의 시축에 쓰다 │홍찬의 시축에 쓰다 │절립승 │광혜대선에게 차운하여 주다 │가지사 │태헌의 시에 차운하여 스님에게 주다 │금선요金仙謠 │매당자명록 │지상至祥의 시에 차운하여 │신웅의 시에 차운하여 │유관의 시에 차운하여 │언홍에게 │의영의 시에 차운하여 │충서의 시에 차운하여 │가언의 시에 차운하여 │태화의 시에 차운하여 │보기寶器의 시에 차운하여 │일정一正에게 │영회·우의·즉사 │만흥 │영회 │젊은 협객 │강남행 │백호에서 짓다 │송추를 지나며 소회를 읊다 │서호 시에 차운하여 │금하에서 가을 무지개를 보고 │병든 학을 노래하여 │남당 │무제 │냇가의 집에서 몸져누워 │이 사람 │청강사 │창랑곡 │봄이 저물도록 황화방에 있어 │생애동에서 밤에 두견의 울음을 듣고 │밤에 어가漁歌를 듣고 │고의古意 │봄날에 우연히 읊다 │배를 타고 │우담 │비 오는 날 서울 집에서 │중굿날 │새벽에
영물詠物
시냇물 │두견새 │청설晴雪 │개천의 고기를 바라보며 │해오라
기 │버들솜〔柳絮〕 │꾀꼬리 소 │단문端門의 만지등萬枝燈
제화題畵
가길嘉吉의 그림에 감사하여 │대 그림에 읊다 │김생의 해장도海莊圖에 붙이다 │소병小屛에 쓴 시
기행紀行
압촌에 묵으며 │양화나루 │길에서 │동파역 │무계진을 건너며 │백호로 가는 길에 │광산 성중에 투숙하여 │도중途中에서 │밤이 들어 여강에 배를 매고 │새벽에 저도楮島에 정박하여 서울을 바라보고 │기행 │무산일단운巫山一段雲 │신안에서 │주행舟行 │기사記事
만시挽詩
진제학 따님 만사 │조카 김극형 만사 │참봉 장수 만시 │통판通判 이가원 만사 │김절도사 만사 │망녀亡女 만사 │망녀 만사 │망녀전사亡女奠詞
기타
금성곡 │오산곡 │초산곡 │섬에서 사냥하는 것을 보고 │전가원田家怨 │장수 48인이 뽑힌 것을 보고
산문散文--------
제1부
의마意馬
면앙정부俛仰亭賦
동지를 경축하여 올리는 글
석림정사 중수문
대곡선생 제문
스승 김흠지 제문
게으름을 전송하는 글
청등논사靑燈論史
제2부
수성지
원생몽유록
화사花史
유여매쟁춘柳與梅爭春
봄을 전별하는 글
제3부
남명소승南溟小乘
原文
第一部
意馬
俛仰亭賦
至日賀箋
石林精舍 重修文
祭大谷先生文
祭亡師金欽之文
送懶文
靑燈論史
第二部
愁城誌
元生夢遊錄
花史
柳與梅爭春
餞東君序
第三部
南溟小乘
부록 原文
白湖先生 年譜
후기
찾아보기
신편 백호전집을 펴내며 『역주譯註 백호전집白湖全集』을 독자들에게 선보인 것은 20년 가까이 된다. 지금 다시 간행하면서 번역을 손질하고 체제를 전면적으로 바꾸어 『신편新編 백호전집白湖全集』이라고 이름한다. 백호白湖 임제林悌(1549~1587) 선생은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남겨놓은 작품은 다양하고도 풍부한 편이었다. 자신의 시대에서 대단히 개성적이고 창조적인 문학세계를 펼쳐낸 작가이다. 그와 동시대의 후배였던 허균許筠은 백호의 「수성지愁城誌」를 두고서 “인류 역사가 생긴 이래 별문자別文字”라고 격찬한 다음, 이것이 없었다면 “천지간에 한 결함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필자는 허균의 이 논조로 “백호의 특이한 시와 산문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 문학사에 한 결함일 것이다”고 평한 바 있다. 백호의 시문집은 사후 40년이 지난 시점에서 발간되는데 옛날 책으로 4권 2책에 불과했다. 당초에 편찬 방향이 정선주의를 취했던데다가 기피忌避 문자들이 제외된 까닭이었다. ‘시대의 검열’이 백호문학의 세계를 위축시켜놓은 셈이다. 전번에 오늘의 독자들이 백호문학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번역 작업을 하면서 초간에서 제외되었던 유고들을 가능한 대로 다 수습, 전집의 형태로 만들었다. 그때는 새로 들어온 부분을 ‘속집’이라 하여 ‘원집’과 구분을 지었다. 이번에도 『겸재유고謙齋遺稿』를 비롯해서 친필 초고들이 또 새로 발굴, 보충되었다. 이에 백호문학의 전모를 통일적으로 인식하기 용이하도록 전면적인 개편을 단행하게 된 것이다. 전체를 일단 시편詩編과 산문편散文編으로 대별을 하였다. 그리고 시편은 두 부로, 산문편은 세 부로 나누었다. 이처럼 구분한 방식과 각각의 내용에 대해서 간략한 설명을 붙여둔다. 백호문학의 세계로 입문하는 안내의 말 정도로 보아주시기를 바란다. 백호문학의 본령은 시에 있다고 여겨졌던 만큼 양적인 비중 또한 시 쪽에 있다. 시편에서는 일차로 지어진 시순時順을 따라 배치하고 나머지 연대 미상의 작품들을 일괄해서 주제로 구별해 수록했다. 편년부와 미편년부로 구성한 모양새다. 특히 한시는 속성이 창작 주체의 삶의 족적과 밀착된 문학양식이다. 시를 시간에 연계시킨 편차는 인간 중심의 인식을 의도한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당초 시체詩體로 구분했던 방식을 지금 와서 바꿔 시 순으로 편차하는 일은 어려울밖에 없다. 다행히도 백호의 30대로 접어들기 직전의 작품을 엮어놓은 『겸재유고』 및 상당편의 친필 초고들이 근래 발굴되었기에 이나마 시도할 수 있었다. 편년부에 배치하기 어려운 작품이 없을 수 없다. 이들 또한 주제로 유별해서 작자의 시 정신에 다가설 수 있도록 배려했다. 여기에 덧붙일 말이 있다. 원집 편찬 당시에 제껴두었던 시들을 지금 신발굴이라는 명목으로 챙겨 한데 수록하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물음이다. 이 물음에 대해 나는 이렇게 답한다. 고금의 관점이 꼭 같을 수 없는데 정선주의를 그대로 따를 것도 아니며, 4백년 넘어 파묻혀 있던 소중한 문헌을 확보해서 시인의 원형을 재구하는 학적인 작업은 정히 요망되는 일이 아닐까. 산문편은 문학적 성격으로 분별하여, 제1부 한문학의 전래적 양식에 속하는 글들, 제2부 허구적 수법의 산문들, 제3부 여행기를 수록했다. 1부에서는 『청등논사靑燈論史』를 들어 언급한다. 『청등논사』란 제목으로 수록된 6편은 모두 역사상의 특정한 사실에서 취재, 논의를 전개하고 평을 가한 일종의 사론史論이다. 원래 과문체科文体의 여러 형식을 이용한 글이어서 현학적이고 진부하게 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비록 난해하긴 하지만 개성적 필치에 독견이 번득인다. 예컨대 일대의 영웅 항우項羽의 최후를 다룬 「오강부烏江賦」는 백호 사후 법정에 제출되었던 문제작이다. 2부의 허구적 산문들은 한국문학사에서 특이하게 발전했던 의인체와 몽유록 형식을 차용한 성격이다. 의인체로서 「유여매쟁춘柳與梅爭春」과 「전동군서餞東君序」(「봄을 전별하는 글」)는 습작에 속하며, 「수성지」와 「화사花史」에 이르러 그 기법적 실험이 완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의 경우 세조가 단종을 축출, 살해했던 비극적 사건에서 취재한 작품이다. 「수성지」 「화사」 「원생몽유록」 3편은 불의와 폭력, 모순으로 얼룩진 인간의 역사를 고발한 내용이다. 이들은 소설적인 산문으로 평가되는바 역사철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3부의 『남명소승南溟小乘』은 작가의 나이 29세 때인 1577년 가을 제주도로 건너갔다가 이듬해 봄에 돌아온 여행기이다. 제주도는 물론 현실적인 공간이고 내용은 견문한 실사實寫의 보고서로서 충실하다. 동시에 작자의 뇌리에서 부단히 상상적 공간으로 의식되고 있다. 작중에서 한라산은 신비로운 선계仙界요, 눈 쌓인 한라산의 백록담에 오르는 것은 유선遊仙이다. 『남명소승』은 실사와 상상이 교직되어 하나의 전체를 구성한 작품이다. 지리지 내지 풍속지로서 문헌적 가치와 유기遊記로서 문학적 가치를 『남명소승』은 아울러 지니고 있다. 전체가 산문양식이면서 시가 점철되어 있는데 시작품은 유선의 형상을 표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원집은 이들 시의 일부만 선택적으로 수록하고 『남명소승』 자체는 제외되어 있었다. 이번에 드디어 『남명소승』은 원형이 복원된 것이다. 당초에 이 역주 작업은 신호열辛鎬烈 선생이 백호기념사업회의 요청을 받아서 오랜 시일이 걸려 진행하시다가 갑자기 영면을 하신 때문에 필자가 부득이 마무리를 지은 터였다. 이번에 신편 작업은 필자가 도맡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이현일•서한석•장유승 세 동학의 도움을 받아서 수행했다. 그리고 백호공 문중의 협조가 있었는데 임인채 의원은 백호기념사업회부터 지금에 이르도록 일을 주선해왔다. 제반 사실들을 밝혀 거듭 경의와 감사를 드린다. 『역주 백호전집』의 출판주체인 창작과비평사는 이후 창비로 이름을 바꿨다. 이런 종류의 서적은 근래 더욱 출판 여건이 열악해진 것이 실상이다. 다시 부담을 감내하고 맡아주신 창비와 수고해준 편집 실무진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끝으로 독자 제현 및 연구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역주 작업에서 오역•오류 없이 완벽을 기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신편 작업을 하면서 필자는 이 점을 새삼스레 실감하였거니와, 더구나 시편에서 취한 편년부는 스스로 모험을 감행한 셈이다. 널리 가르침과 양해를 구해 마지않는다. 2014년 10월 임형택은 덕양재德養齋에서 삼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