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튀는 문장과 생생한 이야기 속에 소년들의 관계와 내면 풍경을 예리하게 포착한 동화. 철천지원수였던 두 소년이 티격태격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조금씩 서로를 이해해 가는 모습을 핍진하게 그려 진정한 친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속 깊은 아이들이 저마다의 상처를 극복하며 한 걸음씩 성장하는 모습은 진한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그동안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 『걱정쟁이 열세 살』 등 탁월한 심리 묘사로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펼쳐온 최나미 작가의 신작이다.
유년기에서 청소년기로 들어서는 십대 아이들을 꾸준히 주목하던 작가가 이번 신작 『고래가 뛰는 이유』에서는 6학년 남자아이들의 관계와 심리 변화를 섬세하게 펼쳐 보여 준다. 작가는 철천지원수 사이인 원섭이와 도영이가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그려 낸다. 단순하고 행동이 빠른 도영이와 속은 깊지만 우유부단한 원섭이가 서로 지지 않으려 옥신각신하거나 책방을 문 닫게 하려고 엉뚱한 계획을 세우는 장면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최나미 작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유쾌하게 그리면서도 두 소년이 알게 모르게 조금씩 가까워지는 모습을 핍진하게 묘사한다. 둘은 책방에서 함께 일하는 동안 도저히 친구가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상대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고 그만큼 더 이해하게 된다. 앙숙인 줄로만 알았던 책방 할아버지와 이발킴 할아버지의 깊은 우정을 지켜보면서 진정한 우정의 의미도 조금씩 깨우쳐 간다. “친구란 무슨 짓을 해도 용서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왜 그래야 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책방 할아버지의 말이 원섭이와 도영이에게는 물론 『고래가 뛰는 이유』를 읽는 사람에게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고래가 뛰는 이유』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좌충우돌하며 문제를 일으키는 말썽꾸러기이지만 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아이들은 많이 고민하고 많이 아파하고 많이 후회한다. 원섭이는 자신의 잘못 때문에 단짝 푸름이가 전학을 갔다고 생각하며 푸름이가 읽지도 않는 메일을 계속 보내서 용서를 구한다. 원섭이에게 거짓말한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 전학까지 간 푸름이는 원섭이에게 계속 근사한 친구로 남고 싶어 연락을 하지 않는다. 『고래가 뛰는 이유』에서 아이들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금세 상처를 이겨 내고 말쑥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아이는 없다. 원섭이는 푸름이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푸름이를 싫어했던 도영이와 원수처럼 지낸다. 푸름이는 거짓말한 사실을 원섭이에게 밝히고 기억 속에서 자신을 지워 달라고 이야기하며 괴로워한다. 최나미 작가는 의젓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대신 이리저리 흔들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차근차근 묘사한다. 상처를 바로 이겨 내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현실을 살아갈 수는 없다. 오히려 필요한 만큼 충분히 아파해야 조금 더 굳건하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고래가 뛰는 이유』에는 평범한 가족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멀쩡’하지 않은 관계들이 등장한다. 원섭이네 부모님은 직장 때문에 주말부부로 지내고, 형인 한섭이는 겉보기에는 가족과 전혀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도영이가 ‘가족은 단체 불행 버스’라 말하며 나중에 커서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만큼 도영이네 엄마 아빠의 사이는 좋지 않다. 명은이에게는 다정한 아빠가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엄마의 자리는 비어 있다. 이발킴 할아버지는 자식이 여러 명이지만 모두 외국으로 떠났다. 책방 할아버지의 자식들은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가족은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으며 결코 비정상이 아니라는 듯, 조금 위태로워 보이는 일상의 관계들을 태연하게 묘사한다. 오히려 작가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하는 가족의 모습은 폐쇄된 형태의 견고한 가족 이데올로기이다. 원섭이 할머니의 생일잔치에서 가족사진을 찍을 때,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던 명은이는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외된다. 작가는 원섭이네 가족에게 상처를 받은 명은이의 속마음을 차근차근 따라가면서, 과연 정상적인 가족의 형태는 무엇이며 진정한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끔 한다. 이발킴 할아버지의 장례식장 앞에 마치 한가족처럼 모여 있는 책방 할아버지와 아들, 원섭이와 엄마, 도영이와 부모님, 명은이와 아빠의 모습에서 우리는 작가가 생각하는 진정한 ‘가족 같은’ 관계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사사건건 대립하며 싸우는 원섭이와 도영이. 두 사람이 원수가 된 건 푸름이 사건 때문이다. 도영이가 거짓말했다고 푸름이를 몰아붙이다가 돌아가신 푸름이 아빠의 디지털카메라를 부서뜨렸다. 그 일로 푸름이는 전학을 갔고 원섭이와 도영이는 철천지원수가 되었다. 어느 날, 축구를 하던 두 사람이 서로 밀치다가 대마왕이라고 불리는 책방 할아버지를 넘어뜨려서 다치게 한다. 그 벌로 원섭이는 책방에서 할아버지를 돕게 된다. 도영이 역시 책방에서 일하는 원섭이를 괴롭히다가 책방에서 일하게 된다. 하지만 둘이서 일은 돕지 않고 티격태격하면서 사고를 치고, 그때마다 책방 할아버지는 두 사람이 일하는 기간을 연장한다. 이러다가는 도저히 일을 그만둘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도영이와 원섭이는 책방을 문 닫게 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그 계획을 제대로 실행하기도 전에 새로운 사건이 벌어지는데…….
1. 철천지원수
2. 또 다른 천적
3. 운수 나쁜 날
4. 운명의 월요일
5. 진짜 적은 누구인가
6. 적을 안다고 다 이길 수 있는 건 아니다
7. 할아버지가 납치됐다!
8. 누구나 잊힐 권리는 있다
9.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
10.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는 것들
세상에 착한 사람 아니면 나쁜 사람만 사는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 이야기책에서는 백설 공주, 콩쥐, 심청이, 심 봉사와 흥부는 착하기 때문에 행복하게 잘 살았고, 백설 공주의 계모, 팥쥐 모녀, 뺑덕어멈과 놀부는 나쁜 짓을 많이 해서 벌을 받았다. 만화영화에서도 정의를 지키는 독수리 오 형제와 개구리 왕눈이가 악당 알렉터나 투투와 맞서 싸울 때면 나는 착하고 정의로운 우리 편이 이길 거라는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그 시절 내가 아는 이야기의 결말은 대부분 그랬다. 좀 더 자라서야 세상 사람들을 그렇게 단순하게 나눌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똑똑하거나 미련한 사람들도 있고 쩨쩨하거나 대범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기적이거나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겸손하거나 잘난 척하는 사람들, 그것도 아니면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사람들을 일일이 착하거나 나쁜 사람으로 구분할 방법이 없었다. 더 큰 문제는 나였다. 나 역시 처해진 상황에 따라 착한 사람도 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착하고 정의로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나를 인정하기가 싫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늘어놓게 되었다. 그때는 그런 내가 참 부끄러웠다. 어느새 어른이 되고 ‘착한 콩쥐는 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다.’라는 말에 더는 감동을 받지 않게 되었다. 자주 부끄러워하던 것을 가끔 잊을 때도 있다. 한때 내가 굳게 믿었던 세계가 닫히는 걸 인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누구나 겪는 일이다. 그래야 또 새로운 세계가 열릴 테니까.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 어른이 된 내 세계의 법칙이다. 이 모든 변화가 당연하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나는 착한 사람이 행복해지고 정의가 이기던 예전의 그 세계가 그립다. 올봄을 겪으면서는 더욱 그렇다.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기다리던 소식이 팽목항으로부터 전해지기를 기도하며……. 2014년 10월 ― 최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