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의 ‘위기’는 오래전부터 들려온 익숙한 이야기이지만 그동안 아동문학의 영역은 예외였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어린이책 시장은 활발해지기 시작하여 아이엠에프(IMF) 경제 위기로 잠시 주춤했지만 2000년대 중반까지 줄곧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아동문학은 활황기가 끝난 뒤 심각한 위기를 맞닥뜨린 상황이다. 이 위기를 냉철하게 인식하고, 우리 아동문학의 현실을 면밀하게 분석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창비어린이』 46호의 특집은 ‘아동문학의 위기, 어떻게 할까?’라는 주제로 마련하였다. 아동문학 출판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 줄 오랜 경험을 지닌 현장 전문가들의 좌담과 독서운동단체 활동가, 어린이 전문 서점 운영자, 동화작가의 글로 구성해 보았다.
[좌담: 위기 속 길 찾기]는 지난 10여 년간 아동문학, 출판 시장, 독서 현장이 어떤 변화를 겪어 왔는지에 대한 파노라마이다. 박숙경(아동문학평론가), 박주현(사서교사), 이병규(사계절출판사 마케팅팀 총괄팀장), 이주영(어린이문화연대 대표)은 2000년대 중반의 아동문학 활황기를 각자 자리에서 입체적으로 분석하면서 현재 위기의 원인을 되짚어 보고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아이들과 학교 수의 감소, 인터넷 서점의 성장과 유통 구조의 왜곡, 독서운동단체 활동의 정체, 도서 정가제 문제, 독서 교육, 최근 아동문학 작품의 경향 등 아동문학의 위기와 관련된 거의 모든 화제들을 빠짐없이 훑어보면서 앞으로 더 나은 환경을 만들 대안을 제시한다.
여을환은 어린이도서연구회 독서 모임 ‘동화동무씨동무’ 운영 사례를 바탕으로 아이들을 능동적·주체적인 독자로 태어나게 하는 독자 운동을 소개한다. 책 읽기의 목표는 능력과 성취가 아닌 ‘즐거움’이어야 한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모습과 그 대안 운동의 성과를 세밀하게 기록하였다.
강정아는 부산에서 어린이 전문 서점 ‘책과 아이들’을 15년 넘게 운영해 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국에 어린이 전문 서점이 20개도 채 남지 않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떻게 지역 독서 문화를 이끌며 작은 서점으로서 살아남게 되었는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책과 아이들’이 책을 파는 전통적 서점의 위상을 넘어 동네 사랑방 구실을 하며 마을의 구심점이 되어 가는 과정은 아동문학 위기 극복의 중요한 시사점이 될 것이다.
동화작가 임정자는 책을 집필하는 작가의 처지에서 느끼는 아동문학 위기에 관하여 솔직하고 가감 없이 말한다. 독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글을 쓰려는 작가는 아동문학의 본령을 바탕으로 아이들 속에서 아이들 이야기를 충실히 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더욱 치열하게 글을 쓰겠다는 중견 작가의 다짐은 특별한 울림을 준다.
아동문학평론가 원종찬은 1920년대 아동잡지 『별나라』를 살펴본다. 『별나라』는 자료를 구하기 쉽지 않고 흔히들 좌익 잡지라고 여긴 탓에 제대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이재철의 ‘남한 아동문학은 『어린이』의 후예, 북한 아동문학은 『별나라』의 후예’라는 도식이 일방적으로 통용되었다고 지적한다. 또한 『별나라』 편집진이 남긴 회고 글에 의존하는 기존의 연구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별나라』 창간호를 비롯하여 원(原)자료를 통해 필자들의 활동을 추적하여 계급주의·현실주의 아동잡지로 알려진 『별나라』의 통설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그리고 식민지 시대에 성인문학과 달리 아동문학의 전개 양상은 1930년대 초의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좌우 대립이 아니라 좌우 협력이었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이번호 연재에는 문학비평가 임화가 『별나라』 편집에 참여한 흔적을 발견하였는데 그가 직접 그린 표지와 삽화를 발굴하여 눈길을 끈다.
[그 작품 그 작가]에서는 동화작가 김기정을 만난다. 동화에서 옛이야기의 활용, 능청스러운 상상력과 사투리, 문체 등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관해 흥미롭게 이야기한다. 『바나나가 뭐예유?』의 창작 모티프가 된 어린 시절에 겪은 이야기도 생생하게 들려준다. 작가는 동화의 뿌리를 옛이야기라고 말하면서 자칫 좋은 옛이야기의 생명력에 기대어 작품을 반복하는 일은 경계해야 될 일이라고 분명하게 짚는다. 이야기가 지닌 힘을 믿으며 끊임없이 고뇌하는 동화작가로서 동심, 어린이성, 리얼리즘에 관한 작가의 진지한 고민과 의견을 귀담아들을 만하다.
영화평론가 황진미는 유치원과 가정을 배경으로 일곱 살 아이들이 겪는 일상을 담은 어린이 드라마 「꾸러기 천사들」을 소개한다. 1990년대 초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던 외화 시리즈 「천사들의 합창」에 견줄 만한 작품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어린이 드라마에서 다문화나 성별 차이, 한부모 가정 등과 같은 편견을 폭넓은 이해로 극복한 미덕을 발견해 낸다.
카피라이터 김민철은 광고와 어린이의 관계를 들여다본다. 아이들에게 영향력이 있다면 성공한 광고로 판단하는 광고 제작자의 입장을 전달하는 한편, 요즘 아이들이 광고에 쉽게 노출된 현실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다. 광고와 아이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하며 ‘15초 광고의 숙명’에 관해 이야기한다.
창작란에서는 이가을, 김양미, 천효정의 신작 동화와 정소연의 신작 청소년소설이 실렸다. 전병호, 김응, 김환영은 신작 동시를 선보인다. [조그만 사진첩]에서는 아동문학 연구자 나카무라 오사무가 경성방송국 ‘어린이 시간’(18:00~18:30) 프로그램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울러 제19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발표와 심사평, 수상자 유우석, 김애란, 권재원의 소감이 함께 실렸다.
책머리에
오세란
지난호 이렇게 읽었다
김선동
국내외 동향 한국 핀란드 일본
특집_ 아동문학의 위기, 어떻게 할까?
(좌담) 위기 속 길 찾기 / 박숙경 박주현 이병규 이주영
여을환 / 정말 책만 읽어도 돼요?
강정아 / 소통하는 어린이 전문 서점
임정자 / 그래도 쓴다
창작
동시
전병호 / 두메분취 외 1편
김 응 / 어느 날 외 1편
김환영 / 신발 꿈 외 1편
동화
이가을 / 고양이를 기르는 생쥐
김양미 / 잘 헤어졌어
천효정 / 뭐든 깨 먹는 쫑이
청소년소설
정소연 / 이사
계간평・문학 오세란 / 바퀴벌레는 노래하고 뺑덕이는 돌아오네
계간평・교양 이지유 / 뼈 수집가 소년을 만날까? 채소 동물원에 갈까?
연재_ 원종찬의 한국 아동문학사 탐방(5)
원종찬 / ‘반짝반짝 작은 별’이 ‘붉은 별’이 되기까지
연재_ 김환희와 함께하는 옛이야기 공부(6)
김환희 / 「구렁덩덩 신선비」라는 비밀의 숲(2)
연재_ 그 작품 그 작가(9)
김찬정 / 『바나나가 뭐예유?』의 작가, 김기정을 만나다
어린이와 세상
황진미 / 인종을 넘어 남녀를 넘어―어린이 드라마 「꾸러기 천사들」
김민철 / 광고를 좋아하는 아이, 아이를 좋아하는 광고
서평
신수진 / 권문희 『깜박깜박 도깨비』
남호섭 / 김유진 『뽀뽀의 힘』
최도연 / 정지원 『샤워』
박영기 / 이안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
조그만 사진첩
나카무라 오사무 / 경성방송국 ‘어린이 시간’의 복원
백창우의 노래 엽서
백창우 / 이젠 가만있지 마라
발표
제19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수상작 발표 _수상자 | 유우석, 김애란, 권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