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환 동시의 가장 큰 특징은 아이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데 있다.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순수하고 이상화된 모습으로 그려내거나 교육 효과를 위해 교훈적인 내용을 담는 대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래서 아이들은 박일환의 동시를 읽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면서 감상할 수 있다.
교실에서 공놀이하다 / 유리창을 깼다. // 하필 그쪽으로 날아갈 게 뭐람. // 깨진 유리창도 억울하겠지만 / 나도 참 억울하다. // 야단맞고…… 공 뺏기고……. // 그러니 공놀이는 밖에서 하라고? // 운동장은 형들이 차지했는걸. / 나는 아직 4학년인걸. —「억울한 사연」 전문
시는 아이들의 생활을 묘사하는 것으로 끝맺지 않는다. 시인의 눈은 아이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닿는다. “운동장은 형들이 차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실에서 놀다가 유리창을 깨뜨린 “아직 4학년”인 아이의 억울한 사연에까지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시인은 복잡다단한 아이들의 감정도 세심하게 살펴보려 한다.
그동안 많은 동시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그려냈지만, 아이들의 감정은 대부분 기쁨이나 슬픔 등으로 단순하게 표현되어 왔다. 하지만 아이들의 감정은 어른의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
세상이 너무 커다래요. / 우리 집 마당만큼 작아지면 좋겠어요. // 내가 숨어드는 다락방만큼 / 나를 덮어 주는 이불만큼 / 동화책을 펼친 만큼 // 딱 그만큼만 / 세상이 작아지면 좋겠어요. —「세상이 너무 커다래요」 전문
「세상이 너무 커다래요」는 성장에 대한 아이의 두려움이 담겨 있다. “마당”에서 놀고 “다락방”에서 “이불”을 덮은 채 “동화책”을 읽던 아이는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면서 신기함과 설렘을 느끼지만 동시에 두려움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다시 세상이 예전처럼 작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기도 한다.
시인은 아이에게 용기를 가지고 커다란 세상 속으로 나아가라고 말하는 대신, 아이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준다.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 곁에서 오랫동안 서 있었던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커다란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시인은 알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오랫동안 아이들의 생활 모습을 지켜본 시인은 아이들의 익살스러운 모습도 놓치지 않는다.
곰 사냥을 가자. / 이왕이면 북극으로 / 흰곰을 잡으러 가자. (…) 썰매를 끌고 북극에 가서 / 흰곰이 좋아하는 생선을 매달고 / 우리 집까지 달려서 돌아오는 거야. // 그런 다음 죽어라 뒤쫓아 온 북극곰을 / 우리에 집어넣으면 되는 거지. // 문제는 딱 한 가지. / 북극까지 갔다 오려면 / 겨울 방학이 너무 짧으니까 // 선생님, 겨울 방학 좀 늘려 주세요. —「겨울 방학 계획표 짜기」 부분
아이들은 어른들의 생각보다 철부지이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능청맞은 때도 적지 않다. 이 시에는 흰곰을 잡으러 북극에 다녀오겠다며 겨울 방학을 늘려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의 모습이 실감 나게 그려져 있다.
아마 아이는 선생님이 마음대로 방학을 늘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괜스레 떼를 써보는 게 분명하다. 선생님 또한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빙그레 웃어주었을 것이고, 이처럼 익살맞은 아이와 따뜻한 선생님의 모습은 시를 읽는 독자도 빙그레 미소 짓게 할 것이다.
『엄마한테 빗자루로 맞은 날』에는 아이들의 ‘성장’과 관련한 작품들이 여러 편 들어 있다. 그동안 아동문학에서 꾸준히 다루어진 주제지만, 박일환 시인은 새로운 방식으로 ‘성장’에 접근한다. 그중에서도 「거울 놀이」는 재미있는 상황을 통해 성장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거울아, 거울아! /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 그야 강다솜이지. / 딩동댕! // 엄마, 누나가 미쳤나 봐. / 거울만 보면 헛소리해. // 놔둬라. / 나도 다솜이만 할 때 그랬다. —「거울 놀이」 전문
아이들의 성장을 응원한다면서 교훈적인 내용을 강요하는 어른들이 많다. 하지만 박일환 시인은 가만두어도 아이들 스스로 잘 성장해나가리라는 믿음이 있다. 시인의 성장론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놔둬라”이다. 어린 시절의 행동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다 있으므로, 이상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나름의 의미가 있으므로, 강요하거나 훈계하는 방식으로 고치려 하기보다는 한발 떨어진 곳에서 지켜봐주는 게 필요하다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처럼 시인은 아이들의 새로운 면모를 찾아내고 그들의 성장을 응원한다. “이 책에 실린 동시 중에서 다만 몇 편이라도 어린이들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다면 행복하겠습니다.”라는 「시인의 말」처럼 『엄마에게 빗자루로 맞은 날』에 실린 동시들이 독자들에게 따뜻한 기운으로 전달되길 기대한다.
머리말 : 동시야, 이제 네 친구들을 찾아가렴
제1부 세상이 너무 커다래요
세상이 너무 커다래요
가을
손톱
달밤
꽃기린
콩새
빗소리
바람이 세게 부는 날
감 따러 가자
바람과 가랑잎과 해님
별꽃
방아깨비
소나기 그물
이제는 울지 말아야지
제2부 엄마한테 빗자루로 맞은 날
엄마 얼굴이 빨개졌다
아카시아와 솜사탕
엄마한테 빗자루로 맞은 날
헤헤
거울 놀이
불만
어두운 귀, 밝은 귀
화분에 물 주기
달걀 굴러가는 소리
엄마 나무
옥수수 할아버지
세상에서 가장 빠른 건?
아버지 손바닥
제3부 억울한 사연
피리와 리코더
시험 기간
심통
시험 망친 날
정답
낮달
꽃 도장
억울한 사연
포로들
겨울 방학 계획표 짜기
올챙이가 개구리 되는 법
선생님 표 농담
제4부 빈집
동무 사이
모기 주둥이
콩밭에 가 있는 마음
감자 캐기
유모차
쌍가마
반달곰
엉큼한 수박
정말 그럴래?
빈집
고드름 눈물
검은 눈물
가로등
푸른산 주식회사
해설 | 성장을 응원하는 따뜻한 마음_정유경
동시야, 이제 네 친구들을 찾아가렴 어린이를 위한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게 언제쯤인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매우 뒤늦게 생각하게 된 건 분명합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해 보지 않았던 듯합니다. 어른을 위한 시를 쓰는 게 내 일이고, 동시는 다른 사람들의 몫이라고 여겨서 아예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다 머리에 새치가 하나둘 늘어갈 무렵부터 내 호기심이 조금씩 다른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됐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눈물이 많아지고 마음이 더 여려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불쑥 동시가 내게 찾아오더군요. 처음에는 동시를 써 놓고도 과연 이게 동시가 되는 건지 잘 몰랐습니다. 동시 쓰는 법도 잘 몰랐고, 내가 쓴 동시를 어린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할 뿐이었지요. 그래도 자꾸 쓰다 보니 재미가 늘고, 우연찮은 기회에 동시를 발표하면서 자신감 같은 것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어떻게 해야 동시를 잘 쓸 수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다만 이제 한 발짝 떼어 놓았으니, 앞으로는 조금 더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나름대로는 재미있게 써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린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고 끙끙대기도 했고요. 이 책에 실린 동시 중에서 다만 몇 편이라도 어린이들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다면 행복하겠습니다. 함께 돌려 읽는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겠지요. 이제 그만 내 품 안에 간직하고 있던 동시들을 멀리 놓아 보냅니다. 천천히 한 발 한 발 어린이들을 찾아 나서는 내 동시들의 앞날에 축복이 있기를 빌면서!
2013년 12월 박일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