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의 제1부 ‘실천과제로서의 동아시아’는 저자가 1990년대 초부터 숙성시켜온 동아시아 담론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해볼 수 있는 여러 키워드들을 논의하고 있다. 저자를 비롯한 동아시아론 연구자들이 선구적으로 동아시아론의 체계를 세운 90년대 초만 해도 많은 이들은 ‘87년 민주화 이후의 정세’ 아래에서 동아시아 담론이 새롭게 발견된 것일 뿐이라고 단순하게 이해하는 편이었다. 이러한 안팎의 오해에 대해 저자는 “동아시아 담론이 19세기 말부터 논의된 것임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사상사적 계보에 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당대의 실천적 과제임을 인정받고자” 했다.
전작 출간 이후 10여년이 지나 펴낸 이번 책은 ‘동아시아란 무엇인가’라는 여전히 논쟁적인 질문을 던진다. 동아시아는 기존의 ‘한·중·일 더하기 몇몇 국가’ 식의 고정된 지리 개념이 아니다. 동아시아라고 함은 동북·동남 아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 전반이 공통으로 지닌 문화유산 또는 대대로 이어져온 지역 내 교류나 경험이 재구성되는 과정에 다름없다. 즉 고정된 실체가 아닌 변화무쌍한 과정으로서의 개념 설정이 필요하며 이는 이번 책에서 ‘실천과제로서의 동아시아’라는 개념으로 압축되어 표현되었다.
‘실천’과 ‘경험’을 통한 동아시아 바로 보기에는 다음의 핵심용어들이 필수적이다.
첫번째 키워드는 이 책의 프롤로그를 비롯해 책 전반에서 소개되고 있는 ‘핵심현장’이다. 저자가 꼽는 동아시아의 대표적 핵심현장은 진먼도(金門島, 대만), 오끼나와(沖縄, 일본), 개성(開城, 한반도) 등이다. 2010년 하또야마(鳩山) 총리가 오끼나와 미군기지를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번복하면서 그 이유로 당시 천안함사건 이후 미군 유지의 필요성을 주장한 바 있다. 이는 바로 한반도 남북과 일본 등 동아시아가 핵심현장을 중심으로 어떻게 연동하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내준다. 당시 오끼나와의 시위 현장을 찾은 저자는 만약 “우리 한국인이 6·15선언의 기조에 따라 남북화해를 심화시켰더라면…”이라며 쓰라린 회고에 잠긴다.
핵심현장을 수차례 드나들면서 현지 지식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저자가 느끼는 고민은 이뿐 아니다. 과연 현장의 구체성에 근거하면서 그로부터 사상적인 차원의 과제를 끌어낼 수 있는가? 이에 관하여 내놓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복합국가’다. 저자는 한반도 분단이라는 생생한 현실을 토대로, 남과 북이 서로의 국가주권을 인정하면서도 서서히 재통합하여 “단일형 국가가 아니라 한층 더 인간다운 삶을 구현할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가자고 제안한다. 이를 우리가 익히 아는 연방제 등의 ‘국가 간의 결합’이라고만 이해한다면 절반의 이해일 것이다. 복합국가론의 핵심은 오히려 ‘국민국가의 자기전환’ 즉 국가의 한계를 극복하는 사회 내부의 개혁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에 담겨 있다. 또한 재일조선인·이주노동자·북한이탈주민 등의 정체성이 지닌 다양함과 유연함을 끌어안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더해지면서 일견 추상적인 담론에 그칠 수 있는 지점에 생생한 실감을 더한다.
국가/탈국가 담론이 적용되는 공간은 비단 한반도뿐만 아니다. 지금 동아시아에서는 국민국가를 상대화하는 탈근대 담론이 주를 이루지만, 다른 한편 대만독립론이나 오끼나와독립론처럼 근대국가 형태를 지향하는 국민국가론도 그 세가 만만치 않다. 동아시아 전체의 이같은 현실을 다각도로 조명하며 저자가 벼려온 사상적 과제가 바로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적 단일과제’ 즉 ‘근대의 이중과제론’이다. 적응과 극복이라는 얼핏 상호 이율배반적이라고 여겨질 법한 이 이론에 관해 다양한 주장을 곁들여 해설하는 부분(59~67면)은 매우 흥미롭다. 저자는 이론의 뿌리를 백낙청(白樂晴), 최원식(崔元植) 등에게서 찾으며 더 나아가 타께우찌 요시미(竹內好)의 근대초극론에서부터 쑨 거(孫歌) 등의 동아시아론까지를 섭렵하는데, 여기서 ‘근대의 이중과제론’은 곧 “상대를 변혁하고 자신도 변화하는” 운동으로서 자리매김된다.
2001년 대만과 일본에서 체류한 경험을 토대로 구체적인 실감이 더해진 ‘이중적 주변의 시각’이라는 키워드 또한 흥미롭다. 그는 두 나라에서 각각 “중국의 일부이기도 하고 중국이 아니기도 한 복잡한 정체성을 가진 대만인”과 “한때 식민지였던 대만을 보는 일본인”들을 만난다. 이 두가지 얽힌 시각을 접하면서 서구 중심의 세계사 아래에서 비주체적 발전경로를 강요당해온 ‘동아시아라는 주변의 눈’과 ‘동아시아 각국의 권위주의하에서 억눌려온 주변의 눈’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이중적 주변의 시각’이라는 표현으로 압축해낸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일 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대화이기도 하다.” 저자의 이 말은 지금의 중국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다시 말해 한중관계사에서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을 변별하고 양자의 역학관계를 파악해내는 작업은 곧 한중관계의 미래를 전망하는 데에 유효한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한중관계에서 그 조건들은 무엇일까. 이 책의 제2부 ‘주변의 눈으로 본 중국’에서는 양국 관계의 ‘비대칭성’ ‘근접성’ ‘한국(조선)의 지정학적 위치’를 ‘변하지 않는 것’으로, 또한 ‘변하는 것’으로는 ‘시민사회의 다양화’ ‘상호의존성 심화’ ‘제3자 강대국(일본·미국 등)’ 등을 꼽으며 임진왜란부터 청일전쟁을 거쳐 현재의 동북공정, 한류 등에 이르는 다양한 사건들을 연대기적으로 풀어내 이해를 돕는다. 국내에서 출간된 연구논문의 시기별 목록, 동료 연구자들에 대한 직접 인터뷰 등의 실증적 분석결과 등은 한국인의 중국 인식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자료로 손색없다.
흔히 중국의 일부로 인식하는 대만의 정체성에 대한 재인식도 필수적이다. 저자는 본인 또한 대만을 “중국의 한쪽”으로만 알고 있었다고 돌이켜보며 대만사회 내부의 인식을 파고든다. 즉 대만은 중국의 일부가 아니며, 대만 토착사회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대만인으로서의 독자적 정체성”을 주목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에 관한 제2부 3장과 4장은 대만의 대표적 소설가 우 줘류(吳濁流)의 중국여행기와 필자 자신의 대만사(臺灣史) 연구를 위주로 중국과 대만, 한국과 대만의 관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준다.
현대 중국에 관해 전세계가 주목하며 한편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제국으로서의 중국’이다. 저자는 왕 웨촨(王岳川), 쉬 지린(許紀霖), 거 자오광(葛兆光), 자오 팅양(趙汀陽) 등 중국의 대표적 지식인들의 담론을 토대로 이들의 새로운 중국 구상이 과연 중국인들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인 전체에게 유익한 것인지를 되묻는다.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이 중국과 비대칭적 관계를 맺고 있는 이상 그들의 새로운 구상들이 어떤 실질적 의의를 지니는지를 비판적으로 점검하자는 의미다.
‘제국으로서의 중국’을 본격적으로 다룬 이 책의 에필로그는 비판적 중국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저자는 최근 유행하는 중국에 대한 해석과 저자 자신의 복합국가론을 대조하여 중국을 제국으로서 쉽게 이해하는 독법을 선보인다. 이로써 중국이 미국에 이어 패권국가의 바통을 이어받을지, 전혀 새로운 제국화로 나아갈지, 기존의 세계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혁해내는 창의적 길을 닦을지에 관해 계속 추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비롯한 중국을 해설하는 다양한 제국담론이 중국인뿐 아니라 “세계인 전체에게 요긴한 보편적 자산”이 되어야 한다고 못박는다.
“연구자이자 교육자이고 또한 편집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온” 저자 자신의 정체성에 걸맞게 이 책에서는 저자가 설정하는 새로운 과제인 ‘사회인문학’의 요소가 곳곳에 배어 있다. 사회인문학이란 인문학과 사회과학이라는 분과학문의 고루한 형식에 따라 철저히 나뉜 한계를 극복하여 “탈분과학문적 연구와 글쓰기를 현장의 실천경험과 결합하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사회인문학이라는 새로운 시도는 동아시아공동체의 공생에도 미치는 바가 크다. 사회과학자들이 주목하는 “국가정책 차원의 동아시아공동체” “지역협력체의 제도화”를 비롯하여, 인문학자들이 주목하는 “개인들의 자발적 결합체” “비제도적 네트워크 구축”은 제각기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이 책은 사회과학과 인문학, 이 두가지 시선을 종합해내며 지역분화의 생생한 현실과 지역주의 구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그것이 “인간다움을 좀더 충실히 구현하는 지역적 공생사회, 곧 진정한 의미의 동아시아공동체로 향하는지”를 점검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꿈꾸는 동아시아 공생사회란 국가와 자본이 주도하는 제도적 동아시아공동체라기보다 진정한 공동체로 다가가는 ‘과정으로서의 동아시아공동체’라 말할 수 있다.
동아시아 담론은 그동안 “길 없는 길”이라는 어구로도 표현될 정도로 이론·담론으로서의 성격을 짙게 지녔던, 학계 내부의 논쟁이 주를 이루었던 산물이다. 저자가 지난 20여년간 자신의 연구주제를 뛰어넘어 벌여온 다양한 실천의 경험, 그리고 그 현장감을 살려 집필한 글들은 기존의 동아시아론의 한계를 충분히 보완하는 구체적 근거들이다. 이 같은 생생한 활동이 한국·중국·일본·대만을 비롯한 다양한 시민사회의 자치와 연대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켰던 만큼, 동아시아 평화에 “선순환적 파급”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책을 펴내며
| 프롤로그 | ‘핵심현장’에서 찾는 동아시아 공생의 길
제1부 실천과제로서의 동아시아
1장 연동하는 동아시아, 문제로서의 한반도: 담론과 연대운동의 20년
2장 동아시아론과 근대적응•근대극복의 이중과제
3장 평화에 대한 상상력의 조건과 한계: 동아시아공동체론의 성찰
4장 제국을 넘어 동아시아공동체로
5장 동아시아 중산층과 새로운 정체성의 가능성
6장 아시아의 다양성과 실감으로서의 동아시아
7장 복합국가와 ‘근대의 이중과제’: 20세기 동아시아사 다시 보기
제2부 주변의 눈으로 본 중국
1장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한중관계의 과거•현재•미래
2장 중국의 ‘동북공정’과 한국인의 중국 인식의 변화: 대중과 역사학계에 미친 영향
3장 일본인인가, 중국인인가: 중국여행을 통해 본 20세기 전반기 대만인의 정체성
4장 우리에게 대만은 무엇인가: 다시 보는 한국-대만관계
| 에필로그 | 중화제국론의 동아시아적 의미: 비판적 중국연구의 모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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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졸저 『동아시아의 귀환: 중국의 근대성을 묻는다』를 출간한 이후 13년 만에 사론집을 또 한권 출간한다. 그간 동아시아를/에서 사유해온 글 열세편을 다듬어 엮은 새 책을 독자에게 선보이려니 마음 설렌다. 여기 실린 글은 모두 각종 회의에서 발표하거나 잡지의 요청에 응해 쓴 것이다. 필자는 역사연구자이긴 하나 한국 안팎의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고자 노력해왔다. 회의 주관기관이나 잡지 편집진은 그때그때 현실을 반영해 특정 주제를 내걸고 그에 관한 생각을 듣고자 했으며, 필자는 그 주제와 대화하는 마음가짐으로 글을 준비했다. 내 나름으로는 다양한 삶의 현장이 접목된 새로운 시각을 공유하고자 했다. 혹자는 이처럼 현장성을 중시하는 글쓰기가 역사학자에게 합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난번 졸저에서도 밝혔고 점점 더 명료하게 의식하게 된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일 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대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현실에서 촉발된 문제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다고 단순한 시사해설 또는 시평적 글쓰기에 머물지 않고 그 속에서 역사적•사상적 과제를 읽어내려고 애썼다. 달리 표현하면, 이 책 본문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겠지만 단기적 과제를 중•장기적 과제와 연결하여 하나로 파악하고 그것을 일관되게 실천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 문제의식은 연구자이자 교육자이고 또한 편집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온 필자 자신의 정체성과도 연관이 깊다. 필자가 동아시아 담론에 관심을 갖게 된 개인적 경위는 본서에 실린 「복합국가와 ‘근대의 이중과제’」(156~58면)에서 밝힌 바 있으니 그 글을 참고하길 바라면서, 여기서는 필자 자신의 동아시아론이 단순한 학술적 성과물이 아니고 대학의 안과 밖에서 활동한 경험이 녹아 있는 것임을 강조해두려고 한다. 즉 필자는 사회의제를 학술의제로 전환해 연구를 수행하는 실천적 자세에 비중을 두고자 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연세대 안팎의 동료들과 ‘사회인문학’이라는 기치 아래 정교하게 다듬는 협업을 수년 전부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각지를 직접 견문하고 연대활동을 수행하는 작업에서 동아시아적 시각의 의의를 확인하고 확산하는 일에도 힘써왔다. 그런 노력의 흔적들이 독자들 눈에 띄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에 새로 이 책을 펴내면서 새삼 이전에 출간한 책과 비교하게 된다. 2000년에 간행된 졸저의 제목 ‘동아시아의 귀환’이 암시하듯이, 동아시아적 시각 혹은 담론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한국인의 사상 모색과 실천 경험이 1990년대에 되살아난 것이다. 그 책을 저술할 때만 해도, 동아시아 담론에 익숙지 않았던 독자들이라면 그것이 1987년 이후 변화하는 한국 안팎의 정세 속에서 새롭게 발견된 것이라고 단순하게 이해하기 쉬운 형편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동아시아 담론이 19세기 말부터 논의된 것임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사상사적 계보에 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당대의 실천적 과제임을 인정받고자 했다. 그 책의 출간으로부터 10여년이 지나 이번에 선보이는 이 책에는 어떤 특징이 담겨 있을까. 주요 핵심어를 통해 이를 설명해보겠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이전 저서에서부터 지속되어온 동아시아 지역 개념에 대한 이해다. 지역 개념은 지리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다. 동아시아는 그 지역을 사고하는 인식 주체의 실천과제에 따라 달리 구성된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한 문화적 ‘창안물’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 지역을 역사적 실체로 간주하게 만드는 근거가 있다. 지역 개념은 공통의 문화유산 또는 역사적으로 지속되어온 일정한 지역적 교류나 공통의 경험세계가 재구성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 그간 동아시아를 말할 때 그 지리적 범위가 어디까지인가를 묻는 질문에 대해 먼저 어떤 방향 혹은 과제를 설정하면 그에 따라 범위가 정해질 터라고 거듭 설명해왔다. 그래야만 그 지역 개념의 구체성이 제대로 드러난다. 이런 관점을 잘 보여주는 이전 졸저의 한 대목을 여기에 옮겨보겠다. “동아시아를 어떤 고정적 실체로도 간주하지 않고 항상 자기성찰 속에서 유동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사고와 그에 입각한 실천의 과정”이 중요하다. 동아시아인이 “이런 태도를 몸에 익힘으로써 자기 속의 동아시아와 동아시아 속의 자기를 돌아보는 성찰적 주체가 형성될 것으로 기대한다.”(『동아시아의 귀환』, 50~51면) 필자는 ‘동아시아’라는 개념을 동북아와 동남아를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쓰되, 그것이 지리적으로 고정된 실체가 아니란 뜻으로 ‘지적 실험으로서의 동아시아’라는 용어를 14년 전에 제시했다. 그러나 그 ‘지적 실험’이 자칫 지적 유희로 오해되기 쉽고 실천적 차원에서의 추동력을 간과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본서에서는 이전의 문제의식을 유지하되 새로움을 드러내기 위해 ‘실천과제로서의 동아시아’(또는 프로젝트로서의 동아시아)를 핵심어로 썼다. 또다른 핵심어는 ‘이중적 주변의 시각’이다. 이전의 졸저에서 중국인에게 주변 국가에 대한 ‘수평적 시각’이 있는가를 물은 적이 있는데, 사실 이 물음은 우리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 전체에게도 해당된다. 바로 이런 문제의식을 좀더 구체화하기 위해 필자가 제기한 것이 ‘이중적 주변의 시각’이다. 2001년 연구년을 맞아 타이베이(臺北)와 나고야(名古屋)에 반년씩 체류한 경험이 반영된 관점이다. 중국의 일부이기도 하고 중국이 아니기도 한 복잡한 정체성을 가진 대만인, 그리고 한때 식민지였던 대만을 보는 일본인, 그 두 사회의 착종된 시각을 접촉하면서, 서구 중심의 세계사 전개에서 비주체화의 길을 강요당한 동아시아라는 주변의 눈과 동아시아 내부의 위계질서에서 억눌린 주변의 눈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 눈떴다. 중심-주변 관계에 대한 인식이자 그 극복을 위한 실천을 의미하는 이 핵심어는 ‘실천적 과제로서의 동아시아’를 구현할 성찰적 주체의 주요 요건이기도 하다. 더불어 ‘핵심현장’은 이 책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잘 보여주는 핵심어다. ‘이중적 주변의 시각’을 요구하는 곳이자 그것이 가장 잘 적용되는 대상이 바로 핵심현장이다. 이것이야말로 필자가 중국대륙과 일본 본섬은 물론이고 대만•오끼나와 등지로 관심을 넓혀 직접 현지를 드나들며 그곳 지식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얻은 수확이다. 핵심현장에서 연대활동을 수행하는 동안에 동아시아가 연동한다는 깨달음도 저절로 얻게 되었다. 특히 2010년 5월 오끼나와 후뗀마(普天間) 미군기지 현외 이전 공약을 일본정부가 뒤집는 발표를 한 뒤 열린, 현지주민의 반대시위 현장에서 필자는 한반도 남북화해의 동아시아적 의미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하또야마(鳩山) 총리가 공약 번복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 북한과 중국을 대상으로 한 ‘억지력 유지’인데 바로 그 직전에 한반도에서 발생한 천안함사건이 그 근거였다. 또한 2011년 일본 토오호꾸(東北) 지방에서 발생한 3•11재난, 그리고 반복되는 영토갈등을 지켜보면서, 서울과 오끼나와(의 나하那覇)에서 열린 두차례의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회의 기간에 필자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이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일상생활이 서로 연동된 문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그 연동에는 부정•긍정의 의미가 모두 포함된다. 문제는 어떻게 분쟁•갈등의 악순환이 아닌 평화•번영의 선순환으로 동아시아를 이끌 것인가다. 바로 이 때문에 ‘연동하는 동아시아’라는 핵심어는 동아시아의 과거와 오늘을 설명하는 도구인 동시에 동아시아 공생사회의 미래를 구상하고 실현하는 실천과제임을 일깨우는 것이기도 하다. 분단된 한반도는 동아시아를 악순환시킬 수도 선순환시킬 수도 있는, 연동하는 동아시아의 핵심현장 중 하나다. 또한 이곳은 필자의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에는 한반도적 시각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사실 동아시아 담론, 특히 동아시아공동체 논의의 맹점 중 하나가 북한을 간과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동아시아 담론은 한가운데에 구멍이 난 도너츠 같다는 비판까지 나오겠는가. 이때 그 구멍에 해당하는 것이 북한문제다. 이 책에서는 북한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한반도적 시각을 견지함으로써 이를 포괄하고자 했다. ‘복합국가’는 동아시아 담론을 (분단이라는) 현실에 밀착하려는 노력을 담은 핵심어다. 2000년의 졸저에서 필자는 국민국가를 넘어서기 위해 ‘국민국가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시각을 제기했고 또한 20세기 동아시아사에서 국민국가가 수행해온 ‘해방과 억압의 이중 역할’을 주목했다. 그렇다면 이번 책에서는 ‘복합국가’ 논의에 집중해 그 문제의식을 한 단계 더 구체화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시각은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역사를 새롭게 설명하고 그 미래를 전망하는 데도 유용할 것이다. 물론 이 핵심어는 한반도의 남북 측이 통일에 대해 좀더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그 모습이 드러날, 현장성이 매우 강한 발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국가로의 이행경로가 서로 다른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사례에 간단히 적용될 수는 없다. 그러나 한반도 주민들이 서로의 국가주권을 인정하면서도 점진적으로 재통합하여 단일형 국가가 아니라 한층 더 인간다운 삶을 구현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는 의지의 표현인 복합국가를 구상하고 실천할 때, 국민국가의 역할을 보는 우리의 시야는 그만큼 더 넓게 트일 것이다. 동아시아에서는 국민국가 내지 국가간체제(inter-state system)를 상대화하는 탈근대 담론이 주도하는 형세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대만독립론이나 오끼나와독립론처럼 국민국가(내지 민족주의), 달리 말하면 근대지향도 만만치 않은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다. 그토록 복잡한 현실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근대의 이중과제’, 즉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을 이중적인 단일과제로 동시에 추진하려는 안목이 요구된다. 국가 간의 결합 양상이자 국민국가의 자기 전환의 양상을 보여주는 복합국가론은 바로 그 ‘이중과제’가 현실 적합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한반도에서 발신한 복합국가론은 다른 핵심현장에서 수행되는 주민들의 자치운동과 이미 서로 참조하는 관계를 맺고 있다. 더 나아가 복합국가론은 대국화하는 중국의 과거와 미래를 우리가 새롭게 이해하는 데도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믿는다. ‘제국으로서의 중국’이라는 최근 유행하는 중국 담론과 복합국가론의 대조가 이 책에서 시도된 것에서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인이 중국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라는 주제는 필자가 중국사를 공부하겠다고 맨처음 작정한 이래의 일관된 관심사다. 이번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과제를 다루는데, 한국과 중국의 상호인식과 상호관계를 ‘연동하는 동아시아’의 시각에서 파악하되 양자의 비대칭성에 초점을 둔 것이 새로운 특징이라 하겠다. 새 저서를 출간하는 지금 이 지역에서 동아시아 담론은 ‘풍작시대’를 맞이했고, 특히 한국에서는 ‘새로운 지적 공론(公論)으로서 담론권력’이 되었다는 평까지 들을 정도로 세를 얻었다. ‘동아시아의 귀환’을 갓 거론한 10여년 전과는 사뭇 다른 지적 환경이 형성된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활기를 띠게 된 동아시아 담론이 (경제 영역의 상호의존이 심화되는 것과 달리) 정치안보 영역에서 국가주의가 위세를 떨치는 이 지역의 현실을 돌파할 힘을 과연 갖고 있는가. 필자가 이제까지의 동아시아 담론과 연대운동을 돌아보며 동아시아 공생사회의 길을 핵심현장에서 모색하는 이유는 바로 그 답을 얻기 위해서다. 그것은 지난 졸저 간행 이후의 자신의 작업을 성찰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제목을 ‘핵심현장에서 동아시아를 다시 묻다’로 정한 까닭 역시 그 때문이다. 저서의 출간에 즈음해 개인적 감회를 밝히는 쑥스러움을 무릅쓰고자 한다. 여기에 실린 글들을 쓰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나라 안팎 이곳저곳의 많은 분들의 음덕을 입었다. 그들을 일일이 거명할 수 없어 매우 안타깝지만 한분 한분의 온기가 이 책에 배어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밝혀야겠다. 그중 세 분의 스승만은 따로 적어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 이미 고인이 되신 두 분, 민두기(閔斗基) 선생은 학문의 실증성과 엄격성을 일깨우고, 리영희(李泳禧) 선생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한 치열한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다그치는 ‘균형추’로 저자의 마음속에 존재한다. 아직도 곁에서 필자의 글을 읽고 요긴한 논평을 해주는 백낙청(白樂晴) 선생은 쉼 없이 정진하는 학문 자세 및 세계사 차원과 한반도 차원을 결합하는 시야의 중요성을 모범으로 보여주신다. 이 세 분을 스승으로 모신 인연만 해도 큰 복인데, 연세대에서 필자의 강의를 듣는 제자들과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복마저 누리고 있다. 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공생의 동아시아로 가는 여정을 함께하는 최원식(崔元植) 선배의 창의적인 발상과 자상한 관심은 언제나 필자에게 큰 힘이 된다. 그밖에 이 책의 간행을 주도한 창비의 염종선 편집국장과 세심하게 편집작업을 마무리해준 박대우 팀장에게도 각별한 고마움을 전한다. 그들은 저자와 편집자의 관계 이전에 문화운동의 동료다. 제각기 쓰인 글들을 한권으로 묶어내기 위해 일부 겹치는 대목을 덜어내고 부족한 부분은 보주나 보론 형식으로 덧대는 작업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통독하다 보니 성긴 사유의 흔적이 눈에 띄어 민망함이 출간의 설렘을 누르기도 했다. 그러나 필자가 한편 한편의 글을 쓰는 과정에 기울인 노력이 같은 길을 가는 이들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기를 기대하며 책 펴내기를 감행한다. 2013년 가을 ― 백영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