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에게 짜장면을 사주었다/배가 고프면 고플수록 내가 개밥을 먹고/내가 세상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짜장면을 개에게 사주었다/기쁘다/눈부신 햇살 아래/짜장면을 맛있게 먹는 개들이 아름답다(「오늘의 기쁨」 전문)
꽃이 물을 만나/물의 꽃이 되듯/물이 꽃을 만나/꽃의 물이 되듯//밤하늘이 별을 만나/별의 밤하늘이 되듯/별이 밤하늘을 만나/밤하늘의 별이 되듯//내가 당신을 만나/당신의 내가 되듯/당신이 나를 만나/나의 당신이 되듯(「성체조배」 전문)
어두운 현실에서도 “흐린 외등의 불빛마저 꺼져버린/막다른 골목길”에 “희망의 푸른 그림자”(「희망의 그림자」)를 비추는 정호승의 시는 낮은 곳에서 더욱 빛난다. 시인은 “가난한 사람들이/배고파 걸어가는 저 거리”(「마지막 첫눈」)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외면하지 않는다. 삶의 밑바닥을 깊숙이 들여다보며, “라면박스로 정성껏 집을 짓”고 “하루에 한번씩 하관하는 연습”(「눈사람」)을 하는 사람들의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지는 시인의 손길은 더없이 따사롭다. “세상의 너와 나를 생각”하며 “낮은 데로 더 낮은 데로” 내려가 “인간의 낙엽으로 다시 썩을 수 있게 되길”(「미소」) 바라는 시인은 잠시라도 “아름다운 인간이 될 수 있”(「바닷가」)기를 꿈꾼다.
나는 길가에 버려져 있는 게 아니다/먼지를 일으키며 바람 따라 떠도는 게 아니다/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당신을 오직 기다릴 뿐이다/내일도 슬퍼하고 오늘도 슬퍼하는/인생은 언제 어디서나 다시 시작할 수 없다고/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길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당신이/지푸라기라도 잡고 다시 일어서길 기다릴 뿐이다/물과 바람과 맑은 햇살과/새소리가 섞인 진흙이 되어/허물어진 당신의 집을 다시 짓는/단단한 흙벽돌이 되길 바랄 뿐이다(「지푸라기」 전문)
타인의 고통을 한없이 선한 연민의 눈길로 바라보는 것에 비하여, 자신을 대하는 시인의 태도는 사뭇 엄격하고 가혹하기까지 하다. 시인은 “버릴 수 있는 자존심이 너무 많아서 슬펐던”(「자존심에 대한 후회」) 일생을 후회하기도 하고, “오늘도 새들이 내 얼굴에 침을 뱉고 간다”(「속죄」)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면서, “내가 인생에게 속으며 살아온 것은/내가 인생을 속이며 살아왔기 때문”(「꼬리가 달린 남자」)이라고 고백한다. 이처럼 시인은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과 “거짓의 검은 혀”(「혀를 위하여」)를 잘라내는 참회로 죄책감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시인의 가슴속에는 슬픔만 남게 되고, 타인의 고통을 나의 아픔으로 감싸안으며 “나의 불행을 통하여 남이 위로받기를 원하”(「아침에 쓴 편지」)는 시인의 기도는 간절함에 이른다.
살아서는 그 나무에 가지 못하네/(…)/내 한마리 도요새가 되어 멀리 날아가도/그 나무 가지 위에는 결코 앉지 못하네/나는 기다릴 수 없는 기다림을 기다려야 하고/용서할 수 없는 용서를 용서해야 하고/분노에 휩싸이면 죽은 사람처럼 죽어야 하고/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다 받아들여야 하네/그래야만 죽어서는 그 나무에 갈 수 있다네/살아 있을 때 짊어진 모든 슬픔을/그 나무 가지에 매달아놓고 떠나갈 수 있다네(「슬픔의 나무」 부분)
어느덧 이순의 나이를 넘긴 시인은 “늙어간다고 사랑을 잃겠”으며 “늙어간다고 사랑도 늙겠느냐”(「산수유에게」)며 어떤 사랑을 다짐한다. “별의 길을 따라”(「별의 길」) 반평생 오롯이 시의 길을 걸어온 시인은 “왜 떠날 생각을 하지 않니”(「여행가방」)라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이제 조용히 떠날 채비를 차린다. 그러나 상처 입고 외로운 마음들의 오지로 떠나는 시인의 여행은 ‘돌아옴’을 특별히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것은 곧 사랑에 다름 아니다. “인생이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과 같다”(「토요일」)는 테레사 수녀의 말씀을 되새기며, “운명의 검은 가방을 던져버리고” “종착역도 없는 역”(「나의 기차」)으로 향하는 시인의 여행길에 “축복인 양”(「눈사람」) 첫눈이 내릴 것이다.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뿐이다/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뿐이다/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떠나라/떠나서 돌아오지 마라/설산의 창공을 나는 독수리들이/유유히 나의 심장을 쪼아 먹을 때까지/쪼아 먹힌 나의 심장이 먼지가 되어/바람에 흩날릴 때까지/돌아오지 마라/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사람의 마음의 설산뿐이다(「여행」 전문)
제1부
여행
슬픔의 나무
적멸에게
이슬의 꿈
미소
손을 흔든다는 것
여행가방
종착역
신발 정리
무인등대
북촌에 내리는 봄눈
혀를 위하여
차나 한잔
초상화로 내걸린 법정스님
별의 길
토요일
마지막 첫눈
호스피스 병동
아버지의 마지막 하루
한계령
제2부
어느 소나무의 말씀
떠나가는 집
바닷가
배반
속죄
그물
지푸라기
시각장애인 안내견
사과
고드름
손에 대한 예의
산책
상처
불빛
아침에 쓴 편지
희망식당
희망의 그림자
한강철교를 지날 때마다
사직서
제3부
산수유에게
바람의 묵비
손에 대한 묵상
내 손에 대한 후회
변산에서 쓴 편지
자존심에 대한 후회
콩나물을 키우는 여자
꼬리가 달린 남자
누룽지
눈사람
파리
달팽이
지하철에서 쓴 편지
축복
발에 대한 묵상
신발
창문
물 먹는 법
종부성사
성체조배
해미성당
제4부
오늘의 기쁨
겨울밤
밤의 목련
그리운 짐승
낙타를 사랑하는 까닭
고래와 별
황태덕장에서
눈사람은 울지 않는다
그네
해우소
선암사 낙엽들을 해우소로 간다
연북정(戀北亭)
정서진(正西津)
겨울 염전
만년설
제비꽃을 보내며
나의 기차
사막에서 목이 마르면
나의 관객들에게
해설Ⅰ김영희
시인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