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보다 인간적인 로봇을 만나다!
『평양프로젝트』 『수상한 연립주택』 『남쪽 손님』 등으로 동시대 현실을 본격적으로 만화화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함으로써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눈길을 끈 만화가 오영진이 신작 장편 『어덜트 파크』를 발표했다. 전작들이 풍자적이고 우스꽝스러운 필치로 한국사회의 비열하고 어두운 구석들을 우회적으로 묘사했다면 이번 작품은 더욱 직설적으로 사람이 점점 기계를 닮아가는 세태를 그려내 한층 농익은 현실 인식을 전달한다. 『어덜트 파크』는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다른 무언가를 위한 수단이 되어버려 인간성을 거세당한 사람들의 비현실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미래극을 흑과 백으로 그려냈다. 전작에 비해 한층 숙련된 극화 솜씨와 탄탄해진 스토리라인이 작가 특유의 캐릭터와 그림체에 녹아들어 독자들을 한순간에 빨아들일 것이다.
작가 오영진은 『남쪽 손님』의 프랑스어판 Le Visiteur du Sud 출간 후 2008년 아시아 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어덜트 파크』 역시 작가의 전작을 출판했던 프랑스 인디만화 출판사 ?ditions Flblb에서 국내 출간 전부터 출간을 결정할 정도로 주목을 받고 있다. 비단 한국사회의 현실뿐 아니라 동시대 전세계의 현실일 수도 있는 이 작품의 세계는 국제적인 감각으로 평가받기에도 손색없다.
낭떠러지에 선 어른들을 위한 대화 공원, 어덜트 파크
대화 로봇을 필두로 한 비현실적인 설정과 소재에도 불구하고 오영진이 그려내는 캐릭터와 그들의 현실은 지독하게 현실적이다. 주인공 용배, 준호, 강모의 이야기는 ‘내가 아는 사람 이야기인데…’로 시작하는 술자리의 가십으로 들어봤음직한 것이다. 중소 배터리 제조회사에 평생을 바쳤지만 사업이 정리되면서 지방 발령을 눈앞에 둔 주인공 용배, 알코올중독에 빈털터리가 되어 거리를 전전하다 신장까지 팔아넘긴 강모,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된 아내를 돌보는 준호. 그들이 겪어내는 좌절과 절망으로 점철된 현실은 다소 극단적이긴 하나 우리 시대 누군가의 현실의 반영이다.
작품의 무대인 ‘어덜트 파크’(Adult Park)는 ‘대화 로봇’을 대여해주는 곳이다. 방대한 정보와 감정 쎈서를 장착한 이 로봇들은 대화할 사람이 없는 외로운 사람들의 말벗이 되어준다. 그중에서도 뛰어난 성능을 가진 ‘미스 요기’는 거의 인간에 가까운 의사소통 능력으로 단골까지 거느리고 손님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주인공 용배는 여름휴가를 맞아 우연히 어덜트 파크를 방문하고, 요기는 그에게 같은 회사에 다니는 서준호를 아느냐며 수수께끼 같은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용배는 준호에게 요기의 말을 전하고 준호가 식물인간 아내 정희를 5년간 연명시키다 결국 그녀의 뇌를 육아 로봇 개발 회사에 팔아넘겼다는 비밀이 드러난다. 정희의 뇌는 우여곡절을 거쳐 어덜트 파크에 가게 되고 정희는 요기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기억을 넘겨준다. 작품의 클라이맥스에서 아내의 기억을 가진 요기와 마주한 준호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지우기 위해 최악의 선택을 하고야 만다. 한편 용배의 대학 후배 강모는 길거리를 전전하다 신장을 팔아 호프집을 차리지만 결국 빚쟁이에 시달리다 심장까지 팔아넘기고 인생을 마감한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기계, 기계보다 더 기계적인 인간들의 세상
장기매매꾼은 준호에게 말한다. “단지 추억을 담아두는 기계에 그 많은 돈을 지불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직은 우리 사회가 이 지경에 이르진 않았지만, 그건 단지 시간문제일 수도 있다. 이미 지구 한구석에서는 장기이식 환자의 60%가 사형수의 장기를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기술적으로 가능만 하다면 지금 장기가 거래되듯 사람의 뇌도 거래될 것이다. 기계와 인간의 대비를 통해 작가는 사회에 만연한 인명경시 풍조와 인체의 수단화를 날카롭게 그려낸다. 육아 로봇 개발 과정에서 많은 기억을 잃어버려 한덩어리 뇌로만 남은 ‘사람’ 정희는 ‘로봇’ 요기에게 이렇게 말한다.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이 없다면 내가 당신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과연 누가 기계고 누가 인간인지 분간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근미래를 작가는 담담하게 그려낸다.
아무도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사회에서 슬프게도 유일한 위안은 기계에 있을지도 모른다. 현실 속에서 좌절한 사람들이 일말의 위로를 얻기 위해 도착하는 곳이 바로 어른들의 대화 공원, 어덜트 파크다. 『어덜트 파크』는 장기매매와 로봇이라는 겉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재를 지극히 현실적인 캐릭터들을 통해 솜씨 좋게 버무려내 낯선 미래를 익숙한 현실로 재현해낸다. 『어덜트 파크』는 평범한 사람들이 소통이 부재하고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구조 속에서 어떻게 비윤리적인 선택을 하고 파멸로 치닫는지 보여준다. 사람 대접받기 힘든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도 어덜트 파크에서 잠시 쉬어가며 위안받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덜트 파크
작가의 말
무더위가 찾아오면, 나는 상의를 탈의하고 러닝셔츠만 입은 채로 두팔을 벌리고 방바닥에 대(大)자로 눕는다. 시선은 천장에 고정한 채 머릿속의 모든 생각을 걷어낸다. 방바닥의 냉기가 등을 타고 올라 머리와 몸에 스미면, 나는 마음이 가라앉고 구름 위에 뜬 것 같은, 머릿속이 텅 빈 무아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에어컨을 두고서 좀처럼 사용을 허락하지 않는 아내 덕에 발견한 나름의 피서법인 셈이다. 이런 자세로 천장을 응시하노라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무아의 경지에서 수면의 경지로 스르르 넘어가게 된다. 난 거기서 요기를 만났다. 하루하루 일상은 바빴지만 생활은 그대로였다. 규칙적인 출퇴근과 일주일에 한두번씩 하는 회식, 무료한 주말. 세상은 변한다지만 생활 속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란 약정기간이 다 되어 바꾼 핸드폰 정도였으니…… 요기를 만났을 때, 회사 일과 개인적인 일로 사람 상대하는 것에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었다. 고심 끝에 이사를 감행했지만 집수리에 문제가 생겼다. 집주인과 부동산 중개업자와 한바탕 얼굴을 붉히고 언성을 높였다. 아무와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 날카로운 화살촉에 독개구리 침을 묻혀 커다란 멧돼지라도 한마리 잡아올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집을 나섰건만, 결국 맨손으로 돌아왔다. 아내 볼 면목이 없다. 슬슬 눈을 피해 내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목과 얼굴에 발그레하게 열기가 남아 있었다. 윗옷을 벗고, 방바닥에 등을 붙였다. 끈적한 PVC 장판이 아닌 목재 마룻바닥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요기는 무척 섹시했지만, 난 그녀에게서 섹시함을 느낄 수 없었다. 그녀는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차분히 나의 말을 경청해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만났던 개쉐와 씹새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소연하듯 쏟아내었다. 묵묵히 듣기만 하던 그녀가 이런 말을 했다. “모두들 그래요. 그래도 당신의 삶은 개선의 여지가 있네요. 싸울 대상이라도 있으니.” 요기와 난 대화가 무척이나 잘 통했다. 그녀는 때로는 오랜 친구처럼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고, 때로는 소림사의 멘토처럼 나의 복잡한 머릿속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었다. 예약한 시간이 다 되자, 사장은 내 테이블에 앉아 있던 요기를 불러들였다. 나는 사장에게 요기를 팔 수 없느냐고 물었다. 그녀를 내 방 책상 옆에 앉혀두고 싶었다. 퇴근 후 그녀에게 나의 하루를 위안받고 싶었다. 평범한 일상에 갇힌 나를 구원해줄 것 같았다, 그녀라면. 사장은 같잖다는 듯 피식 웃고 말 뿐이었다. 그날 밤 난 요기 생각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날 다시 그곳을 찾아갔다. 이미 거기에 요기는 없었다. 전날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마치 토네이도가 휩쓸고 지나간 듯 주변은 온통 아수라장이었고, 사장은 쓰러진 집기들 사이로 고개를 박고 꺼이꺼이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사장은 나를 보더니, “워메, 씨부럴 단속반 놈들이 내 새끼들을 다 가져갔어…… 모두 다 싸그리!!” “그러니까 나한테 팔라고 그랬잖아요! 빙신 쪼다 짓은 혼자 다 하고 있네!” 사장보다 내가 더 성을 내고 있었다. 꿈은 여기까지였다. 눈을 떠보니 아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내는 꿈 한번 요란하게 꾼다며 핀잔을 주었고, 찬 데서 자면 입 돌아간다고 계속 구시렁거렸다. 나는 아내의 잔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꿈이 식기 전에 어서 빨리 메모지에 퍼나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그때뿐이었다. 요기는 금세 일상에 묻혀버렸고, 시간은 흘렀다. 내가 다시 요기를 생각해낸 건 2009~10년 안락사 논쟁으로 한국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김 할머니 사건에서였다. 요기와 김 할머니, 나는 이 둘의 관계에서 뭔가를 찾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상상할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이놈의 반복되는 생계형 일상은 언제나 상상력의 걸림돌이었다. 조급증을 버리고 나를 재정비했다. 아내를 졸라 태블릿을 사고 포토샵을 배웠다. 출퇴근 차 안에서, 점심시간에 산책을 하면서, 회식자리에서 술을 마시며 조금씩 주워모은 상상력의 조각들을 퇴근 후, 책상 스탠드 불빛 아래서 조심스레 꺼내어 맞추어보길 수십번. 요기가 어덜트 파크로 왔다는 설정을 마쳤을 때, 비로소 펜을 들고 데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손목시계를 가지고 있다. 용두를 돌려 밥을 주거나 흔들어야만 가는 오토매틱 시계다. 이 시계는 하루에 한두번은 멈춰서곤 한다. 이 시계를 믿고 시간 약속이라도 할라치면 자칫 낭패 보기 일쑤다. 아내는 왜 그렇게 멋져 보이지도 않고 맞지도 않는 시계를 차고 다니느냐며 생일선물로 시계를 사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내겐 시각이 맞고, 안 맞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시계 본연의 역할로 볼 땐 고물로 치부될 정도이지만, 가만 이 기계의 행태를 관찰해보면 오랜 시간 인간과 함께한 까닭에 인간에 동화된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이다. 손목에 얹힌 작은 기계지만 흡사 나를 닮았다. 살아온 세월도 같고, 하루 두바퀴의 작업량을 채우기 위해 빌빌거리는 모습이나, 밥때를 기다리고, 누군가 흔들어줘야만 자극이 되어 움직이는 그 모습이 내 모습인 것이다. 그러다 가끔 작업을 거부하고 멈춰선 시곗바늘을 볼 때면…… 나는 이해한다. 주어진 공간에서 부지런히 돌고 돌지만, 변화를 찾아보기 힘든 생활. 그렇다고 삶을 쉽사리 우회하기도, 유턴하기도 힘들다는 것을. 그래서 그냥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멈춰서 있는 것을. 결국 요기와의 만남이, 데생을 마치고 난 후엔 내 이야기가 되어버린 듯하다. 디지털이란 변화 속에서 수작업만 고집했던 나는,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토끼도 거북이도 아닌 거북이 뒤를 따라 기어가는 달팽이였다. 정말 달팽이같이 이 만화를 그렸다. 결혼 후 처음으로 만화 작업을 위해 삼류 남편에게 선뜻 큰 투자를 해준 아내와 아직까지 캠핑에 잘 따라와주는 진우, 그리고 아빠 작업을 방해하지 않고 잘 놀아준 지나, 모두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다음엔 거북이 정도는 되어야지……
2013년 6월 오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