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뇌하며 살아가는 인간들의 진면목을 담은 서사문학의 절창(絶唱)
다산학술상, 만해문학상, 단재상, 도남국문학상, 인촌상을 수상한 한국 최고의 한문학자 임형택 교수의 대표작 『이조시대 서사시』(전2권, 1992년 초판 출간, 창비)가 새롭게 출간되었다. 전통적인 실사구시의 학풍을 현대적으로 계승해 한국학의 질적 수준을 높인 것으로 평가받는 저자는 사회 모순의 핵심을 파고드는 엄선된 작품을 통해 조선왕조 서민대중의 삶의 질곡과 애환을 다채롭게 그려낸다. ‘이조시대 서사시’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린 저자는 지난 20년간의 연구성과를 집대성해 이 책에 담았다. 조선왕조 서사문학의 절창(絶唱)으로 꼽히는 122편의 작품을 가려 뽑고, 각 편마다 작자 소개와 작품 해설을 수록해 작품 원작자에 대한 정보와 집필 동기, 시대적 정황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풍류와 유람의 문학이자 서정시가 주류인 우리 한시 전통의 경계를 무한히 확장한 『이조시대 서사시』는 정민, 강명관, 안대회 등의 후학들이 시정의 생활을 다룬 교양서를 출간하는 데 물꼬를 튼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문단편을 집대성한『한문서사의 영토』(태학사 2012)를 통해 500년 조선의 스토리를 보여준 임형택 교수는 『이조시대 서사시』에서 사회 모순과 기층의 삶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시인․작가의 감성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이제 우리는 시공을 축약한 한편의 단막극이자, 희로애락의 대서사가 펼쳐지는 드라마로서 한시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떠돌이 여자가 자기 아기를 길에 버려 호랑이 밥이 되게 만든 기막힌 삶의 사연, 거지 노인이 재산과 처자를 잃고 유랑하는 괴롭고 쓸쓸한 인생 경로, 사랑하는 이를 못 잊어 가슴 끓이는 애절한 심사를 듣노라면 지금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은 수백년 전의 삶의 애환이 가슴 저리게 다가올 것이다.
문화 한류의 흐름은 이제 한국적인 문화 콘텐츠 발굴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뛰어난 상황 묘사와 생생한 캐릭터 구현 그리고 극적인 장면 연출과 주인공 내면의 감성 표현까지, ‘이조시대 서사시’가 보여주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시대극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와 학계의 전문 연구자는 물론이고 문학․영상 등 다양한 매체의 종사자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보물창고가 열린 셈이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풍자와 해학이 어우러지고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가득한 우리의 이야기, 시대와 개인의 고통을 아파하는 조선의 시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사극을 능가하는 극적인 연출,
캐릭터가 살아 있는 이야기의 보고
저자거리 이야기를 채록한 한문단편과 달리 임형택 교수가 엄선한 서사한시는 시공을 축약한 극적인 연출로 독자들의 감성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4월 15일, 동래성 안을 가득 메운 곡소리에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이안눌의 「4월 15일」은 동래성에서 왜적의 손에 백성들이 도륙당한 16년 전의 사건을 그날 아침의 정경을 통해 재현해낸다(2권 본문 70~73면 참고). 정약용의 「소경에게 시집간 여자」에서는 서술 공간과 시간이 한 지점 한 시각에서 시작하여 끝맺고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한창 꽃처럼 피어난 18세의 소녀가 아버지의 탐욕 때문에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전처 소생의 두 딸과 아들이 있는 늙은 소경에게 시집하는 정황, 그 딸의 기구한 운명을 가련하게 여기는 어머니의 모습이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다(2권 본문 286~316면 참고). 이조원의 「대고」에서는 서울 시정에서 거대한 부를 축적한 한 상인의 위력과 그의 화려한 생활 모습이 상세하게 그려진다. 깔개는 몽골산, 안석은 일본산, 은주시대 청동기 골동품에 상아로 엮은 자리까지 페르시아 시장을 구경하는 듯한 집안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1권 본문 319~29면 참고).
이제껏 보지 못한 한 개인의 드라마를 펼쳐 보이는 작품도 여럿이다. 어려서 중이 되었다가 환속을 하고, 악사가 되어 국공(國工)으로 명성을 날리더니 전락해서 떠돌던 끝에 거지 신세로 황해도의 한 절에 붙어사는 처지의 김명곤의 이야기(「후비파행」, 2권 본문 394~406면 참고), 천안 고을의 아전으로 태어나 병자호란 때 포로로 끌려갔다가 여진족․몽고족 사이에서 용맹을 날리다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이윽고 출가해서 외롭게 떠돌다가 지금은 이화함에 머물고 있는 낙백한 늙은이 이야기(「이화암의 늙은 중」, 2권 본문 101~14면 참고)는 그 자체로 한편의 드라마다. 김재찬의 「부여에서 만난 검객」은 한시 전통에서 찾아보기 힘든 무협을 주제로 한 시편이다. 결의형제를 한 세 검객이 있었는데 막내가 살해당하자 남은 두 형님이 원수를 갚는 줄거리다. 부여와 전주, 백두산까지 서사의 공간이 확장되었다 하룻밤 사이에 무서운 복수극이 벌어졌다가는 ‘상황 끝’이 되는 이야기 전개는 오늘날의 무협영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신비하고 초월적이다(2권 본문 457~66면 참고).
임형택 교수가 처음 발굴해낸
국문학사의 소중한 작품들
임형택 교수를 통해 처음 소개돼 국문학사에서 리얼리스트로서의 풍부한 성과를 보여주는 작가로 인식되고 있는 권헌의 작품에는 기존의 역사서에는 비어 있는 수많은 인물군상들이 생동감 있게 그려진다. 「시노비」 「관북백성」 「고인행」 「쌀 쓰는 여인」(1권 본문 238~55면 참고)에는 노비와 유민, 나루터의 하역 작업자, 여성 노동자 등 가난하고 비천한 삶을 사는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임형택 교수는 이들의 삶을 인간적 신뢰와 애정을 가지고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는 권헌의 시대감각에 놀라움을 표한다.
정약용의 작품에 이르면 현실주의 문학으로서의 ‘이조시대 서사시’의 모습이 더욱 확연해진다. 젊은시절부터 정치사회의 모순을 심각하게 의식하고 개혁적 방향을 모색한 정약용에게 귀양살이 18년은 한 개인의 비운임과 동시에, 유배지에서 직접 체험해 얻은 인식과 느낌을 시작(詩作)으로 표출함으로써 현실주의 문학의 풍부한 성취를 이루게 한 시간으로 평가할 수 있다. 죽은 아이에게까지 군포를 물리는 현실에 좌절한 한 남성이 ‘자식 낳은 죄’를 탓하며 자신의 생식기를 절단한 사건을 묘사한 「애절양」, 관리들의 횡포를 막기 위해 어린 소나무를 뽑아내는 백련사 중의 이야기를 다룬 「소나무 뽑아내는 중」, 1809년의 기록적인 가뭄에 “자식 하나 대신 죽여 비 한번 오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여인의 이야기가 담긴 「전간기사․모를 뽑아버리다」 등은 유배 생활의 경험이 만들어낸 특별한 작품이다(1권 본문 339~72면 참고).
이와 함께 이 책에는 정약용의 귀향이 풀리던 날에 기뻐할 수만은 없는 한 여인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다산의 소실이 내침을 당했는데”로 시작하는 「남당사」는 임형택 교수가 처음 발굴해 소개한 작품으로, 다산이 강진 유배지에 만난 여인인 ‘홍임이 모’의 절절한 심정을 다루고 있다(2권 본문 363~84면 참고). 임형택 교수는 홍임이 모녀를 집에 그냥 두기 곤란한 사정을 “비록 해배되었다지만 정적들의 눈초리를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상황에서 찾는다.
‘이조시대 서사시’를 키운
조선왕조의 체제 모순
이조시대 서사시의 발전과 체제 모순의 심화는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애민의 정치학에서 백성은 보호의 대상이다. 그러나 실상은 수취의 대상이니, 애민이란 수취의 대상을 보호한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임형택 교수는 백성들이 가렴주구로 인해 삶이 파탄에 이르고 유리방랑하게 되는 상황을 지나치지 않고 조선왕조의 시인들이 붓을 들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러한 시인들의 작품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이번 책에서도 1권 전체를 ‘체제 모순과 삶의 갈등’에 할애했다. 임교수는 사회의 주요 모순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도 놓치지 않는다. 2권에서는 굴곡 많은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다루었다. 사서(史書)에 비유하자면 1권이 본기(本紀), 2권은 열전(列傳)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열전의 주인공들은 전쟁터의 이름 높은 장군부터 무명의 병졸(제4부 국난과 애국의 형상),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고통받았던 여성(제5부 애정 갈등과 여성), 시대를 잘못 타고난 예인 및 협객들이다(제6부 예인 및 시정의 모습들). 임교수는 “시인들은 주체적 자세를 견지함으로서 자신의 계급적 속성을 넘어서 보편적 인간애를 구현”할 수 있었으며 “근대로 진입하기 이전의 우리 문학사에서 이조시대 서사시가 이룩한 현실주의적 성취는 풍부하고 값진 것”이라고 평가한다.
시인•작가들이 서사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시대 상황은 가히 충격적이다. 유복자로 태어난 귀한 아기가 제 어미의 등에 업혀 점호를 받으러 갔다가 죽게 된 기막힌 사연(「군정의 탄식」, 1권 본문 205~10면 참고), 극심한 가뭄도 모자라 두만강을 넘어온 쥐떼 때문에 고통받는 변경의 삶(「두만강 쥐떼」, 1권 본문 275~80면 참고), 갖가지로 빼앗기고 뜯긴 나머지 땅을 찾아 산골로 들어왔다 수확기에 다시 또 군교들에게 곡식을 강탈당하는 화전민의 기구한 운명(「산골 이야기」, 1권 본문 436~41면 참고), 천길 낭떠러지 위에서 석이버섯을 채취하는 부자의 애환(「석이행」, 1권 본문 193~97면 참고) 등이 사실적인 필치와 빼어난 감성으로 그려진다.
조선왕조의 시인들은 자신들이 겪은 일을 기록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조정의 무능함과 정책의 폐해를 날카롭게 짚어내기도 한다. 허격의 「일환가」는 조선왕조의 권력의 부정부패가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양가의 여자를 약탈하는 만행을 저지른 권세가의 종이 엉뚱한 사람을 주모자로 조작해서 가벼운 형벌을 받고, 또 그나마 바꿔치기를 해서 조카를 귀양 가게 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1권 본문 169~77면 참고). 「구리쇠 실은 소」는 화폐 수요가 늘어난 조선 후기의 상황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구리쇠가 동래상인을 통해 수입되고 그것은 다시 동래상인이 수입한 일본 상품을 매입하는 데 들어가는 구조를 비판하는 내용이다(1권 181~85면 참고).
한문학, 그중에서도 개인 서정을 읊어내는 양식으로 여겨지던 한시 속에서 서사시를 발견한 임형택 교수는 그 첫 만남을 경이로움 자체였다고 기억한다. 30여년 전 허균의 「객지에서 늙은 여자의 원성」을 발굴한 이래, 우리의 문학유산 속에서 현실주의 문학의 풍부한 자산을 발굴해 한국학의 지평을 넓히는 것을 필생의 과업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간 축적한 방대한 고전문헌 속에서 122편의 ‘이조시대 서사시’만을 가려 뽑아 20년 만에 다시 내놓는 이 책 『이조시대 서사시』를 통해 독자들은 빼어난 작품을 읽는 재미는 물론 더욱 높아진 한국학(국문학)의 위상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제4부 국난과 애국의 형상
송대장군가(宋大將軍歌)・임억령
달량행(達梁行)・백광훈
녹도가(鹿島歌)・정기명
비분탄(悲憤歎)・조성립
시신을 지고 가는 노래[負尸行]・임환
코 없는 자[無鼻者]・임환
객지에서 늙은 여자의 원성[老客婦怨]・허균
4월 15일(四月十五日)・이안눌
김응하 장군을 추도하여[金將軍應河輓]・송영구
표류한 상인들 노래[漂商行]・최승태
홍의장군가(紅衣將軍歌)・김창흡
길마재 노래[鞍峴歌]・김창흡
이화암의 늙은 중[梨花庵老僧行]・최성대
임명대첩가(臨溟大捷歌)・홍양호
유거사(柳居士)・홍신유
조술창 노인의 장독 노래[助述倉翁 醬瓮歌]・신광하
운암서 왜적을 격파한 노래[雲巖破倭圖歌]・유득공
어재연 장군을 애도하는 노래[哀魚將軍]・이희풍
거북선 노래[李忠武公龜船歌]・황현
제5부 애정 갈등과 여성
이씨 부인의 노래[李少婦詞]・최경창
용강사(龍江詞)・백광훈
그네타기 노래[鞦韆曲]・임제
황주 염곡(黃州艶曲)・허균
단천의 절부[端川節婦詩]・김만중
동작나루 두 소녀[江上女子歌]・이광정
향랑요(薌娘謠)・이광정
산유화 여가(山有花女歌)・최성대
장대지(章臺枝)・이광려
짓다 둔 모시옷[白紵行]・채제공
윤가부(尹家婦)・정범조
오뇌곡(懊惱曲)・신국빈
여사행(女史行)・이규상
옥천 정녀 노래[沃川貞女行]・김두열
전불관행(田不關行)・성해응
소경에게 시집간 여자(道康瞽家婦詞)・정약용
모심기 노래 5장[秧歌五章]・이학규
방주가[古詩爲張遠卿妻沈氏作]・김려
남당사(南塘詞)・작자 미상
제6부 예인藝人 및 시정市井의 모습들
한양 협소행[漢陽俠少行走贈羅守讓]・조찬한
후비파행(後琵琶行)・성완
권국진을 송별하는 노래[送權國珍歌]・신광수
김생가[送金生赴愁州行營作金生歌贈之]・신광하
최북가(崔北歌)・신광하
김홍도[題丁大夫乞畫金弘道]・신광하
달문가(達文歌)・홍신유
추월가(秋月歌)・홍신유
금사사의 노거사 노래[金沙寺老居士歌]・김재찬
부여에서 만난 검객[扶餘豪士歌]・김재찬
천용자가(天慵子歌)・정약용
남문 밖에서 산대놀이를 구경하고[南城觀戱子]・강이천
걸사행(乞士行)・이학규
비파가[崇禎宮人屈氏 琵琶歌]・신위
조령서 호랑이 때려잡은 사나이[鳥嶺搏虎行]・이형보
이시미 사냥[擒螭歌]・이형보
탐라기(耽羅妓)・황상
한구편(韓狗篇)・이건창
‘이조시대 서사시’란 제목으로 이 책을 펴낸 것은 20년 전이었다. 기왕의 체제를 그대로 가져가면서 부분적으로 손질하고 그사이에 새로 발굴한 작품들을 추가하여 지금 이 책을 내놓는다. 서명을 정확히 붙이자면 ‘증보신판 이조시대 서사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원래 초판에는 104편이 수록된 것이었는데 이제 18편이 더 들어가서 모두 122편이 된다. 122편이면 적은 분량이 아니지만 한시의 방대한 축적을 생각해보면 극히 미소한 부분이다. 그런데 이처럼 따로 표출하는 까닭은 어디 있는가? 책의 성격 및 취지는 뒤에 붙인 「현실주의의 발전과 서사한시」라는 제목의 총설에서 비교적 상세히 밝혀놓았으므로 중언부언할 필요가 없겠으나, 이들 서사시가 현재적 관점에서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인지는 여기서 대략 언급해두고자 한다. 여기에 뽑은 시편들은 인물이 등장하고 사건이 전개되는, 말하자면 ‘이야기시’(담시譚詩)다. 한시라는 용기에 담긴 것이기에 서사한시인데, 친숙한 말로 서사시다. 오늘의 근대시를 한번 돌아보자. 서정시의 주류적인 형세에 비해 서사시 부류는 비주류이고 비중이 큰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근대시가 출범한 당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사시에 속하는 작품이 심심찮게 발표되었으며, 그중에 문제작으로 화제에 오르고 문학사에서 평가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 시문학이 서정시 위주로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서사시 부류 또한 결코 간과할 수 없음이 물론이다. 한시는 속성 자체가 ‘시언지詩言志’요 성정性情의 발현이라고 했듯, 서정을 주조로 하면서도 대단히 포괄적이다. 그래서 근대문학의 장르 개념을 대입해보면 한시란 “단일 장르라기보다 복합 장르 내지 장르 혼재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고 말했던 터다. 이런 한시의 영역 속에 서사시적 성격이 수렴되어 미분화 상태로 있었다. 중국의 시사詩史를 종관해보면 한漢대의 악부시樂府詩에서 서사시의 빼어난 작품들이 발견되며, 시의 고전적 황금기라 할 수 있는 당唐으로 와서 서사시 역시 정점에 도달했다. 그후로도 서사시 형태는 명맥이 이어졌으나 성과는 별로 뚜렷하지 못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반면, 한국의 한시사를 보면 서사시는 조선왕조 5백년 동안에 본격적으로 발전하여 성황을 이룬 것이다. 바로 이 두권의 책에 실린 122편이 실물로서 증명하는 바다. 제1~3부에 수록된 ‘체제 모순과 삶의 갈등’을 그려낸 작품군은 실로 서사시의 본령이다. 다음 제4부에서는 ‘국난과 애국의 형상’을 묘사하고 있으며, 제5부로 가서는 ‘애정 갈등과 여성’, 제6부로 가서는 ‘예인藝人 및 시정市井의 모습들’을 만나게 된다. 우리는 사실적이면서 풍부하고 다양한 문학적 성취를 감상할 수 있다. ‘이조시대 서사시’의 이러한 문학적 성취는 시야를 넓혀 동아시아 한자권에서도, 나 자신 식견이 좁은 탓인지 모르겠지만,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것 같다. 그런 만큼 특이하고 중시할 필요가 정히 있다. 서사시가 하필 이조시대에 성황을 이루었던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여기에 두가지 측면을 짚어볼 수 있다. 객관적 상황과 주체적 조건이다. 요컨대 조선왕조의 역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하여 차츰 심화된 체제적 모순이 서사시의 배경이 되었으니, 곧 서사시를 산생한 객관적 상황이다. 이 책에서 ‘서사시적 상황의 발전’이라고 규정한 그것이다. 이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시적으로 표출한 주체가 다름 아닌 문인지식인, 즉 사대부들이었다. 저들 유교적인 인정仁政과 애민愛民의 정신으로 투철하게 각성한 주체가 ‘서사시적 상황의 발전’에 대응한 결과물이 바로 서사한시다. 오늘의 시대상황에서 작가・시인은 과거의 문인지식인과 입장이 크게 다르다. 하지만 사회현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을 포착하고 표출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상통한다. 그런 점에서 ‘이조시대 서사시’의 현재성은 확실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자리에서 한가지 해명해둘 말이 있다. 책 이름에 이조시대를 붙인 이유다. 이조라는 호칭은 일제의 잔재라 하여 못마땅하게 여기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종래 한자권에서는 왕조의 명칭을 이당李唐, 조송趙宋식으로 성을 붙여 구분 짓는 것이 관행이었다. 같은 한자권이었던 베트남의 역사에도 여조黎朝, 완조阮朝 등이 나오고 있다. 우리의 경우 단군조선, 위만조선 등과 구분 지어 이조라고 불러서 안 될 것이 없다. 또한 지금 우리의 분단상태에서 한쪽은 국호를 엄연히 조선이라고 쓰고 있다. 이조 대신에 조선이라고 부르는 데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북의 조선을 배제하고 무시하는 의식이 깔려 있는 셈이다. 이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 싶다. 이번에 작품을 새로 추가하는 과정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이 있다. 서거정의 「토산 시골집에서 들은 농부의 말[兎山村舍 錄田父語]」은 박혜순 교수가 진작 알려주었던 것이며, 조용섭의 「달성 아이[達城兒]」는 강명관 교수가, 이규상의 「조장군가趙將軍歌」는 안준석 군이 자료를 제공해준 것이다. 고맙기 이를 데 없다. 나는 이조시대 서사시 에 앞서 한문서사의 영토 를 내놓았다. 양자는 자매편이다. 나 자신의 이야기문학에 대한 관심이 자매편의 간행으로 일단락 지어진 모양이다. 이런 성격의 작업에 오역・오류는 아무래도 없을 수 없다. 양해와 교시를 구해 마지않는다.
2012년 마지막 달을 보내며 임형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