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감 넘치는 ‘동네 전설’, 짜릿한 이야기의 맛
『우리 동네 전설은』은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톡톡한 작품이다. 봄날, ‘무릉도원’처럼 평화로워 보이는 시골 마을에 전학 온 주인공이 무서운 동네 전설에 대해 듣는 도입부터 독자를 단숨에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인다. 이 전설은 ‘아이들의 간을 빼앗는 방앗간 노부부’ ‘아기 잃은 여자의 영혼이 떠도는 야산’ 등 도시 출신의 준영이 믿기는 어려운 것이지만, 낡은 방앗간 같은 공간의 으스스한 분위기, ‘동네 형이 직접 봤다’는 식의 소문, 무엇보다 오랜 세월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가장 흥미진진한 형태로 다져진 ‘이야기’의 힘 때문에 무시할 수가 없다. 전작 『봉주르, 뚜르』와 『서찰을 전하는 아이』 등에서 탄력있는 서사로 주목받은 작가 한윤섭은 이번 작품에서 ‘이야기(전설)의 힘’을 전면에 배치했다. 여기에 전설을 둘러싼 아이들만의 스릴 넘치는 모험, 차차 밝혀지는 뜻밖의 비밀 때문에 독자의 호기심은 극대화된다.
개성 있는 인물과 빠른 호흡, 현대적인 감각으로 그려낸 시골 이야기
주인공 준영은 이제껏 동화에서 보기 어려웠던 새롭고 현실적인 캐릭터다. 목사인 아빠의 결정으로 갑자기 시작된 시골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아이들에게 ‘나쁜 인상을 주지는 않으려고’ 적절히 예의를 갖추는 도시 아이로, 전설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집과 학교를 오가면서도 겁먹지 않은 것처럼 보이려 애쓰고 아이들과 가까워졌을 때도 결코 ‘서리’만은 함께 하지 않는 등 고집을 지킨다. 아이들을 잡아 가둔다는 돼지할아버지네 밭에서 밤 서리를 하던 아이들과 함께 도망칠 때는 먼저 달아나지 않고 “같은 위치에서 달리기 시작하는 것으로” 아이들 앞에서 자존심을 지킨다. 득산리의 세 아이도 개성을 뽐낸다. 특히 ‘일흔 살 노인’이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을 설명하듯 실감나게 전설을 들려주는 덕수는 장난기 많고 모험을 좋아하는 시골 아이다. 새로 이사 온 아이를 경계하거나 곯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동무로 받아들이는 것은 집집의 대소사를 서로 알고 지내는 마을 공동체 안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된 성정이다. 덕수를 비롯한 아이들은 전설을 완전히 믿지 않으면서도 아이들답게 그것이 주는 긴장감을 즐긴다. 이처럼 잘 만들어진 등장인물들은 상황에 따라 입체적으로 움직이면서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그리고 시간의 비약을 통한 빠른 전개, 감각적이되 간결한 문장 덕에 모처럼 이야기의 ‘맛’을 느끼게 한다. 시골의 정경과 아이들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서는 풍성한 문학적 향취를 느낄 수 있다. 고만고만한 생활 이야기를 벗어나면서도, 자칫 익숙하게 느껴질 수 있는 ‘시골 이야기’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새롭게 풀어낸 작가의 솜씨가 탁월하다.
아름다운 자연과 따뜻한 이웃 속에서 성장하는 아이들
준영은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자연 속에서 직접 계절의 변화를 느끼면서 차차 득산리를 좋아하게 된다. 어느 날 준영은 밤 서리를 하는 아이들을 따라 갔다가 돼지할아버지에게 붙잡히는 바람에 돼지할아버지가 무섭고 무뚝뚝하지만 외로운 사람이고, 아이들이 철조망을 넘다 다칠까 봐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치매를 앓던 방앗간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낡은 방앗간에 상중임을 알리는 등이 내걸리자 늘 그 앞을 뛰어서 지나가던 아이들은 함께 숙연해진다. 준영은 돼지할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동무였던 방앗간 할아버지를 말없이 위로하는 장면을 본다. 한때 준영과 친구들처럼 함께 동네를 누비고 놀며 자란 두 사람이 어느덧 득산리 ‘전설’ 속 할아버지가 되어 담담히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장면은 할머니를 밤나무 아래 수목장하기로 결정하는 장면과 함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하며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결국 작가는 이웃과 공동체가 살아있는 마을, 사람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마을을 그리면서 그 안에서 아이들이 어른으로 자라는 성장의 스토리를 담고 싶었던 것이다. 앞으로 마을을 지켜갈 아이들은 세월이 흘러 또 다른 전설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질 ‘전설’, 이야기의 힘을 새삼 확인하듯이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들은 새로운 전학생에게 다시 득산리의 전설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작품 줄거리
도시에 살던 준영은 아빠의 결정으로 시골 마을 득산리로 이사 온다. 낯선 시골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아이들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싶었던 준영은, 동네 아이들에게 초등학생들은 학교에서 마을까지 절대로 혼자 갈 수 없다는 득산리의 규칙을 듣고 당황한다. 아이들의 설명에 의하면 마을 곳곳에는 아이들의 간을 노리는 방앗간 노부부, 뱀산을 떠도는 아기 잃은 여자의 영혼, 아이들을 보면 정신이 이상해지는 돼지할아버지 등에 대한 전설이 서려 있다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내용이지만 아이들의 진지한 태도와 흥미로운 이야기의 묘한 힘 때문에 준영 역시 아이들과 어울려 학교를 오가게 된다. 아이들과 친해지고, 햇빛과 공기를 통해 계절의 변화를 느끼면서 준영은 차차 득산리를 좋아하게 되는데, 어느 날 돼지할아버지네 밤밭에 서리하는 아이들을 따라갔다가 돼지할아버지에게 붙잡히고 만다. 준영은 울음을 터뜨리고, 고함치던 돼지할아버지는 뜻밖에도 준영에게 새벽에 혼자 밤을 주우러 오라고 한다. 반신반의하며 밤밭을 찾은 준영은 말없이 돼지할아버지 곁에 앉아 새벽이슬에 밤알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돼지할아버지가 무서운 사람이지만 쓸쓸하고, 서리하느라 아이들이 다칠까 봐 걱정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얼마 뒤 치매를 앓던 방앗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준영은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던 돼지할아버지가 방앗간 할아버지를 말없이 위로하는 장면을 본다. 땅에 묻히고 싶어 했던 할머니를 밤나무 아래 수목장한 뒤, 아이들은 새로운 봄을 맞이한다.
1. 봄, 무릉도원
2. 여름, 길가의 전설
3. 집으로 가는 길
4. 상엿집
5. 가을, 밤밭
6. 돼지할아버지
7. 어딘가 다른 날
8. 밤나무 아래서
9. 겨울, 첫눈
10. 밤나무가 되다
11. 봄, 다시 무릉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