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청소년문학 46

사투리 귀신

남상순  장편소설
출간일: 2012.08.17.
정가: 15,000원
분야: 청소년, 문학

“사투리를 쓰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요.”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우리들의 외침

 

 

 

중견 작가 남상순의 신작 『사투리 귀신』이 창비청소년문학 46권으로 출간되었다. 이 땅에서 설 곳을 잃어 가는 사투리를 알레고리로 우리 사회의 ‘편 가르기’ 세태를 재치 있게 꼬집는다. 미술 대학 진학의 꿈을 안고 시골에서 올라온 주인공 연정은 사투리를 무시하고 우스갯거리로 만드는 세상에 긍정과 태평함으로 맞서며 웃음을 자아낸다. 특히 동네의 빈집에 나타난다는 ‘사투리 귀신’의 사연을 알게 된 후 동네 사람들을 설득해 빈집을 복지 센터로 만들며 새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은 힘차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연대의 의미를 깨닫는 우리 청소년들을 능란한 필치로 그려 낸 남상순의 필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존재의 의미를 타인에게서 찾도록 종용하는 사회 비틀어 보기

 

 

 

『사투리 귀신』은 사람들이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아야만 행복하다고 느끼며 사회의 중심부에서 밀려나지 않은 것에 안도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기보다는 세상이 원하는 모습, 사회가 요구하는 인물상으로 비치도록 꾸미는 일이 잦다. 작가 남상순은 바로 이런 사회의 모습을 비틀어 보기 위해 표준어와 사투리의 역학 관계를 은유로 사용한다. 표준어만을 공식적인 발화 형태로 인정하는 사회에서 사투리는 촌스럽고 저급한 언어라는 편견에 시달리며 설 자리를 잃어 간다. 『사투리 귀신』은 사람들의 의식에 자리 잡은 사투리에 대한 편견에 문제를 제기하며 이러한 인식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주인공 연정과 ‘사투리 귀신’을 통해 보여 준다. 사투리 귀신은 연정이 이사 온 동네의 빈집에 나타나는 귀신으로, 손꼽히는 아나운서였던 빈집 며느리의 혼령이다. 하루라도 사투리로 말하지 않으면 몸에 두드러기가 났던 그 며느리는 가족들로부터 홀대받고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작품은 주인공 연정과 죽은 며느리의 사정을 겹쳐 보이며 연정이 긍정적인 자세로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타인과 슬기롭게 연대하는 모습을 발랄하게, 감동적으로 그려 낸다.

 

 

 

 

 

희망은 찾는 곳에서 피어난다

 

 

 

반듯하고 깨끗한 도시 그리고 그 한가운데 괴물처럼 버티고 있는 빈집. 연정은 빈집에 깊은 인상을 받고 모두가 귀신 붙는다며 꺼리는 그곳에 성큼 발을 들여놓는다. 그리고 계약 친구 영교와 함께 빈집에 매일 찾아가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 연정과 영교는 이런 행위가 바로 빈집의 ‘얼굴’을 찾기 위한 일이라고 말하며 공간도 마음을 주고 관심을 주면 마음을 연다고 말한다. 『사투리 귀신』에서 집의 얼굴을 찾으려는 노력은 사물의 본질에 대한 모색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바로 폐가가 다시 반짝거릴 수 있는 집으로 탈바꿈할 희망의 씨앗을 뜻한다. 아이들은 결국 동네 어른들을 설득하고 모금 운동을 벌여 빈집을 복지 센터로 만드는데, 그곳은 살아 있는 것은 뭐든 소중하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는 곳이다. 연정이 희망을 찾는 것은 빈집에서뿐만이 아니다. 연정의 아빠는 친구로부터 배신당한 후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해 정신병을 얻었다. 연정은 이런 아빠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큰집에 얹혀살게 된 처지이지만 결코 희망을 잃지 않는다. 빈집을 고치며 한층 성장한 연정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내일을 단정 짓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작가 남상순은 이런 아이들을 통해 희망은 찾는 곳에서 피어난다는 것,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힘써 덤벼 보는 게 인생임을 역설한다.

 

 

 

 

 

괄호 ― ‘우리’의 다른 이름

 

 

 

『사투리 귀신』은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왕따’ 문제를 들여다본다. 사투리가 표준어에 밀려 제자리를 잃은 것처럼 이 작품 속에는 다수가 속한 집단에 끼지 못하고 밀려난 사람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남상순은 이런 다양한 상황들을 ‘괄호’라는 은유를 사용해 함께 묶어 낸다. ‘괄호’는 ‘우리’의 다른 말로 ‘안’과 ‘밖’, ‘우리’와 ‘우리가 아닌 다른 것’을 구분해 내는 장치로 활용된다. 사투리는 괄호 밖에 있는 것이며, 사투리를 쓰는 연정도 괄호 안에 들어올 수 없다.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신 병원에 입원한 연정의 아빠도, 독특한 성격으로 아이들이 피하는 영교도 괄호 밖에 존재한다. 이 사회에 속한 사람들은 모두 죽기 살기로 괄호에 속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그 구분 짓기, 편 가르기의 폭력에 희생당한 사람들은 낙오자로 치부된다. 『사투리 귀신』은 이 같은 악순환을 극복하는 방법은 바로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동시에 자신의 개성 있는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진심 어린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 줄거리

 

 

 

미술 대학에 진학할 꿈을 안고 시골에서 올라온 연정. 큰집의 주소 하나 달랑 들고 복잡한 서울 거리를 헤매는데, 맞닥뜨린 것은 폐가나 다름없는 빈집이다. 주소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우여곡절 끝에 큰집을 찾지만, 인상 깊었던 빈집의 이미지가 자꾸 떠오른다. 동네 사람들은 빈집에 들어가면 귀신이 붙는다며 모두 피하는데 괴팍한 성격으로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같은 반 친구 영교는 그 집에서 그림을 그린다. 사투리를 쓰는 탓에 학교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연정은 그런 영교에게 묘한 연대감을 느끼고, 두 여학생은 의기투합하여 귀신 들린 빈집의 비밀을 풀어 나간다. 그리고 알게 된 귀신의 정체는 바로 빈집에 살던 젊은 색시라는 것. 색시는 우리나라 최고의 아나운서로 활약했는데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로 들어앉았다. 그러나 색시는 단 하루라도 사투리를 쓰지 않으면 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병을 앓았고 시부모와 남편, 그리고 아이들까지 그런 색시를 외면했다. 색시는 결국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연정은 빈집에 얽힌 비밀을 알고 난 후 아이들과 함께 동네 사람들을 설득해 빈집을 고쳐 복지 센터로 만들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누구나 스스로의 모습 그대로 사랑받을 만하다는 생각을 키우고, 마침내 빈집도 제 얼굴을 찾고 연정이와 영교는 진짜 친구가 될 준비를 한다.

목차

1. 자양로 56길 20번지는 빈집이다

2. 어머, 네가 여긴 웬일이니?

3. 내 방 앞에 펼쳐진 드넓은 옥상

4. 복도에서 생긴 일

5. 믹서와 견적과 신앙심

6. 빈집 마당에서 그림 그리는 그녀는

7. 법적인 모순

8. 빈집의 얼굴을 찾아라

9. 슈퍼 아줌마가 말하는 할머니 사연

10. 사슴은 그렇지 않아

11. 나의 적당한 친구들

12. 색시는 왜 자살했을까

13. 노란 나무 대문 집 할머니의 진술

14. 큰엄마의 분노

15. 초심 돌아보기

16. 가은읍 전곡리 243번지도 빈집이다

17. 하룻밤 새에 달라진 것들

18. 연을 보았습니까?

 

작가의 말

저자의 말

아이들은 공부가 아니라 ‘관계’ 때문에 날마다 히말라야를 등반할 때와 같은 긴장과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하면 진부한 이야기가 될까요? 아니면 현실 왜곡인가요? “네가 아무리 내 뒷담화를 까고 다녀도 난 상처받지 않아!” 언젠가 한 고딩 아이 등 뒤에서 훔쳐본 문자입니다. 문자 내용과는 달리 많이 상처받은 표정이었습니다. 누구든 걸리기만 하면 가만 안 있을 것 같은 분위기여서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못 본 척했습니다. 관계에서 인정받기 위해 아이들은 단지 잔머리를 굴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권모술수를 동원하기도 합니다. 사람에 눈뜨기 시작할 나이가 되면 거짓말을 많이 하게 되는 것도 다 그 때문입니다. 성형을 해서라도 예뻐지고 싶은 욕망 뒤에도 사랑받고자 하는 감정이 잠재의식으로 깔려 있습니다. 타인의 사랑을 얻는 것만이 이 세상에서 누락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여의치 않으면 우리는 이런 고민을 합니다. 세상에 나를 맞출 것인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것을 끝까지 고수할 것인가. 아마 이중 하나만을 지속적으로 선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겁니다. 모든 인간은 두 가지를 혼합하고 섞어 씁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고수하면서도 살아남으려면 다른 사람을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다양한 전략이 필요하지 싶습니다. 그것을 ‘꼼수’라 부르기도 하고 ‘설정한다’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설정’을 건다는 건 인간들만 써먹는 방법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맞추기 위한 특단의 조처인 셈이지요. 다양한 수를 구사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사회의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지도 모릅니다. 사투리와 표준어 관계가 이 문제를 사유하기에 적당한 소재라고 보았습니다. 자연스러움과 설정의 논리가 사투리와 표준어의 힘 관계 안에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표준어를 쓰겠다고 마음먹으면 어느 정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좋아하지 않는데 친구로 설정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거기서도 우정이 생겨날까요? 집 나갔던 진심이란 녀석을 귀가시킬 수 있을까요? 그건 저도 궁금한 일입니다. 오늘날 사투리는 쓸모없는 것을 넘어 ‘악’이라는 누명을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거잖아요. 쓸모없는 것이 쓸모 있는 일로 인정받는 일! 21세기에는 그런 기적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원고를 잘 갈무리하여 예쁜 책으로 꾸며 주신 창비 편집부에 감사드립니다. 2012년 여름 한복판을 지나며 남상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