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피그말리온 아이들’은 ‘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인하여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 피그말리온 효과에서 따온 것으로, 이를 주창한 사회심리학자의 이름을 따 로젠탈 효과라고도 한다. 교사의 기대와 격려가 학생의 성적 향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로젠탈 효과의 주요 논지인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로젠탈 스쿨의 창립 이념이기도 하다. 그러나 태생이 불우한 아이들을 데려다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길러낸다는 설립 취지와 달리, 마의 취재로 드러나기 시작하는 학교의 실체는 수상하기 짝이 없다. 학생들의 자율 활동과 인터넷 사용을 극도로 제한하는가 하면 정체불명의 알약을 단체로 복용시키기도 한다. 졸업생들의 행적도 묘연한데, 그나마 간신히 연락이 닿은 이들은 게임이나 도박 등에 중독 증세를 보인다. 그중 한 명의 입을 통해 로젠탈 스쿨이 교육을 빙자해 앵벌이 키우기에 가까운 짓을 벌여왔다는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진다. “너희 부모처럼 쓰레기같이 살래? 아니면 정직하게 벌어먹는 일꾼이 될래?”라고 아이들을 몰아붙이던 로젠탈 스쿨의 교장과 교사들은 실은 사회에서 버려진 아이들을 격리하여 다른 선량한 구성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그릇된 신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학생을 위하고 사회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아이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는 로젠탈 스쿨은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교육 현실에 대한 우화이다.
우리 청소년문학의 새로운 이정표
『피그말리온 아이들』은 첫 장부터 강렬한 사건으로 시작해 독자로 하여금 숨죽이며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추격전과 추리 기법을 도입한 이번 작품은 미스터리, 판타지, 호러를 절묘하게 조화시켰던 데뷔작만큼이나 인상적이다. 또한 『피그말리온 아이들』은 작품 속에 숨겨진 여러 가지 비유와 상징을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한데, 예를 들어 로젠탈 스쿨에서 키우는 사냥개 두 마리의 이름이 ‘플라세보 효과’에서 따온 듯한 플라와 세보라는 식이다. 그리고 마의 서술을 통해 언급되는 조지 버나드 쇼의 희곡 「피그말리온」이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같은 심리이론을 소재로 하면서도 전혀 다른 이야기결을 보이므로, 이들 작품과 소설을 비교해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제공할 것이다.
청소년소설에서 청소년이 아닌 어른의 시선, 그것도 냉철한 다큐멘터리 PD의 입장에서 특수학교 문제를 파헤치는 것 역시 색다른 설정이다. 『피그말리온 아이들』의 캐릭터들은 기존의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인물이 대부분이다. 기자에게 뇌물을 먹이고, ‘타협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기적인 어른이었던 주인공 마가 아이들을 만나면서 차츰 변해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눈길을 끈다. 또한 위험을 무릅쓰고 위기에 처한 마를 돕는 은휘와 혼모 등 로젠탈 스쿨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은 쉬이 바뀌지 않는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이다.
베스트셀러 『위저드 베이커리』의 작가 구병모 신작
『위저드 베이커리』는 2009년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25만 부 이상 팔려나가며 청소년소설로서는 보기 드문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구병모 작가는 이후 장편 『아가미』, 소설집 『고의는 아니지만』 등을 통해 작품세계의 외연을 넓혀왔다. 『피그말리온 아이들』은 작가의 세 번째 청소년소설로, 현대 사회에서 떠받드는 ‘긍정의 힘’이라는 환상을 정면에서 깨부수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긍정의 힘’이 기성세대에 의해 일방적으로 전달될 때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그 위험성을 경고한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학교 폭력이나 입시 문제를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좀 더 근원적인 구조를 직시하는 독특한 문제의식은 구병모 작가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우리 청소년문학계의 흑진주와도 같은 작가 구병모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까닭이다.
▶ 줄거리
프리랜서 다큐멘터리 피디인 ‘마’는 설립 이래 한 번도 언론에 노출된 적 없는 로젠탈 스쿨을 취재하기로 결심한다. 대학 동창인 기자 ‘박’의 도움을 받아 학교 이사장의 허락을 얻어낸 마는 촬영감독 ‘곽’과 함께 로젠탈 스쿨이 자리한 낙인도로 들어간다. 로젠탈 스쿨이 공개되는 것을 처음부터 반대했던 교장은 촬영 기간 동안 휴대폰 사용을 금하고 촬영 장소나 인터뷰 대상도 제한하는 등 제동을 걸고, 비서 일을 하던 학생 은휘에게 이들을 감시하게끔 한다. 로젠탈 스쿨은 범죄자를 부모로 두거나 고아인 아이들을 데려다 직업 훈련을 전문적으로 시키는 학교로, 인터뷰에 응한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학교 덕에 자신이 사람이 됐다며 찬사를 쏟아내지만 마는 획일적이고 억눌린 학교 분위기를 감지하고 의심을 품는다. 그러던 중 우발적으로 발생한 학생들 간의 폭력 장면을 몰래 촬영한 곽이 학교 지하실에 갇히고, 마는 그간 취재한 내용을 모두 압수하려는 교장과 교사들을 피해 달아나는데…….
서장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종장
작가의 말
아무리 둘러봐도 세상에 마음에 차는 인연을 발견할 수 없었던 한 남자가 상아로 여인을 조각한다. 완성된 조각은 만족스러웠고 남자는 거기에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녀는 남자가 만들어낸 피조물로 그 자신의 이상향을 담아놓았고 자신의 취향,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모든 것을 집결한 작품이기에 세상의 누구보다 완벽했다, 인간이 아니라는 점만 빼면. 이 남자 피그말리온은 신에게 간절히 기도하고 신은 그 바람을 들어주어 피조물은 어느 날 인간이 된다. 그러니까 이것은 고대의 맞춤 로봇 탄생기다.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요소를 타인에게 갖다 붙이는 행위에 성공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타인이 아니게 되고 나를 투사한, 내 뜻을 반영한 내 소유 로봇이 된다. 그러나 보통은 그 일이 실패하기 때문에 그는 어디까지나 타인이고…… 무엇보다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수많은 갈라테이아들은 오늘도 부모 또는 선생님 또는 이 세상 모두, 라는 이름을 대체 삽입할 수 있는 자기들의 피그말리온에게 말하고 싶다. 나는 당신 소유가 아니고 당신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어디까지나, 말하고 싶다. 모두가 반드시 실제로 그리 말하지는 않는다,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이것은 우리 인생에 어림 반 푼어치 도움도 안 되는 어른의 정신적 변천에 대한 이야기다. 순전한 전산상의 오류로 날아간 줄 알았던 원고를 구제해 준 이지영 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그녀의 정신적 지원이 없었다면 완성하기 힘들었을 책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나는 누구의 갈라테이아일까, 어떤 형태의 지배 또는 착취에서 벗어나기를 꿈꾸고 있을까. 2012년 여름 구병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