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둑처럼 찾아온 그날, 우리의 운명이 요동쳤다
1945년 8월 15일,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조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리고 당시의 청소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슨 꿈을 꾸었을까? 이러한 물음에서 출발한 이현의 세 번째 장편소설 『1945, 철원』이 창비에서 출간되었다. 『우리들의 스캔들』 『오, 나의 남자들!』 등을 통해 요즘 청소년들의 이야기에 사회 문제를 절묘하게 녹여 냈던 작가는 신작에서 해방 전후의 철원으로 시선을 돌렸다. 양반집 종살이를 하던 경애, 공산주의자 도련님 기수, 콧대 높은 양반집 딸 은혜, 경성 출신의 모던 보이 제영 등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철원애국청년단’에 의한 테러가 일어난다. 철원 일대가 술렁이는 가운데 각자의 꿈을 지키기 위한 싸움도 시작된다. 『1945, 철원』은 역사의 격랑을 몸으로 겪어 낸 이들의 이야기를 청소년의 시각에서 그려 낸 수작이다.
해방 전후 격동의 역사를 생생히 그려 낸 최초의 청소년소설
그간 우리 청소년소설에서 본격적인 역사소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나마도 조선 시대나 그 이전을 배경으로 전설 또는 양반과 상민의 대립을 그리는 등 교훈적인 내용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다른 한편 한국전쟁을 다룬 일반 역사소설에서는 아이들이나 청소년의 이야기가 소소한 에피소드로 다루어지는 게 고작이었다. 그렇기에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 할 만한 ‘8•15 해방’과 그 이후 혼란의 역사를 청소년의 시각에서 가감 없이 담아낸 『1945, 철원』은 단연 돋보인다. 작가 이현은 같은 민족이라도 나이, 신념, 계급에 따라 해방의 의미가 달랐으리라는 점에 주목했다. 이 작품은 공산당 정권하의 철원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 벌어진 첨예한 대립의 현장을 역동적으로 그려 낸다. 또한 당시 백화점과 커피숍이 있을 정도로 번화했던 대도시 철원의 모습을 철저한 고증을 통해 생생하게 되살린 점도 눈길을 끈다. 『1945, 철원』은 역사 교과서에서 몇 문장으로 지나치고 말았던 현대사의 살아 숨 쉬는 현장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한국 현대사의 시작점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슬픔
『1945, 철원』은 해방을 맞은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봄으로써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말한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1945년에서 1947년까지는 한반도가 혼돈에 빠져 갈피를 못 잡던 시기였다.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이 일어나기 불과 수년 전, 삼팔선 이북의 철원에서는 숱한 반목과 갈등이 빚어진다. 오랜 동무임에도 서로 반대되는 곳을 보는 기수와 은혜, 그리운 자매지간이지만 결코 서로의 이상을 이해할 수 없는 경애와 미애, 가진 것을 빼앗긴 지주들과 그간의 설움을 되갚으려는 소작농들의 대립은 선악을 쉬이 가릴 수 없기에 더욱 안타깝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갈등에 휘말린 이들의 슬픔은 절절하다. 휴전과 분단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독자들은 이 책에서 우리 민족에게 일어난 비극의 시작점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폭풍 속, ‘꿈’을 향해 날갯짓하는 이들의 이야기
하지만 작가 이현은 갈등과 슬픔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 하나하나를 애정 어린 필치로 그리고 있다. 이런 희망의 메시지는 주인공 경애의 독백에 집약되어 있다. ‘다른 건 잘 몰랐다. 그러나 어찌 살아야 하는지는 잘 알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일은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부모를 여의고 해방 후 인간답게 살게 되나 했더니 사상 대립에 휘말려 언니와 소꿉동무마저 잃고 말지만 경애는 절대 절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인내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테러의 주동자를 찾기 위해 기수와 경성으로 월남할 정도로 과감한 행동력도 지니고 있다. 그런 경애의 우상이자 철원의 정신적 지주였던 홍정두의 말에는 작품의 메시지가 응축돼 있다. “우리는 늘 나약하고 어리석고, 그래서 흔들리고 방황하지. 하지만 뭘 꿈꾸는지 잊지 않는다면, 언제고 제 길로 돌아올 수 있어.”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내일을 내다보는 1945년 철원의 젊은이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오늘의 독자들에게도 뜨겁게 다가올 것이다.
1945
1946
1947
작가의 말
그 겨울의 일요일 오후, 나는 시간의 경계를 넘었다. 2월에 들어 어렴풋한 봄기운이 느껴지던 때였다. 그러나 자동차로 두어 시간을 달려 도착한 철원은 여전히 황량한 겨울이었다. 잿빛 하늘을 완고하게 가르는 산맥 아래, 서리 내린 벌판에는 독수리들에게 바쳐진 소들의 시체가 나뒹굴었고 음산한 까마귀 울음이 주술처럼 떠돌았다. 그 벌판의 끝에 거대한 묘비가 있었다. 총탄 자국이 흉터처럼 아로새겨진 웅장한 건물의 이름은 조선로동당사. 내가 아는 현실과 시간의 경계 안에 그런 이름이 실존할 순 없었다. 그곳은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 민간인 통제선 바로 안쪽의 잊혀진 땅이었다. 광장을 내려다보는 웅장한 3층 석조 건물은, 그 형태는 거의 온전했지만 폭격의 흔적이 역력했다. 마치 폭격의 와중에 시간이 정지해 버린 것처럼. 건물 오른편으로는 민통선 입구의 군 초소가 있었고, 건물 앞을 지나는 2차선 도로에는 신호등 하나 없이 먼지만 자욱했다. 건물 뒤편의 야산과 맞은편의 산줄기도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어째서 이런 곳에 이토록 웅장한 건물을 세웠던 걸까. 불현듯 그런 의문이 들었다. 당사 앞의 관광 안내판에는 대략 이런 설명이 적혀 있었다. 1946년 초 철원군 조선로동당에서 완공한 러시아식 건물로 1850평방미터의 면적에 지상 3층의 무철근 콘크리트 건물이다. 건물을 지을 당시 성금으로 마을당 쌀 이백 가마를 거두고 주민을 강제 노역에 동원하였으며, 비밀 유지를 위해 공산당원만으로 내부 공사를 진행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기까지 공산 치하에서 반공 활동을 하던 많은 인사들이 이곳으로 잡혀와 고문과 학살을 당하였고, 당사 뒤편의 방공호에서 사람의 유골과 철사 등이 발견되었다. 아, 철원은 삼팔선 이북의 땅이었구나.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오도카니 서 있는 또 하나의 안내판을 발견했다. 수채화 풍으로 그린 철원군 복원도였다. 시간 너머의 그 거리는 그림으로만 남아 있었다. 조선로동당 철원군 당사를 시작으로 철원역까지, 안개 낀 도시처럼 흐릿한 그림이지만 분명 번화한 거리였다. 그 거리의 풍경을 보니 비로소 이 웅장한 건물의 존재를 납득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철원을 찾았다. 민통선 너머까지 들어가는 안보관광의 마지막 코스는 철원역에서부터 조선로동당사까지, 흐릿한 그림으로만 남은 철원의 영화로운 과거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그 거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안간힘을 쓰듯 형태를 유지한 얼음 창고나 금융조합, 간신히 주춧돌만 드러나 있는 남국민학교나 제사공장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회색빛 돌 더미들이 봄 농사를 시작하느라 붉은 속살을 드러낸 논밭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지금은 논두렁 밭두렁이 된 것이다. 마침내 한 줌 흙으로 돌아간다는 우리네 삶처럼 그렇게. 그때부터 나는 시간의 경계 저편의 철원을 찾아다녔다. 책을 읽고 논문을 뒤졌으며 영상물도 보았다. 한국 전쟁 당시 1평방미터당 열여덟 개의 폭탄이 투하되었다는 참혹한 기록 앞에서 종말의 폐허를 마주한 듯 아연해지기도 했다. 때로는 지도를 더듬고 철원군 복원도 사진을 돋보기로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그림 이상의 것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다 철원으로 달려가 어르신들을 붙잡고 무작정 말을 걸기도 했다. 혹시 원래 철원 분 안 계세요? 그렇게 물으면 다들 대번에 손사래를 쳤다. 없어. 아무도 없어. 폭격으로 죽거나 북으로 갔지.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한 노인을 만났다. 나를 시간의 경계 너머로 이끈 그 그림, 철원군 복원도를 그린 장본인이었다. 노인은 태어난 그 땅, 그러니까 민통선 너머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일제 식민 통치기에 태어나 인민공화국을 거치고 전쟁의 와중에는 미 군정의 통치하에 있었고 이제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에서 살고 있었다. 일생 동안 무려 네 나라의 백성 노릇을 한 것이었다. 초여름의 기운이 완연하던 어느 오후, 나는 군 초소에 신분증을 맡기고 민통선 너머로 들어가 노인을 만났다. 시간의 흐름조차 멎어 버린 어둑한 집에 마주 앉아 분단의 장벽 아래 묻혀 있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통금 시간에 쫓겨 마을에서 나와 다시 조선로동당사로 갔다. 철원군 복원도 앞에 섰을 때, 사위는 이미 어두웠다. 하지만 나는 보았다. 시간의 경계 너머, 그 번화하던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코오피 봉지를 끌어안고 잔달음질 치는 경애를, 금지된 서적을 품고 무거운 걸음을 떼는 기수를, 자존심 드높은 얼굴을 치켜들고 인력거에 오르는 은혜를. 그 하루하루를 힘겹게, 그러나 뜨겁게 살아가던 사람들을. 도둑처럼 찾아왔다던 해방의 그날, 이 거리를 거닐던 사람들은 무엇을 꿈꾸었을까. 새 조국 건설의 망치 소리가 드높던 그날, 희망의 주춧돌을 놓기 위해 땀 흘리던 사람들은 무엇을 꿈꾸었던 걸까. 그리고 그들은, 그날의 꿈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나는 그 꿈을 복원하고 싶었다. 그 거리를, 그 거리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을 복원하고 싶었다. 이 땅의 현대사가 시작된 그날의 꿈을 복원해 내고 싶었다. 남에서도 북에서도, 힘을 가진 사람들로 인해 잊혀져 버린 그들의 목소리를 되살려 오늘의 내게,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다가올 세상을 만들어 갈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나는 통일을 당위로 받아들이는 사람일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절절하게 통일을 꿈꾼 적도 없고 갈 수 없는 북녘땅을 애타게 그리워한 적도 없다. 그러나 철원에서 시간의 경계 너머를 만난 뒤, 나는 그날을 꿈꾼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쉼 없이 달려갈 수 있는 그날을, 그렇게 대륙 저편의 세상 끝까지 마음껏 달려갈 수 있는 그날을 꿈꾼다. 그날이 오면, 잊혀진 그 땅에서 한바탕 진혼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 스러져 간 꿈들을 위해, 선한 넋들을 위해. 그 선한 꿈들처럼, 모두가 평화로운 그날을 소망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 이 한 편의 이야기는 그 진혼곡의 첫 소절이다. 부디, 모두 평안하기를. 어제의 사람들도 오늘의 사람들도. DMZ의 눈부신 신록이 그리운 5월, 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