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집

깜장꽃

김환영  동시집  ,  김환영  그림
출간일: 2010.11.25.
정가: 10,800원
분야: 어린이, 문학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 『해를 삼킨 아이들』, 그림책 『나비를 잡는 아버지』 등 많은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린 중견 일러스트레이터 김환영의 첫 동시집. 경기도 가평 금대리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벗삼아 살며 얻은 반짝이는 시상을 담았다. 빼어난 언어감각과 진정성이 돋보이는 시,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광과 풀꽃, 거미 등 작은 생명들의 모습을 오롯이 담은 완성도 높은 그림이 어우러져 새로운 동시집의 상(像)을 제시한다. 또, 현실의 문제를 자연의 모습에 빗대어 표현한 시들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어린이 독자들의 환기를 불러일으킨다.

 

 

 

 

 

 

 

 

서사를 그리는 화가에서 자연과 현실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20여 년간 화가로 활동하며 서사를 압축해내는 뛰어난 그림으로 독자들과 소통해온 화가 김환영이 이제 시인으로 독자들과 만난다. 『깜장 꽃』은 2004년부터 월간 『글과그림』에 꾸준히 발표해온 시와 계간 『창비어린이』 ‘김환영의 시와 그림’을 통해 발표한 동시를 함께 엮어 펴낸 첫 동시집이다. 격월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 중인 작가는, 그저 천사 같은 동심을 노래하는 동시, ‘저만의 환상’에 빠져 있는 동시가 아닌, 자연을 노래하며 그 속에 현실을 담는 그만의 동시를 써냈다. 또한 화가가 지닌 날카로운 시선과 시인의 반짝이는 감성으로 자연에서 만나는 작은 생명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확실히 김환영은 그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를 지녔다.

 

 

 

 

 

“그는 어린애인 양 하지 않습니다. 시는 시끄럽지 않고 단출합니다. 도시의 소음과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으면서도 허망스레 ‘저만의 환상’으로 달아나는 법이 없어요. 드물게도 그의 시는 ‘그가 사는 자리’에서 태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귀 기울여 온 뭇 생명의 소리들은 그의 동시집과 더불어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물면서 자기 존재를 일깨워 줄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시인의 사명을 나는 알지 못합니다.” _원종찬(아동문학평론가)

 

 

 

 

 

노트에 일기를 쓰듯 쓱쓱 그려낸 그림들 역시 꾸밈없는 농가의 정취와 자연의 모습을 잘 담아내 시와 어울린다. 작고 소박하게 배치한 본문의 그림은 시상을 방해하지 않으며, 시집의 앞뒤에 배치된 화보는 그림의 완성도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자연과 소통하는 빼어난 언어감각이 돋보이는 동시집

 

 

 

김환영의 동시는 도시 아이들의 복잡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고요하면서도 탁 트인 시골마을로 시야를 돌린 점이 우선 반갑다. 시골집을 드나드는 식구 같은 동물과 곤충들, 집 앞에서 계절마다 피고지고 자라나는 풀, 꽃, 나무들이 한데 어울린 풍경이 절제된 언어로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작약 꽃봉오리가 동골동골 맺혔습니다 // 꽃소식 들은 개미들이 물빛 같은 길을 따라 깨물깨물 줄을 지어 올라갑니다 // 작약은 발등이 간지러워 모가지가 간지러워 고개를 잘랑잘랑 흔들어 봅니다 // 분홍 꽃 피기 전에 몰려든 손님들로 깜장 꽃만 간질간질 피었습니다 -「깜장 꽃」 전문

 

 

 

 

 

“동골동골” 맺힌 작약꽃 봉오리에 “깨물깨물” 줄지어 모인 개미들로 “간질간질” 깜장 꽃이 피어난 이 시는, 작약 꽃이 피기 전 개미들이 모이는 자연의 순간을 포착해 소담스럽고 정적인 작약의 이미지와 작고 동적인 개미의 이미지를 대비시켜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눈이 녹아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를 들으며, 그저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에 “동그랑 그랑 그랑”, “개울, / 개울, / 개울, ”(「우수」) 하며 동그랗게 떨어지는 파문의 형상과 어디선가 울고 있을 개구리 소리까지 함께 담아내기도 하고, 왜가리가 무논을 “뒷짐 지고 징겅징겅”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비단옷 차려입고”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자기 논을 살피는 논 주인을 떠올리기도 한다.(「논 주인」)

 

 

 

시인의 날카로운 시선은 일상의 평범한 물건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숟가락이 / 숫가락이나 / 숯가락이 아니라 / 숟가락이 된 까닭은, / ‘ㄷ’이 떡하니 / 아가리를 벌리고 있기 때문이야 // 먹어도, 먹어도, / 열린 입은 / 배가 고프기 때문이야 -「숟가락」 전문

 

 

 

 

 

‘숟가락’의 둥그런 생김새와 ‘숟’이라는 글자 모양을 함께 떠올리게 하는 이 시에는, 글자를 이미지로 인식하는 화가의 시선과 ‘ㄷ’ 모양으로 떡하니 벌린 입이 “배가 고프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시인의 시선이 함께 엿보인다. 배가 고프니 숟가락 가득 밥을 떠서 입에 넣어야겠다는 아이의 천진하고도 진솔한 마음도 느껴진다.

 

 

 

 

 

 

 

작은 생명의 목소리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풀어낸 귀한 동시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느리게 살아가는 지렁이, 달팽이를 바라보며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풀섶 두꺼비가 / 엉금엉금 비 소식을 알려 온다 // 비 젖은 달팽이가 / 한 입 한 입 잎사귀를 오르며 길을 낸다 // 흙 속에서 지렁이가 / 음물음물 진흙 똥을 토해 낸다 // 작고 / 느리고 / 힘없는 것들이 // 크고 / 빠르고 / 드센 것들 틈에서 // 보이지도 않고 / 들리지도 않는 / 바닥 숨을 쉬고 있다 -「들리지 않는 말」 전문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고, 너무 느려서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달팽이도 지렁이도 귀한 숨을 쉬며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을 기억하자. 작고 느리고 힘이 없어도 그들이 쉬는 바닥 숨과 이어가는 생명은 자연을 지키는 원천임을 알 것이다. 어린이 독자들에게 이 시는 빠르고 강한 것만을 추구하는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풀을 뽑으면 // 여기가 내 땅이라고 // 흙을 한 움큼, // 한 움큼씩 쥐고 있다”라고 여린 풀이 가진 숨은 힘을 처연하게 얘기하는 「뿌리」, “찬비를 맞으며 / 감 한 쪽 물고 가는 / 어미 까마귀 부리 끝이 / 숯불처럼 뜨겁다”고 차가움을 뚫고 먹이를 물고 가는 작은 새의 모습을 통해 온기를 느끼는 「감 한 쪽」 등도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연상시키며 감동을 준다. 작은 동물이나 곤충, 풀포기에 빗대어 표현한 이런 시들을 통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어린이 독자들의 환기를 불러일으키고, 작은 목소리로나마 발언하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달팽이는 날 때부터 / 집 한 채씩 지고 왔으니, // 월세 살 일 없어 좋겠습니다! / 전세 살 일 없어 좋겠습니다! // 몸집이 커지면 / 집 평수도 절로 커지니, // 이사 갈 일 없어 좋겠습니다! / 사고 팔 일 없어 좋겠습니다! // 뼛속까지 얼어드는 / 엄동설한에, // 쫓겨날 일 없어 좋겠습니다! / 불지를 놈 없어 좋겠습니다! -「달팽이 집」 전문

 

 

 

 

 

용산 참사 현장에 벽시로 쓴 시 「달팽이 집」은 이런 시인의 주제의식이 더욱 직접적으로 표현되었다. 달팽이는 집 한 채씩을 날 때부터 지고 있어 “이사 갈 일”도 “쫓겨날 일”도 “불지를 놈”도 없어서 좋겠다는 시인의 외침은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이 시집에는 자연의 품에서 찾은 진실한 목소리가 있다. “씨앗을 묻어도 싹이 날 거라 믿지 않던 슬픈 어른이 / 마침내 자연의 품에서 온전히 한 아이가 될 수 있었”(머리말)다는 시인의 고백처럼, 독자들에게 싱싱한 자연의 박동과 “세상 온 곳의 진실”을 되찾아줄 동시집이다.

목차

머리말 | 저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1부-언 땅이 풀리면

우수

논 주인

두더지

입춘

닮았어요

콩밭

산비둘기

깜장 꽃

애호박

저물녘

나비

날고, 기고

 

2부-감 한 쪽

달걀 알아맞히기

비와 새

개구리 모내기

뿌리

질경이 도로

새끼 고양이

무릎에 생겨난 눈

사춘기

악어 지퍼

추석

폭설

지게

감 한 쪽

 

3부-달팽이 집

자식

운명

아스팔트

들리지 않는 말

안방 고양이

북한강

우리 집 수저통

숟가락

알 품는 어미 닭

사과

사라진 9일

달팽이 집

불빛

 

4부-쥐눈이콩

가을-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1

첫 알-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2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3

박과 호박-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4

농사-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5

옛적-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6

소꿉 장

마술

비 새는 우리 집

병아리 열두 마리

부채

쥐눈이콩

박박 바가지

 

해설 | 가만히 바라보고, 들여다보고_탁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