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하수인에서 미정보국 요원을 거쳐 기업가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기회주의자의 영악한 처세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김진의 생애는 남한 자본주의 형성과정과 닮은꼴이다. 그밖에도 고급요정을 거쳐 김진의 후처가 되는 ‘강남 사모님’ 박선녀나 70년대 강남 개발 시기에 투기로 돈을 버는 부동산업자, 개발독재에 빌붙은 조직폭력배 역시 우리 현대사의 이면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한편 무차별적인 개발의 상흔인 광주대단지를 거쳐온 임판수 부부와, 백화점 붕괴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딸 임정아의 시선을 통해서는 삶에 대한 뭉클한 감동과 희망을 던져준다. 이 숨가쁜 ‘강남형성사’를 읽으면서 우리는 작금의 현실을 추동해온 욕망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깨닫는 동시에 그 꿈과 욕망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교묘하면서도 단단하게 이어져왔는지 또한 절감하게 한다. 탁월한 소설적 구성과 필력은 거장 황석영이기에 가능한 대서사이자 강남형성사, 남한자본주의 형성사를 완성하며 여태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소설의 재미를 만끽하게 한다.
1장 백화점이 무너지다
2장 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3장 길 가는 데 땅이 있다
4장 개와 늑대의 시간
5장 여기 사람 있어요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