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출간되어 널리 사랑받아온 『이름 없는 너에게』가 새롭게 개정되어 창비청소년문학 26번째 권으로 출간되었다. 영국도서관협회 선정 카네기 메달 2회 수상에 빛나는 세계적인 작가 벌리 도허티의 대표작 『이름 없는 너에게』는 그간 16개 국 이상에서 번역ㆍ출판되었고, 연극과 TV 드라마로도 각색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또한 이 작품은 카네기 메달, 셰필드 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높이 인정받아 명실공히 청소년문학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번 개정판은 판형과 디자인을 새롭게 하고 바뀐 어문 규정을 반영하되, 故 장영희 교수의 번역은 그대로 살려 초판본과 변함없는 감동을 전한다. 대학 진학을 앞둔 평범한 고등학생 헬렌과 크리스가 학교와 친구만이 전부이던 세계에서 한 아기의 엄마와 아빠가 되어 더욱 성숙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어른으로 성장하게 되는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렸다.
▶ 이 책의 주인공들은 두려움과 불신, 혼동, 슬픔을 통해 좀 더 크고 깊은 사람으로 자라고, 이제 더 넓고 다양한 세상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는다. 이 작품이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에게 ‘좀 더 아름답게 사랑하는 법’을 알리는 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장영희 _「옮긴이의 말」 중에서
줄거리
진눈깨비가 내리던 1월의 어느 저녁, 헬렌은 단 한 번 크리스와 사랑을 나누었는데 임신을 하게 된다. 보통의 고등학생이던 둘은 10월에 각기 다른 대학으로 진학할 예정이었지만, 이 일로 모든 계획이 엉켜버린다. 헬렌은 어느 날 갑자기 자기 몸 안에 들어와 버린 낯선 존재가 무섭고 싫기만 하고, 크리스는 이 일로 행여나 헬렌과의 관계가 어긋날까 봐 전전긍긍한다. 차가운 성격으로 묘한 거리감을 불러일으키는 엄마에게도, 무엇이든 털어놓는 가장 친한 친구 루슬린에게도 이 사실을 고백할 수 없는 헬렌은 도움을 청하지 못한 채 외로움 속에서 혼자서만 끙끙 앓는다. 아기의 존재를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헬렌은 긴 고민 끝에 자신과 아기의 미래에 대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한 결정을 내린다. 한편 헬렌의 임신 사실이 알려지면서 헬렌은 오랫동안 엄마와 외할머니 사이에 감돌던 긴장감의 비밀에 다가서고, 크리스 역시 어린 시절 가족을 떠난 어머니와 재회하여 가까워진다. 불협화음과 갈등의 상징이던 헬렌의 아기는 이렇게 조금씩 일치와 화해의 상징으로 변화하는데…….
십 대의 임신을 대하는 성숙한 관점
『이름 없는 너에게』는 ‘십 대의 임신’이라는 예민한 소재를 다루되 지나치게 경직되거나 혹은 반대로 자극적인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고, 성숙하고 현실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인 헬렌과 크리스가 이미 어른인 작가에 의해 대상화되지 않고, 사건과 용기 있게 마주하는 주체적인 인물들로 그려진 것은 이 작품이 일구어낸 빼어난 성과다. 꼭 임신이라는 상황에 처하지 않았더라도 삶과 미래에 대한 각자 저마다의 불안을 안고 있는 청춘들에게 따뜻한 지지와 진정한 위로를 건네는 이 작품에서 대작가의 깊이와 노련함이 느껴진다.
촘촘한 구성, 그리고 뭉클한 감동을 선사하는 결말
『이름 없는 너에게』는 크리스의 회고와 헬렌의 편지글 형식으로 쓰인 일기가 번갈아 등장하는 구성으로 등장인물들의 내면과 심리 변화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된 두 주인공의 심리 묘사는 독자들이 헬렌과 크리스의 감정을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작품은 형식적인 구성뿐만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어린 두 연인이 맞닥뜨린 고비를 두 사람의 문제로 한정 짓지 않고, 가족 관계 안에서의 ‘사랑’의 의미로 확장시켜 비슷한 소재를 다룬 다른 작품들이 범하기 쉬운 상투성을 피했다. 『이름 없는 너에게』는 이러한 구성상의 묘안을 통해 청소년의 임신을 다루면서도 또한 꿈을 찾아 새로운 순간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동시에 상처를 품고 있는 가정의 치유 과정까지 아우르는 풍부한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이렇듯 독특하면서도 적확한 선택이라 할 수 있는 구성은 곧 갈등의 상징이던 헬렌의 아기가 오랫동안 파편화되었던 가족들을 잇는 화해의 상징으로 거듭나며 진부하지 않은 감동을 주는 결말로 이어진다.
故 장영희 교수의 번역으로 만나는 청소년문학의 고전
이 책은 지난 2004년 창비에서 펴낸 양장본 『이름 없는 너에게』를 새롭게 ‘창비청소년문학’ 시리즈로 출간한 개정판으로, 꼼꼼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번역으로 많은 독자들의 신뢰를 받았던 故 장영희 교수의 초판본 번역을 그대로 살렸다. 「옮긴이의 말」을 통해 젊은이들을 향한 애정을 표한 역자 장영희 교수는 이 작품이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에게 ‘좀 더 아름답게 사랑하는 법’을 알리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추천한 바 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옮긴이의 말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2002년에 저는 한국에 초대받은 적이 있습니다. 정말 멋진 경험이었지요. 대학교수와 중고등학교 교사, 여러 학자와 도서관 사서 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의 학생들과 독자들을 만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어려움과 보람을 나누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창비사에서 『이름 없는 너에게』를 한국어로 출판하고 싶다고 제안해 왔습니다. 너무나 기쁜 일이었지요. 내 작품이 다른 문화와 언어로 번역되어 지구 맞은편에 있는 독자들이 나의 작중 인물들의 생각과 느낌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작가로서 참으로 보람된 일입니다. 『이름 없는 너에게』는 영국의 대도시에 사는 보통의 소년과 소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만, 그들이 처한 상황은 세계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지만, 모든 일이 예측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이름 없는 너에게』는 낭만적인 의미에서의 ‘러브 스토리’가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는 두 젊은이의 이야기지만 동시에 가족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어떻게 사랑 때문에 우리가 비논리적으로 행동을 하고 서로 상처를 주는가, 어떻게 사랑이 미움으로 변하고 가족들이나 다른 사람들을 서로 멀어지게 만들 수 있는가에 관한 소설입니다. 『이름 없는 너에게』에서 헬렌과 크리스는 서로의 사랑을 통해 더욱더 성숙해질 뿐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는 계기를 맞습니다. 이 소설을 쓰면서 많은 고등학교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땐 이미 이야기 줄거리와 인물들이 내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개인적 경험이 궁금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의 사랑과 우정, 부모와의 관계, 책임과 성실성에 관한 의견을 듣고 싶었습니다. 이 소설은 발표된 후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었고 소설이 아닌 다른 형태로 각색되기도 했습니다. (연극이나 라디오, TV 드라마, 또는 학교 연극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지요.) 그렇게 큰 호응을 얻은 이유는 이 이야기의 주제가 사랑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의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고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육체적인 사랑이든 감정적인 사랑이든, 사랑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때로 조금 부끄럽고 민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소설이나 연극이 그런 어려운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 것을 도와주기도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여행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내부로부터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낯선 세계로 떠나는 여행 말입니다. 그러나 때로 그 여행은 우리가 깨닫지 못했던 스스로의 감정 속으로 우리를 이끌기도 합니다. 『이름 없는 너에게』를 쓰면서 많은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우선 아주 민감한 주제라서 구성에서 최선책을 찾아야 했습니다. 크리스가 이야기를 하게 하고 그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탐색해 볼 뿐만 아니라 자신과 헬렌 가족들의 감정을 표현하고 분석하게 했습니다. 내가 여자면서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 글을 쓰는 것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아주 중요했습니다. 왜 그런 식으로 썼을까요? 나는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 입장에서도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아기를 만드는 데는 둘이 동등한 책임과 의무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직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남학생이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감정적으로 얼마나 힘들까 상상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쓰기로 결정한 다음 중요한 문제에 당면했습니다. 정작 임신을 한 것은 헬렌이니까요. 그럼 어떻게 그녀가 겪는 감정적, 육체적 혼돈을 표현할 수 있을까? 헬렌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것인가? 그때 헬렌이 느끼는 모든 공포와 외로움, 그리고 경이로움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게 주는 편지에서 토로하게 하자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처음엔 자신이 임신한 사실에 대해 확신이 없으면서도 악몽 같은 의심과 고민을 덜기 위해 헬렌은 ‘이름 없는’ 이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리고 헬렌이 쓰는 편지에 ‘이름 없는 너에게’라는 말을 쓰자마자, 나는 이 말이 이 소설의 제목이 될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이름 없는 너에게』를 읽고 독자 여러분이 공감하고 사랑해주기를 바랍니다. 이 책은 바로 여러분을 위해 씌어졌으니까요. 특히 이렇게 한국 독자를 만나게 됨을 아주 기쁘고 보람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홈페이지 주소를 알려 드립니다. www.berliedoherty.com에서 한국 독자들하고도 만나고 싶습니다. 2004년 9월 벌리 도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