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구스 크루』로 한국 청소년문학의 새 장을 열어젖힌 신여랑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이토록 뜨거운 파랑』이 출간되었다. 신여랑은 현재 우리 청소년들의 모습을 누구보다 생생히 포착해낼 뿐 아니라, 청소년소설가 군(群)이 없다시피 한 현실에서 동화나 일반 소설에 눈 돌리지 않고 청소년소설에만 전념해온 흔치 않은 작가이다. 만화동아리를 배경으로 사춘기 시절 질풍노도의 시간을 그려낸 『이토록 뜨거운 파랑』은 ‘지금, 이곳’의 청소년들에게 다시 한 번 뜨거운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줄거리
미술 영재로 꼽히는 열여섯 살 소녀 지오는 예전에 동생처럼 친하게 지냈던 혜성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에 빠진다. 한편 지오와 함께 만화동아리 ‘파랑’을 하는 유리는 약간 철없는 부모 밑에서 말괄량이로 자란 친구다. 신비로운 분위기의 지오를 늘 동경해오던 유리는 어느 새벽, 지오가 보낸 “난 나쁜 아이야.”란 문자를 받은 뒤 더욱 특별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만난 지오는 언제 그런 문자를 보냈냐는 듯 데면데면 군다. 그러던 어느 날, 파랑 친구들과 같이 서울코믹월드에 간 지오와 유리는 구준호라는 불량한 차림의 남자애를 만난다. 자신이 혜성의 친구라며 지오에게 줄 것이 있으니 연락하라는 구준호의 얘기를 들은 뒤 지오는 딴사람이 되어간다. 지오의 변화가 혜성이란 아이와 연관된 문제임을 직감한 유리는 실마리를 쥔 구준호를 직접 찾아갔다가 혜성과 지오 사이에 얽힌 충격적인 사연을 듣게 되는데…….
조건 없는 우정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소설은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지오와, 이러한 지오를 보며 아파하는 유리의 이야기를 두 축으로 진행된다. 자신이 혜성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에 허덕이던 지오는 무의식중에 유리에게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유리는 지오의 사연을 알게 된 후 도와주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지만,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친구란 어려울 때 곁에 있어주기만 해도 힘이 되는 존재임을 깨닫고 다시 기운을 낸다. 그리고 이러한 유리와 지오가 현실을 직시하게끔 돕는 것은 혜성의 다른 친구 구준호의 몫이다. “너 지금 지오가 슬퍼하는 걸로 보이냐? 걘 지금 슬픈 게 아니라 무서운 거야.” “지오 니 잘못은 숲에다 혜성이 버리고 온 게 아니라 그다음에 혜성이 생깐 거야. 생까지 않는 거, 그게 진심이라는 거다.”라는 준호의 일침은 뼈아프지만 이들을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된다.
『이토록 뜨거운 파랑』은 청소년기의 심리와 인간관계의 문제를 파고든 작품이지만, 단순하게 보면 ‘우정의 소중함’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오와 혜성이, 유리와 지오, 그리고 준호와 혜성이는 서로에게 둘도 없이 소중한 존재다. 일상을 함께할 뿐만 아니라 서로를 애틋해하고 때로는 설레기도 하는 이들의 감정은 더 나아가 사랑이라 부르기에 충분하다. “저는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혹독한 인생의 순간을 견디고, 맞서게 하는 힘이라고 믿습니다.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힘이 센지, 예쁜지.”라는 작가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 이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역시 애틋하다.
만화동아리 ‘파랑’과 함께 커가는 열여섯 살 소녀들
전작들에서 청소년들과 직접 만나고 발로 뛰면서 취재한 내용을 작품 속에 훌륭히 녹여내어 찬사를 받았던 신여랑 작가는 신작에서도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요즘 우리 청소년들의 문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화와 만화부 활동에 대해 수집하고 취재한 자료를 바탕으로 생생한 이야기를 풀어낸 것. 특히 작품의 증심을 차지하는 유리의 1인칭 서술 부분은 마치 실제 청소년이 써 내려간 것처럼 10대 특유의 말투와 감수성이 살아 있다. 이러한 신여랑 고유의 문체는 열병을 앓듯 사춘기를 보내는 10대들의 이야기가 더욱 실감 나게 읽히는 이유이다.
소설 속 인상적인 장면들을 잡아내 총 8컷의 그림으로 표지와 본문을 장식한 만화가 나예리의 일러스트도 읽는 맛을 더한다.
프롤로그
제1부 창밖에 지오
토마토와 까만콩
좀 이상한 애
나의 결론
맥도날드와 파랑
지오―들리지 않는 목소리 1
제2부 1미터쯤 위에서 뚜벅뚜벅
가장 좋을 때
스물네 정거장
친구, 그 남자애
서툰 위로
지오―들리지 않는 목소리 2
제3부 우리가 사랑한다고 말할 때
한판승
친구, 그 남자애 2
닫힌 방문
지오―들리지 않는 목소리 3
제4부 그 밤 그 숲으로
첫 번째
거기, 혜성이와 지오
간신히 겨우―엄마랑
다시, 그 밤을 향해
에필로그
작가의 말
생각납니다. 이 책의 초고를 본 친구가 장난스럽게 했던 말. “읽는데 간지럽더라.” “사랑이 너희를 구원하리라! 그거네.” 저도 맞장구를 쳤었습니다. “그치? 좀 간지럽지.” “맞아, 그거야.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저는 그때 몹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친구가 제 마음을 콕 집어냈기 때문입니다. 그랬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쓰는 내내 그 ‘간지러운’ 마음이 사랑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혹독한 인생의 순간을 견디고, 맞서게 하는 힘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유리의 사랑이 준호의 진심과 만날 수 있기를, 지오와 혜성이에게 가닿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힘이 센지, 예쁜지.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지오를 보듬고, 더 늦기 전에 혜성이의 상처와 고통을 알아볼 수 있는, 그런 사랑. 잘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처음에는 자신감에 넘치다가도 마지막에는 두려움만이 남습니다. 그 두려움 속에서 조용히 떠올려봅니다. 유리, 지오, 준호, 혜성이……. 그중 혜성이에게는 미안함을 떨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현실 속의 혜성이에게는 조금 더 일찍 가닿기를…….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려 인사를 전해야 할 이들이 있습니다. 오래전 만화부에 대한 질문에 성실히 답해준 쿠키 님, 초고를 읽어준 그녀와 또 다른 그녀, 나의 아들, 나의 변덕과 게으름을 참고 기다려준 이 책의 편집자 이지영 씨. 그들이 아니었다면 제가 품었던 이야기는 책이 되어 세상으로 나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2010년 1월 신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