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집

고양이가 나 대신

이상교  동시집  ,  박성은  그림
출간일: 2009.12.24.
정가: 8,500원
분야: 어린이, 문학
● 귀가 순해지는 나이, 이순(耳順)에 이른 이상교 시인의 신작 동시집

 

 

 

 

1973년 『소년』에 동시를 발표하며 등단한 이후, 30여 년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이상교 시인이 신작 동시집을 냈다. 동시뿐만 아니라 동화, 그림책 등 어린이문학 전반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수차례 개인전을 열며 화가로까지 그 영역을 넓히고 있지만, ‘시인’으로 불릴 때 가장 행복하다는 작가 이상교. 그의 최근 동시 56편을 통해, 우리 아동문단 원로의 자리에서도 안주하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는 시인의 새로운 성과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상교 시인은 올해로 육순을 맞았다. ‘세상 만물의 모든 소리가 귀로 들어와 마음과 통하는 나이, 이순(耳順)’에 이른 것이다. 귀에 들어오는 모든 소리를 마음으로 이해하게 된다는 나이, 귀가 순해져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게 된 나이에 이르러서야 찾아낸 생명들의 목소리를 이번 동시집에 모았다. 『고양이가 나 대신』은 어린이를 비롯한 모든 독자들에게 시인의 ‘이순’을 빌려준다. 그 순해진 귀로 세상의 소리를 듣게 한다. 아이가 하품하는 소리, 할머니의 낮은 읊조림,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낙엽 부서지는 소리, 고양이 울음소리 등에 담긴 저마다의 마음과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 모든 생명에게는 저마다 가장 잘 어울리는 목소리가 있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에게는 저마다 어울리는 빛깔, 모습, 몸짓이 있다. 그중에서도 저마다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목소리’다. 이상교 시인은 이번 동시집에서 그 ‘목소리’에 가장 주목한다.

 

 

 

 

 

 

 

까슬까슬 수염/고양이에게/제일 잘 어울리고//말끔, 호동그란 눈/고양이에게/제일 잘 어울리고//뾰족뾰족 발톱/고양이에게/제일 잘 어울리고//살랑살랑 꼬리/고양이에게/제일 잘 어울리고//‘뭐가 또 있지?’/궁리하는데,/고양이가 울었다./그중 잘 어울리는 목소리/야아아옹! (「야아옹 야옹」전문)

 

 

 

 

 

 

 

고양이가 가장 고양이다워지는 것은, 발톱을 세울 때나 꼬리를 흔들 때가 아니라 “야아아옹!” 소리 낼 때다. 이렇듯 누구에게나 자기다운 목소리가 있다. 고양이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목소리가 “야아아옹!”이라면,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목소리는? 나무는? 바람은? 다양한 생명들에게 저마다 가장 잘 어울리는 목소리를 찾아주는 시들을 이번 동시집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나무의 입은 잎사귀예요./연둣빛 뾰조록 입이에요./이른 새봄, 나무들이/입을 달기 시작했어요.//(…)//조금 더 두고 보세요./작은 입술에 푸른 힘살이 그어지고/갸우스름 입술 꼴을 갖추면/밤낮으로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와수수수― 우수수수―/하루 종일 나불나불 떠들 거예요./한시도 입 다물고 있지 않을 거예요. (「나무의 입」부분)

 

 

 

 

 

 

 

불 안 켠/산에서/소쩍새가 혼자 웁니다.//소쩍―/소쩍―//불 안 켠/방에서/할머니가 혼자 듣습니다.//소쩍―/소쩍― (「소쩍새」전문)

 

 

 

 

 

 

 

나무의 보이지 않는 입을 찾아내고, 모두 잠든 산에서 울려오는 소쩍새 울음소리를 홀로 듣는 이는 불 안 켠 방에 혼자 누운 할머니, 바로 이상교 시인 자신이다. 목소리를 높이는 자만이 두드러지는 세상에서, 작고 힘없고 외로운 생명들의 낮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고 시인은 이야기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낮은 소리, 모든 생명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숨소리’의 소중함을 강조하며, 세상을 가득 채운 소음을 끄고 착하고 여린 생명들의 호흡을 느껴보라고 권한다.

 

 

 

 

 

 

 

숨소리만큼/착한 것은 없지.//호오―/들숨,/호오―/날숨.//달리 꾸미는 일 없이/호오―/날숨,/호오―/들숨. (「숨소리)전문)

 

 

 

 

 

 

 

● 차례로 읽으면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는 동시 56편

 

 

 

동시라 하면 흔히 ‘어린이’ 화자의 입을 빌린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번 동시집에는 어린이를 비롯한 다양한 화자가 등장한다.

 

 

 

제1부의 화자는 도시에 사는 여자아이다. “‘뚱’ 자만 들어도”귀가 깜짝 놀라는 아이 “임선화”(「뚱뚱한 애」)는 동갑내기 사촌보다 키가 한 뼘이나 작아 “그 애가 자기 집으로/돌아가기 전까지 마음이 편치 않”고 “화가 막”(「해바라기씨』)난다. 뚱뚱한 애로 놀림 받는 게 싫고, 동갑내기 사촌과 비교되는 게 싫은 평범한 아이지만, 함께 사는 가족뿐만 아니라 멀리 시골집에 홀로 계시는 할머니 걱정에 잠 못 이루는 속 깊은 손녀이기도 하다.

 

 

 

 

 

 

 

학교 담 밑을 지나오다/팔랑팔랑 흰나비를 보았다니까/명실이가 말했다.//“봄 들어 맨 처음 흰나비를 보면/식구 중 누군가가 죽는다더라.”//명실이 말이 귀에서 떠나질 않는다.//우리 할머니, 돌아가시면 안 된다./아빠도 안 된다./엄마도 안 된다./언니도 안 된다./나도 안 된다./우리 강아지도 안 된다.//잠이 안 온다. (「잠이 안 온다」전문)

 

 

 

 

 

 

 

그럼, 이 아이가 그토록 걱정하는 할머니는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제2부에서는 할머니가 계시는 시골집으로 공간을 옮겨 할머니의 입으로 이야기를 전한다. 장에서 데려온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쓸쓸하고도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할머니의 하루하루가 2부에서 담담하게 펼쳐진다.

 

 

 

 

 

 

 

사료도 주고/마실 물도 주어/고양이는 내가 고맙겠지?//(…)//아니, 아니/나는 네가 더 고마운걸.//혼자 심심할 때/곁에 있어 주어서,/동무해 주어서.//고양이야, 고마워! (「고마워!」부분)

 

 

 

 

 

 

 

3부에서는 할머니의 고양이가, 4부에서는 할머니 집 뒷산에 다람쥐가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그리고 마지막 5부에서는 네 화자가 모두 한 공간으로 들어가 결합하며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방학을 맞아 할머니가 계시는 시골집에 내려간 아이는 할머니뿐만 아니라 할머니집 고양이, 새, 다람쥐와 만나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모아 정답게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처음 가는 낯선 길/멀기도 하다.//(…)//눈에 익어, 발에 익어/가까워진 길.//처음에는 낯설던 얼굴도/눈에 익고 귀에 익어/가까워진다./점점 가까워진다. (「익는다」부분)

 

 

 

 

 

 

 

처음에는 낯설지만, 눈에 익고 발에 익고 가까워지는 길처럼, 처음에는 낯설던 존재들이 눈에 익고 귀에 익어 마음까지 가까워지는 과정을 이 동시집은 그리고 있다. 도시와 시골이 분리되고, 아이와 노인이, 사람과 동식물이 떨어져 살지만, 서서히 눈에 익고 귀에 익어 마음까지 익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동시집에 담겨 있다. ‘동시’를 통해 어린이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와 소통하고자 하고, 인간을 넘어서 자연과 소통하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이 이야기가 되어 동시집 전체에 잔잔히 흐른다.

목차

머리말|고양이가 나 대신

 

제1부 뚱뚱한 애

뚱뚱한 애

우리 선생님

다행!

다른 한쪽

닭발 볶음

보호색

꼴뚜기

팻말

눈물

해바라기씨

찰붕어빵

눈사람 손

걱정

잠이 안 온다

여들여들 풀

 

제2부 고양이야, 고마워!

비둘기

밤 버스

고양이가 대신

고마워!

숨소리

고양이 잠꼬대

수다쟁이 고양이

풀 뽑기

고양이에게

 

제3부 할머니가 혼자

어느 날 참새 날개

참새

약볕

꽃밭

까치도

자국

반달

구름

옛날 쥐, 요새 쥐

소쩍새

비 내린 날

 

제4부 다람쥐 작은 손

비어 있는 집

나무의 입

토끼풀

꽃잎

보물찾기 쪽지

골짝 물소리

가을 산

산밤

나무의 뼈

바스락 바삭

 

제5부 마음이 가까워진다

방학

기차 뒤칸

익는다

초록 운동화

달걀

직박구리

다람쥐

야아옹 야옹

쇠무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