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청소년문학 20

바람이 노래한다

권하은  장편소설
출간일: 2009.08.14.
정가: 11,000원
분야: 청소년, 문학
전자책: 있음
 

 

 

청춘의 한순간을 응시하는 순정한 시선

 

 

상처받은 세 마음을 어루만지는 바람의 노래

 

 

 

『완득이』『위저드 베이커리』 등 화제의 베스트셀러를 잇달아 내놓으며, 끊임없이 우리 청소년문학계에 한 걸음 앞선 화두를 던져온 ‘창비청소년문학’이 20권 출간을 맞이했다. 역량 있는 신인 작가 발굴과 청소년 눈높이에 맞춘 의미 있는 작품 소개에 노력을 기울여온 ‘창비청소년문학’은 또 하나의 기대작 『바람이 노래한다』(권하은 장편소설)를 스무 번째 권으로 출간하면서 앞으로도 꾸준히 청소년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다양한 작품을 펴내는 데 힘 쏟을 것을 약속드린다.

 

신인 권하은 작가의 데뷔작인 『바람이 노래한다』는 서로 다른 상처를 안고 거센 운명에 휩싸이는 세 청춘의 사랑을 통해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본질에 천착하는 고전적인 주제의식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다.

 

 

줄거리

 

 

 

시골 교회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이사 온 목사의 딸 명지는, 태어날 때부터 한쪽 팔꿈치 아래가 없는 소주와 친구가 된다. 할아버지와 함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소주는 명지에게 동경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안겨주는 특별한 친구다. 담임선생님의 부탁으로, 폭력을 일삼는 주정뱅이 아버지와 사는 석준을 찾아간 두 소녀는 석준의 상처를 보듬고, 석준은 아버지의 돌연한 죽음으로 소주네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석준과 알 듯 모를 듯 애틋한 마음을 키워나가던 명지는 석준의 유일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소주에게 미묘한 질투를 느끼고, 그런 자신에게 실망한다. 각자 앞길이 갈리면서 서로가 조금씩 멀어져가던 어느 날, 세 사람의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마을의 바람산이 큰 산불에 휩싸인다. 소주를 구하려다 나무에 깔린 석준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명지에게 서둘러 소주를 데리고 산을 내려가라고 부탁한다. 석준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명지는 울부짖는 소주를 부축해 불 속을 빠져나간다. 계절은 변하고, 슬픔에 빠진 소주를 위로하며 스스로를 달래던 명지는 홀로 바람산 꼭대기에 올라 석준과의 사랑을 회상하며 세찬 돌풍에 몸을 싣는다.

 

 

 

 

 

새로운 시선으로 접근한 십 대의 사랑

 

 

 

『바람이 노래한다』는 그간 톡톡 튀고 발랄한 분위기로 가볍게만, 혹은 사회적 이슈 중심으로 무겁게만 다루어지던 한국 청소년소설 속 정형화된 십 대의 사랑을 전혀 다른 톤으로 접근해 ‘사랑’을 주제로 한 청소년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 인간과 사랑의 원형을 깊이 있게 탐구해 들어가는 고전적인 주제의식은 일견 『폭풍의 언덕』『좁은 문』등의 명작들을 떠오르게 한다. 근래 보기 드문 서정성 충만한 정취와, 언저리에서 맴돌지 않고 본질을 파고들려는 진중한 자세가 조화를 이루며 이 작품만의 남다른 저력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바람이 노래한다』는 단순한 멜로드라마에 머물지 않고 품격 있는 문학적 성취를 향해 나아감으로써 현재의 십 대는 물론이고, 한때 십 대였던 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는 성숙한 청춘의 서사로 완성되었다.

 

 

 

 

 

청소년문학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신예 작가의 출현

 

 

 

『바람이 노래한다』로 독자들과 첫 만남을 갖게 된 신예 권하은 작가는 미술을 전공한 미술지(紙) 기자 출신으로, 이제까지 한국 청소년문학계에 등장했던 감성들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자기만의 고유한 세계를 선보인다. ‘미술 전공자’라는 이력에서 짐작할 수 있는 섬세한 감각이 화자의 내면묘사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으며,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주인공의 눈에 비친 계절마다 다른 미감을 선사하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은 수려한 문장으로 심상을 이룬다. 서사의 완급을 능히 조절하는 장악력, 감정의 과잉을 경계하는 밀도 높은 문장 등 신인답지 않은 원숙함도 돋보인다. 올해 안에 예정되어 있는 차기작 출간 일정은 믿음직한 신예 작가에게 쏟아지는 출판계의 뜨거운 관심을 짐작게 한다.

목차

소주

석준

폭우

노엘

맞지 마

영감님

장례식

폭풍 속

바람산 이야기

다른 세계

변하는 것, 변하지 않는 것

어느 일요일

그가 원한 것

 

 

작가의 말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자신의 상처를 매만지는 소녀의 섬세한 손길을 느낄 때 소년은 사랑에 빠진다. 행복에 대해 생각한다. 자신의 뒷모습을 간절히 바라보는 소년의 시선을 느낄 때 소녀는 행복해진다. 이 소설은 우리가 한때 놓쳐버린 사랑과 행복의 노래를 바람결에 들려준다. 그러나 어느 순간 바람을 타고 무서운 불길이 몰려온다. 사랑과 행복은 잿더미로 변하고 세상은 메마른 사막이 된다. 슬픔에 대해 생각한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누군가에 대한 애끓는 그리움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슬프고 또 슬프다. 책장을 덮으면서 사랑과 행복이 한 쌍이듯, 슬픔과 아름다움이 한 쌍인 이유를 알겠다. 둘 다 보석 같다. 권여선(소설가)
누군가를 오래 지켜보고, 애틋해하고, 걱정하고, 그러다 사랑하고 마는 그 느리고 지난한 과정을 응시하게 하는 건 역시 문학의 몫이다.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속도전에 빠진 최근 청소년문학 속에서 『바람이 노래한다』는 진정 문학다운 시간과 정서를 선사한다. 가슴이 먹먹하도록 슬프지만 결코 정도를 넘지 않는 절제미도 뛰어나다. 박숙경(문학평론가)

저자의 말

연병장에 소대원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소대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우렁차게 외쳤다. “제군들! 지금부터 우리는 아주 위험하며 동시에 중대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 작전지역에 먼저 가서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를 모아올 정찰병이 필요하다.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전우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용기 있는 자가 앞으로 한 발 나서 자원해주기 바란다!” 소대장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한 사람이 대열의 앞으로 나섰다. 소대장은 크게 기뻐하며 용기 있는 군인 앞으로 갔다. “제군! 군의 용기에 감탄하는 바이다! 앞으로 나선 이유를 물어도 되겠는가?” 잔뜩 겁에 질린 소대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들 뒤로 한 발짝 물러났는데, 저만 그대로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내가 아주 오랫동안 좋아한 우스개이다. 나는 다들 한 발짝 물러설 때, 미처 그 생각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난데없이 위험한 임무를 떠맡게 된 그 가련한 병사가 몹시 좋았다. 이 얼마나 어수룩한 비극의 시작인가 말이다. 삼십 년 넘게 문학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살아오던 내가 갑자기 소설을 쓴다니까 다들 물어보는 말이 있다. “대체 왜?” 그때의 내 표정은 아마 저 가련한 병사의 표정과 똑같았을 것이다. 나는 미처 한 발 물러날 생각을 하지 못해 위험한 지역으로 떠나게 된 정찰병 같은 심정이었다. 될 수 있으면 다들 물러날 때 같이 물러설 수 있는 약간의 기지와 영악함을 갖추고 싶었건만, 어쩌나. 나는 이미 대열에서 밀려나 버렸다. 글을 쓴다는 게 그렇다. 쓰고자 해서 써지는 것도 아니고, 피하고자 해서 피해지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내가 소설을 쓰는 이유는 이렇게 어수룩하다. 기왕지사 갔다 오기로 한 거, 나는 군화 끈을 단단히 조이고 망원경과 수통도 챙긴다. 내가 다녀오는 그곳이 들을 만한 이야깃거리를 많이 담고 있는 곳이면 좋겠다. 쓸모 있는 이야기는 하나도 건져 오지 못하는 정찰병이라니, 정말 맥 빠지는 일일 것이다. 뭐든 책이 나오면 거기에 자기 이름을 넣어달라고 한 내 동생 영은아. 네 이름 넣는다. 자신감 없어 비실대는 초짜 작가에게 1호 광팬을 자처하며 충실한 격려를 아끼지 않아줘서 고맙다. 지금은 호수가 보이는 골짜기에서 편히 쉬고 있을 그에게도 고맙다. 그는 끊어져 있던 내 삶의 어떤 고리를 이어주고 갔다. 하마터면 내 하드에서 영구히 뒹굴다 사장될 뻔한 졸고에 생명을 불어 넣어준 창비 편집부에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막상 첫 책이 나오니, 나는 고마운 사람이 많은 참 복 받은 사람이다.   2009년 8월 권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