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를 잇는, 『완득이』와는 다른, 또 하나의 화제작
2008년 제1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으로 폭넓은 독자층을 아우르며 아낌없는 사랑을 받은 『완득이』. 2009년 제2의 『완득이』를 기다려온 독자들에게 『완득이』 그 이상의 작품이 찾아왔다.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위저드 베이커리』는 빼어난 서사적 역량과 독특한 상상력으로 『완득이』와는 또 다른 지점에서 한국소설의 지형도에 융기를 형성하는 작품이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집에서 뛰쳐나온 소년이 우연히 몸을 피한 빵집에서 겪게 되는 온갖 사건들은 판타지인 동시에 절망적인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마법사의 눈에 비친 현대인의 비틀린 욕망은 무시무시하고, 평범한 중산층 가족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끔찍하기까지 하다. 『헨젤과 그레텔』 같은 ‘잔혹동화’의 바통을 이어받으면서도 이들의 문법을 절묘하게 전복시킨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줄 것이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청소년문학의 등장
『위저드 베이커리』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기존 청소년소설의 틀을 뒤흔드는, 현실로부터의 과감한 탈주에 있다.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한 한국의 청소년문학은 작가가 자신의 청소년기를 회상하거나 요즘 아이들의 실상을 관찰하여 기록하는 데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 대부분이다. 영미권과 유럽을 비롯해 가까운 일본에서는 이미 1970년대부터 YA(Young Adult), 즉 젊은 독자들을 겨냥한 다양한 소재와 장르의 소설을 선보인 데 반해, 우리는 ‘성장소설’의 관점에서만 청소년문학에 접근해왔던 것이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이처럼 한계가 뚜렷했던 기존 청소년문학의 외연을 한 단계 넓힐 작품이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청소년기의 악몽을 불온한 터치로 각색한다. 이 소설이 보여주는 현실세계에 대한 섬뜩한 알레고리는 문학에서마저 학교 안에 갇혀버린 최근 한국 청소년소설의 한계를 뛰어넘는 고무적인 성과로 보인다. 심사위원들은 “우리 청소년문학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미스터리 호러 판타지”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청소년심사단 역시 만장일치로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주지의 청소년소설 경향을 가뿐히 뒤집는 이 작품을 향한 독자들과 평단 안팎의 뜨거운 관심이 예상된다.
인간의 욕망에 따라 마법의 빵이 만들어지는 곳
『위저드 베이커리』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제껏 국내 소설에서 찾기 어려웠던 미스터리와 호러, 판타지적 요소를 두루 갖춘 작품이다. 비유하자면 이른바 ‘마법 이야기’가 최초로 한국 영주권을 얻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문학과 장르소설의 묘미를 적확한 비율로 반죽한 이 작품만의 특별한 미감은 색다른 이야기에 목말랐던 독자들에게 쾌감을 선사한다. 작품을 지배하는 섬뜩한 분위기와 긴장감을 유지시키면서도 이야기가 무겁게 얼어붙지 않도록 탄력을 불어넣는 작가의 촘촘한 문장 또한 발군이다. 청소년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의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할 문제작으로 손색이 없기에, 창비에서는 『완득이』에 이어 일반 성인을 위한 양장본을 같이 출간하였다.
프롤로그
개암나무 가지
악마의 시나몬 쿠키
땅콩버터 맛 대보름빵
체인 월넛 프레첼과 마지팬 부두인형
몽마의 습격
타임 리와인더
화이트 코코아 파우더
바로, 그 순간
Y의 경우
N의 경우
작가의 말
-요청 사항? 그렇게 많지 않아요. 저는 과자를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맛을 잘 느낄 줄 모르는 불행한 미각을 갖고 있거든요. 그저 많이 달거나 느끼하지만 않으면 돼요. 아 참, 건포도를 포함해서 모든 건과는 좋아하지 않아요. 무더운 여름날 팥빙수도 먹지 않을 정도니까 팥 앙금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초콜릿은 괜찮아요. 밀크초콜릿 말고요. 카카오의 함유량은 56퍼센트가 가장 좋아요. 땅콩 가루도 아몬드도 필요 없어요. 견과류는, 글쎄요, 영혼에 기름이 끼일 것 같아서. 이런 성분을 넣어줄 수 있나요. 먹고 나면 아픔을 잊게 되는 것. 오래전에 지나가고 충분히 이겨냈다고 믿고 있음에도, 문득문득 현실로 불쑥 살아오는 것들 모두. 그건 약물과 같이 일시적으로 신경 회로를 차단하는 것이어서는 안 돼요. 그런 감각의 마비는 언젠가 풀리고 마니까요. 지속적이었으면, 가능하면 영원까지. ……고통의 정체가 너무 추상적이고 상대적이라 힘들단 말이죠. 그럼 할 수 없네요.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꼽아가며 지워달라고 하기에는, 오늘 밤이 너무 짧거든요. 그러면 이건 어떤가요. 오늘 먹고 잠들면 내일 아침 세상이 뒤집어져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것도 안 되는군요. 최소한 나를 둘러싼 삶의 비루한 조건들이 조금씩은 달라졌으면 해요. 그런데 무엇보다 가장 바라는 건 찬란한 문장을 얻는 거예요. 그걸 얻으면 나는 다른 모든 걸 견딜 수 있어요. 그러면 끝없는 부딪침의 결과로 닳아지고 얇아진 삶에, 두꺼운 코발트색으로 붓질을 한 번 더할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의 과자에 그런 마법을 걸어줄 수 있나요. 목적어의 자리에 무엇을 놓든 간에, 내가 바라는 건 ‘지금이 아닌 어떤 것’이에요. 가공(加工)할 재료의 목록을 적어 내려가던 그는 레씨피를 덮고 볼펜을 내려놓았다. -힘들겠어, 당신한테는. 나는 어째서냐고 묻지 않았다. 그의 대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도대체가, 지금을 부정하는 인간이 이런 걸로 조금 도움을 얻어보았자 무얼 어떻게 바꿀 수 있다는 거지? 기억해둬,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아니야. 그저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틀릴 확률이 어쩌면 더 많은, 때로는 어이없는 주사위 놀음에 지배받기도 하는. 그래도 그 결과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상처가 나면 난 대로, 돌아갈 곳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사이가 틀어지면 틀어진 대로. 그렇게 흘러가는 삶을, 단지견디며 살아가는 사람이 실은 더 많을 터다. 그러다 보니 귀향이나 회복, 치유와 화해를 넘어미래에의 전망에 이르는 성장의 문법을 무의식적으로 배제했다.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편집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빛을 보지 못했을 소설이다. 짧지 않은 세월, 나를 견뎌준-앞으로도 견뎌줄 분들께 인사드릴 면목이 생겨 다행이다. 2009년 3월 구병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