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사철 변하고 아이들이 으레 자라나듯 그 작품세계도 한결같음 속에서 유연하게 변모해왔다. 이번 시집에서는 특히, 바람에 한껏 날리는 수양버들 가지처럼 춘정으로 터질 듯 차오른 감성이 도처에 충만한 봄빛을 새롭게 느끼게 한다. 갑년을 지난 나이를 무색케 하는 이 터질 듯한 감성은 절절하고 싱그럽기까지 하다. 표제작 「수양버들」은 물론 2백여년 전 「마상청앵도」의 섬세한 그윽함과 맞닿아 씌어진 「색의(色衣)」나 「살구나무」 같은 시편들이 더욱 그렇다.
천변만화하는 자연에 감응하여 자신을 한껏 열어젖힌 이 풍성한 감성은 그간 김용택 시에서 보기 드문 것들이다. 바람과 비, 나비, 수양버들, 새와 강물소리 들은 저마다의 모양과 빛깔과 향내를 진하게 풍기며 시 속에 들어온다. 시인의 마음이 그것을 받아 춤춘다.
이런 모습의 다른 편에는 이제 생의 높은 고비를 넘어선 시인의 회한과 상념이 있다. “봄이다. 한 가지로 너무 오래 살았다”(「시인의 말」)는 고백은, 피어나는 찬연한 생명들 앞에 선 연륜의 흔적이 묻어나는 자연인의 목소리이다.
내 나이/올해로 이순(耳順), 세상물정 모르는 바 아니나,/시 몇편 써놓고/밖에 나가니/세상 부러울 게 없다.//
너희들은,/내가 이렇게 잠시나마/끝없이 너그러워지는 그 이유를 모를 것이다./내 나이/이순, 살아온 날들을 지우라는 뜻이다. (「이순」)
금화는 내 동갑이었다. 천질을 앓았다. 어느해 자살을 기도해, 온 동네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애기지게를 지고 제 키보다 큰 작대기를 짚고 되똥되똥 강 길을 가던 금화를 생각하면 슬픔이 강물처럼 내 발밑까지 물결진다. 지금 살아 있으면 환갑이다.
환갑이라고 쓰니, 환갑이 서럽다.
우리 동네 내 동갑은 현철이, 금화, 태수, 재선이, 재석이, 나 이렇게 여섯이다.
같은 동네에서 같은 해에 태어났으나, 금화는 청년으로 일찍 죽고
마을 앞 강변 돌멩이들같이 정다운 이름 넷은 여기저기서 따로따로 늙는다. (「금화」)
인생은 바람 같고 사랑과 종교와 정치와 시와 경제도 대개 “통제불능”이지만(「시인의 말」) 그러나 대단한 무엇을 이루려 욕심내지 않았던 시인은 이제까지처럼 자신의 길을 한발자국씩 나아갈 뿐이다. 그에게는 무엇보다 시가 있고 대를 이어 가르쳤던 아이들이 있고, 고향의 산천이 있다. 그리고 추억이 있다. 이번 시집에서 가장 정겹고 빙그레 웃음이 나는 흥겨운 시편들은 역시 고향 마을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얌쇠양반」 「옥희」 「금화」 「폐계」 같은 시들은 고요한 달밤에 울려퍼지는 노랫가락처럼 김용택 시에서만 느낄 수 있는 따스한 그리움을 선사한다.
자연의 순환과 더불어 살아가며 사람의 순성(純性)을 잃지 않는 길을 따라 시인의 노래들은 오래오래 독자의 곁에 남아 있을 것이다.
사랑
섬진강 28―물새
한 잎
새들이 조용할 때
봄―생―발산―나비
수양버
살구나무
스님이
아이가
색의―마상청앵도
그리움
풍경
폐계
희
손톱
깊은 밤
울어라 봄바람아
지리산 호랑이
꽃
조금은 오래된 그림 한 장
집
김수영이라면
어느날
성우에게
자화상
이순
3월 2일
3mm의 산문
빈 속
실천
눈이 그린 길
지장암
달을 건져가네
야반도주
가뭄
구이
길
두메산골
금화
그 여자 생각
오래된 사진 한 장
옥희
얌쇠 양반
조락으로 가다
마을회관
진달래꽃
오동꽃
꿀먹은 벙어리
달콤한 사랑
앞동산에 참나무야
그네
2월
산 중에서 며칠
오리 날다
하동 배꽃
춘설
꽃피는 초원에 총 쏘지 마세요
시인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