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혜 시인이 첫 동시집 『아기 까치의 우산』을 낸 지 4년여 만에 특별한 두 번째 동시집을 냈다. 『아빠를 딱 하루만』은 갑작스럽게 아빠의 죽음을 맞은 아이가 슬픔을 딛고 스스로 씩씩하고 의젓하게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린 동시집이다.
몇 년 전 남편과 사별한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한 이번 동시집은 시인 자신에게도 그 의미가 크다. 어린이, 자연과 함께 평화롭고 환희 가득한 나날을 보내던 시인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가족의 죽음. 스스로 “천둥벼락이 꽂힌 시간”이었다고 표현한 시인은 동시를 쓰면서 그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슬픔을 억지로 참지도 않고, 그렇다고 슬픔에만 잠겨 있지도 않은 채, 슬픔과 함께 먹고, 자고, 울고, 웃은 3년여 시간들을 모두 시에 담았다.
아이들은 아직 다양한 경험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도, 다양한 감정을 다스릴 힘도 없다. 그러나 아이라고 해서 무조건 안전한 곳에 보호받은 채 살아가진 않는다. 김미혜 시인은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이러한 현실에 대해 더욱 뼈저리게 고민했다. 그리하여 이번 동시집을 통해 어린이책에서 기쁨이나 즐거움에 비해 상대적으로 외면받는 정서인 ‘슬픔’을 정제된 언어로 드러내 보여 준다. 이를 통해 소중한 가족, 친구와 헤어진 어린이들에게 작은 위안과 용기를 주는 동시에, 늘 곁에 있어서 소중함을 잊고 사는 이들의 존재감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마음속에 숨은 다양한 감정을 깨워주는 동시
제1, 2부의 동시 서른 편에는 아빠의 임종에서부터 장례식, 화장(火葬), 제사 등에 이르기까지 아주 구체적인 사건과 감정들이 시간 순으로 나열되어 있다.
응급실 침대 위에 하얀 천/그 사이로 아빠 옷자락이 보였어요./(중략)/아빠 몸이 식어 갔어요./아빠 별명은 난로인데/뜨거운 난로인데/차갑게 식어 갔어요. (「8월 25일 늦은 밤) 부분)
아빠를 태운 장례차/화장장으로 갈 때 집에 들렀어요./(중략) / 집보다 편한 곳 없다 그러셨는데/공원에 아빠를 남겨 두고/낯선 곳에 아빠를 혼자 두고/우리만 집으로 왔어요.//텅 빈 집으로 돌아왔어요. (「아빠의 장례식) 전문)
작년 추석엔 아빠가 있었는데/큰집에 가서 같이 절했는데//올해엔 아빠가 절을 받는대요./엄마 절도 받는대요.(「추석 반달」 부분)
시 속 화자는 임종을 지키며 느낀 격한 슬픔에서부터 아빠의 부재로 인해 다가오는 야속함, 허전함, 그리움 등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뒤 느끼게 되는 다양한 감정을 스스로 감당해 나간다.
유품을 정리하며 발견한 아빠의 낡은 추리닝 바지를 뺨에 대 보며 “아빠 같아.”(「추리닝 바지」)라고 혼잣말하고, 저녁 시간에 “초인종 울리면”아빠가 문 열 것 같아 “가슴이 덜컥 내려앉”(「저녁 내내」)고, 아무 때라도 좋으니 “아빠를 딱 하루만/저한테 보내 주세요.”(「딱 하루만」)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가슴에 폭탄이 생겼다고/터질 것 같다고”(「인터넷 깔아 주세요」) 편지를 쓰고 싶어 하늘나라에 인터넷 깔아 달라고 비는 아이의 마음을 대하다 보면, 책 뒤표지에 쓴 도종환 시인의 표현대로 “기어코 울고 말”게 된다.
그러나 시 한 편 한 편을 차례로 따라가다 보면, 슬픈 현실을 피하지 않고 마음을 차곡차곡 정리해 가며 끝내는 슬픔을 똑바로 마주하는 아이의 씩씩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이제 저는 아빠 없는 아이/그러니까 더 장하게/더 씩씩하게 자랄게요,/아빠에게 약속합니다. (「약속」 부분)
태양계 행성에서/명왕성, 그 이름 지워져도/수, 금, 지, 화, 목, 토, 천, 해, 명.//명왕성은 살아 있는 별/그 자리에서 빛나는 별//아빠가 안 계셔도/우리 가족은 네 명/아빠 엄마 오빠 나/끝까지 네 명. (「명왕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전문)
아빠 생각/점점 줄어든다./슬픔이/작아진다. (「시간의 힘」 전문)
비록 곁을 떠났지만 아빠의 존재 자체는 여전히 가족들에게 남아 빛나고 있음을 깨닫는 아이의 의젓함이 가슴뭉클하게 다가온다. 이를 통해 읽는 이들도 함께 큰 슬픔을 이겨낸 것처럼 마음이 단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밖에도 이번 동시집에는 작고 사소한 것을 ‘관찰’하기 좋아하는 아이들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진 김미혜 시인이 그 아이들을 다시 유심히 ‘관찰’하여 쓴 시 20편이 3-4부에 걸쳐 담겨 있다. 자벌레 때문에 걸음을 멈추는 아이와 같은 섬세한 눈, 과자를 먹으며 바사삭 바사삭 가랑잎 소리 가을 소리를 떠올리는 아이를 닮은 섬세한 귀로 채집한 풀, 꽃, 벌레, 동물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머리말| 동시야, 고맙다
제1부 아바마마♥
8월 25일 늦은 밤
기적
마지막 말
우리 아빠
바리공주는 어디 갔나요
아빠의 장례식
약속
저녁 내내
아바마마♥
추리닝 바지
딱 하루만
추석 반달
아빠 생각
단풍나무 빨간 빛
엄마가 화장을 합니다
제2부 거위벌레 엄마
찐드기
아빠 대신
거위벌레 엄마
돼지 새끼
문방구 앞
비 오는 밤
분꽃 씨앗을 받으며
인터넷 깔아 주세요
쉬는 시간
우리 할머니
봄이 와도
벚나무 아래
발 들어!
명왕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의 힘
제3부 그냥 제비꽃
자벌레 때문이에요
종이 먹는 염소
비 그친 뒤
그냥 제비꽃
꽃 공부 간 날
이사 가는 나무
거미 한 마리
감나무
가을 소리
큰 사과 사 오지 마라
제4부 나뭇잎 벌레야 조심조심
네모난 수박
배짱도 좋아요
긴급 출동
글쓰기 시간
나뭇잎 벌레야 조심조심
붉은머리오목눈이의 집
꽃 노래
고양이 발자국
새야 새야
새소리를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