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집시들의 숲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소년의 ‘위험한 우정’을 다룬 청소년소설. 작가 요제프 홀루프의 자전적 체험이 담긴 『보헤미아의 여름』(Der Rote Nepomuk)은 다듬어지지 않은 소년의 언어로 역사의 한 순간을 날카롭게 복원하고 있다. 작가는 전쟁 직전 국경 지대의 두 소년이라는 극적인 설정에 치밀한 시대적・공간적 배경 묘사를 입혀 감동과 역사적 지식을 아울러 전달한다. 독자들이 진중한 메시지에 압도되지 않도록 곳곳에 익살을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한 솜씨가 놀랍다.
완성 50여 년 만에 발표되어 독일 유력 아동청소년문학상을 휩쓴 화제작
긴 냉전의 세월을 지나 1992년, 완성된 지 50여 년 만에 발표된 『보헤미아의 여름』은 출간과 동시에 페터 헤르틀링 상, 올덴부르크 아동청소년문학상 등 독일 유력 청소년문학상을 섭렵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주요 인물 가운데 사회민주주의자가 등장하는 것을 비롯한 정치적인 이유로 공개될 수 없었던 이 작품을 통해, 전쟁 직전의 순간에서 성장을 멈춘 채 긴 시간 숨죽여 기다려온 소년의 목소리가 여전히 바래지 않은 시대의 증언으로 되살아났다. 이 작품은 독일아동청소년문학상의 최종후보에도 오른 바 있다.
국적을 초월하는 우정, 긴장감 넘치는 모험
『보헤미아의 여름』은 서로를 적으로 돌려야 하는 두 소년 사이의 애틋한 우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모험을 담고 있다. ‘전쟁’과 ‘우정’, ‘어른’과 ‘소년’이라는 대립되는 요소들이 한 공간 안에서 부딪치는 설정은 읽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새로운 사건을 암시하는 의미심장한 결말이 여운을 남긴다. 또한 작가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훼손되지 않는 두 소년의 천진난만함을 통해 작품이 시대의 비극에 천착하면서도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도록 노련함을 발휘한다. 두 소년을 역사의 희생자가 아닌 어엿한 주체로 인식하는 작가의 태도가 믿음직스러우며, 제2차세계대전을 다룬 대부분의 작품들과 달리 독일인과 유대인의 만남이라는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전쟁 속에 숨겨진 또 다른 관계를 조명한 것이 인상적이다.
보헤미아의 역사와 자연, 생활 문화의 생생한 기록
『보헤미아의 여름』은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가의 사실적인 기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체험에서 우러난 진정성이 묻어나는 역사적 진술은 독자들이 동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지구 곳곳의 분쟁을 떠올리며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는 역사의 참뜻을 되새길 수 있도록 이끈다. 어린 시절의 원초적인 감각이 풍부히 살아 있는 작가의 세밀한 묘사는 보헤미아 들판 가득 핀 야생 구스베리 향까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그려내며, 생기 넘치는 서술 속에 엿보이는 보헤미아의 이국적인 생활 문화 역시 놓칠 수 없는 매력이다.
줄거리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독일과 체코의 접경 보헤미아. 독일 소년 요제프는 짓궂은 장난으로 체코 소년 이르시를 곤경에 빠뜨린다. 이 운명적인 사건 덕분에 오히려 단짝이 된 두 소년은 마을에서 외떨어진 집시들의 숲에서 천국 같은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집시들의 숲은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어른들의 음모로 더럽혀지고 결국 보헤미아에까지 히틀러의 진격 소식이 도달하기에 이른다. 체코인인 이르시는 위험을 피해 보헤미아를 떠나고 홀로 남겨진 요제프는 둘만의 추억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