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것에서 쓸모를, 절망에서 희망을 보는 중견 동화작가 이가을의 단편동화집 『그 밖에 여러 분』이 출간되었다. 소박하고 따뜻한 심성을 지닌 우리 이웃의 이야기 일곱 편을 담았다. 폐허 속에서도 노래를 부르고, 이웃의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해 애를 쓰며, 버려진 학교를 다시 일구는 이 책의 주인공들은 내세워지는 이들 외에, ‘그 밖에’ 여러 분이 되기를 자처한다. 특유의 섬세한 묘사와 삶을 바라보는 시선, 다정다감한 이야기들이 편편이 담겨 독자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이가을 동화들에는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도 화려한 주인공도 없지만, 자극적인 소재주의 동화나 유행에 편승한 판타지동화 들이 주지 못하는 잔잔한 울림이 있다. 생활환경이 날로 급변하고 척박해지는 이 시대에 묵묵히 이웃애와 정(情), 오랜 상처의 치유에 천착하는 그의 동화들은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순박함과 따뜻함은 오랫동안 ‘동화’가 놓치지 않으려 애써온 ‘동심의 회복’에 잇닿으며,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오늘의 어린이에게 오히려 절박한 것이 된다.
표제작 「그 밖에 여러 분」은 세상을 보는 작가의 시선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다. 버려진 폐교를 ‘자연학교’로 일구고도 그 기념비에는 이름조차 올리지 못한 선생님과 아이들이 울상을 짓지 않는 이유는 자신들의 이름이 기념비 말미의 ‘그 밖에 여러 분’에 오롯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정말로 애쓴 사람의 이름은 밝히지 않는 법”이라는 것을 이들은 잘 안다. 박수를 받고 축사를 하고 행사장 테이프를 끊는 사람들보다 독자들의 박수를 받는 이들은 바로 ‘앞세워지는 이들 바깥에 있는 여러 사람’이다. 숨은 조연들을 살피는 작가의 눈길이 미덥다. 이 눈길은 자신이 보잘것없다고 느끼는 어린 독자들에게는 가장 든든한 응원일 것이다.
이가을은 동화의 오랜 가치를 구현하는 데 충실하기 위해 애쓰는 작가인만큼, 결코 현실을 외면하지도 않는다. 「노래 불러라, 종달새」를 계간 『창비어린이』 2005년 가을호에 발표하면서 작가가 후기에 덧붙인 사연은 뭉클하다. 작가 자신도 투병 중에 요양을 위해 태국을 찾았던 처지에 거리에서 생계를 잇는 아이들의 ‘웃음 뒤에 숨겨진 슬픔을 외면할 수가 없어서’ 썼다는 이 작품은 2004년 성탄절에 쓰나미가 푸껫 섬을 휩쓴 실제 재난을 배경으로 한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서도 밝게 살던 소년 꿍풍이 쓰나미로 엄마를 잃고 동생을 영국으로 입양 보내는 마지막 장면에서, 꿍풍은 동생에게 엄마가 불러주던 노래를 부르라고 한다. “이 노래를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며 자신도 힘차게 노래를 부른다. 울지 않으려고 부르는 꿍풍의 노래는 그 어떤 묘사보다도 절절하게 독자의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을 세상에 대한 이해로 승화시키는 이야기 「해탈이」는 그 주제가 새롭고 묵직하다. 어린 해탈이와 그의 번뇌를 지켜보아주는 노스님이 서로 상처를 치유하고 끌어안는 대목은 아이와 어른의 구분을 떠나 진정한 성장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상처는 그것을 이해하고 함께 아파하는 이가 있을 때 치유된다는 작가의 일관된 의식은 「은동이의 달밤」 「피아노 아저씨」에서도 드러난다. 자기밖에 모르는 ‘험한 이웃’ 때문에 ‘좋은 이웃’이 떠나가는 씁쓸한 세태를 담은 「이사 가는 아이」는 이웃과 정을 소중하게 여기는 작가의 철학이 잘 담겼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세상에 떠도는 많은 이야기 토막들이 ‘이야기가 되게 해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자신에게는 유난히 잘 들린다고 했다. 모쪼록 그 많은 이야기들이 작가의 따뜻한 눈과 마음을 거쳐 감동적인 동화가 되어 다시 우리를 찾기를 기대한다.
별이 빛나네
이사 가는 아이
은동이의 달밤
그 밖에 여러 분
해탈이
피아노 아저씨
노래 불러라, 종달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