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네 초등학교 6학년인 겁 많고 소심한 성격의 켄지, 거칠 것 없는 학교짱 아끼라, 따돌림당하지만 똑똑하고 소신 있는 전학생 가쯔미. 이 세 소년의 이야기가 어느 여름날 추억의 앨범을 보듯 아련하게 펼쳐진다.
4월 말, 켄지는 남자아이들이 보물처럼 여기는 그해 첫 사슴벌레를 어렵사리 잡는다. ‘아이들이 얼마나 부러워할까!’ 하지만 기쁨과 설렘도 잠시. 운 나쁘게도 이웃마을의 타까 초등학교 패거리들과 맞닥뜨려 저항 한 번 못해보고 그 첫 사슴벌레를 빼앗기고 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끼라 패거리는 흥분하며 켄지의 이름으로 결투장을 보낸다. 정작 켄지는 싸움 따위는 하고 싶지도 않은데 말이다. 결투는 벌어지고, 이 상황이 두렵기만 하던 켄지는 얼떨결에 포로를 잡고서 묘한 승리감과 함께 알 수 없는 우울함에 빠진다.
일 년에 한 번씩 마을 전체가 강을 청소하는 날, 아이들은 커다란 물고기를 잡겠다며 한껏 기대에 부풀어 다 함께 한마음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아이들이 힘을 합하여 잡으려던 커다란 잉어를 고기 잡는 실력만큼은 또래 아이들 중 으뜸인 켄지가 놓쳐버린 것. 이때부터 아끼라를 중심으로 한 집단 따돌림이 시작되고……
외톨이가 된 켄지는 자신에게 다가온 왕따 전학생 가쯔미와 새롭게 우정을 쌓아간다. 여름방학과 함께 비밀 기지 만들기, 양수장에서 고기잡기 등 여러 사건들을 겪으면서 이제 켄지는 대장 아끼라를 배신하고 싶지도, 새로 마음을 나누게 된 친구 가쯔미를 놓치고 싶지도 않은데……
소년기 아이들의 아프지만 아름다운 성장과 상실의 이야기
『보이지 않는 적』은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십대 초반 소년들이 어른들의 세계로 한 발짝 나아가는 과정을 담은 소년소설이자 성장 문학이다.
작품은 켄지와 그 친구들이 고기잡이, 비밀 기지 만들기 같은 또래 아이들만의 놀이 세계에 흠뻑 빠진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다. 어린 시절 강가 마을에서 자란 작가의 경험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더한층 사실적이고 현실감 있다.
그런데 작품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또래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고민이나 갈등을 곡진하게 담아내고 있다. ‘미사또에 사는 전학생하고는 놀지 않는다’는 규칙 때문에 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가쯔미나, 모두가 고대하던 물고기를 놓쳐버렸다고 늘 함께하던 무리에 낄 수 없게 된 켄지의 모습에서 집단 따돌림이나 집단 괴롭힘 속에 드러나는 폭력성을 여실히 목격하게 된다. 또한 무리의 짱으로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아끼라, 폭력이 싫다면서도 은연 중에 자기보다 약한 아이에게 힘을 행사하는 켄지, 학교짱 아끼라와 대립각을 세우지만 한편으로는 아끼라의 마음을 공감하는 가쯔미 등을 통해 남자아이들 사이의 묘한 힘겨루기와 경쟁의식을 읽을 수 있다. 작가는 사내아이들 세계의 역학 관계를 예리하게 포착하여 다양한 에피쏘드 속에 담아낸다. 이러한 힘의 논리는 참억새 들판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또래 집단을 넘어 어른들의 세계로까지 확장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겪게 되는 상실감을 은근하고 깊이 있게 그려 작품의 무게감을 더한다.
“보이지 않는 적?”
“응. 상상의 세계에 있는 적 말야. 난 보이지 않는 적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
켄지는 가쯔미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참 재미있는 아이야.’
그리고 마음속으로 가쯔미의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보이지 않는 적은 분명히 있다…… 보이지 않는 적은 분명히 있다……’ (197면)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수채화처럼 섬세하고 담백한 문체
『보이지 않는 적』의 배경은 일본의 한 시골 마을. 작가는 이 시골 마을 전경을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듯 섬세하고 담백한 문체로 담아내어 작품에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더한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작가의 성장 배경과 경험들, 그리고 작가 특유의 감수성이 발휘되어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배경 묘사로 드러난 것. 이러한 작가의 표현 기법은 작중 인물의 마음결을 들여다보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되기도 한다. 녹록지 않은 작가의 내공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짧게 끊어지는 담담한 어투 역시 이 작품이 가지는 빼어난 매력 중 하나인데, 독자들이 자연스레 글과 호흡하며 작품 속으로 젖어들게 한다.
머리 위로 푸르디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고 산등성이께는 아슴푸레 흐려 보였다. 바람은 활짝 피었던 벚꽃이 진 자리에서 왕성하게 자라나는 어린잎을 부드럽게 흔들고 있었다. 이런 바람을 싱그러운 봄바람이라고 하는 것일까.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이 숨을 쉬는 것 같았다. (…)
뜯긴 어린잎들이 바람에 춤을 춘다. 그러나 켄지는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으로 재빨리 이파리 하나를 잡았다. 상처 입지 않은 어린잎이다. 때 묻지 않은 어린잎이다. 연둣빛 이파리 끝은 칼끝처럼 뾰족했지만 안쓰러울 만큼 보드라웠다. (7-8면)
켄지는 한동안 멍하니 새끼 남생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제는 그렇게 타꾸야 걱정을 했으면서. 나는 왜 소리를 질러 버렸을까.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켄지는 그늘을 찾아 수레 밑으로 기어 오는 새끼 남생이를 집어 들었다. 남생이는 바동바동, 바동바동 네 발을 움직이고 있다.
“이건 어제 본 그 새끼 남생이일지 몰라.”
켄지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어제, 물살을 거스르며 힘겹게 헤엄치던 남생이. 누군가의 발에 밟혀 버리면 어쩌나 걱정했던 남생이. 그 새끼 남생이가 여기 있다. 켄지 손끝에 쥐어진 남생이의 짤따란 네 다리가 쉴 새 없이 허공을 갈랐다. (113-114면)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되는 아베 나쯔마루의 수작
아베 나쯔마루(阿部夏丸)는 강과 낚시와 소년들의 우정을 그린 첫 작품 『울지 못하는 물고기들(泣けない魚たち)』(1995)로 ‘일본판 톰 쏘여의 모험’을 썼다는 평가를 받으며 일본 어린이문학계에 등장해, 특히 소년소설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유명 작가다.
『보이지 않는 적』은 그의 세 번째 작품으로 십대 초반 소년들의 감수성을 탁월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출간 이듬해(1999)에는 학교 입시 문제로도 출제되어 큰 이목을 끌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독자들에게 꾸준하게 인기를 얻고 있는, 아베 나쯔마루의 대표작이다.
독특하고 개성 있는 일러스트
소년기 아이들의 복잡하고 내밀한 심리 상태와 아름다운 자연 풍광이 어우러진 작품의 특성을 독특하고 개성 있는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표현, 색다르면서도 글과 그림의 어울림이 자연스럽다. 거친 듯하면서도 하나하나 살아있는 터치감, 자연스러운 농담 대비, 검정과 물색의 색채 대비, 그래픽적인 화면 배치와 풍경 묘사, 독특한 구도 사용은 작품의 전반적인 느낌을 잘 구현하고 있다. 또한 사각 프레임 안에 그림이 들어간 디자인 형식을 책 사이사이에 배치한 시도는 추억이 담긴 폴라로이드 사진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글 텍스트에서 드러나는 인물들의 특징을 잘 살린 개성 있는 캐릭터 역시 작품의 재미를 더한다.
1. 첫 사슴
2. 효오딴 연못의 결투
3. 새끼 남생이
4. 수정산
5. 동남참게
6. 비밀 기지
7. 양수장
8. 독풀
9. 마음의 자리
10. 불타는 풀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