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소녀

아리엘 도르프만  희곡선  ,  김명환  옮김  ,  김엘리사  옮김
원제: The Collection of Plays
출간일: 2007.07.05.
정가: 20,000원
분야: 문학, 외국문학
칠레 출신의 세계적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 희곡선 『죽음과 소녀』가 출간되었다. 이번 희곡선에는 그의 대표작 「죽음과 소녀」(Death and the Maiden, 1991)를 비롯하여 「과부들」(Widows, 1987), 최근작인 「경계선 너머」(The Other Side, 2005), 「죽음과 소녀」의 후속편이라 할 수 있는 신작 「연옥」(Purgatorio, 2005)에 이르기까지 총 네 편의 작품이 담겨 있다.

 

 

 

 

 

 

 

 

기억은 어떻게 우리를 속이고, 구원하고, 길을 인도하는가?

 

 

 

 

 

 

 

「죽음과 소녀」는 올리비에 어워드에서 최고연극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전세계적으로 수천개의 프로덕션을 가지고 있는 도르프만의 대표작이다. 1994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국내에서 1995년 ‘시고니 위버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여주인공 빠울리나는 예전에 자신을 고문하고 강간한 의사를 우연히 만나 그를 한눈에 알아본다. 복수를 꿈꾸는 그녀는 그를 집안에 감금한 뒤 죽이려 든다. 그녀의 고통스러운 기억은 의사 특유의 말씨와 체취 등 사소한 것만으로도 자신을 고문하던 바로 그 사람임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빠울리나의 남편 헤라르도는 냉철하고 합리적인 남자로서 독재정권 시기의 의문사를 규명하기 위한 조사위원회에서 일하기로 한 상태이며, 자신의 공평무사한 태도를 지키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아내의 돌발행동을 막으려 한다. 독자들은 이 의사가 무고한 사람인지 아니면 정말 빠울리나를 고문한 자인지를 추측해가며 작품을 따라읽게 되는데, 작품 전체에 흐르는 써스펜스와 스릴러적 요소가 흥미진진한 재미를 준다. 빠울리나는 진실을 원한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그 의사가 잘못을 자백하는 것이며, 자백을 통해서 그가 정말 그녀를 고문한 사람인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이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뒤엉킨 역사 속에서 명백하고 쉬운 해답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동시에 “손쉬운 해결과 화해를 단호히 배제”하면서 “저자가 창조한 등장인물들과 함께 절박한 삶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탐구하게” 만든다(「옮긴이의 말」 중에서).

 

 

 

 

 

 

 

「연옥」은 작가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용서’와 ‘화해’라는 주제를 실험적인 형식 속에서 모색하는 최근작이다. 작품 후기에서 작가는 “「연옥」은 사실 정서적, 지적으로 「죽음과 소녀」의 후속편으로 볼 수 있는데, 빠울리나가 제기한 문제들 중 몇가지를 더 탐구하고, 그 문제들을 넘어서려고 하는 것”이라 밝히고 있다. 휘몰아치듯 진행되는 이 단막극은, 등장인물에 관한 소개가 전혀 없다. 그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등장할 뿐이다. 시공간적 배경에 대한 설명도 일절 없지만 마치 감옥에 갇힌 재소자처럼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이곳’은 이내 ‘연옥’임을 깨닫게 한다. 지옥도 아니고 천국도 아닌 곳, 즉 이곳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죄를 씻기 위해 머무는 장소이다. 후반부에 이르면 대사가 반복되면서 공격자와 희생자가 서로 뒤바뀌는 독특한 구조가 나타나는데, 독자는 ‘내가 가장 사랑한 사람이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경우’에 대해, 그리고 희생자와 공격자의 입장이 뒤바뀌는 순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평범한 대화 속에 신화적인 요소를 담아내는 도르프만 특유의 문체는 이 작품에서 더욱 심화되었다. 그뿐 아니라 종교적이고 영적인 주제와 ‘개인과 개인 사이의 용서’라는 내밀한 영역에 대한 탐구는 독자에게 큰 감동을 준다.

 

 

 

 

 

 

 

「과부들」은 작가가 한가지 주제를 시, 장편소설, 희곡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하며 이십여년 동안 고민한 대작이다. 한 마을의 남자들이 모두 군부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가 실종된 상태인데, 시신 몇구가 강물에 떠내려온다. 이 시신을 놓고 빚어지는 과부들의 비극이 환상적이고 리듬있는 문체로 그려져 있다. 여인들은 슬퍼하면서도 끝내 의지와 희망을 놓치지 않는다. 또한 살아남은 자들의 끈기와 의지, 기다림이 잘 드러나 있어 현대사의 질곡을 겪어온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의미있게 다가올 것이다.

 

 

 

 

 

 

 

신작 「경계선 너머」는 작가가 한국 공연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으로, 그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연대의식을 엿볼 수 있다. 2004년 일본 신국립극장에서 초연을 했고, 2005년 극단 미추에서 ‘디 아더 사이드’라는 제목으로 공연된 바 있다. 전쟁중인 두 나라의 경계지역에 있는 오두막을 배경으로 나이든 부부 내외가 시신을 수습하고 전사자의 신원확인 작업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내는 젊은 남자의 시신을 볼 때마다 집을 나가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아들이 아닐까 하고 마음을 졸인다. 그러던 어느날, 어디선가 젊은 군인이 나타나 측량을 한다며 오두막 한가운데를 갈라놓는다. 집 안에서 비자가 필요해지고 통행증 없이는 서로 오갈 수도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평화가 찾아오는 듯하던 경계선 지역에 또다시 포격이 이어지고 군인은 죽음을 맞이한다. 이 군인이 아들이 아닐까 기대하던 아내와 남편은 절망한다. 경계를 가르는 행위에 담긴 비인간성을 탁월한 블랙코미디 형식에 담아 독자들에게 전쟁의 폐해를 깊이 일깨워준다.

 

 

 

 

 

 

 

우리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을 어떻게 용서할까?

 

 

 

 

 

 

 

군사독재가 몰락한 지 오래된 지금 우리에게 도르프만의 질문은 참으로 절실하다. “우리가 어떻게 과거의 수인이 되지 않고 과거를 살아 있게 할 것인가? 미래에 과거가 되풀이될 위험을 방지하면서 어떻게 과거를 잊을 것인가” 이 물음은 매우 정치적인 질문이면서도 불완전한 우리 삶의 현실적인 조건이 맞닥뜨리게 되는 난제이다. 식민지시대와 분단, 전쟁과 독재라는 어두운 기억으로 찢긴 우리에게 이 문제와 예술적으로 대결하는 작업은 우리 문학의 현실응전력을 드높이는 데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옮긴이의 말」중에서).

 

 

 

 

 

 

 

『죽음과 소녀』는 세계적으로 뛰어난 작가의 대표작을 묶은 희곡선이며, 훌륭한 연극작품의 대본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값진 결과물이다. 그뿐 아니라 읽을거리로서 희곡이라는 장르가 독자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지금, 이 책은 소설과는 또다른 문학장르로서 희곡 특유의 매력을 발휘하며 읽는 이에게 신선한 독서체험을 가능케 할 것이다. 무대를 상상하며 따라 읽어보는 적극적인 독서행위를 통해 이제껏 알지 못했던 희곡의 즐거움에 빠져들 수 있기를 기원한다.

목차

과부들

작가 후기

 

죽음과 소녀

작가 후기

 

경계선 너머

작가 후기

 

연옥

작가 후기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