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장생을 찾아서

최향랑  지음
출간일: 2007.02.20.
정가: 15,800원
분야: 그림책, 창작

나는 언제까지나 할아버지와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까만 눈과 멋진 깃털을 가진 커다란 학이 내 앞에 나타났어요.

나는 학이랑 십장생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로 했어요.

왜냐하면 할아버지한테 꼭 갖다 주고 싶은 게 있거든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은 아이에게 할머니 할아버지는 가장 든든한 보호자이자 둘도 없는 친구입니다. 이 그림책의 주인공 아이와 할아버지도 그렇습니다. 한여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쪼그려 앉아 같이 개미 구경을 하기도 하고, 같이 책을 보다 스르륵 낮잠에 빠지기도 합니다. 놀이터에 가든 공원에 가든 할아버지와 아이는 늘 함께입니다. 그런 할아버지가 편찮으세요. 자리에 누워 꼼짝도 못하는 할아버지 때문에 아이는 늘 시무룩해합니다.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던 날, 텅 빈 할아버지 방에서 아이는 특별한 친구, 학을 만납니다. 학을 통해서 아이는 할아버지에게 가져다 주고 싶은 선물을 생각해내요. 그래서 학과 함께 멋진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할아버지와 손녀딸의 사랑이 깊은 여운을 남기는 그림책

 

 

옛 어머니들은 식구들의 건강과 안녕을 소망하면서 정성을 다해 집 안 물건들에 십장생 무늬를 새기곤 했습니다. 이 책에서도 할아버지에게 십장생을 갖다 드려서 언제까지나 할아버지와 함께 있고 싶은 아이의 소망과 정성이 잘 느껴집니다. 아이가 모아간 십장생들이 병실에서 그림처럼 펼쳐지고, 구름을 타고 할아버지와 동네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장면에서 아이의 간절한 바람은 멋지게 이뤄집니다.

부쩍 커버린 손녀딸에게 “이젠 다 컸으니까 뭐든지 혼자 할 수 있어야지. 얼마나 잘하는지 할아버지가 늘 지켜볼 거야.”라고 말하는 할아버지의 당부에서 아이는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더 애틋하고 마음 깊이 새기게 됩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부재를 통해 “손가락을 베이고 무릎이 까졌을 때처럼 마음도 그렇게 아플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어도 할아버지를 만나러 산소에 가는 길은 슬프거나 무겁지 않습니다. 할아버지를 닮은 눈 속에 할아버지가 영원히 살아 있다고 느끼며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아이의 의연한 모습은 따뜻한 감동과 잔잔한 여운을 줍니다.

 

 

 

 

 

다양한 소재로 만나는 십장생들

 

 

 

불로장생을 뜻하는 십장생을 하나하나 모은다는 이야기는 이 그림책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재미있는 줄기입니다. 그만큼 십장생이 담겨 있는 방 안 물건의 다양한 소재를 그림으로 살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학’은 솜과 깃털, 전통 실을 이용하여 진짜 학처럼 멋지게 표현했고, 베갯모 무늬인 ‘해’는 염색한 천 위에 전통 옷감과 전통 실로 수를 놓아 마치 환한 빛을 쏟아내는 진짜 해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개장롱에 등장하는 ‘사슴’은 직접 자개로 구현했고, ‘바위’와 ‘불로초’가 등장하는 방석은 붉은 공단에 전통 실로 자수를 놓아 표현했습니다. 백자 항아리에 그려진 ‘산’과 ‘구름’을 나타내기 위해 도자기판에 그림을 그려 구워내기도 하고요.

이렇게 생생하고 실감나게 표현된 십장생들은 그 자체로 아이들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주면서 현실과 판타지 세계를 더욱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해줍니다. 책을 다 읽고 할아버지 방 안 곳곳에 숨겨진 십장생을 같이 찾아보는 것도 책을 보는 재미를 더해 줄 것입니다.

 

작가 최향랑은 “아이들이 자신 속에 흐르는 유구한 세대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뒤를 이을 이로서 제 몫을 씩씩하게 다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2년여 동안 이 작업을 했습니다. 언젠가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겪거나 작게는 보살피던 애완동물을 잃기도 하게 될 우리 아이들이 이 책을 통해 그 죽음이 무섭거나 슬픈 것을 넘어서 살아가는 일의 또 다른 한 가지임을 의연하게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가족들의 건강과 안녕을 바랐던 우리 조상들의 전통에서 순박함과 정성스러움을 느끼게 되기를 바랍니다.